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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2월 8일에 열린 벨로베즈스카야 조약 서명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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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Союз ССР как субъект международного права и геополитическая реальность прекращает своё существование
국제법적 및 지정학적 실체로서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은 더 이상 실존하지 않는다.
- 벨라루스의 벨로베즈스카야숲에서 이루어진 러시아, 벨로루시, 우크라이나의 정상들이 합의한 내용 중
국제법적 및 지정학적 실체로서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은 더 이상 실존하지 않는다.
- 벨라루스의 벨로베즈스카야숲에서 이루어진 러시아, 벨로루시, 우크라이나의 정상들이 합의한 내용 중
1991년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독립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 대거 참여해 강대국 소련을
역사의 쓰레기통에 쳐박히도록 만들었다.
세르히 플로히, 『유럽의 문 우크라이나 : 독립과 생존을 위한 투쟁의 역사』, 허승철 역 , 2022 알라딘 미리보기p.33
세르히 플로히, 『유럽의 문 우크라이나 : 독립과 생존을 위한 투쟁의 역사』, 허승철 역 , 2022 알라딘 미리보기p.33
1991년에 소련의 일부 구성국간에 체결한 조약. 벨라루스 벨라베자 숲의 명칭에서 유래하며 영어식으로는 벨로베자 조약(Belovezha Accords)이라 한다.
1991년 12월 8일 러시아 SFSR 대통령 보리스 옐친, 벨라루스 SSR 최고회의 의장 스타니슬라우 슈시케비치, 우크라이나 SSR 대통령 레오니드 크라우추크가 소련을 해체하고 독립국가연합(CIS)을 창설하는 것에 합의한 조약이다. 이 조약을 끝으로 소련은 완전히 해체됐다.
2. 역사
8월 쿠데타 실패와 1991년 12월 1일 우크라이나 독립 국민투표 이후 12월 8일에 벨라루스에 위치한 벨라베자 숲의 별장에 모여서 서명한 조약이다.이 당시까지만 해도 연방을 유지하고자 했던 보리스 옐친은 1991년 12월 8일 벨라루스 벨라베자의 사냥 휴양숲에서 크라우츠크를 만났을 때 한 번 더 새로운 연방 조약안에 서명하도록 설득했다. 하지만 크라우추크는 크림반도와 동부를 포함한 우크라이나 모든 주의 국민투표 결과를 언급하며 이를 거부했다. 우크라이나가 연방조약안에 서명을 끝내 거부하자 옐친도 우크라이나 없이 서명할 수는 없다면서 연방안을 거부하기로 결심했다.[1] 우크라이나를 잃으면 인구에서 중앙아시아의 무슬림 비율이 높아져 옐친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었고 그는 결국 소련을 해체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이러한 행위가 소련 정부의 동의를 거치지 않았다고 비판하였으나 다른 공화국들이 이를 동의하자 고르바초프도 결국 승인하게 되었다.
이 조약과 함께 같은 해 12월 21일에 체결된 '알마아타 조약(Alma-Ata Protocol)\'[2]으로 인해 독립국가연합이 수립되면서 고르바초프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났고 12월 26일에 소련이 해체되었다.
1991년 소련 국민투표 결과에서 보듯이 소련 해체 반대 여론이 훨씬 더 높았던 과거가 있지만 소련의 핵심국가인 우크라이나가 1991년 12월 1일 우크라이나 독립 국민투표를 통해 압도적인 찬성표로 독립을 찬성하자 소련 시대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소련 붕괴에 우크라이나의 독립이 얼마나 결정적이었는지는 Adrian Karatnycky가 1992년에 Foreign Affairs에 게재한 논문을 보라.
수 세기에 걸친 식민지 시대의 익명성 끝에 우크라이나가 마침내 세계 문제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서방에서는 부차적인 국가로 강등되었지만 우크라이나는 소비에트 이후
유럽의 윤곽을 규정하는 데 있어 강력하고 중요한 행위자로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 1991년 8월의 쿠데타와
소련 공산당을 무너뜨린 것은 러시아와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주도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소련 제국의 붕괴를 촉발한 것은 레오니드 크라브추크 대통령이 이끄는 우크라이나였다: 우크라이나가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연방 조약 서명을 거부하면서 소련이 붕괴하고 새로운 독립국가연합(EIS)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folding [ 원문 펼치기 · 접기 ]
After centuries of colonial anonymity Ukraine is finally making its mark on world affairs. Although relegated to secondary status by the West, Ukraine is rapidly emerging as a forceful and important actor in defining the contours of post-Soviet Europe. Russia and its President Boris Yeltsin may have taken the lead in defeating the August 1991 putsch and the Soviet Communist Party. But it was Ukraine, led by President Leonid Kravchuk, that ultimately provoked the unraveling of the Soviet empire: Ukraine's refusal to sign Mikhail Gorbachev's union treaty precipitated the collapse of the U.S.S.R. and the creation of the new 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 (eis).}}}{{{#!folding [ 원문 펼치기 · 접기 ]
학자들은 러시아 제국, 소련 내에서 우크라이나를 대영제국에서의 스코틀랜드에 비유한다. 스코틀랜드가 없는 대영제국은 더 이상 대영제국이 아니듯이, 우크라이나가 없는 소련은 더 이상 소련이 아니었던 것이다.
우크라이나 독립 투표는 소련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다. 국민투표에 참여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운명뿐만 아니라 세계 역사의 방향도 바꾸어 놓았다. 우크라이나는 아직
모스크바에 종속되어 있는 나머지 공화국들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옐친은 1991년 12월 8일 벨라루스 벨라베자의 사냥 휴양숲에서 크라프추크를 만났을 때 한 번 더 새 연방조약안에 서명하도록 설득했다. 크라프추크는 크림 반도와 동부를 포함한 우크라이나 모든 주의 국민투표 결과를 언급하며 이를 거부했다. 만일 우크라이나가 연방조약안에 서명하지 않는다면, 러시아도 서명할 수 없다고 옐친은 새로 대통령으로 선출된 크라프추크에게 말했다. 옐친은 몇 차례에 걸쳐
미국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가 없는 상태에서 연방에 러시아가 남아 있으면
이슬람계 주민들에 비해 수적 열세에 처한다고 말했다.[3] 거대한 에너지 자원을 가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포함되지 않는 연방은 다른 공화국들에게 아무런 정치적·경제적 매력이 없었다. 벨라베자에서 세 슬라브 공화국 지도자인 옐친과 크라프추크, 스타니슬라우 슈스케비치는 새로운 국제적 연합체인 독립국가연합을 창설했고,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12월 21일 여기에 가입했다. 소비에트 연방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세르히 플로히, 『유럽의 문 우크라이나 : 독립과 생존을 위한 투쟁의 역사』, 허승철 역, (서울 : 한길사, 2022), p.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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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히 플로히는 하버드 대학 역사학과 석좌교수로 그의 저서는 아마존 서점 독자 리뷰가 1,200개 이상 달릴 정도로 전문가나 일반 독자들에 이르기까지 우크라이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읽을 만한 역사서로 인정받는다.
#세르히 플로히, 『유럽의 문 우크라이나 : 독립과 생존을 위한 투쟁의 역사』, 허승철 역, (서울 : 한길사, 2022), p.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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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CI저널 European History Quarterly 에서 세르히 플로히 교수의 서적을 극찬하는 리뷰가 실려있다. "마지막 제국: 소련의 마지막 날들(2014)에서 플로키는 1991년 우크라이나의 독립 추진이 소련 해체에 미친 결정적인 영향도 명확히 보여줍니다. 세르게이 플로키의 <유럽의 문>은 훌륭한 역작입니다. 전체적으로 날카롭고 예리한 산문으로 쓰여진 유럽의 문은 존엄의 혁명과 현재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위기에 대해 자세히 알고자 하는 학계와 일반 독자들에게 큰 관심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유럽의 문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하며, 우크라이나의 역사에 족적을 남기고 오늘날의 우크라이나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준 문명과 문화의 썰물과 흐름을 잘 포착하고 있습니다. 적극 추천합니다." Harris, Graham. "Serhii Plokhy, The Gates of Europe: A History of Ukraine." (2017): 173-174.[4]
세르히 플로히 하버드 교수의 서적을 부정하는 국내의 극소수 측은 " 카자흐 SSR 대통령이었던 나자르바예프는 해당 조약을 당일에 강력 비판"했지만, 세르히 플로히가 이런 사실을 왜곡했다고 음해하지만 정작 세르히 플로히 하버드 교수의 서적에는 그에 대해 부정하는 주장이 명시된 문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플로히 교수에게 반론한 근거가 없는 측이 플로히 교수의 서적을 왜곡해서 퍼트린 것이다.}}}
2007년에 보리스 옐친이 사망하고, 2022년 5월 4일에 스타니슬라우 슈시케비치, 동년 5월 10일에 레오니드 크라우추크가 사망함으로써 벨로베즈스카야 조약의 3인방이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
세르히 플로히, 『유럽의 문 우크라이나 : 독립과 생존을 위한 투쟁의 역사』, 허승철 역, (서울 : 한길사, 2022), p.550.
[2]
러시아어: Алма-Атинская декларация
[3]
벨로베자 조약을 서술한 문장이다.
[4]
"The Last Empire: The Final Days of the Soviet Union (2014), Plokhy also makes clear the decisive influence that the Ukrainian drive for independence in 1991 had on the dissolution of the Soviet Union. Serhii Plokhy’s The Gates of Europe is a masterful work of history. Written in a sharp incisive prose throughout, The Gates of Europe will be of great interest both to academics and casual readers seeking to learn more about Ukraine as a result of the Revolution of Dignity and the ongoing Ukrainian crisis. The Gates of Europe allows for a comprehensive understanding of Ukraine and well captures the ebb and flow of the civilizations and cultures that have made their mark on its history and helped to forge the country that exists today. It is highly recommend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