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출(원신)/작중 행적

백출: 남은 독은 모두 제거했습니다. 하지만 독소로 받은 영향이 하루아침에 회복하기는 어려워 보이는군요.

혜심: 백출 선생님, 저희 아버지는…

백출: 너무 걱정 마세요. 매일 처방 대로 약만 잘 드시면 2~3년 안에는 완전히 회복하실 겁니다. 빨리 발견해서 다행이에요. 며칠만 늦었어도 독소가 장기까지 침투해서 정말 위험했을 거예요.

장생: 이렇게 희귀한 독약을 찾아내다니, 우인단도 참 대단하네! 아쉽게도 우리한테 걸렸지만, 참 운도 없지.

백출: 그럼 천추 님, 저희는 이만 가볼게요. 한동안은 꼭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천추: 알겠으니 걱정 마시게. 정말 고맙군.

의외의 손님과 옛 인연의 소식이 불복려의 변함없는 평온함을 깨뜨렸다.
긴 세월 이어진 수많은 이별, 얽히고설킨 생과 사. 인간은 늘 이렇게 먼지처럼 사라졌다.
독과 약의 경계는 모호해졌고, 생과 사의 경계도 흔들리는데... 만병을 통치할 약은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과거, 역병이 기승을 부렸을 적, 한 약사가 세상의 모든 고통을 뿌리 뽑겠다는 큰 포부를 품었다
하지만 평범한 인간이 어진 마음과 고명한 의술을 지녔다고 재앙을 당해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의술을 펼치는 동안 하나둘 약사 곁을 떠나게 됐다
전설에 따르면, 침옥 협곡의 깊은 산속에는 만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군이 살고 있다고 한다
산속에서 힘을 소진한 채 숨만 겨우 붙어있는 백사를 발견했다

「나와 계약을 맺고 공생하자」
「네게 사람을 구하는 비법을 가르쳐 줄게」
「다만 명심해」
「이 비법은 널 해치게 될 거야」

약사는 인간을 뛰어넘은 의술로 죽음 앞에서 사람을 구해내며 기적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별은 또다시 불현듯 찾아왔다
다만, 이번에 세상을 떠난 건... 생기를 소진한 약사였다
결국, 약사는 마지막 환자이자 가장 아끼는 제자에게 계약을 전수했다
그 제자는 자신의 목숨으로 더욱 많은 목숨을 구하기로 결심했다
그 제자도, 그 제자의 제자도 마찬가지였다

계약을 계승한 후로 난 역대 선조들의 선택과 내가 나아가려는 길을 굳게 믿어왔다
한 후배의 가족을 구하기 전까지는
그 아이는 이 비법이 독주로 갈증을 푸는 행위이자 천리에 어긋나는 사술이라며 내게 더는 생기를 소모하지 말라 애원했다
가족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다른 가족을 희생하고 싶지 않다면서
...그제서야 난 떠올랐다
사부님이 돌아가셨을 때 내가 느낀 고통이 병상 앞의 가족과 다를 게 무엇인가?
그 계약 때문에 일찍 떠나간 목숨 또한, 구할 가치가 있는 목숨이 아니던가?
이 계약은 과연 우리에게 약이었을까, 독이었을까?
내 남은 시간으로는, 그 답을 찾기에 역부족일 듯하다
난 그 질문을 장생과 함께 네게 맡길 생각이다
부디 이 난관을 해결할 처방전을 찾길 바란다...

장생: 내가 아무리... 매번 충고하고 회복시켜 줘도... 이 결말을 바꿀 순 없었어... 넌? 답을 찾은 거야?
백출: 내가 계약을 포기하고 너와 공생할 사람도 없어지면, 넌 어떨 것 같아?
장생: 음... 아마 약군산으로 돌아가 남은 시간 한숨 푹 자지 않을까? 그리고 옛 친구들과 네 시조들을 만나러 가겠지
백출: 그럼 고민할 필요 없겠네. 눈앞에 구해야 할 목숨이 있고, 난 구할 방법을 알고 있는데 구하지 않을 이유가 있겠어?
장생: ...또 같은 답이구나. 됐어, 눈 감아. ...앞으로 몇 명이나 더 이 계약을 거쳐 가려나
백출: ——아니, 마지막 계약자는... 내가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