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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역대 총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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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제56회 총회장 방지일 方之日 | Bang Ji-i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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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13><colcolor=#ffffff> 출생 | 1911년 5월 21일 |
평안북도 선천군 | |
사망 | 2014년 10월 10일 (향년 103세) |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 |
호 | 곽송 |
학력 |
숭실학당 (졸업) 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 (졸업) 숭전대학교 (철학 / 명예박사)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 / 명예박사)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신학 / 명예박사) |
경력 |
정오리교회 개척 칭다오교민회 외교부장, 학무부장 칭다오한인학교 교장 영등포교회 담임목사 (1958~1978) 영등포교회 원로목사 (1978~2014)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전도부장 대한성서공회 재단 이사장 한국기독공보사 사장 |
수훈 | 국민훈장 모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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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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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장대현교회 전도사로 부임한 후 2014년 사망 시까지 무려 81년 간 목회 활동을 하여 '대한민국 개신교 역사의 산증인'으로 불리웠다.
2. 생애
1911년 5월 21일 평안북도 선천군에서 청나라 선교사로 활동하던 아버지 방효원 목사와 어머니 슬하에서 태어나 선천 신성학교를 졸업하고 18세에 정오리교회를 개척하였다. 평양 숭실학당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였고 1933년 졸업과 동시에 개신교 신자들은 모두 한 번 씩 들어봤을 1907년 평양 대부흥이 일어났던 장대현교회의 전도사로 부임하여 목회 활동을 시작했다. 장대현교회의 당시 원로목사가 길선주 목사였다.
전도사로 재직하면서 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에 재학하며 공부를 병행했고 1937년 4월 신학교 졸업과 더불어 평양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아 중화민국 국민정부 산둥성 선교사로 파송되어 여러 교회를 개척하였다.
1940년부터 17년 간 중화민국 기독교 교단 총회였던 '중화 기독교' 산하 노회와 대회에서 외국인 총간사, 겸임 간사직을 맡았고 1945년 칭다오의 교민회와 한인학교에서 교장과 여러 직책을 맡으며 지역사회에서 활동하였다. 그 해 대한민국이 광복되었지만 여러 사정으로 귀국하지 못하는 독립운동가, 독립군, 학도병 등을 미군정의 협조를 얻어 귀국시켰다.
그러나 1946년 국공내전으로 중국공산당이 본토를 장악하자 암암리에 선교 활동을 하다가 1957년 9월 23일 추방 명령을 받아 무려 한 달 간 육로와 배편을 통해 영국령 홍콩을 경유, 부산항으로 귀국했다.
약 20년 동안 활동하던 당시의 중국 사회는 혼돈의 카오스 그 자체였는데 활동 초기의 4.12 디화 정변, 복건사변, 기동사변, 2차 양광사변, 제2차 상하이 사변 등 5번의 사변과 난징 대학살, 중일전쟁, 국공내전 등의 비극적인 사건으로 어려웠을 때와 위기가 많았다고 한다.
귀국 이듬 해인 1958년 6월 12일 영등포교회 담임목사로 부임, 1964년 3월 22일 위임되어 21년 간 교회 뿐만 아니라 교단 산하 기관과 교단 본부의 여러 직책을 맡았고 1971년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제56회 총회장에 당선되어 1년 간 재직하였다.
1979년 6월 10일 원로목사로 추대되었고 1982년 대한성서공회 재단이사장과 1983년 한국기독공보사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1998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하였다. 2014년 10월 10일 오전 12시 20분 향년 103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3. 여담
- 귀국 후 영등포교회에 부임할 무렵인 1958년부터 60년 넘게 '월요 목회자 성경연구모임'이라는 모임을 주관해왔는데 매주 월요일마다 자택으로 후배 목회자들을 초청해 성경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모임이다. 고령으로 은퇴한 원로목사들도 방지일 목사 앞에서는 모두 제자들이어서 매주 월요일마다 성경을 배우러오며 목회자 생활을 오래했지만 몰랐던 부분들은 방지일 목사에게 따끔히 지적받아가며 배웠다.
- 방지일 목사의 뒤를 이어 1984년부터 2006년까지 영등포교회의 담임목사를 역임한 김승욱 목사도 원로목사 추대 이후 방지일 목사의 비서로 활동을 보좌했다. 김승욱 목사가 원로목사로 추대된 후에 방지일 목사는 증경원로목사로 불리며, 원로목사 위의 원로목사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