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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23 10:09:52

바우데마르 지브리투

브라질의 前 축구선수
파일:Waldemar de Brito.jpg
이름 바우데마르 지브리투
Waldemar de Brito
출생 1913년 5월 17일
브라질 합중 공화국 상파울루
사망 1979년 2월 21일 (향년 65세)
브라질 연방 공화국 상파울루
국적
[[브라질|
파일:브라질 국기.svg
브라질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신체 176cm | 체중 64kg
포지션 인사이드 포워드, 센터 포워드
소속팀 시리우 (1927)
인디펜덴시아 (1928)
시리우 (1929~1932)
상파울루 FC (1933~1934)
보타포구 FR (1934)
CA 산 로렌소 (1935~1936)
CR 플라멩구 (1937~1939)
CA 산 로렌소 (1939~1940)
상파울루 FC (1941~1942)
플루미넨시 FC (1943)
포르투게사 (1944)
SE 파우메이라스 (1945~1946)
포르투게사 산치스타 (1946)
국가대표 2경기 1골 ( 브라질 /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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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2.1. 클럽2.2. 국가대표팀2.3. 은퇴 이후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4. 여담5. 수상
5.1. 클럽5.2. 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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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브라질의 前 축구선수로 축구 황제의 스승이다.

2. 생애

2.1. 클럽

상파울루 출신인 지브리투는 시리우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였다. 상파울루 FC 소속이던 지브리투는 20살의 젊은 나이에 대선배 아르투르 프리덴라이히와 호흡을 맞추게 되었다. 그 성과로 토르네이우 히우-상파울루 대회와 상파울루 주 리그에서 득점왕을 휩쓸었지만 우승은 파울리스트라 이탈리아에게 내주었다. 그 이후엔 보타포구 아르헨티나 CA 산 로렌소등에서 활약하였다.

1937년에 돌아온 히우지자네이루 주 리그. 새로운 소속팀은 CR 플라멩구였고 이 곳에는 레오니다스 다시우바, 파우스투 두스 산투스 등 흑인 동료들이 많았다. 지브리투는 플라멩구에서 보낸 3년 간 우승과 준우승 2차례를 맛보았고, 산 로렌소를 다시 거쳐 1941년부터는 상파울루 FC에서 활약하면서 26경기 26골로 커리어 최다 득점을 차지하는 전성기도 누렸다.

그 이후로는 또 여러 팀을 떠돌았고 포르투게사 산치스타에서 1946년에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였다.

2.2. 국가대표팀

1933년의 더블 득점왕으로 지브리투는 1934년 월드컵에도 참가하였다. 스페인을 상대로 한 첫 경기에 출전했지만 1대3으로 패배하였고, 득점을 기록하지는 못하였다. 제노바에서 짐을 싼 브라질 대표팀은 베오그라드로 장소를 옮겨 6월 3일, 유고슬라비아와 친선 경기를 치렀다. 지브리투는 이 경기에서 1골을 기록하였지만 팀은 4대8로 패배하였다.[2] 지브리투의 국가대표 출전 기록에서 FIFA에 등록된 A매치는 이 2경기가 전부이고 비공식 A매치까지 합산하면 통산 18경기 18골의 기록을 남겼다.

2.3. 은퇴 이후

은퇴 이후에는 여러 지방들을 돌아다니며 재능 있는 소년들을 스카우트하는 데 시간을 쏟았다.

그러다 1954년 무렵, 바우루 AC라는 군소 클럽의 코치로 취임하게 되었고, 그 곳에서 그는 한 흑인 소년을 만났다. 동네 축구만 하던 소년의 눈에 월드컵까지 출전했던 지브리투 코치는 선망의 대상이었고, 소년에게 코치의 말은 곧 법이었다. 지브리투는 탄력이 좋았던 그 소년을 위해 같은 높이의 공을 향해 오른발, 왼발, 양발로 모두 점프하는 훈련을 시켰다. 이 훈련의 결과로 소년은 신장이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어떤 발로든, 어떤 상황에서든 비슷한 높이로 남들보다 높이 점프할 수 있게 되었고 그로 인해 헤더에 강점을 갖게 되었다. 그 외에도 지브리투는 자신의 장기였던 양발 사용을 강조하면서 소년을 포함한 자신의 제자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해주었고 바우루의 유소년팀은 33경기에서 148골을 넣는 유소년계 초강팀으로 군림하였다. 그리고 2년 후, 지브리투는 그중에서도 특출났던 흑인 소년을 산투스 FC에 추천해주었다. 그리고 그 흑인 소년은 산투스를 넘어 당시 세계 축구계를 평정했고 그가 바로 축구 황제 펠레였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양발 사용과 헤딩에 능했다고 알려져 있다. 선수 시절에는 우승복은 나름 있었지만 한 팀에서 오래 머무르지는 못했다.

4. 여담

5. 수상

5.1. 클럽

5.2. 개인



[1] 이 시대에는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았다. [2] 이 경기가 브라질 대표팀 역사상 최다 실점을 기록한 경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