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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30 16:11:26

민중 사관

1. 개요2. 민중사관과 관련된 말들3. 비판 및 논란4. 관련 문서

1. 개요

민중사관(民衆史觀)은 한국 현대사에 대한 관점에서 정의하는 경우, 1960년대부터 90년대까지의 운동권 진영에서 민중민주주의에 기반하여 형성한 역사관을 의미한다. 보수언론이나 보수학계에서는 이러한 의미로 해당 단어를 많이 거론하며 국정교과서를 지지하는 측에서 기존 교과서들이 민중사관에 편향되어 있음을 지적하는 경우에도 이러한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로 볼 수 있다.

넓게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범 좌파들이 가지고 있는 사관을 뭉뚱그려서 의미하기도 한다. 마르크스주의적 역사관, 종속이론,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nuel Maurice Wallerstein, 1930년 9월 28일 ~ )의 세계체제론 등이 대표적이며 반자본주의, 좌익 내셔널리즘, 포스트내셔널리즘, 사회주의, 민중 중심의 성향을 띈다. 신좌파 여성주의, 환경주의, 아나키즘과도 결합되어서 발전해왔다. 영웅 사관과 대비되며 기본적으로 주류 역사학과는 긴장관계에 있을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은 미시사와는 층위가 다르다. #

유명한 민중사관적 역사가로는 <미국 민중사>를 쓴 하워드 진,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쓴 박세길, <고쳐 쓴 한국현대사>의 저자 강만길 교수, <일하는 사람을 위한 한국현대사>를 쓴 윤대원 등이 있으며, 관련 단체로는 역사학연구소와 전국역사교사모임 등이 있다.

2. 민중사관과 관련된 말들

성문이 일곱 개인 테베를 누가 건설했던가?
책에는 왕들의 이름만 나와 있다.
왕들이 바위덩어리들을 끌어왔던가?
그리고 몇 차례나 파괴되었던 바빌론-
누가 그처럼 여러 번 그것을 재건했던가?
건축 노동자들은
황금으로 빛나는 리마의 어떤 집에서 살았던가?
만리장성이 완공되던 날 밤에
벽돌공들은 어디로 갔던가?
위대한 로마에는 개선문들이 넘치는데,
누가 그것을 세웠던가?
로마의 황제들은
누구를 이겨 승리를 거두었는가?
흔히들 칭송한 비잔틴에는
그 주민들을 위한 궁전들만 있었는가?
전설적인 아틀란티스에서조차도
바닷가 그 땅을 삼켜버린 날 밤에도
물에 빠져 죽어가는 자들은
그들의 노예를 찾으려 울부짖었다.

젊은 알렉산드로는 인도를 정복했다.
그 혼자서?
카이사르는 갈리아를 쳤다.
적어도 옆에 취사병 한 명은 데리고 있지 않았던가?
스페인의 펠리페 왕은
자신의 함대가 침몰당하자, 울었다.
그 외에는 아무도 울지 않았던가?
프리드리히 2세는 7년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 외에 누가 승리했던가?

한 페이지마다 승리가 하나씩 나온다.
승리의 향연을 위해 누가 요리를 했던가?
십 년마다 한 명씩 위인이 나온다.
누가 그 비용을 대주었던가?

그렇게 많은 보고들.
그렇게 많은 의문들.
베르톨트 브레히트, 「독서하는 노동자의 질문」
애초에 역사는 지배이데올로기의 발전과 그 분화과정에서 창출되었다. 부분적인 비판과 저항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지배적인 역사는 지배층의 역사였다. 그러나 이제 역사는 자기를 만든 진정한 주인을 찾아, 민중의 손으로 돌아올 시점에 놓여 있다. 민중에게서 소외된 역사는 역사 자체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한국민중사> 서설의 마지막 부분
민중에게서 버림받은 '영웅'처럼 가련한 신세는 없다. (중략) 영웅은 민중이 만드는 것이며, 민중에게서 버림을 받게 되었다는 것은 그에 앞서서 그가 민중을 배반했다는 엄연한 인과응보의 논리이다.
리영희, 「 전환시대의 논리」 117p
민중사가들은 사회가 어떻게 변하는가뿐만 아니라 사회가 어떻게 작동하고 언제 작동하지 않는가를 발견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민중사가들의 주제인 보통 사람들이 사회의 거의 대부분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민중사가들은 자신들이 자신들의 문제에 대한 대답이나 사실들에 대체로 무지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으며, 이러한 엄청난 장점을 가지고 시작한다.
에릭 홉스봄, 「역사론」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란 말이 있듯 주로 기득권과 영웅이 주인공이지만 저는 민중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어요. 계급투쟁적인 시각이 아니라 지극히 휴머니즘적인 관점에서 접근을 했습니다. 가령 옛날에 노비들이 뭘 먹고 어떻게 살았나, 어떤 압제를 받고 살았나, 또 자기 대에서는 그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어떻게 노력을 했는가 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적으려고 노력을 한 것이죠.
재야사학자 이이화
들어라, 최후 결전, 투쟁의 외침을
민중이여, 해방의 깃발 아래 서자
역사의 참된 주인 승리를 위하여
참 자유 평등 그 길로 힘차게 나가자
인터내셔널가 후렴구
나는 민중이다, 폭도다, 군중이다, 대중이다.

이 세계의 모든 위대한 작품들이 나를 통해 이뤄졌음을 그대는 아는가?

나는 노동자요, 발명가요, 이 세계의 음식과 옷을 만드는 사람이다.

나는 역사를 증언하는 청중이다.
나폴레옹 같은 자들, 에이브러햄 링컨 같은 자들은
나로부터 생겨난다. 그들은 죽는다. 그러면 나는
더 많은 나폴레옹과 링컨을 다시 내보낸다.

나는 텃밭이다. 나는 수많은 쟁기질을 견뎌낼 초원이다.
끔찍한 폭풍우가 나를 덮치고 지나간다. 나는 잊는다.
나의 가장 좋은 부분은 빨려나가고 내버려진다.
죽음을 제외한 모든 것이 나에게 와서
내게 일을 시키고 내가 가진 것을 포기하게 한다.
그리고 나는 잊는다.

가끔씩 나는 울부짖고 몸으로 절규하며
역사가 기억하도록 붉은 피를 몇 방울 뱉어낸다.
그리고 난 뒤, 잊는다.

나, 민중이 기억하는 법을 배울 때,
민중인 내가 어제의 교훈을 이용할 때,
작년에 누가 나를 강탈했는지,
누가 나를 바보로 만들었는지
더 이상 잊지 않게 될 때,
경멸이나 비웃음을 담아 ' 민중'의 이름을 말하는 자는
온 세상에 단 하나도 없게 되리라

바로 그때,
폭도, 군중, 대중이 도래할 것이다.
칼 샌드버그[1], 「나는 민중이다, 폭도다」
우리는
이름 없는 사람들이다.
사진도
그림도 없다.
우리의 과거를 기록할
우리의 선조들은
우표를 수집하지도 않았다.
거리의 어떤 벽에도
우리의 이름은 없다.
공식 시합에는
우리에게 주는 상이 없다.

우리는
이름 없는 사람들이다.
우리의 선조들도 마찬가지였다.
고통의 세월이
우리를 과거와 연결한다.
아무도 우리를 기억하지 않지만
우리의 세계는 광활하다.

우리는
이름 없는 사람들이다.
침묵은 우리의 가면이다.
바실 페르난도[2] , 「이름 없는 사람들」

3. 비판 및 논란

그러나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민중 사관에도 비판이 가해지기 시작했다. 그러한 비판의 논지는 "과연 민중들의 시각은 언제나 옳은가?"인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예를 들어 민중 사관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조선왕조실록 같은 국가 기관에서 편집한 기록들은 모두 승자의 입맛에 맞게 조작된 내용들이니 믿을 수 없고, 차라리 임진록 같이 민중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소설이나 야사들이 더 믿을 만하다고 주장하지만 그럼 임진록에 실린 내용들은 모두 사실인가? 하면 그것도 아닌 것이 임진록은 어디까지나 흥미 위주의 소설일 뿐이지 결코 민중사관 맹신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지배 권력이 감춘 진실을 담은 기록이 아니기 때문이다. 임진록에는 임진왜란 이후 조선군이 일본으로 쳐들어가 일본을 굴복시키고 일본으로부터 매년마다 일본인들의 고환과 사람가죽을 조공으로 받았다는 내용이 언급되는데 당연하게도 이는 결코 역사적 사실이 아니며 그저 흥미 위주로 지어낸 허구의 이야기일 뿐이다. 이는 바꿔서 생각하면 "민중들은 그저 자극적이고 재미가 있으면 다 받아들이며,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를 따지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다."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민중사관의 또 다른 사례로 "신라가 같은 민족인 고구려와 백제를 이민족인 당나라에 팔아먹었다."라는 주장을 들 수 있는데 이는 20세기 초반 민족주의 사학자 단재 신채호가 주장한 이후 박정희 정권이 신라를 강조한 것에 대한 반발로 운동권에서 폭넓게 수용하여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 깊이 남아있는 역사적 인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작 삼국시대의 문헌기록들을 보면 신라인들이 고구려인이나 백제인을 같은 동족으로 여겼다는 내용은 결코 찾아볼 수 없으며, 오히려 서로가 수백년 동안 싸워 온 원수로 인식할 뿐이었다.[3]

아울어 민중사관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조선시대의 지배 계급인 양반들은 모두 외세에 나라를 팔아먹은 사악한 자들이다."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이는 극단적인 콩쥐팥쥐식 이분법적 시각일 뿐이며 사실은 다르다. 아직도 한국에서 성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충무공 이순신을 비롯하여 임진왜란 시기에 활동한 수많은 의병장들 대부분은 엄연한 양반 출신이었다. 헌데 이러한 사실도 제대로 모르는 민중사관 주장자들은 이순신이 가난한 집안 출신이거나 중인 계급이라는 엉터리 낭설을 퍼뜨리기도 한다.[4]

더욱 황당한 점은 민중사관을 맹신하는 일부 사람들이 조선시대 노비 문제를 두고 어떻게 같은 동족을 노예로 삼을 수 있느냐, 조선은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나라였다, 노비를 거느렸던 양반 사대부들은 모두 나쁜 놈들이다, 라는 식의 주장을 하는데 정작 아직까지 한국인들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웅으로 추앙하는 이순신은 엄연히 노비를 거느렸던 양반 사대부다. 민중사관이나 노비 문제를 물고 늘어지는 대중의 역사인식 수준이 얼마나 무지하고 멍청한가를 알 수 있다. 우연스럽게도 이 같은 주장은 반일종족주의를 위시한 식민사관론자들의 조선사관과도 흡사하기까지 하다.

민중 사관을 믿는 이들은 "사악하고 탐욕스러운 기득권층 VS 순결하고 정의로운 민중"이라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으나, 이는 '강자는 악이며, 약자는 선'이라는 극단적인 흑백논리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 주장을 두고 고 마광수 교수는 "민중들한테는 탐욕이 없단 말인가?"라고 비판했다.

몇 가지 예로 가난한 민중들로 이루어졌던 민중 십자군은 정작 자신들과 똑같은 신세인 소아시아의 니케아 주민들을 상대로 아이들을 꼬치에 꿰어 불에 굽고 저항하는 주민들을 학살하는 식의 잔인무도한 만행을 저질렀다. 1923년 관동대지진 무렵 지진의 피해를 입은 일본 민중들은 자신들보다 가난하고 힘없던 재일조선인 민중들을 상대로 무자비한 학살 인간 사냥을 벌였다.[5] 즉, 실제 역사 속의 민중들은 그리 정의롭지도 선량하지도 않았다[6].

4. 관련 문서



[1] 미국의 시인으로 노동자들의 현실과 아픔을 다룬 시를 주로 썼다. 전기작가로도 유명해서 에이브러햄 링컨의 전기를 쓰기도 했다. [2] 스리랑카의 법학자, 시인, 작가로 아시아인권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적이 있으며 광주인권상을 수상한 전력도 있다. [3] 사실 이 주장도 어폐가 있는 것이, 현재 남한과 북한 모두 같은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고작 1950년부터 1953년까지 3년 동안 전쟁을 벌인 것 때문에 휴전한지 70년 넘게 지난 현재까지 서로를 불구대천의 원수로 보고 있으며 서로를 제압하기 위해 엄연한 외세인 미국-일본과 중국-러시아를 끌어들여 계속 군사적 적대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헌데 수백년 동안 치열하게 피를 흘리며 전쟁을 벌여온 고구려와 백제, 신라가 과연 서로한테 동족 의식을 가졌을지도 의문이며 그런 삼국 관계를 두고 같은 민족을 이민족한테 팔아먹었다는 인식도 적절하지도 않다. 이는 현대 한국인들이 지나간 역사의 문제를 진지하게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감정 배설의 수단으로만 이용한다는 뼈아픈 증거이기도 하다. [4] 비슷한 예로 2차 대전 무렵 영국의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을 두고 가난한 하층민 출신인데 피나는 노력 끝에 자수성가를 했다는 식의 인식이 한국 사회에 퍼져 있으나 이는 완전한 거짓말로 윈스턴 처칠은 영국의 대귀족 집안 출신 아버지와 미국 금융 재벌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야말로 상위 1% 최상류층 출신이었다. [5] 이 학살 이후 일본인 초등학생 100여 명이 관동대지진에 관련된 시를 지었는데 그 중에서 학살당한 재일조선인들을 애도하는 시는 고작 1개에 불과했고 나머지 99개의 시들은 재일조선인들이 당한 학살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6] 그렇기 때문에 민중사관이나 탈민족주의를 맹신하는 이들이 말하는 "국가나 인종의 차이를 뛰어넘은 세계 민중들의 연대 의식" 운운은 현실을 무시한 허무맹랑한 망상에 불과하다. 실제 역사 속의 민중들은 서로를 잔인하게 죽여대고 증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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