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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3 21:55:09

물금읍

물금면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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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금읍 동면 상북면 원동면 하북면
||<width=30%><tablewidth=100%><tablecolor=#373a3c,#dddddd><tablebgcolor=#fff,#1f2023><rowbgcolor=#16469e>
행정동
||<-4> 법정동 ||
<colbgcolor=#00ab4e> 중앙동 {{{#!wiki style="margin: -16px -11px" 다방동 명곡동 }}}
북부동 중부동
양주동 남부동 중부동
삼성동 신기동 북정동 호계동 산막동
강서동 {{{#!wiki style="margin: -16px -11px" 교동 유산동 어곡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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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산동* 평산동
덕계동* 덕계동 매곡동
* : 웅상출장소 관할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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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
물금읍
勿禁邑 | Mulgeum-eup
<colbgcolor=#00ab4e><colcolor=#ffffff> 광역자치단체 경상남도
기초자치단체 양산시
행정표준코드 5380032
관할 법정리 4리
하위 행정구역 67행정리 958반
면적 19.77㎢
인구 118,197명[1]
인구밀도 5,978.60명/㎢
정치 {{{#!wiki style="margin:-0px -11px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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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 양산시 갑

윤영석 (3선)
경상남도의원 | 제1선거구

이용식 (초선)
경상남도의원 | 제2선거구

이영수 (초선)
양산시의원 | 가 선거구

김혜림 (재선)

정성훈 (초선)
양산시의원 | 나 선거구

곽종포 (재선)

이묘배 (초선)

정숙남 (재선) }}}}}}}}}
행정복지센터 황산로 384 (물금리 800-6)
물금읍 행정복지센터
1. 개요2. 어원3. 인구
3.1. 인구 증가에 따른 분동 논의
4. 관할 행정구역
4.1. 물금리4.2. 범어리4.3. 증산리4.4. 가촌리
5. 역사6. 주거
6.1. 물금리6.2. 범어리6.3. 가촌리
7. 공원8. 교통
8.1. 버스8.2. 철도
8.2.1. 일반철도8.2.2. 도시철도
9. 학교
9.1. 초등학교9.2. 중학교9.3. 고등학교9.4. 대학
10. 출신 인물11. 기타
[clearfix]

1. 개요

경상남도 양산시의 남서쪽에 있는 .

대한민국의 모든 , , 행정동 중에서 가장 인구가 많다. 지리적으로는 북쪽의 오봉산이 원동면 화제리와, 양산천이 북쪽에서부터 양산시 중부동 → 남부동 → 동면 석산리 → 금산리 → 가산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서쪽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김해시 대동면과 마주보고 있다. 유일하게 산이나 물로 가로막히지 않은 곳이 황산로를 통해 연결되는 교동.

웅상읍이 4개의 행정동으로 분동된 이후로 양산시에서 하나밖에 없는 읍이다.

2. 어원

물금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勿(말다 물)에 禁(금하다 금). 해석하면 금하지 마라. 삼국시대 신라 금관가야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2][3] 국경을 접하던 곳이라 관리들의 검색(탐문)이 심하여 강을 건너는 두 나라 사람들이 매우 불편한 까닭에 이 지역만은 서로를 '금하지 말자' 는 뜻이라는 설이 있다.[4][5] 물론 저 물(勿)자가 발음을 적은 이두 표기로서 "물"(水)을 말할 가능성도 있다. 한자의 음만 빌려, '물'로 '금'(경계)이 그어진 땅이라는 말도 충분히 가능한 것.[6] 물금(勿禁)을 물고미(勿古味)로 적기도 하므로 금(禁) 또한 음을 빌려 적은 것일 가능성이 있다.

3. 인구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인구 추이
(1966년~현재)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1966년 10,974명
1970년 12,035명
1975년 12,357명
1980년 12,597명
1983년 2월 15일 물금면 유산리·어곡리·교리(現 양산시 강서동지역) → 양산읍 편입
1985년 10,266명
1990년 15,740명
1995년 24,998명
1996년 3월 1일 경상남도 양산군 → 양산시 승격
같은날 양산군 물금면 → 양산시 물금읍 승격
2000년 30,272명
2005년 27,959명
2006년 28,340명
2007년 31,115명
2008년 37,082명
2009년 40,433명
2010년 44,393명
2011년 45,620명
2012년 47,586명
2013년 51,733명
2014년 63,879명
2015년 71,161명
2016년 86,880명
2017년 104,801명
2018년 115,081명
2019년 118,579명
2020년 120,421명
2021년 10월(정점) 121,099명
2021년 120,539명
2022년 120,552명
2023년 119,742명
2024년 5월 118,769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당시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값은 12.5만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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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리별 인구 통계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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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범어리 56,323명
가촌리 52,921명
물금리 9,069명
증산리 1,491명
2023년 11월 기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데이터 Open API, 그래프 최대 값은 6만 명
}}}}}}}}} ||

엄청난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양산물금신도시 2-1단계사업 준공인 2006년부터 매년 12월 기준 인구를 보면 다음과 같다.
연도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인구 28,340 31,115 37,082 40,433 44,393 45,620 47,586 51,733 63,879 71,161
증감 ... +2,775 +5,967 +3,352 +3,960 +1,227 +1,966 +4,147 +12,146 +7,282
성장율 ... 9.8% 19.2% 9.0% 9.8% 2.8% 4.3% 8.7% 23.5% 11.4%
연도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2021년 2022년
인구 86,880 104,801 115,081 118,579 120,421 120,539 120,552
증감 +15,719 +17,921 +10,280 +3,498 +1,842 +118 +13
성장율 22.1% 20.6% 9.9% 3.0% 1.6% 0.1% 0.01%

통계 자료가 보여주는 것처럼 2014년 이후 매년 10% 이상의 높은 인구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11년에 잠시 주춤한건 양산신도시 2-3단계 사업과 3-4단계 사업간의 분양시기 차이 때문이다. 현재 양산시 내에서 웅상과 시내의 인구도 넘어선 상태다. 또한 전국에서 가장 높은 인구와 인구밀도를 자랑하는 읍인 동시에, 수도권 3대장이었던 진접, 화도, 오포를 제외하고 인구 9만명을 넘긴 (비수도권) 최초의 읍이기도 하 3관왕다. #관련 기사 그리고 저 기사가 난지 세 달 뒤인 2017년 7월 인구통계에서 화도읍을 제외한 두 읍의 인구를 능가해버려 읍 인구 전국 2위가 되었다.[7][8] 2017년 9월 22일 기준으로 인구수 10만명을 돌파했다.
인구수 증감
2월 89,370 -
3월 90,037 +667
4월 90,802 +765
5월 92,860 +2,058
6월 94,317 +1,457
7월 96,512 +2,195
8월 98,687 +2,175
9월 100,646 +1,959
10월 102,219 +1,573
11월 103,624 +1,405
12월 104,801 +1,177
1월 105,892 + 1,091
2월 106,842 + 950
3월 107,957 + 1,115
4월 109,165 + 1,208
5월 110,372 + 1,207
인구수 9만을 기준으로 그 이후 인구 증가치를 보면 경이로울 정도로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는데 월평균 1,583명, 즉 1,600명에 가까운 인구가 매월 늘어난 셈이다.

18년 5월 인구통계에서 화도읍의 인구마저 능가하면서 읍 인구 전국 1위가 되었다. 전국랭킹 1위

물금읍의 아파트단지가 완공되고 개발이 모두 완료되는 시점에는 인구 수를 150,000명 정도로 내다보고 있다. 분동 직전의 장유면의 인구보다도 더 많다.

21년 9월 기준 드디어 인구가 12만을 넘어섰다. 이는 웬만한 지방 소도시를 능가하는 수준으로 인구가 밀양, 사천, 영천, 영주, 공주, 정읍, 나주 등 보다 많다.

3.1. 인구 증가에 따른 분동 논의

물금신도시의 개발이 진행되면서 읍 자체의 인구가 12만명에 이르는 과대읍이 되어[9] 수많은 주민들의 민원이 물금읍 행정복지센터 하나에 집중되는 등 분동의 가능성 또한 점쳐지지고 있지만, 시에서는 분동에는 소극적이다. # #

물금읍 외에 과대읍면으로 종종 언급되는 남양주시 화도읍 진접읍,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화성시 향남읍 봉담읍 등은 주거밀집지역과 농촌이 공존하여 분동이 힘든 곳이 많은데 비해[10] 물금읍은 물금리/증산리 일부를 제외하면 농촌지역이 전혀 없는 완전한 신도시 지역이라 할 이유는 있다. 물금읍, 화도읍에 이어 전국 읍 인구수 3위(약 11만 2천)인 광주시 오포읍이 4개 동으로 2022년 9월 1일 분동되면서 물금읍도 분동하여야 한다는 의견이 공론화되고 있다.

2020년 초부터 분동에 대한 여론의 반응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 인구수에 비해 행정처리능력과 공공시설이 태부족하다는 의견과 함께 분동을 추진해야한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일부 주민들의 행정구역으로서 받는 각종 농어촌 혜택과 주민세 감면 혜택을 잃게 되는 부정적인 의견이 있다. 우선 단기적으로 전자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읍장을 서기관으로 임명하는 행정체제로 운영되고 있지만, 12만 명을 상회하는 인구의 행정수요 및 민원업무를 처리하기에는 태부족한 현실이다. 분동에 대한 안건은 양산시의회에서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물금읍이 분동되면 정치권에서도 일부 영향이 있을 수 있다. 물금읍 분동으로 인해 선거구가 개편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물금지역은 양산시 갑 선거구에 해당하는데 해당 선거구는 국민의힘 윤영석의원이 3선을 이어나가고 있다. 반면 동면, 양주동 웅상지역을 포함하는 양산시 을 선거구는 더불어민주당 김두관의원이 맡고 있다. 보다시피 양산시는 여야가 매우 치열한 지역이라 선거구가 분리된다면 분명히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22년 1월에 양산시는 물금읍을 4개의 동으로 분동할 것을 대비한 행정복지센터 후보지를 검토하였다. 또한 이와 함께 인근의 동면 석산리, 금산리, 가산리 지역 역시 동면으로부터 분리해 동(가칭 석금동)으로 개편할 계획이다.

2024년 6월에는 양산시의회에서 웅상지역 시의원들이 물금읍의 분동을 서두를 것을 시에 요청하였다. 웅상읍이 분동할 때는 주먹구구식으로 빠르게 분동했으면서 물금읍 분동은 너무 소극적인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그 이유다. #

신도시가 조성되며 인구가 급증한 다른 지역의 경우[11] 빠르게 분동이 되었는데, 물금만 행정 분리가 더딘 상황이다.

4. 관할 행정구역

4.1. 물금리

읍 서쪽에 위치한 리. 물금(勿禁)이라는 이름에 대해 가장 타당한 설은 이 지역이 당시 황산강으로 불렸던 낙동강을 기준으로 가락국(현 김해시)와의 접경지대였던 사실을 기원으로 하고 있으며 당시 국경을 넘나드는 이들에 대한 수색이 심해 오가는 이들은 물론 병사들도 고생이 심하여 서로 "금하지 말 것을" 논의한 데에서 온 이름이라는 것이다. 한편 낙동강 하류 지역으로 수해가 심했던 이 지역에 "물이 넘치지 말 것을" 기원하여 지은 이름이 현재의 표기로 고착화되었다는 설도 있다. 마찬가지로 황산강에 인접하여 황산진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적도 있으며 물금읍 전체를 ㄱ자로 가로지르는 황산로의 이름은 여기서 따왔다.

예로부터 물금역을 끼고 발전을 거듭하였고 지금도 물금읍사무소가 있는 물금읍의 행정적 중심지이지만 위치상으로 물금읍의 최서단에 치우쳐 있다는 점 때문에 부산 도시철도 2호선의 혜택을 받지 못했고 양산물금신도시 개발에서 범어리, 가촌리, 증산리에 밀려 지역 중심지 역할은 잃어버린 상태다. 그러나 물금리 일부도 신도시 구역으로 일부 지정되어 이지더원 5차, 양우내안애 5차 등의 아파트 단지가 주소를 두고 있고, 가양초등학교와 물금동아중학교는 물금리에 속한다.

어쨌든 양산신도시가 조성되면서 양산시를 방문한 사람들에게는 이질감이 크게 드는 곳임에는 틀림없다. 불과 0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물금읍 자체가 시골이었는데 양산신도시 개발과정에서 이곳만이 배척되어 과거의 향수를 간직이라도 하는 것 마냥 시간이 멈춰버린 상태니... 그래도 여기서 살았거나 근처 물금초등학교나 물금동아중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에게는 해가 거듭될수록 예전 시골의 모습이 바뀌어감에 시원섭섭함을 느낀다고 한다.

경부선 물금역, 강민호 야구장, 황산문화체육공원이 위치해 있다.

4.2. 범어리

물금읍의 북동부에 위치해있으며, 그 면적이 매우 넓어 읍 전체 면적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새실천을 경계로 하여, 자연마을과 택지조성지대가 발전하여 이루어진 작은오봉산 기슭의 구시가지와 그 아래로 펼쳐진 "메기들"이라 불렸던 평지 지대의 신시가지로 구성되어있다. 범어(凡魚)라는 지역 이름은 조선초부터 이어져온 것으로, 1922년 본격적인 관개공사가 이뤄지기 전 늪지대였던 메기들에 물고기의 수효가 많았던 사실에서 따온 이름으로 추측되고 있다. 양산천을 따라 물금읍 전체를 가로지르는 메기로의 이름은 여기서 따왔다. 평지 지대는 관개 이후 농지로 이용되다가, 2016년 현재는 양산신도시 개발 계획이 실행됨에 따라 지반침하 공사를 거쳐 속속들이 도시화되고 있다. 이는 물론 다른 리에 포함된 평지 지대도 마찬가지.

양산교육지원청, 양산워터파크, 양산경찰서, 양산소방서 등 읍뿐만 아니라 시의 주요 시설들이 신도시 개발에 호응해 이전해왔으며, 양산부산대학교병원, 부산대학교치과병원 부산대 양산캠퍼스, 양산 오슬로파크 또한 범어리에 위치해있다. 양산신도시로서는 양주동 다음으로 개발이 이루어진 곳으로 물금읍 전체에서 가장 먼저 개발이 이루어졌으며, 이에 따라 2018년 현재 범어고와 물금고가 모두 이 곳에 위치해 있고 물금읍사무소 출장소가 설치되어 있는 등 물금읍의 실질적 중심지라고 할 수 있겠다. 부산 도시철도 2호선 남양산역 부산대양산캠퍼스역이 위치해있으며, 면적이 넓어 신도시 3단계구역의 일부 아파트와 증산초등학교의 주소가 범어리에 속해있다.

여담으로 전국의 법정리 중에서 가장 인구가 많다.[12] 범어리 인구만 해도 기장읍 전체 인구와 거의 비슷하며 자치구 부산광역시 중구 전체 인구보다도 많다(!!).

4.3. 증산리

물금읍의 남부에 위치해있다. 증산(甑山)이라는 이름은 물금리와 증산리를 남북으로 가르는 산인 증산(甑山)에서 따온 것으로, 연결된 산맥이 없이 혼자 들판에 떡하니 솟아 있는 그 모습이 시루와 같다고 하여 시루 증(甑)자를 사용하였다. 기존에 증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온 곳은 이 증산 바로 아래에 조성된 북서쪽의 증산상리와 거기서 낙동강을 따라 살짝 남동쪽에 조성된 남평마을을 가리킨다. 양산신도시로 개발중인 구역은 이 두 마을과는 북쪽으로 떨어진 부산 지하철 2호선 증산역을 중심으로 하는 곳으로, 구역상 범어리/가촌리와 사실상 연담화되어있다. 실제로 증산리에 소재한 아파트 단지는 하나도 없으나 가촌리/물금리 대부분 지역은 지역주민들에 의해 증산, 증산신도시라고 불린다. 증산초등학교의 소재는 범어리이고 증산고등학교의 소재는 가촌리이다.

실제로 증산리에 해당하는 구역은 증산역 인근의 단독주택 부지인 신도시 3-5단계 구역과 기존의 증산마을, 남부마을, 남평마을이 해당된다.

한편 양산천과 맞닿은 동쪽에는 한국복합물류 양산터미널과 양산화물선 양산화물역이 위치해있으며, 이 곳을 통해 중앙고속도로지선 물금IC로 진입할 수 있다. 신도시와 연계된 남물금IC가 개통예정이다.

현재 자연녹지구역 및 농지로 구분된 부지가 대부분이나 추후 이 제한을 해제하고 도시를 개발하겠다는 공약이 지역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다.

4.4. 가촌리

지역이 물금읍 중앙을 관통하고 있다. 서쪽에는 과거 구시가지들로 이루어졌고 동쪽에는 벌판이였다가 최근 개발되고 있다. 원래 가촌리의 명칭은 가자방(加資坊)이었다고 한다. 마을의 형성 시기는 신라시대 이전으로 볼 수 있다. 현 송담서원 서북쪽 당산나무가 있는 통정곡에 사람들이 처음 살기 시작하였으며, 고려 말기에는 분성배씨·문화유씨·부여백씨·밀양박씨·동래정씨·파평윤씨 등이 정착하여 살았다.

현재 가촌리의 경우 가촌본리와 신도시 구역으로 나눌 수 있다. 가촌본리 또는 가촌 신기마을 지역은 말 그대로 신도시 조성 전 가촌리의 중심지역이며 신도시 개발구역에 포함되지 않는, 원래부터 있던 자연부락이다. 양산시립도서관, 양산국민체육센터, 양산세무서가 있으며 가촌 휴먼시아, 물금 동일스위트, 물금 코오롱하늘채, 물금 한신 더휴 아파트가 있는 곳부터 황산로를 경계로 서북쪽 지역이 가촌본리 지역에 해당한다.

가촌리의 신도시 지역의 경우 물금택지개발예정지구 3단계 구역의 반 이상을 포함하고 있으며 3단계 지구에서 가장 많은 아파트 단지가 주소를 두고 있다. 롯데시네마 양산물금과 함께 증산역 양산 라피에스타 상가까지 가촌리에 포함된다. 보통 이 지역은 증산신도시라고 불리는데, 정작 증산리에 주소를 두고 있는 아파트 단지는 하나도 없다.

그에 따라 가촌이라는 지명은 주로 가촌본리를 말할 때 사용된다. 다만 신도시 구역내에 가촌초등학교의 개교 및 스타벅스 양산가촌점 등의 사례를 보아 ‘가촌’이라는 지명이 점점 자리를 잡는 것으로 보인다.[13]

양산시립중앙도서관이 있다.

전국 법정리 중에서 위의 범어리에 이어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다.

5. 역사

신라시대 황산
조선시대 양산군 서면
조선시대 양산군 상서면
1936년 양산군 물금면
1996년 양산시 물금읍
출처:물금읍사무소 누리집

황산이라는 지명으로 삼국사기 초반 기록에서부터 여러 번 등장한다.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초기 신라 가야간에 많은 다툼이 있었으며 신라가 낙동강 유역을 장악한 후에도 경주에서 낙동강으로 가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조선대에는 한때 현 부산광역시 북구 강서구 대저 지역, 심지어 낙동강을 따라 을숙도까지(...) 영역이 뻗어있던 곳이 당시 양산군이다. 현재 양산시의 남서쪽에 위치한 물금읍이 상서(上西)라는 이름을 받았던 것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당시 두 지역의 이름은 각각 좌이면과 대저면. 상서에 대응되는 하서(下西)면은 바로 오봉산 너머 북쪽에 있는 원동면인데, 조선시대에는 하서면이라고 불렸다.

1983년에는 교리, 유산리, 어곡리가 양산읍에 편입되어 현재의 영역으로 축소됐다.

6. 주거

6.1. 물금리

6.2. 범어리

6.3. 가촌리

7. 공원

8. 교통

8.1. 버스

기존에 물금리 물금읍내를 종점으로 하던 버스들이 일괄적으로 증산역 바로 옆의 증산공영차고지로 연장되어 버스교통이 매우 편리해졌다.

8.2. 철도

8.2.1. 일반철도

8.2.2. 도시철도

9. 학교

9.1. 초등학교

9.2. 중학교

범어중학교
신주중학교
물금동아중학교 - 2000년대 초반에 동아제2중학교에서 물금동아중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물금중학교 - 2018년 3월 1일 첫 개교. 물금신도시 정중앙에 위치해 있다. 형제 학교로 범어리에 물금고등학교가 위치해 있고 정작 옆에 위치한 학교는 신주중학교다.
인구 11만이 넘어가는 지역에 중학교가 네 곳 뿐이다. 그마저 물금중학교가 2018년 최근에 개교한 이전에는 단 세 개의 중학교로 물금읍 관내 중학생들을 모두 담당해야만 했었으며 2000년대 이전까지는 물금읍 관내 중학교가 물금동아중학교 단 하나 뿐이었다. 따라서 네 곳 모두 과밀 현상이 상당 수 발생하고 있다. 그래서 2025년 3월에 증산중학교가 개교한다.

9.3. 고등학교

물금읍의 고등학교 유형 학급 수 비고
물금고등학교 일반고 30개
범어고등학교 일반고[17] 30개 2011년 개교
증산고등학교 일반고 36개 2023년 개교
아직 개교하지 않은 고등학교
가촌고등학교(가칭)[18] 일반고[19] 36개 개교 시기 미정

고등학교 부족 현상이 매우 심각한데, 2022학년도까지는 인구 12만이 훌쩍 넘어가는 지역에 일반계 고등학교가 단 둘 뿐이었다. 그마저도 둘 다 2000년대 후반에 개교한 학교이며 그 이전까지는 물금읍에 고등학교가 하나도 없어서 양산천을 넘어 양산 본시가지로 통학해야만 했었다.[20]

또한 물금읍 중앙이 아닌 둘 다 범어리에 위치해 있어서 물금역 인근이나 증산역 연선에서 통학하는데 많은 애로사항이 발생하고 있었다.[21]

때문에 두 학교 모두 전교생 숫자가 1,000명에 거의 육박한다. 본의아니게 과밀 현상이 발생하여 뺑뺑이 지망에 탈락하게 된다면 양산천을 건너 양산신도시 관내에 위치한 고등학교로 통학하는 학생들도 상당히 많은 관계로 증산리나 가촌리 일대에 새로운 일반계 고등학교를 신설해달라는 요구가 쇄도하고 있다.[22][23] 다만 학교총량제 문제가 걸려있어 새로운 고등학교 신설이 쉬운 상황이 아니다...........

결국 가칭 물금2고의 신설이 승인되었으며[24] 2023년에 36개 학급 규모로 개교하였다. 가촌리 가남초등학교 옆에 들어설 계획이라 한다.

마지막 고등학교 부지가 가촌리에 남아있다. 원래 특성화고등학교 부지로 계획되었는데 일반계고등학교 부지인 금산고등학교 부지와 맞바꿔 일반계고등학교 부지로 전환되었다. 현재 이 부지는 공영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향후 학생 수가 크게 증가할 때 이 부지를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9.4. 대학

10. 출신 인물

11. 기타

파일:2000년대 초중반 시절의 물금읍1.jpg 파일:2000년대 후반의 물금읍.jpg
2000년대 초중반까지의 모습. 저 당시에는 IMF의 여파, 뒤늦게 알게된 연약지형 및 저지대 구역, 과한 물량으로 인한 미분양 등 여러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서 제대로 진전이 없던 상태였다. 게다가 부산지하철 2호선도 연장되기 전이었으니... 2000년대 후반의 모습으로 양산타워에서 내려다본 물금을 찍은 것이다. 옆에 공사 중인 아파트는 동면에 속하는 대림 e-편한세상으로 당시 회사 사정으로 인해 공사가 오랫동안 중단되었다가 다시 재개해 겨우 완공했다.
파일:물금읍의 20년간 변화.jpg [25][26]
1995년에는 옆동네 동면과 함께 시골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1995년에는 사진 중앙에 있는 석산해강아파트와 맨 오른쪽에 있는 금산훼미리타운밖에 없었고, 물금은 완전히 논과 밭뿐인 시골마을이었지만, 20년이 흐른 2015년에는 양산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아파트가 하나둘 들어섰고, 부산대 의대가 양산으로 이전하면서[27] 풍경이 완전히 바뀌어버린 것을 볼 수 있다. 옆 동네 동면도 양산신도시의 영향을 받았는지, 이쪽에도 석산한신휴플러스, 일동 미라주 등 아파트며, 주택이며, 농협 하나로 등 각종 대형 유통업체 등이 들어오고 공원 등 녹지조성까지 하게되면서 예전의 이미지를 어느정도 탈피했다.

[1] 2024년 7월 주민등록인구 [2]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신라와 가야가 대치하던 대부분 기간 동안 낙동강이 아니라 약간 더 동쪽에 위치한 양산천을 경계로 동쪽은 신라, 서쪽은 가야로 국경을 이루고 있었다. 나중에 금관 가야 세력이 약해지면서 낙동강을 경계로 국경선이 서쪽으로 이동하였다. [3] 대가야는 백제의 압박에 대응하기 위하여 522년 신라 공주를 왕비로 맞이하여 혼인동맹을 맺었다. 신라는 대가야와 혼인동맹을 맺어 대가야와 맞닿아있는 서쪽 국경에 대한 부담을 덜고, 524년 남쪽의 금관가야에 힘을 집중해서 공략하기 시작했다. 532년 결국 금관가야(가락국)는 신라에 합병되고 말았다. 금관가야와 신라의 국경이 양산천에서 낙동강으로 옮겨진 시기도 대가야와 신라의 혼인동맹 즈음으로 생각되고 있다. [4] 이 설에 따르자면, 지금의 물금 일대가 고대 신라와 가야 사이의 자유무역지대였을 수도 있다. 실제로 양산에는 당시 신라 세력과 가야 세력이 공존했음을 시사하는 유적들이 나오고있다. [5] 물금역에서 1km 남짓 북쪽에 물금광산이라는 철광석 광산이 위치한다. 금관가야와 신라가 이 물금광산을 놓고 다투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 물금광산에 매장된 철광석이 얼마나 많았던지, 현대에 들어 1980년대까지도 최고의 철광산으로 명성을 떨쳤다. 거의 2천년 가까운 세월동안 광산의 명맥이 면면히 이어져왔던 것. 1980년대 이후 채산성이 악화되면서 물금광산은 폐광되었다. [6] 물금은 서남쪽으로는 낙동강을, 동쪽으로는 양산천을 경계로 하고 있다. [7] 사실 9만명 넘긴 이후 읍 인구 2위로 등극하는데 세 달밖에 안 걸렸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 인구가 아직도 완성된 것이 아니며 지금도 공사중인 아파트가 많이 있다. [8] 과밀읍이라고 언급된 곳이라도 그래도 읍내를 벗어나면 농촌도 간간이 보이지만 물금읍은 거의 100% 도시화된 지역이라 과밀읍 중에서도 과밀하다. [9] 물금읍 하나의 인구가 밀양시 전체의 인구보다 많을 정도이나, 이 모든 민원수요를 읍 행정복지센터에서 책임지고 있다. 나날히 늘어나는 인구에 비해 행정복지센터 건물이 협소하여 최근에 건물을 새로 신축하였지만 그럼에도 행정복지센터는 민원인들로 미어터진다. [10] 물금읍에 이어 전국 읍 인구수 2위를 자랑하는 화도읍의 예를 들면, 마석우리 지역은 인구밀집지역으로 분동해도 전혀 문제가 없을 정도지만, 남한강에 접한 금남리, 구암리 등의 지역은 전형적인 농촌지역으로 분동 시 농어촌혜택 등이 사라지기 때문에 섣불리 분동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다사읍 같은 경우에도 역시나 농촌과 도시가 공존해서 섣불리 못하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다사읍은 달성 소속이다. 자치군 내에는 동 단위 행정구역을 둘 수 없기에 달성군이 달성구로 개편되지 않는 이상 다사읍의 분동 가능성은 매우 낮다. [11] 장유면, 동탄면, 고덕면 등이 이에 해당한다. [12] 참고로 법정동까지 범위를 넓히면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이 제일 많다. [13] 신도시 지역이다보니 지역에 연고가 없는 타지인들이 많이 유입되었고, 다소 촌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 원지명인 ‘가촌’이 기피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예시로 신도시구역 밖에 있는 물금초등학교를 제외하고, 가촌초등학교가 개교하기 전 가촌리의 첫 초등학교인 가남초등학교도 ‘촌’이라는 지명을 쓰지 않았고, 현 가촌초등학교도 가현초등학교라는 교명이 제시되었고 선호도 조사 1위를 하였으나 지명을 우선으로 하는 교명제정위원회의 방침에 따라 가촌초등학교가 교명으로 선정되었다. 별도로 가양초등학교는 물금리에 주소를 두고 있는데, 가촌의 ‘가’와 양산의 ‘양’을 조합해 만든 교명으로 행정구역을 벗어난 교명이라 할 수 있다. [14] 양산 힐스테이트 포레스티지로 재건축 예정 [15] 공원명이 워터파크이기에 혼동할 수 있지만 대규모 수영시설이 아닌 친수공간이 조성된 분수공원이다.(김해시에 있는 연지공원 생각하면 편하다.) [16] KTX, 무궁화호, ITX-새마을, 남도해양열차가 선택 정차한다. [17] 원래 특성화고등학교로 예정되었으나 개교 당시에 일반계고등학교로 전환해 개교했다. [18] 물금4고 [19] 원래 특성화고등학교로 예정되었으나 금산리 특성화고 신설, 물금8고 부지에 증산중학교 신설, (가칭)물금고등학교 취소로 인해 급히 일반계고등학교 부지로 전환되었다. [20] 범어고등학교가 개교 당시에는 특성화고등학교로 개교 예정이었으나 학부모들의 엄청난 반발을 받고 일반계 고등학교로 개교되었다. [21] 증산공영차고지 착발 노선들을 이용해야 하는데 몇몇 노선들을 제외하면 증산리와 가촌리를 거치지 않는데다 배차간격마저 매우 길다. [22] 심한 경우 가촌리와 증산리 일대에 거주하는 남학생이 북부동에 위치한 양산고등학교로 통학하는 경우도 발생한다[28] (!!) 이 경우 21번을 이용해야하는데 버스로 통학하는데만 무려 30분 이상이 소요된다. 여학생은 교동에 위치한 양산여자고등학교까지 가기도 한다. 양산제일고등학교의 경우 상위권 학생들이 주로 진학한다. [23] 물금읍에서 북정으로 가는 노선들은 많지만 바로 구,터미널로 가는 21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양산역과 양산시외버스터미널을 거쳐 가는 굴곡 노선이라 시간도 오래 걸릴 뿐더러 배차간격도 21번보다 더욱 길다. [24] 이 때문에 물금8고 부지에 지어질 증산 특성화고등학교의 신설이 파토나고 그 부지에 증산중학교를 신설하게 되었다. [25] 두 사진 모두 물금 오봉산에서 찍은 것으로 맞은편에 있는 산은 금정산 장군봉과 고당봉이다. [26] 뭔가 공동주택 부분 인구와 세대수가 바뀐것 같다;; [27] 부산대 의대가 양산신도시로 들어온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는데, 부산대가 양산신도시 중앙에 위치해있는데다가 쓸데없이 땅을 사들여서 가운데 부분만 아무것도 지은 것 없이 휑하게 남아있기때문이다. 물론 부산대가 무리하게 다른 학과들을 양산으로 이전하려다 틀어지면서 생긴 병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