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문희상
1. 개요
문희상 관련 논란을 다룬 문서.2. 천황에게 사과 요구
이 문단은
이 문단은
2019년 2월 8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아키히토 천황을 " 전쟁 범죄 주범의 아들"이라 칭하며 "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해서 일왕이 사과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사 이에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이 즉각 반발했고 아베 총리 또한 놀랐다며 문 의장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기사 이에 대해 한국 외교부는 문희상 의장의 발언에 대해 철회를 권고할 뜻은 없다고 밝혔다. 기사
이에 대해 문희상 의장은 "일본이 제대로 사죄한 적이 없다"면서, "지도자의 진정 어린 사과를 강조하는 맥락에서 나온 표현"이라고 밝혔다. 기사
또한 아베 총리를 비롯해 일본 측이 사과를 요구한다는 소식을 듣자 "사과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내가 한 말은 평소 지론이며 10년 전부터 해온 얘기"이라며 "근본적 해법에 관해서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소신을 거듭 밝혔다. 이어 "위안부의 기본적인 문제는 딱 하나로, 진정 어린 사과"라면서 "'진정성 있는 사과 한마디면 끝날 일을 왜 이리 오래 끄느냐'에 내 말에 본질이 있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합의서가 수십 개 있어도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며 "피해자의 마지막 용서가 나올 때까지 사과하라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문 의장은 "김복동 할머니가 원한 것은 일본을 상징하는 사람인 아베 총리가 사과한다는 엽서 하나만이라도 보내달라는 것"며 "그런데 터락만큼도 (그런 의사가) 없다고 한 것을 보니, 이렇게 번져서는 마무리가 안 된다"고 밝혔다. 기사
일본 내에서는 총리 같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국가의 상징인 천황을 건드려서 분위기가 상당히 험악하다. 일본 네티즌들은 "(일본 정부는) 유감 표명만 하지 말고 실력행사를 해야 한다", "천황 폐하에 대한 언급은 역린을 건드린 것", "조심해줬으면 하는 수준이 아니다. 큰 문제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마이니치신문은 문 의장의 이번 발언이 한일 간 화해를 모색하는 와중의 발언으로 보이지만 천황의 정치적 이용을 촉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내용이라 비판을 받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기사
문 의장의 해당 발언에 대해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은 "최근 한·일 관계가 악화해 우려스럽다. 이 문제가 조속히 해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기사 [1]
한편 비슷한 성격을 가진 예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과요구 때와는 다르게 정치 성향에 따라 보수, 진보 네티즌들의 평가가 180도 달라지는 진영논리도 보인다.
2.1. 잘못이다
애초에 사과를 요구받은 아키히토 천황은 일본이 한국에 고통을 주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한국에 사과한 바 있으며, 반전과 평화주의를 지향하는 언행을 한 인물이다.사과를 하는 것이 당위적으로 맞느냐 그르냐를 떠나서 일본 사회에서 천황은 우상화되고 존경받는 존재이므로 일본인 입장에서는 천황에게 함부로 사과를 요구하는 것이 신성모독적으로 느껴져 반발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천황의 한국에 대한 태도와 별개로, 외교적 현실을 무시하고 불필요한 외교적 분쟁을 야기한 것으로도 비판의 소지가 있다. 일본이 과거의 잘못에 대한 반성을 하든 말든, 굳이 꺼낼 필요가 없는 천황 사과 논쟁을 가지고 와서 불필요한 외교적 위험만 높인 꼴이고, 한미일 공조 체계를 추진하고 싶어하는 미국의 심기도 건드린 꼴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한국의 국회의장이라는 영향력이 강한 인물이 한국과 일본 간의 외교적 분쟁을 야기해서 미국의 한미일 공조체계 구성을 방해한 행위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교 문제는 국제정치적 현실에 입각해 행해져야지, 일본의 반성이 어쨌네 하는 도덕윤리적인 감성으로 행해져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일본에 대한 도덕윤리적 비판에 너무 빠진 나머지 그 발언이 불러올 외교적, 현실적 파장을 고려하지 못한 것은 잘못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의 입장에서야 천황을 비판하는 것이 편하지, 일본 입장에서 천황을 비판하는 것은 일본 문화에 대한 무시로도 받아들일 수 있다. 즉 일본이라는 국가의 문화를 존중하지 않고 한국 중심적인 관점으로만 바라본, 문화상대주의에 어긋난 행위로 비판받을 소지가 있다.
한국 헌법은 국제 평화를 추구하기 때문에, '반드시 한일관계가 평화롭게 흘러갈 필요는 없다'라는 논리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과 5조로 반박될 수 있다.
2.2. 잘못이 아니다
천황은 단순 자연인 일개 개인으로 취급될 수 없다. 천황은 상징으로서의 정치체이다. 그리고 이 상징은 신(천황)의 나라 일본을 수호해야한다는 식으로 전쟁에 동원되었다. 또한 천황은 계승되는 지위이기 때문에 그 지위는 전쟁책임을 지고 있다. 법적취급은 당연 연좌제 없는 자연인이지만 정치적으로는 그렇지 못하다. 천황이 달라져도 천황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이유는 천황지위의 정치체적 성격때문이다. 왕이라는 지위가 가진 개인적 성격과 정치체적 성격의 중첩은 옛 프랑스 왕국의 "왕이 돌아가셨다, 왕 만세!"라는 언뜻 보면 고인드립스러운 문구에서도 드러나는 사실이다. 또한 한일관계 파탄은 일본 정치인들의 사과는 하면서 야스쿠니 신사를 유치하고 그에 참배하는 반성이 없는 태도가, 그리고 이런 태도를 문제삼지 않는 일본인들의 태도가 더 근본적이고 더 큰 원인이다. 이를 이명박과 문희상의 잘못이라고 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사실 태국 같은 중진국급 독재국가가 아닌 제1세계 선진국 중에 일본처럼 왕을 신성시하는 나라는 보기 어렵다. 실제로과거 영국의 침략과 지배를 받은 파키스탄이나 인도, 아일랜드 같은 곳에서 영국 여왕에게 사죄를 요청한다고 해서, 영국 내 여론이 일본처럼 격화되거나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국왕은 2011년 직접 아일랜드를 방문해서 사실상의 사과를 했다.
2.3. 결론
이후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와 만나 이 발언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가 이 발언에 대해 한국인 입장에서는 이해할만한 발언이지만, 일본인 입장에서는 천황까지 언급한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거라는 의견을 표했고 문 의장 역시 이에 공감했다.3. 임이자 성추행 논란
기사 영상이 있는 기사
자유한국당의 국회의장실 항의 방문 도중 몸다툼에서 문희상이 임이자의 볼을 수 차례 만진 장면이 포착되었다.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위력[2]으로 문희상 의장을 막는 과정에서 임이자가 복부를 접촉당하자 성추행이라 주장했고, 이에 문희상이 "그러면 이렇게 하면 되냐?"라고 비꼬면서 볼을 만졌다.
이에 대해 일단 양손으로 상대방의 얼굴을 감싸는 행위는 잘못된 것이 맞다는 의견이 중론이긴 한데, 별개로 임이자 성추행 논란이 터지고 겨우 1시간 만에 '동료 의원 성추행한 문희상 의장을 규탄한다'는 현수막이 공개된 것으로 보아 이 사태가 이미 자유한국당이 기획했던 사태라는 일부 주장이 있다. 문의상 측은 “임이자 의원의 행동이야말로 자해공갈을 연상시키는 수준“이라며 ” 국회의원과 기자 100여명이 지켜보는데 어떻게 성추행을 하느냐“고 자유한국당의 주장을 반박했다. #
여성단체들은 문 의장이 잘못하기는 했지만 한국당이 정쟁 도구로 악용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4. 아들 문석균의 지역구 세습 논란
장남 문석균 더불어민주당 의정부 갑 상임부위원장[3]의 21대 총선 출마가 아버지의 후광을 얻은 사실상 세습이 아니냐하는 비판이 일었다. 20대 국회 정기회의 마지막 날, 자유한국당, 새로운보수당 의원들은 여당 뜻대로 예산안이 처리된 것이 민주당 지도부와 문희상 의장 간의 아들 공천을 염두에 둔 밀약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본회의장에서 "아들 공천"이란 구호를 외쳤다. 게다가 하필이면 아버지의 지역구인 의정부시 갑에서 출마의사를 밝혀서 정황상 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 #문희상 집안이 저 지역 토박이 집안이므로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그게 전형적인 세습이다. 애초에 관련이 없는 지역에서의 출마선언이라면 모를까 국회의장인 아버지의 지역구를 그대로 물려받을려는 모양새라는 점에서 세습이 아니냐하는 논란이 일어나는 것이다.
차라리 남경필 전 지사처럼 아버지 찬스가 맞다는 점을 솔직하게 인정한다면 큰 비판은 면할 수 있겠지만[4] 장남 측에서는 자신이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세습이 아니라며 궤변을 늘어놓아 스스로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논란을 의식했는지 결국 문석균은 1월 23일에 총선 출마를 포기하는듯 했으나 3월 12일에 결국 무소속으로 해당 지역구에 총선 출마를 선언했다. 게다가 의정부의 민주당 조직이 오영환을 업신여기고 있단 정황도 포착되고 있다.
대외적인 기사론 오영환이 갑질을 했다고 하지만, 중앙당에서 보낸 지역구 후보가 간담회를 가지자고 한 것을 지역당에서 사실상 무시를 한 상황이다. # 해당 지역과 연이 없는 사람을 꽂아넣는 전략공천을 지역당에서 싫어하는 것은 사실이나 당의 승리를 위해서 이를 감안해주고 후보를 돕는 경우가 다반사지만, 지역구에서 후보를 돕지 않으면 지역과 연이 없는 만큼 표를 얻어올 가능성이 없어진다. 그래서 지역당에서 후보를 돕지 않는 행위는 중앙당에게 지역을 다른 후보에게 넘기겠다고 선언한 것이고, 그것도 대상이 불특정하면 핑계라도 댈 수 있지만 이 상황은 대놓고 문석균에게 넘기겠단 선언을 한 것이라 해당행위로 비쳐질 수 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이 사례와 비교하면서 유승민도 세습한 것 아니냐고 하는데 결론적으로 아니다. 물론 아버지인 유수호 전 의원의 아들이라는 점이 도움이 안 됐다고는 볼 수 없고 본인도 인정한 바가 있다. 하지만 유수호가 불출마로 은퇴하고 거의 10년 뒤에 유승민이 국회의원이 되었고[5] 유승민 본인도 한국개발연구원에서 경제학자로서 맹활약했다. 문석균의 커리어와 비교하는게 실례인 수준이다. 아니 당시 이미 이회창이 유승민을 영입하려고 노력했다가 계속 거절하다가 마지못해 수락한 것이다.
사실 대구 동구 을에서 당선될 때도 당시 친노 수장인 이강철과 붙어서 낙선될 것을 감안하고 출마한 것이다. 당시 유승민은 비례대표였고, 굳이 지역구 보궐선거에 나가지 않아도 편하게 4년을 보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구 보궐선거에 나간 셈이다. 그 것도 국회의원직 상실을 각오하고 나간 셈이다. 애초에 유수호는 대구 중구가 지역구였기 때문에 세습이라고 보기 어렵다. 즉 유승민은 아버지인 유수호가 국회의원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당선될 수 있었을만큼 역량이 뛰어났다. 실제로 당선 되고 나서도 강대식이 국회의원 되기 전까지, 아니 지금도 대구 동구 을에서 유승민의 입지가 강한 편이다.[6]
심지어 같은 당 출신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인 곽상언 변호사도 세습논란을 피하기 위해서 자신의 기반인 서울특별시[7]나 장인어른의 기반인 경상남도 김해시, 부산시 낙동강벨트[8]를 포기하고 더불어민주당에게는 험지인 보은군·옥천군·영동군·괴산군[9]에 출마하기로 하였다. 즉 자신이 험지인 보은군·옥천군·영동군·괴산군 국회의원 선거구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그리고 22대 총선에서는 아예 국민의힘에게 빼앗긴 종로구에 출마해서 탈환에 성공했다.
실제로 상대는 해당 선거구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옥천군 출신이자 지역구 관리를 잘 하는 박덕흠이라는 것, 조상의 출생지만 영동군이지 실제로는 서울특별시에 기반을 가진 곽상언에게 있어 정말 어려운 싸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41.44%라는 적지 않은 득표율을 보여주었다. 즉 노무현이라는 배경 외에도 자신의 힘으로 이루어 낸 것이다. 이용희 외에는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되지 않았고[10], 심규철처럼 영동군을 기반으로 하면 당선되기 힘든 지역구임에도 불구하고 출마한 것이다.[11]
불출마 선언을 번복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할 정도라면 물 밑에서 민주당과 상당한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이해찬 당대표는 공천 결과에 불복하여 무소속 출마를 강행하면 영구제명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상황이다.[12]
결론적으로 문석균은 선거를 완주했고 선거비 보전도 받지 못하는 득표율(8.55%)로 더불어민주당 후보인 오영환 후보는 물론 미래통합당 강세창 후보에도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얻었다. 문석균의 출마에 대한 문희상 의장의 의견이 어쨌든간에[13] 결국 아들의 출마 강행은 아버지의 지역구 위상 및 정치인생 말년에 적지않은 먹칠을 한 셈이 되었다.
추측의 영역이지만, 민주당 내 친노-동교동계의 원로라는 자신의 배경을 믿고 민주당이 문석균을 암중에서 도와줄거라고 생각했다면 문희상은 심각한 오판을 한 셈이다. 적폐청산이라는 민주당의 기치를 생각해보면 애초에 문석균 공천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나마 문석균이 곽상언이나 유승민처럼 본인의 영역에서 활약을 하거나 도의원, 시군의회의원을 역임했다면, 하다못해 김현철의 아들인 김인규씨처럼 정병국, 권영세 등 당내 중진들의 비서나 보좌관으로써 근무를 하면서 정치경력을 쌓아나가고 훈련했다면 고려가 될 지도 모르지만 애초에 문석균이 한 것이라곤 평당원 수준이었다.
그래서 민주당 정치인들 입장에서도, 자신의 선거가 위태로울 수 있는데 곧 정계 은퇴할 중진 눈치를 볼 리가 있겠는가? 실제로 문석균 공천 불가론은 친문계 최고위원[14]과 심지어 같은 동교동계인 비문계 최고위원이 공개적으로 발언해서 점화시켰고, 본격 선거전에 들어가서는 중앙당은 물론이고 의원들까지 계파를 초월해서 전력으로 선거를 도와서 오영환이 문희상의 역대 최고 득표수, 득표율을 갱신하게 만들고 문석균은 선거비 보전도 못 받게 만들었다. 게다가 문석균을 따라 나간 의정부 지역당 인사들은 문석균과 함께 쫒겨나고 그 빈자리는 오영환을 지원하기 위해 파견 온 새 인사들로 채우면서, 문희상이 쌓아 놓았던 지역당 기반도 한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2020년 5월, 20대 국회 임기가 마무리되고 국회의장 직에서 물러나며 가진 인터뷰에서 '정치는 허업'이라고, 김종필이 말했다면서, 정치의 무상함을 느낀다고 했다.[15]
이후 아들을 따라 나간 의정부시의원 3명이 의정부시의회 후반기 원 구성에서 국민의힘과 야합을 하는 추태까지 보이면서 아버지의 얼굴에 먹칠을 한 셈이 됐다.
또한 2023년 들어서 오영환 의원이 22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때맞추어 문희상이 김대중 재단 의정부 지회에서 활동하기 시작하자, 다시금 의원직 세습 의혹이 서서히 불거져 나오기 상태이다. #
5. 일제 강제 징용 피해자 관련 법안 발의 논란
일명 문희상 법안이라고 하여, 한국 기업과 일본 기업이 서로 반반씩 배상금을 출자해서 일제강제징용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자는 법안을 발의했는데, 이 안에 대해 강제징용피해자들과 시민단체들은 "박근혜가 일제 피해자들을 무시하고 멋대로 처리한 위안부 졸속 합의보다도 못하다."라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과장이 아닌것이 위안부 합의안은 한일 국민감정을 무시했다는 비판을 받긴 했어도[16] 그 내용자체는 일본이 100% 비용을 내고 총리명의의 공식적인 사과까지 담긴 사실상 한국이 더 이상 얻을 수 없는 안이었다. 그런데 문희상 안은 기부 명목이며 양국 국민까지 포함되었고 일본의 사과도 없다. 바로 윗 문단에 있는 아들 공천 논란과 연계해서 자식에게 지역구를 세습하기 위해서 당을 위해 총대를 매고 이런 비상식적인 법안을 발의한게 아닌가하는 의심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다. # #실제로 근로정신대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91)는 자필로 쓴 편지에서 "절대로 사죄 없는 그런 더러운 돈은 받을 수 없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
아울러 이 법안은 한일 기업에서 자발로 모금한 돈을 위자료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제공하면 피해자는 전범기업에 어떠한 소송을 제기할 수 없는 일종의 소송포기각서법안이다. 법안에는 전범국가인 일본의 불법침략과 만행에 책임을 묻는다는 언급도 없고, 오로지 한일관계를 정치적으로 풀려는 목적으로 법안을 마련했다고만 돼 있다. 또한 문희상 법안에는 자발성을 전제로 한 ‘기부금’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일본 기업의 책임을 면제해주고 있으며, 이 법안이 통과돼도 일본제철, 미쓰비시중공업, 후지코시와 같은 강제동원 가해 기업이 기부금조차 낼 의무가 없다. 결국 문희상 안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를 청산하는 법률이며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한테 소송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는 대신 이름도 목적도 없는 돈을 받으라는 얘기나 똑같다. #
또한 이 법안도 문제가 있는 것이, 정작 강제징용피해자들이 원하는 것은 일본 정부와 기업의 진심어린 사과인데, 문희상 법안에는 그런 사과에 관련된 내용이 없고 만약 문희상 법안이 정말로 실현되어도 일본 측에서 어떠한 사과나 배상도 하지 않고 버티면 그것에 대해 아무런 제재나 압박도 넣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2015년 맺어졌던 졸속 위안부 합의보다 더 후퇴한 안을 문희상이 내놓은 꼴이어서 민주당으로서는 정치적으로 큰 악재가 아닐 수 없다.[17]
더구나 일본의 차기 총리 주자 가운데 한 명인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정무조정 회장은 문희상 국회의장이 국회에 제출한 강제징용 문제 관련 법안에 대해 "위안부 문제 관련 재단을 멋대로 해산한 나라가 새로운 재단을 만들자는 제안을 하는데, 어디까지 설득력이 있겠느냐"라고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
애초에 한일관계가 지금처럼 헝클어진 이유는 두 나라 간의 심각한 갈등을 제대로 해결하지 않고, 그때그때 위기만 넘기자는 안이한 생각에서 대충 봉합만 했다가 나중에 더 크게 터졌던 탓인데, 문희상은 지금 그러한 과거의 잘못을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1]
그런데 펠로시 자체가 과연 한일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의 목소리도 나온다. 예를 들어서, 펠로시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합의를 일본이 존중했으면 좋겠다"란 말을 했는데. 이 합의가 우리가 아는
위안부 합의라면 이거는 펠로시가 한일 관계나
위안부 합의의 문제점에 대해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단 것이 된다.
[2]
당시 영상을 보면 임이자로 추정되는 누군가가 '여성의원들이 막아야 해'란 발언을 했다.
[3]
문희상 의원이 국회의장이 되면서 탈당 후 의정부 갑 조직을 관리하고 있었다.
[4]
남경필은 당시
미국에서 유학을 하다가 아버지인
남평우 의원의 부고로 갑자기 귀국한 사례였다. 본인도 정치가 아닌 학자의 길을 걸으려고 했으나
이회창
한나라당 대표가
소장파를 키워 정치 쇄신을 한다는 명목으로 남경필을 전략 공천하였다. 당시
이회창이
소장파를 키우기 위해
남원정 동료인
원희룡,
정병국과
유승민을 영입했다. 선거 당선 후에도
남경필 본인이 본인 스스로 "에이! 그래도 남평우 아들놈 한 번 찍어줘야지!" 라고 생각한 어르신들 덕에 운 좋게 당선됐다고 표현했다.
[5]
심지어 천하의 문희상마저 정계은퇴가 코앞에 오자 민주당이 하나 되여 그의 아들을 버리며 손절 당했는데 유수호 전 국회의원이 10년 후에서도 큰 영향력을 가졌을 것이라 추측하기는 어렵다. 문희상은 의정부 토호 수준이었지만
유수호는 고향이
영주시에 있는 법률가 출신 정치인이었다. 게다가
유수호는 거물 정치인이기는 하지만
문희상과 같은 토호 수준은 아니었다. 실제로
유수호의 후임자는 9선 국회의원인
박준규 국회의장이었다. 그러다보니 퇴임 후 지역구 내 영향력이 강할 가능성이 낮은 편이다.
[6]
강대식의 경우 현직 구청장인데도 자유한국당 프리미엄을 포기하고
유승민을 따라 바른미래당까지 합류해서 본선에 나갔다. 비록 3위로 패하긴 했지만 그 덕분에
유승민의 조직을 그대로 이어받아 2년 후 원내 진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 게다가 강대식은
동구 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안심지역 출신이라는 점과 중도적 성향으로 젊은 층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서 이긴 사례이다.
[7]
본적은
충청북도
영동군이나 실제 거주지는
서울특별시이다.
[8]
서부산+
양산시+
김해시는 경남 동부지역 치고도
더불어민주당이 승부를 걸 만한 지역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출마할 때는 험지였지만 그가 당선되고, 영향력이 커지면서 정치지형이 변한 것이다.
[9]
이용희를 제외하면 다
국민의힘 계열 출신이 이 지역구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10]
이용희 의원의 아들도 2번이나 낙선한 곳이다.
[11]
심규철이 국회의원을 할 수 있었는 이유가
옥천군 출신이 2명 이상 나오고,
보은군 출신도 나와서 표가 분산되었고,
영동군에서 상당한 몰표로 그를 지지했기 때문이다. 즉
영동군 외에는 득표율이 낮게 나온 것이다.
옥천군이 단일화하면 그가 승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얘기이다.
[12]
하지만
이해찬 대표도
과거에 공천에서 배제되자 탈당후 무소속으로 출마해서 당선된 전력이 있다. 물론 이해찬뿐만 아니라 임병헌 의원처럼 당선되면 받아준 사례는 많다. 당 입장에서는 의원 한명이 아쉽기도 하고 무소속으로 당선될 정도면 양당제 국가에서 개인기가 엄청나다는 뜻이기도 하다.
[13]
정황상 무소속 출마와 당 조직의 이탈 자체가 문희상의 뜻이었다고 봐야 한다. 애초에 지역위 요직에 문석균이 임명된 게 이 세습 공천 논란의 시작이었다.
[14]
그런데
김해영은 '조금박해' 멤버로
친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15]
사실 이 발언보다
이명박,
박근혜 사면 발언이 더 논란이 되었다.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문석균의
국민의힘 행을 노리는거 아니냐며 조소하는 중. 다만
전두환과
노태우를 사면한 바 있는
김대중의 측근이였기에 이 발언을 했다 라고 볼 수 있다.
[16]
사실 일본 내에서도 이 합의안에 대한 비판은 거셌다. 한일기본조약, 아시아여성기금으로 돈을 주고도 또 주냐는 불만과 어차피 한국은 입장을 뒤집을거다라는 분석이 많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불가역적이라는 조건을 달고도 정권이 바뀌자마자 무력화하였다.
[17]
위안부 합의는 졸속에다 일본 정부의 잦은 말뒤집기로 의미가 없어졌지만 그래도 명목상으로는 일본군의 개입을 인정하는 총리의 사과와 더불어 일본의 100억의 보상으로 화해와 치유재단건립과 함께 할머니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할 것을 합의 내용으로 한 것에 비교해 문희상 의장의 안은 사과는 없으며 사실상 일본 쪽이 참여할지도 불투명한 한일 기업과 국민들의 공동 모금과 치유 재단 잔액을 피해자에게 지급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