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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2 22:27:35

리카르도 몬톨리보

몬톨리보에서 넘어옴
리카르도 몬톨리보의 역임 직책
{{{#!folding ▼
ACF 피오렌티나 주장
다리오 다이넬리
(2005~2010)
리카르도 몬톨리보
(2010~2011)
알레산드로 감베리니
(2011~2012)

AC 밀란 주장
마시모 암브로시니
(2009~2013)
리카르도 몬톨리보
(2013~2017)
레오나르도 보누치
(2017~2018)
}}} ||
이탈리아의 前 축구 선수
파일:Montolivo.jpg
<colbgcolor=#eee><colcolor=#000> 이름 리카르도 몬톨리보
Riccardo Montolivo
출생 1985년 1월 18일 ([age(1985-01-18)]세)
롬바르디아 주 밀라노
국적
[[이탈리아|]][[틀:국기|]][[틀:국기|]]
|
[[독일|]][[틀:국기|]][[틀:국기|]]
신체 181cm / 체중 76kg
직업 축구 선수 ( 미드필더[1] / 은퇴)
주발 오른발
소속 유스 아탈란타 BC (1992~2003)
선수 아탈란타 BC (2003~2005)
ACF 피오렌티나 (2005~2012)
AC 밀란 (2012~2019)
국가대표 66경기 2골 ( 이탈리아 / 2007~2017)
정보 더 보기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f0f0f0><colcolor=black> 등번호 이탈리아 대표팀 - 10번, 22번, 18번
아탈란타 BC - 18번
ACF 피오렌티나 - 18번
AC 밀란 - 18번
}}}}}}}}} ||

1. 개요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2.2. 국가대표 경력
3. 은퇴 이후4. 플레이 스타일5. 기록
5.1. 대회 기록5.2. 개인 수상
6. 여담7. 같이 보기

[clearfix]

1. 개요

이탈리아의 전 축구선수.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유소년 시절을 2000년 아탈란타 BC에서 시작했으며 아탈란타 BC 소속으로 2003년 세리에 B에 데뷔하며 프로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데뷔시즌에만 40경기 4골로 좋은 활약을 펼쳤으며 다음 해 아탈란타 BC는 세리에 A로 승격을 확정지었다. 다음 해 세리에 A에 데뷔한 몬톨리보는 신성답게 32경기 3골을 넣는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팀은 강등.

2.1.1. ACF 피오렌티나

결국 2005년 ACF 피오렌티나로 이적했으며 2012년까지 뛰었다. 첫 시즌은 17경기 밖에 뛰지 못했으나 다음 시즌부터는 그야말로 피오렌티나의 핵심 선수가 되어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6년 동안 189경기를 뛰며 13골을 넣는 활약을 펼쳤다. 덕분에 각종 빅클럽의 엄청난 관심을 받았고, 특히나 피를로의 후계자를 찾고 있던 AC 밀란이 눈독을 들였다.

게다가 2012년 몬톨리보의 계약이 만료되기 때문에 피오렌티나는 그를 잡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허나 몬톨리보는 2010-11 시즌부터 재계약을 거부하며 빅클럽으로의 이적을 시사했고, 많은 클럽이 그에게 구애했지만 밀란이 끈질긴 언플과 구애를 통해 그를 2012년 여름에 자유계약으로 영입하는데 성공했다.[2]

2.1.2. AC 밀란

그렇게 해서 피를로의 후계자로써 밀란에 입성한 것은 좋은데...문제는 2012-13 시즌의 AC 밀란이 막장 of 막장을 달리고 있다는 것. 팀의 이 모두 프랑스로 이적해버리고 기껏 구입한 데용 같은 수비형 미드필더도 부상으로 시즌아웃 당한데다가, 경험많은 노장들은 모두 은퇴하거나 이탈한 밀란의 상황은 그야말로 시망. 알렉산드르 파투는 인저리 프론으로 애초에 경기에 출전도 제대로 못하고 있고, 케빈-프린스 보아텡은 지난 시즌의 좋은 폼은 모조리 말아먹고 난사만 반복해대는 최악의 실정이다. 그나마 몬톨리보와 스테판 엘 샤라위 두 사람이 고군분투하여 중위권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겨울 이적시장에서 발로텔리가 합류하면서 상승세를 타 간신히 3위로 시즌을 마쳐 챔스에 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2013-14 시즌부터는 AC 밀란이 본격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하며 전 소속팀 피오렌티나보다 못한 성적을 내고 있다.

15-16 시즌 중후반 부터는 유라이 쿠츠카와 호흡을 맞추며 밀란 중원에 안정감을 더하고 있다. 전방 공격진과 후방 수비진 사이 라인을 조정하며 쿠츠카와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수비진이 미숙한게 크다...

매경기 팬들과 선수, 감독에게 거의 절대적 신뢰를 받고 있으며, 몬톨리보가 없는 밀란의 전술은 니앙의 주력을 이용한 역습 외에는 거의 없다. 정확한 로테이션 멤버도 없는 상황. 로테이션 멤버로 폴리를 쓰는 횟수가 늘었지만 클래스가 부족하다.

2016년 10월 7일, 스페인과의 월드컵 예선전에서 선발로 출전했다가 전방 십자인대 파열 부상을 당하여 6개월 아웃이 확정되었다. 부상 이후급격한 폼저하로 이젠 야유를 받게 되는 신세가 되었다. 이는 사수올로전에서 특히 두드러지는데, 탈압박도 이전같지 않으며, 패스도 이전같지 않다. 교체될때 심한 야유를 받았고, 몬톨리보 대신 들어온 유망주 로카텔리는 사수올로전에서 골을 넣고 MOM에 선정되었다. 그러나 부상 이후 출전한 경기들에서는 말그대로 밀란 중원에서 혼자 축구다운 축구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아직 몬톨리보는 밀란에 꼭 필요한 존재임을 각인시켰다.

17-18 시즌을 앞두고 케시에, 비글리아 등의 자원이 들어와 경쟁이 불가피하게 되었지만 쉽게 밀릴 것 같진 않다. 둘다 홀딩 미드필더 인지라 공수조율에 있어 약세를 보인다. 빌드업은 보누치가 차근차근한다고 치더라도, 중원에서 라인을 수시로 맞춰가는 능력은 적어도 밀란 내에서는 몬톨리보를 능가할 미드필더가 없다.[3]

2017년 5월 14일 36R 아탈란타전에서 오랜 휴식 끝에 드디어 선발로 출전했다. 아직 제 컨디션이 아닌지 그렇게 좋은 모습은 보여주지 못하였지만 나름 1인분은 했고, 다음 라운드인 볼로냐전에서도 선발로 나와서 클래스는 아직 살아있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다른 팀원들이 너무너무 못해서 경기에 큰 영향은 끼치지 못했다.

레오나르도 보누치가 AC 밀란에 입단하면서 주장 자리를 보누치에게 넘겼다.

17-18 시즌이 시작된 이후, 별다른 부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리그 2경기 출전에 그치고 있다. 8R 까지 진행된 지금 말그대로 뛴 경기가 밀란의 입성한 이래로 최악의 수준이다. 비글리아가 7경기 출전인 것에 비교한다면 말그대로 묻힌수준. 심지어 케시에는 전경기 줄전이다. 그러나 밀란의 상황이 그리 썩 좋은 편은 아닌 듯 하다. 몬톨리보가 없는 밀란의 중원은 홀딩 미드필더만으로는 이끌어 가기 어려웠고, 3-5-2[4]무리하면서 까지 사용하면서[5] 조직력에 문제가 되었다. 콘티의 부상 이후, 보리니가 우측에 포진되고, 수소가 섀도우 스트라이커 자리에 섰지만 칼리니치의 부상, 찰하놀루와의 겹치는 움직임 등에 3-5-2는 안쓸만도 못하는 포메이션이 되어 버리면서 리그에서 3연패를 신나게 달리며 8R기준, 10위를 달리고있다.

밀란의 3-5-2 포메이션에서 몬톨리보의 자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밀란은 비글리아, 케시에 2홀더를 고집하는가 하면, 2홀더로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보나벤투라를 중앙 미드필더로 포진시켰다. 그리고는 거짓말처럼 AEK 아테네와 0:0으로 비겼다.

밀란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받는 것은 역시 공수 밸런스. 공격에 집중하기 위해 수비를 그만큼 보충했고, 수비에 재능있는 선수를 영입했지만, 정작 공-수진을 이끌 링크가 없다.[6] 엎친데 덮친격으로 찰하놀루는 링크보다는 크랙의 역할을 원하는 듯 하고, 공격과 수비가 따로노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는 밀란이다.

몬톨리보가 출전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까지는 밀란의 경기운영에 가장 필요한 선수는 몬톨리보임은 부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 몬톨리보가 출전했을때 경쟁자들보다 좋은 경기력을 보이기도 하는 중이라 점차 출장시간이 늘고 있다.

세리에A 17R, vs. 헬라스 베로나전, 선발출장했지만 팀은 3대떡으로 썰려버리는 이변의 주인공이 되었다! 베네벤토전에 이은 강등권의 희망전도사라는 타이틀을 얻어가는 AC밀란 몬톨리보의 역할은 늘 그랬듯이 볼배급이 우선이었다. 전성기 시절보다 시야가 줄었다는 느낌을 확실히 받은 경기였지만 이런 몬톨리보조차도 밀란 중원의 1옵션임을 체감하기도 했다.[7]

불과 사흘전 헬라스 베로나를 찍어누른 밀란이었지만, 이번 경기에선 베로나가 강한 압박을 들고왔고, 측면수비를 강화해서 돌아온 베로나는 밀란의 윙과 하프윙을 모두 묶었고, 몬톨리보는 탈압박을 유지하는 채로 평소보다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하고, 중앙의 볼배급에 집중했다. 그러나 베로나의 압박수비는 단순히 맨투맨이 아니었고, 몬톨리보를 압박하는 것을 유지한 상태로 수비, 중원할 것 없이 수비에 들어와 밀란의 공격을 육탄방어 해낸다. 거기에 골키퍼 니콜라스의 선방쇼는 덤.

실제로 헬라스 베로나는 몬톨리보의 중원볼배급에 수비하는데 바빠보이지만, 중원쟁탈전은 포기한 상태였고, 공격을 할때는 중앙을 과감히 버리고 측면만 후벼팠다. 하프윙자리에 섰던 보나벤투라는 수비가담에서, 케시에는 주력에서 한계를 보이는 것을 제대로 간파당하고 실점 특히 두번째 실점당시 베로나는 몬톨리보가 아무것도 못하는 루트로 득점에 성공한다.[8] 교체를 당했음에도 팀에서 3번째로 높은 평점을 받았다.[9]

나이가 드는 것도 드는거지만, 지난시즌 십자인대 부상이후 급격한 폼저하로 회복하는데 굉장히 더디다. 가투소 감독 체제 이후 352를 버리고 4-3-3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433 체제에서는 몬톨리보의 기용률이 크게 줄어든 모습이다. 불과 지난시즌까지 밀란의 433 포메이션에서 닥주전이었던 선수라고 믿기 힘든 입지다.
물론 이는 가투소가 추구하는 433 미드진 조합과 관계있는 문제이긴 하지만 항상 최고의 모습과 주전자리를 가져온 평소와는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

그나마 다행히 442 체제에선 주전 자리를 무난히 확보하는 모습이다. 실제로 올시즌 밀란에서 433의 몬톨리보보다 442의 몬톨리보의 퍼포먼스가 좋은 면도 있다.

유로파리그 16강 2차전 vs. 아스날전, 442 체제로 들고온 밀란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케시에와 출전했다. 1차전에서 2대0 으로 털렸기에 골이 필요했던 밀란은 2줄 수비와 2톱의 연계를 노린건데... 실제로 밀란은 두줄수비에서 골을 넣는 공격진까지 공을 신속하게 넘기기 위해선 효과적인 볼 배급처가 필요했다. 단도직입적으로, 가투소는 이 역할을 몬톨리보에게 맡겼다. 보누치에게 맡겨야 했다는 말이 있는데, 1차전에서 보여준 아론 램지의 페네트레이션을 간과할 수가 없던 가투소 감독이었기에, 보누치를 수비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밀란은 3대1로 깨졌다. 합산 5대1 탈락. 그러나 경기평점을 보면 팀 내 최고평점을 찍고있다! 1골을 넣은 찰하놀루보다 높은 평점이다! 아스널을 상대로 중원장악에는 실패했지만, 아스날의 미드진 사이 틈을 보면서 미드진에서 정상적인 움직임을 가져온 선수는 몬톨리보 뿐이었다. 물론 그나마 정상적이었다는 거지, 몬톨리보 역시 볼배급이나 볼 선택에서 곤란해보이는게 느껴질 정도로 컨디션의 난조를 보였다.

감독인 젠나로 가투소와 불화가 있는것인지 아예 출전을 못하고 있다. 우승을 하러 밀란에 온 에이스였으나 현재 처지를 보면 동정심이 들 정도로 처량하다. 2018년 5월 13일, 아탈란타와의 경기에서 교체투입 되었으나 30분만에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당했다.

18/19 시즌 볼로냐, 칼리아리와의 이적설이 돌았으나 급여문제 때문인지 잔류했다. 그리고 2019년 5월이 되기까지 출전시간이 0분이다. 심지어 시즌 초반을 제외하면 부상도 없었다. 박살난 밀란 중원을 보며 팬들은 "몬톨리보라도 써야 하지 않겠나냐"와 "얼마나 못하면[10]아예 출전이 안되겠냐"로 나뉘어 논쟁을 벌이고 있다. 나오지도 못하는데 원정경기 소집은 거의 매번 되고, 훈련도 열심히 한다. 하지만 아예 경기를 출장하지 않기 때문에 얼마나 못하는지도 평가할수가 없다. 오죽하면 가투소와 불화설이 나오고 있다.

결국 단 1초도 뛰지 못하고 시즌을 마감했다. 매우 실망한 것 같은 글을 인스타에 올렸으며 결국 밀란을 떠난다고 한다.

그렇게 6월 30일부로 계약이 만료되면서 팀을 떠나게 됐다. 차기 행선지로 챔스 진출에 성공한 친정팀 아탈란타 등이 거론되고 있다.

11월 14일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밀란에 오랫동안 몸담은 선수였지만 구단 내에서 기념식 없이 언론을 통해 은퇴를 알렸다.

2.2. 국가대표 경력

국대에서도 피를로의 후계자 취급을 받으면서 피를로가 부상당할 경우나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경우 그의 대체자원으로 나서기도 하고, 같이 나오는 경우도 많다. 그의 국대 데뷔 경기는 2007년 10월 17일 남아공과의 경기. UEFA 유로 2008에도 예비 명단에 들어갔지만 결국 최종 명단에 들지 못하고 탈락했다. 이탈리아의 중원 뎁스가 포화 수준[11]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사실상 짬에서 밀린 격.

다만 꿩 대신 닭으로 2008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하여 안토니오 노체리노, 루카 치가리니와 콤비를 이뤘으며, 한국전에서도 기성용을 비롯한 한국 미드필더들을 데꿀멍시키고 경기 종료 직전 확인사살까지 하며 3-0의 완승을 이끌어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피를로의 대체자로 조별 예선 경기에 모두 출전했으나 피를로-부폰 없고 노장 선수들만이 꽉 찬 세대교체가 없는 이탈리아는 파라과이-뉴질랜드[12]전을 모조리 무를 캐며 부진하다가 마지막 슬로바키아전에 그야말로 탈탈 털리며 2-3으로 패배하고 32강 본선 조별리그 탈락(26등)했다. 몬톨리보 본인도 피를로의 공백을 메꾸지 못했으며, 오히려 부상중에 출전한 피를로가 훨씬 좋은 모습을 보이며 굴욕을 당했다.

그리고 UEFA 유로 2012에서도 로테이션 선수로써만 활약하며 굴욕을 당했다. 게다가 레지스타 자리는 안드레아 피를로가 부동의 주전으로 꽉 자리잡고 있으며 부상도 당하지 않았기에 감히 들어갈 엄두도 못내고 공격형 미드필더로만 주로 출장했다. 딱히 좋은 모습도 보이지 못하며 같은 자리의 티아고 모타 안토니오 카사노 등에게 밀리고 중앙에서는 다니엘레 데 로시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가 그야말로 꽉 자리잡고 있어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그래도 클래스는 살아있기에 패스는 확실히 좋은 모습을 보이긴 했다[13].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주축선수로 유력했다. 그러나 월드컵이 열리기 2주전인 아일랜드 와의 평가전에서 정강이가 골절되는 심한 부상을 당하여 월드컵 출전이 좌절되었고 이탈리아는 결국 이번에도 32강 본선 조별리그 탈락(22등)하고 만다.

게다가 UEFA 유로 2016마저 종아리 부상으로 출전이 좌절되었다.

국가대표에서 포지션이 확실하게 정착이 되었다.

데로시-피를로-마르키시오로 이어지는 후위 미들진의 한 포인트 앞에서 플레이를 한다. 일종의 트레콰르티스타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과거의 지단이나 리켈메 혹은 토티 같은 공격 전권을 담당하는 것이 아닌 3미들과 연계하여 공간창출과 최전방과의 연계를 하는 윤활제 역할을 했다.

몬톨리보 개인의 플레이메이킹 능력도 클래스가 있기 때문에 상대가 작정하고 피를로를 막는 경우에 아주리는 데 로시와 몬톨리보로 공격전개 루트를 변환하여 플레이하였다.

3. 은퇴 이후

영국의 OTT 스포츠 스트리밍 플랫폼 DAZN의 이탈리아 현지 해설위원이 되었다. 세리에 A 관련 코멘트를 주로 다루고 있다.

4. 플레이 스타일


흔히들 안토니오니-알베르티니-피를로로 이어지는 이탈리아 레지스타 라인의 후계자로 생각하는 선수지만 플레이 스타일은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안드레아 피를로와도 비슷한 점이 있지만, 대체로 샤비 알론소처럼 패싱력과 탈압박도 좋지만 수비력과 좋은 패스 커팅능력 등으로 중원을 장악하는 스타일이었다.

아탈란타, 피렌체 초기 시절까지만 해도 피지컬적으로 마른 체형이었기 때문에 상대의 압박을 개인 기술로 흘리고 공격전개를 하는 형태의 플레이를 고수했다. 전방으로 주는 패스들의 질은 상당히 좋았으며, 그러한 능력을 인정받아 18살의 나이로 아탈란타 1군에 데뷔하자마자 41경기를 뛰며 아탈란타의 승격을 이끌었고, 이후 피오렌티나에서도 주전자리를 확보했다. 07/08, 08/09시즌 피오렌티나의 리그 4위 수성을 이끌며 팀의 미래로 지목되었을 때만해도 전방 공격에 가담하는 패스를 지속적으로 찔러주는 등의 공격적인 롤을 부여받았다.

피렌체 말기부터 몬톨리보의 역할의 변화가 생기는데, 기존에 위치해 있던 것보다 약간 후위에서 경기를 조율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원래도 패스 능력이나 탈압박 능력이 검증되었기 때문에 몬톨리보가 후방 빌드업을 주도하는 선수가 된 것. 이러한 변화는 이미 예견되었던 것이, 이 시점부터 몬톨리보의 피지컬적인 성장이 이뤄지며 체격 자체가 탄탄해졌기에 후방에서 중심을 잡을만한 레벨로 성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때만 해도 몬톨리보는 3선에서 공격 개입을 덜하는 것 뿐이었고 완전한 후방 플레이메이커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피오렌티나에서 보여준 특성들은 안드레아 피를로의 후계자를 찾던 AC 밀란이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된다. 비단 밀란만이 아니라 아주리 군단 내에서도 피를로의 뒤를 이을 레지스타로서 몬톨리보를 주목하게 되었고,

많은 이들의 기대를 받으며 밀란에 입단했지만 당시 밀란의 상황은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티아고 실바 등을 매각하여 팀에 없고, 차기 에이스로 거론되던 알레샨드리 파투는 부상에 시달렸으며 후에 합류한 마리오 발로텔리는 여전히 멘탈리스크가 그의 성장이 발목을 잡고 있던 상황이었다. 소년 가장 스테판 엘샤라위만이 공격의 믿을맨이었던 셈.

밀란이 몬톨리보에게 기대했던 점은 역시 피를로의 그것처럼 후방 빌드업을 담당하고, 나아가 전방 빈공간에 절묘한 패스를 찔러 공격의 활로를 잡는 역할이었다. 그렇기에 밀란은 몬톨리보를 수비 1선, 즉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 두었지만 몬톨리보 역시 수비능력 자체가 좋은 선수는 아니었기에 도리어 더 많은 범위를 뛰게되며 체력적으로 부담이 갔고, 결과적으로 몬톨리보 본인의 경기력이 떨어졌기에 수비능력이 좋거나 활동량이 왕성한 파트너를 두면서 곧 중앙으로 전진 배치된다.

물론 후방 빌드업에 조금 더 비중을 둔 상태이긴 했으나 몬톨리보의 파트너 미드필더가 수비진을 보호해주거나 몬톨리보의 실수들을 커버해준다는 조건이 갖춰지면 조금 더 전방에서 플레이를 풀어나가는 경우도 있었다. 아쉬운 점이라면 밀란은 몬톨리보와 맞는 파트너를 찾는데까지 너무나 많은 시간을 소모했다는 점이다. 유라이 쿠츠카가 등장하기 전까지 몬톨리보는 미드진 전역을 뛰어다니며 후방 빌드업과 공격&수비 가담까지 담당해야했기에 체력적인 소모가 너무 컸다.[14]

'좋은 파트너 미드필더 존재'라는 조건은 말년까지 몬톨리보의 사용 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몬톨리보 사용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몬톨리보를 잘 사용하기 위한 필요조건인 셈. 바꿔 말하면 좋은 파트너 미드필더가 없는 몬톨리보는 그만큼 위력이 반감되는 선수이기도 했다. 이러한 부분은 국가대표에서 크게 드러나기도 한다.

발재간을 통한 공격전개를 좋아하지만 수비 상황에서는 생각보다 적극적인 때가 있다. 태클링이 좋은 선수는 아니기에 공간을 막는 유형의 선수인 것은 맞지만 이는 언제까지나 공이 돌고있을 때의 상황이고 정지된 공 혹은 소유권이 불명확한 공에 대해선 꽤 적극적으로 붙는 수비를 하기도 했다. 신장이 아주 작은 선수는 아니기 때문에 공중볼 다툼도 하고 상대에 따라선 피지컬 경합을 시도하기도 한다. 상대의 드리블링이 뛰어나지 않다면 활동량을 기반으로 한 움직임으로 밀어붙여 볼 소유권을 가져오기도 했다. 대표적인 경기가 바로 15-16 시즌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와의 리그 2차전. 많은 활동량과 적극적인 압박, 볼 경합으로 인테르의 가리 메델을 누르는데 성공하며 그동안의 몬톨리보와는 사뭇 다르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간결한 볼터치와 정확한 롱패스가 되는 킥력, 나름대로 괜찮은 피지컬까지 레지스타의 면모를 모두 갖춘 선수였으나 정작 피를로의 후계자가 되기에는 국가대표팀에서 계속 피를로에게 밀려왔기 때문에 오히려 피를로와 공존할 시에는 그보다 전방에 위치했다. 후방에 피를로-데로시를 두고 본인이 살짝 앞으로 나온 형태의 포지셔닝이었다.

투톱 뒤의 미드필더로 배치된 만큼 파트너 미드필더는 사실상 부재에 가까웠고 이 부분에 대한 리스크는 곧 현실이 되어 전방에서 공격의 경로를 열어야 할 시점을 못잡고 템포를 늦추거나 수비상황에도 제 자리를 빠르게 못찾기도 했다.

종합한다면 탈압박, 킥력, 피지컬 등을 장점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 모든 것들이 모두 압도적인 수준은 아니기에 그의 전술 수행을 도울 수 있는 파트너가 필요한 선수라고 할 수 있겠다. 플레이스타일은 다르지만 결이 비슷한 선수로는 보르하 발레로가 있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6. 여담

파일:81483380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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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같이 보기

1 부폰 · 2 마조 · 3 키엘리니 · 4 오그본나 · 5 티아고 모타 · 6 발자레티 · 7 아바테 · 8 마르키시오 · 9 발로텔리
10 카사노 · 11 디 나탈레 · 12 시리구 · 13 자케리니 · 14 데 산치스 · 15 바르잘리 · 16 데 로시 · 17 보리니
18 몬톨리보 · 19 보누치 · 20 조빈코 · 21 피를로 · 22 디아만티 · 23 노체리노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체사레 프란델리


[1] 주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 [2] 이 과정에서 재계약한다고 팬들 앞에서 확언을 했었는데 결국 팬들과의 약속을 무시하고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했었다. 더구나 이적시장 막판에 1년 남은 상황에서 피오렌티나가 원하는 가격(10M유로)을 AS 로마가 오퍼했고 피오렌티나가 흔쾌히 협상을 전개했다가 몬톨리보가 남겠다고 발언해서 피오렌티나는 협상을 취소하고 그를 붙잡아둔다. 그런데 재계약 제시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더니 결국 나는 재계약하길 원치 않는다. 그러나 남은 기간 피오렌티나에 남아서 헌신하겠다라는 말을 하면서 팀 재정에 타격을 입힌 몬톨리보에 피오렌티나 수뇌부들은 분노를 했고 더구나 밀란과의 사전접촉 의혹이 일면서 유력 언론지들은 이미 몬톨리보는 밀란과 합의를 했고 1년만 피오렌티나에 뛰고 밀란으로 이적한다는 소식들이 들려오고 있었던 시기였는데 몬톨리보의 이런 태도는 결국 이런 의혹을 기정사실화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에 피오렌티나는 밀란에게 큰 분노를 표출했고 결국 몬톨리보는 정말 밀란으로 자유계약으로 이적한다. 아무튼 이 사태로 여전히 밀란과 피오렌티나와의 관계는 썩 좋지만 못하며 밀란은 피오렌티나와 관계를 개선시키려고 했지만 실제로 개선시키려고 한 노력은 없었고 이후로 피오렌티나에서 뛰어난 선수가 발굴되어도 밀란의 자금사정도 사정이나 피오렌티나가 밀란과의 협상에서 비협조적으로 일관하는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튼 이 사태로 피오렌티나는 몬톨리보의 재계약을 방해하고 다른 팀으로 프리로 보내려는 에이전트인 브랑키니와 관계를 단절하고 그가 소유한 선수이자 리그를 대표하던 골리였던 세바스티앙 프레이도 내치기 위해 아르투르 보루츠를 영입한 뒤 대놓고 보루츠를 밀어줘 잔류를 희망했다가 이적 요청을 한 프레이를 제노아에 바로 헐값으로 넘겨버렸다. [3] 다만 여기서 변수는 3백과 4백의 차이다. 3백의 경우 몬톨리보를 굳이 활용하지 않아도 무난한 경기운영이 가능하지만 4백의 경우 몬톨리보가 없으면 경기운영 자체가 힘들어 진다. [4] 몬톨리보가 없어도 유지가 되는 포메이션이다. [5] 틀린 말이 아니다. 3-5-2가 성립된 것은 언제까지나 콘티가 있을 때 유지가 되었다. [6] 찰하놀루에게 이 역할을 맡기려고 한 듯 하지만, 찰하놀루는 이미 수소와 움직임이 너무 겹치기 때문에 제 역할 조차 못하고 있다. [7] 중앙 배치될 때, 현재의 몬톨리보만한 선수가 없다는 뜻이다. [8] 몬톨리보는 수비진까지 내려와 수비가담을 하려고 뛰어왔지만 이미 실점한 이후였다. [9] 후스코어드 기준 [10] 지난시즌 보여준 퍼포먼스를 생각하면 일리가 없는건 아니다 [11] 안드레아 피를로 젠나로 가투소, 마시모 암브로시니, 다니엘레 데 로시, 시모네 페로타, 알베르토 아퀼라니가 있었다. [12] 두 경기 다 선제골을 먹혔다 [13] 독일과의 4강전에서 마리오 발로텔리의 두번째 골이나 결승골을 깔끔한 롱패스로 어시스트하며 팀의 결승에 기여했다. [14] 이러한 영향 탓인지 쿠츠카가 등장한 후에는 기량의 정체가 지속되며 아쉬운 모습도 종종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