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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28:16

만다라(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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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권택 감독 장편 연출 작품
,(1980년 이후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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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코 (1980) 복부인 (1980) 만다라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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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의 눈물 (1981) 아벤고 공수군단 (1982) 안개마을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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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된 자식들 (1982) 나비품에서 울었다 (1983) 불의 딸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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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물을 어찌 막으랴 (1984) 길소뜸 (1985) 티켓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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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받이 (1986) 연산일기 (1987) 아다다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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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 아제 바라아제 (1989) 장군의 아들 (1990) 장군의 아들 2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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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 (1991) 장군의 아들 3 (1992) 서편제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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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 (1994) 축제 (1996) (노는계집 창)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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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뎐 (2000) 취화선 (2002) 하류인생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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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학 (2007) 달빛 길어올리기 (2011) 화장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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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이전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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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다라 (1981)
曼陀羅 | Mandara
파일:만다라 포스터 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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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만다라 포스터 2.jpg
<colbgcolor=#000><colcolor=#eee> 장르 드라마, 종교
감독 임권택
각본 이상현, 송길한
원작 김성동
제작 박종찬
주연 전무송, 안성기
촬영 정일성
음악 김정길
제작사 ㈜화천공사
개봉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1년 9월 12일
상영 시간 105분
대한민국 총 관객 수 128,932명(서울)
상영 등급 연소자관람불가
1. 개요2. 줄거리3.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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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성동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임권택 감독의 1981년 영화.

법운역에 안성기, 지산역에 전무송이 캐스팅 되었다. 높은 작품성으로 일본의 명감독 구로사와 아키라도 만다라를 임권택의 3대 걸작이라고 높게 평가했다. 다만 소설과 영화는 결말에 있어 차이가 상당히 크다. 분량적으로 보면 맨 마지막에 가서 약간 달라지는 정도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필요하다'와 '필요없다' 수준으로 차이가 엄청나게 크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만다라의 결말과 소설의 결말이 다른 이유는 김성동이 후에 한국 불교계와의 관계가 개선되며 소설 만다라 결말을 수정했기 때문이다. 만다라 소설 초판 및 구버전을 보면 영화와 결말이 같다.

그리고 이렇게 후에 김성동이 결말을 수정함에 따라 만다라는 결말 수정 전 버전으로 읽은 평과 결말 수정 후 버전으로 읽은 평이 상당히 다르다. [1]

깃발 없는 기수 족보와 더불어 임권택을 본격적으로 비평적 논의 대상으로 올려놓은 작품이기도 하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거장 임권택의 시발점이 되는 영화.

제20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6개부분에서 수상했고 전무송은 신인남우상과 남우조연상의 2관왕을 달성하였고,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해 한 작품으로 신인상-조연상-주연상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였다.

참고로 촬영은 임권택 감독과 오랫동안 파트너로 활동해 온 정일성 촬영감독이 맡았다. 그의 인터뷰에 의하면 영화 촬영 크랭크 인에 들어가는 날이 전두환의 대통령 취임식 날이었는데, 우연히 임권택과 함께 들른 식당에서 식사를 하다가 TV를 통해 대통령 취임식 중계를 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걸 보고서 매우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그래서 전반적인 촬영을 'Low-Key'로 어둡게 가자고 제의해서, 촬영을 진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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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줄거리

3개월의 동안거(冬安居) 기간, 버스 한 대가 검문소 앞에 멈춰 서고 군인의 검문이 시작된다. 승려증이 없는 스님이 끌려 내려가자, 젊은 스님도 따라 내린다. 그들은 각각 지산( 전무송)과 법운( 안성기)이다. 지산은 군인들이 시킨 염불을 하고 풀려난다. 법운은 한 절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지산을 다시 만난다. 지산은 부처는 불당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법운은 6년간의 수행에도 아무것도 얻지 못했음을 깨닫게 된다. 법운은 다시 길을 떠나는 지산을 따라나선다.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하던 그들은 산속 작은 암자에서 동거에 들어간다. 한 무당의 점안식(點眼式)을 도와준 지산은 내 눈의 점안은 누가 해주냐며 술을 마시고, 가부좌를 틀고 얼어 죽는다. 법운은 지산을 다비하고, 그가 가지고 다니던 번민에 찬 얼굴의 불상을 그가 끝내 못 잊어한 옥순(방희)에게 전한다. 법운은 마지막으로 어머니( 박정자)를 만난 후 긴 만행의 길을 떠난다.

3. 수상

<rowcolor=#eee> 연도 시상식 부문 수상자
1981 제20회 대종상 우수작품상 화천공사
감독상 임권택
각색상 이상현
송길한
남우조연상 전무송
편집상 이도원
조명상 차정남
신인남우상 전무송
제2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주연상 전무송
촬영상 정일성
1982 제18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안성기
시나리오상 이상현
송길한
기술상(촬영) 정일성
제27회 아시아-태평양 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1] 만다라가 한국 문학계에서 희대의 문제작 중 하나로 손꼽혀왔던 이유를 알고 싶다면 헌책방이나 도서관에 가서 결말이 수정되기 전 버전을 구해서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