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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11 16:01:55

류궈량

올림픽 탁구 남자 단식 우승자
파일:오륜기(여백X).svg
파일:스웨덴 국기.svg 얀오베 발드네르
( 1992)
파일:중국 국기.svg 류궈량
( 1996)
파일:중국 국기.svg 쿵링후이
( 2000)
<colbgcolor=#131230><colcolor=#fff> 류궈량
Liu Guoliang | 刘国梁
파일:Mondial_Ping_-_Men's_Singles_-_Round_4_-_Ma_Long-Koki_Niwa_-_02.jpg
출생 1976년 1월 10일 ([age(1976-01-10)]세)
허난성 신샹시
국적 파일:중국 국기.svg 중국
신체 168cm
학력 상하이교통대학 경영학과
상하이교통대학 대학원 석사
종목 탁구
전형 오른손 / 중국 펜홀더 전면 숏핌플
특기 서비스, 스매싱
1. 개요2. 평가3. 수상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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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탁구 선수 출신 감독 겸 중국탁구협회장. 현역 시절 중국의 첫 세계 탁구 그랜드슬래머였고[1], 은퇴 이후에도 협회장 등 이것저것 많이 해서 일각에선 중국탁구의 대부라고 불리기도 한다.

2. 평가

작은 체구의 날렵한 스타일의 전면 숏핌플 중국식 펜홀더 탁구선수로 빠르고 강력한 포핸드 주력 전진속공탁구를 구사했다. 그의 가장 유명한 기술은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이질 러버의 특성과 특유의 화려한 서브 모션을 적절히 이용해가며 매우 받기 까다로운 서브를 구사했다. 특히 스매싱이 최고 수준으로 뛰어났다. 반 박자 빠른 타이밍에 볼을 치는 그의 호쾌한 연속 스매싱은 보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하였다. 류궈량의 탁구 스타일은 조금은 한 쪽으로 치우쳐 보일 수 있으나 류궈량은 백핸드도 약하지 않았으며, 매우 적극적이고 빠른 백핸드 쇼트/푸쉬 기술을 구사했다. 또한 중국 펜홀더 이면타법의 창시자이기도 하다.[2] 기존 펜홀더의 전법에 후면 백핸드 드라이브라는 보조무기까지 장착하여 백쪽에서도 쉽게 주도권을 내주지 않았다. 얀오베 발드네르는 류궈량이 거의 올라운드 플레이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물론 기본적으로 펜홀더이니만큼 아무래도 백쪽으로 오는 상대의 선제공격과 다양한 코스변화에는 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류궈량 본인도 올라운드 플레이보다는 적극적으로 돌아서서 포핸드를 치는 걸 선호하는 포핸드 주력의 테크니션에 가까웠다. 류궈량의 탁구는 이후 후배들인 마린 마룽의 탁구에 영향을 주었다.

류궈량은 올림픽, 세계선수권, 월드컵 3대 메이저대회에서 모두 한 번씩 우승해 중국의 첫 탁구 그랜드슬래머가 되었다.[3] 하지만 류궈량의 선수로서의 마무리는 아주 기분 좋지는 않았다. 류궈량이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사용했던 Spinpip 러버가 지나치게 구질을 예측하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ITTF에서 공식적으로 밴이 됐고, 류궈량은 이에 타격을 입었다. 그 사이 기간에도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탁구 남자 단식 결승에서 김택수에게 한방을 먹기도 했고[4], 무엇보다 2000년 세계 팀 선수권 결승전에서 스웨덴을 만나 하루 2패를 하며 중국의 금메달 획득 실패 주범이 되고 만다. 이후에도 류궈량은 전성기만큼의 경기력을 펼치지는 못했다. 결국 류궈량은 2001년 만 25세라는 젊은 나이에 현역 은퇴를 선택했다. 이미 그랜드슬램을 이루기도 했고 코치로 전향하는 게 팀에 더 이롭다고 판단한 듯 하다. 펜홀더 전진속공이라는 전형 자체가 체력적으로 부담이 큰 전형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류궈량은 27세에 중국 대표팀 코치가 되었다. 중국에서 류궈량은 탁구 전술의 천재로 불리는데, 실제 코치가 된 후에도 선수들에게 탁구 전술을 많이 전수해주는 것으로 보이며, 특히 기막힌 타이밍에 타임아웃을 불러 적절한 지시로 게임을 승리로 이끄는 모습이 자주 부각되는 편이다. 하지만 2004 올림픽에선 선수 유승민-코치 김택수한테 금메달을 헌납한다. 코치로서의 지도 방식은 엄격한 스타일이라고 알려져있다. 선수들에 대한 냉혹한 평가와 잘못된 행동을 저질렀을시 가차없는 처벌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예를 들어 커리어 초반 장지커가 류궈량의 지시로 아예 대표팀에서 강등되어 지방 팀으로 보내진 적이 있었다. 이후 알려진 사실에 의하면 이때 장지커의 국대 추방 이유는 도박 때문이었다고 한다.

다만 유남규의 증언에 의하면 류궈량의 본래 성격은 의외로 정이 굉장히 많은 스타일이라고 한다. 그를 마냥 독불장군식 코치로만 볼 순 없는 것이, 장지커를 쫓아내면서도 다시 돌아올 걸 믿는다고 말해준 것도, 세계선수권에서 연달아 패배해 실의에 빠진 마린에게 반드시 다시 기회가 있을 거라고 격려해 준 것도, 올림픽에서 연달아 준우승을 해 탁구를 그만두기 직전 상황까지 갔던 왕하오를 다시 붙잡아 준 것도 류궈량이었다고 한다.

3. 수상 기록

올림픽
금메달 1996 애틀랜타 단식
금메달 1996 애틀랜타 남자 복식
은메달 2000 시드니 남자 복식
동메달 2000 시드니 남자 단식
세계선수권
금메달 1995 톈진 남자 단체전
금메달 1997 맨체스터 남자 복식
금메달 1997 맨체스터 혼합 복식
금메달 1997 맨체스터 남자 복식
금메달 1999 에인트호번 남자 단식
금메달 1999 에인트호번 남자 복식
금메달 2001 오사카 남자 단체전
은메달 1993 예태보리 남자 단체전
은메달 1995 톈진 남자 단식
은메달 2001 오사카 남자 복식
동메달 1993 예태보리 혼합 복식
동메달 2001 오사카 혼합 복식
세계팀선수권
은메달 2000 쿠알라룸푸르 남자 단체전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98 방콕 남자 단체전
금메달 1998 방콕 남자 복식
은메달 1998 방콕 남자 단식


[1] 2번째는 쿵링후이. [2] 실제로 류궈량이 중펜 이면타법 전법을 처음 개발했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국제대회에서 처음으로 이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게 류궈량이었던 건 확실하다. [3] 참고로 세계 탁구 첫 그랜드슬래머는 얀오베 발드네르이다. [4] 탁구인들에게 심심찮게 회자되는 32구 랠리가 이때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