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침략하는 쪽이었을 뿐, 침략 받은 적 없는 마계. 그런 마계는 여느 때처럼 풍요로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계의 바다, 마해 또한 마찬가지다. 마해의 또 다른 이름이 괜히 황금해인 것이 아니다.
그런 마해의 패권을 두고 다투는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로 인하여 마해는 대해적 시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두 명의 대해적의 등장으로 인해 세력권이 나뉘게 된 바다는 이제 위험천만한 모험이 가득한 장소가 되어버렸다.
해적이란 깃발을 쓰려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해 그 산하에 들어가야만 했다. 하지만 바다에서 해적에게 기생하여 이윤을 챙기되 해적이 아닌 이들이 있었으니 '인양업자'가 그 좋은 예일 것이다.
"급보요! 급보! 인근에 강경파 대형 군함이 침몰했답니다!"
"강경파 대형 군함이라니 해적왕에게 당한 건가?"
"누구에게 당한 게 뭐가 중요해? 서두르자! 늦게 가면 국물도 못 챙길 테니! 닻을 올려라! 출항이다!!"
인양업자들은 경쟝하듯 출항하여 인근 해역을 뒤지고 다녔다. 해적과 해적, 해적과 해군. 또는 해군과 해군. 만났다 하면 죽어라 싸워대는 이들이 바다 위에 가득하니 침몰하는 배가 한 둘이 아니었다. 인양업자란 그렇게 침몰한 배를 건져내서 돈이 될 만한 것들을 챙기는 이들로, 이른바 바다의 하이애나 같은 이들이었다.
『끼룩. 끼루루룩』
갈매기의 인도를 받아 해군함이 침몰했다는 장소에 도착한 인양업자는 둘 이었다. 나란히 선 두 척의 인양선. 이 동업자들은 의외로 순순하게 타결을 이끌어냈다.
"대형 군함이라면 충분히 우리 둘이서 나눠먹고도 남을 거야."
"괜히 우리끼리 다투다가 다른 경쟁자가 끼어들 틈을 주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말자구."
"동감이야. 정확하게 5대 5."
"이의 없음. 좋아. 인양을 서두르자."
현장에서는 다른 인양선과 협력하는 일이 잦은 것인지 인양업자들은 숙련된 솜씨로 협력하여 인양작업에 들어갔다. 이마의 땀과 노고를 쏟기를 수시간. 마침내 침몰했던 군함이 수면으로 끌려 올라왔다. 하지만 그 자태를 드러낸 군함을 본 인양업자들의 얽울은 흙빛으로 흐려졌다.
"허억."
"이, 이건 대체? 배가.. 맞는 건가?"
그것은 배라고 부르기 힘든 몰골을 하고 있었다. 뒤틀리고 망가져서 다신 쓸 수 없는 용골만 남기고 갑판까지 모조리 뜯겨져 나간 그것은 마치 살을 깨끗이 발겨낸 '생선가시'와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지독할 정도로 철저하게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았다. 한 푼이라도 될만한 구석이 있는 건 모조리 약탈당하고 그 찌꺼기만 남아 있는 것이다. 이 바다에서 이런 짓을 할 만한 사람은 단 하나뿐 이었다.
"타, 탐왕이다! 탐왕의 짓이야!"
"제기랄. 해적왕의 짓이 아니었다니? 어서 도망가자!"
인양업자들은 소란을 떨었다 하지만 상황을 파악하는 게 너무 늦어버렸다. 그들이 인양에 온 신경을 쏟고 있는 사이에 이미 탐왕의 해적선은 지척에 이르러 있었으니 말이다. 해적선은 두 인양선이 닻을 올리기도 전에 그 앞을 가로막고 섰다.
『솨아아아아』
탐왕, 루퍼스 골드오션은 코트를 펄럭이며 해적선 갑판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소라고동 조차도 금화 한 닢의 가치가 있다는 마계의 황금해답군요. 돈 될만한 건 모두 챙기고 버린 찌꺼기를 마끼로 썼을 뿐인데 이렇게 돈 될만한 배들이 알아서 찾아오다니 말입니다."
"으으윽."
안대를 쓴 루퍼스는 오직 왼쪽 눈으로만 세상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인양선 두 대를 훑어보는 그의 하나 남은 눈은 탐욕이 그득하다 못해 차 넘치고 있었다. 이미 그의 머릿속에서는 두 인양선의 가치를 셈하고 있음이 틀림 없었다.
"제, 제독. 돈이라면 모두 넘기겠습니다. 부디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여러분의 목숨조차 돈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시고 하는 말씀은 아니겠지요?"
돈을 쫓아서 이곳 마계에 정착한 명계 출신 저승사자다운 발언이었다. 괜히 탐욕의 왕이라 불리는 게 아니었다.
"으아아아, 제기랄!"
『타-앙』
인양업자 중 한 명이 발작하듯 총을 꺼내어 루퍼스를 향해 쐈다. 일부러 노린 것인지 모르겠지만 총알은 사각이 분명한 오른쪽에서 날아들었다. 하지만 여유 있게 피한 루퍼스. 동시에 그의 양손이 허리춤에서 교차하는 가 싶더니 어느새 그의 아이투스가 불을 뿜었다.
『타당, 탕』
"크억!"
"괜히 총알 낭비시키지 마십시오. 이것도 다 돈입니다."
해적선의 선원들은 루퍼스의 얘기를 듣고는 막 꺼내 들던 총을 다시 허리춤에 꽂아 넣었다. 대신 그들의 손에는 칼이 쥐어졌다. 그런 수하들의 모습을 보며 루퍼스는 만족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탐왕의 무언의 수락이 떨어지자 해적들은 인양선으로 뛰어들어 닥치는 대로 약탈을 시작했다. 인양업자들의 목숨 또한 그들의 취급품 중 하나였다.
"아아악!"
칼침을 맞고 비명횡사한 이들은 죽은 뒤 다시 한 번 루퍼스와 대면해야 했다. 이번엔 대해적 루퍼스 골드오션으로서가 아니라 명계의 사자로서의 루퍼스와 말이다. 루퍼스는 싱글거리며 이제 막 영체가 된 이들을 맞이했다.
"황도천을 건너 명계로 가시려면 뱃삯을 내야 합니다. 물론, 가지고 계신 건 아무것도 없겠죠?"
"......"
인양업자를 두고 바다의 하이애나라 한다. 그렇다면 목숨을 약탈하여 그 영혼마저도 이용하려는 그는 대체 무엇이라 해야 할까?
‘이 배신자! 우리 밴드를 그만둔 걸 후회하게 될 거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건방진 녀석! 썩 꺼져버려!’
거리에는 루퍼스가 베르카스 밴드에서 탈퇴했다는 소식은 빠르게 거리에 퍼져 나갔다. 소문에선 루퍼스가 탈퇴를 한 게 아니라 멋대로 굴다가 베르카스 밴드에서 쫓겨난 것처럼 묘사되고 있었다. 소문의 근원지가 어디인지 따로 알아볼 것도 없었다.
베르카스가 외부인이 된 루퍼스를 향해 비난의 칼날을 세우며 내부의 결속을 다지는 것이었다.
“유치하기 짝이 없군요.”
그다지 화도 나지 않는다. 원래 그런 놈들이었다. 루퍼스는 음해에 신경 쓰지 않고 새롭게 정착할 밴드를 찾았다. 이미 활동 중인 밴드에서 객원 보컬을 제안하기도 했고, 새롭게 밴드를 꾸리는 이들도 루퍼스에게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아, 내가 말 안했던가? 이번에 다른 밴드에 객원 멤버로 참가하기로 했어. 팀은 다음에 짜려고.” “그렇습니까?” “미리 말 못해서 미안해. 다음에는 먼저 연락할 게. 진짜 미안!”
하지만 정작 만나서 일을 진행시키려 하면 번번이 무산되기 일수였다. 외압이 있었다는 건 사람들의 태도에서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아마 루퍼스와 접점이 있는 뮤지션들에겐 모두 그들의 입김이 작용한 것 같았다. 베르카스는 아무래도 루퍼스를 영영 무대에서 쫓아내고 싶은 모양이었다.
“이렇게까지 할 줄이야..”
루퍼스는 낙담하지 않았다. 다만 앞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는 고민이 됐다. 거리를 걸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 때, 알 수 없는 소음이 귀를 비집고 들어와 그의 상념을 방해했다.
“양심 없는 Squid! 보기 싫은 Face! 고갤 숙여 고갤 숙여, 우우!” “고갤 숙여 고갤 숙여, 우우!”
한 밴드가 거리 공연 중이었다. 기타와 베이스, 그리고 키보드로 구성된 3인조였다. 이들의 공연은 한 마디로 평가하자면 엉망진창이었다. 베이스는 척 봐도 초심자였고, 키보드는 클래식 피아니스트처럼 정석을 벗어나지 못했다. 실력이 아니라 요령이 없단 얘기다.
그러한 엉망진창 속에서도 기타는 딱히 흠잡을 것 없이 훌륭했다. 거리에서 인지도 있는 기타리스트 라이언의 연주이니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노래를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부르고 있는 것 또한 라이언이었기 때문에 그에게 면죄부를 줄 수 없었다. 노래를 끝낸 뒤 싱글벙글 거리는 라이언에게 다가간 루퍼스는 한마디 쏘아 주었다.
“전에 마이크 잡지 말라는 얘기 듣지 못했습니까?” “오! 이게 누구야? 베르카스의 보컬 루퍼스잖아?”
라이언의 인사에 루퍼스는 잠시 씁쓸하게 웃었다. 라이언은 기타 실력만 좋았지 거리의 소문 같은 거랑은 인연이 없는 듯 했다. 아마도 자신이 베르카스를 떠났다는 것을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소식이 늦군요. 베르카스는 관뒀습니다.” “그래? 이적한 거야?” “딱히 정해둔 팀은 없습니다만. 일단은 그럴까 싶군요.” “잘됐다! 그럼 새로 팀을 구하기 전에 우리랑 공연하는 건 어때?” 라이언의 뒤에서 아르메와 리르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루퍼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들도 전문 보컬의 섭외가 시급하다는 걸 알고있는 눈치였다.
“제게 이런 아마추어 공연을 함께 하자는 겁니까?” “역시 그건 실력파 보컬 루퍼스에겐 실례되는 제안이었나? 어쩔 수 없지. 역시 마이크는 한 동안 내가 잡는 수 밖에!”n“잠깐만 기다려 보십시오. 꼭 그 방법밖에 없는 겁니까?” “응? 그게 무슨 뜻이야? 내 노래가 듣기 싫단 얘기야?” “몇 번이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당신은 마이크 대신 악기를 잡으라고 말입니다.”
루퍼스는 라이언을 밀어내며 자리를 잡았다. 관중들은 보컬이 즉흥적으로 합류하는 모습을 보고 격하게 호응했다. 루퍼스로서는 꽤나 오랜만에 관중의 환호를 받는 것이었다. 화려한 무대가 아니어도, 아마추어들과 함께하는 것이라도 관중 앞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건 기분 나쁘지 않았다.
“이번 한 번은 어울려 드리죠.”
2019년 4월 23일 패치로 리르, 아르메, 라이언과 함께 밴드 스테이지 아바타가 출시되었다. 평가가 매우 좋아 재판을 언제 하냐는 이야기가 많다. 여담으로 일부 스킬 사용 시 노래를 부르는 자세를 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