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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4 21:13:41

롯본기 김교수


1. 개요2. 상세3. 성향4. 저서5. 비판
5.1. 일본 제조업 폄하5.2. 일본 문화 비난및 그밖의 일본과 일본인들에 대한 악의적인 비난5.3. 일본 식문화 폄하
6. 여담

채널 링크

1. 개요

대한민국 혐일 유튜버이다. 대일외고, 연세대 출신에 일본에서 실제로 살아본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영상을 주로 올린다.

2019년 11월 11일 이후 한동안 말없이 잠적했으나 2020년 3월 29일 복귀했고, 얼마 지나지 않은 5월 5일에는 여러 신고를 먹고 모든 동영상을 비공개 처리했으나 6월 20일에는 다시 공개처리로 활동을 재개했다.

구독자는 2024년 10월 26일 기준, 30.9만명이다.

2. 상세

미국, 중국, 일본 등 다양한 국가에서 거주하였다.

본인이 밝힌바에 따르면 병역 이행 및 연세대 졸업 → 가족이민으로 미국 이주 → 여러 대학원 수료 → Booz Allen & Hamilton 본사 입사 → 미국에서 현재 아내인 일본인 여성을 만나 결혼 → 일본으로 이주 → 세이부 문리대학의 부교수[1]로 근무, 도쿄에서 개인 가게 운영 → 유튜브 활동 시작 → 일본에서 유튜브 활동으로 인해 개인 사업, 가족 등이 혐한들의 수차례 위협을 당한 끝에 한국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2017년에 일본 매체에 실린 인터뷰를 보면 GM 코리아와 상하이 GM에서도 일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온다.

3. 성향

현대 사회에서 민감한 문제이니만큼 롯본기 김교수 본인의 성향을 혐일로 단정짓는 건 본인이 밝히기 전까지 힘들다는 의견도 있지만, 후술하는 바와 같이 일본에 관해서 맹목적으로 부정적인 태도를 고수하고 있는 태도로 미루어볼 때 그를 혐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2] 아예 어느 영상에선 '좀 더 강력하고 동시다발적인 불매운동을 전개한다는 식으로 경제적 압박을 주면 일본이 머리숙일 것이다.'라는 식으로 주장하기도 했을 정도다.

일본의 여러 부분에 대해 비판하는 것을 주 컨텐츠로 삼고 있으며 이에 관련된 서적까지 내기도 했다. 한권은 밑에도 기재되었다시피 본인의 유튜브 채널 이름과 동일한 '롯본기 김교수', 또 다른 한권은 '굿바이 일본'. 전자의 경우 책 이름은 평범해 보이지만 책의 첫번째 목차가 '세계 최악의 나라, 일본의 민낯'이라는 것만 봐도 책의 대략적인 주제는 알 수 있을 정도. 한마디로 혐일 마케팅을 자주 하는 사람이고 반일 감정이 심한 시청자들이 이에 엄청난 호응을 해주는 편이다.[3] 이들은 롯본기 김교수가 방송에서 이상한 정보를 들고와서 비난을 하면 그것을 지적을 하는 사람은 극소수이며 지적하는 사람들을 친일로 몰아가는 성향이 있다. 게다가 유튜브 영상 댓글에도 '일본은 열등한 민족' 또는 '친일파들 부들거리죠?' 하는 식의 댓글이 많다.

일본에 대해 비판하는 유튜버라는 점에서 보면 호사카 유지와 비슷해보이지만 자세히 따져보면 거의 반대에 가까운 태도를 보인다. 호사카 유지 문서에도 나와있듯이 호사카 유지는 일본과의 대립관계에 대해 일본을 경시하기는커녕 시시각각 일본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반해 롯본기 김교수는 일본은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에 비해 속으로 엄청나게 곯아있으며 우리나라가 한마음으로 뭉치기만 해도 바로 고개숙이게 만들 수 있다고 하는 등 일본을 상대적으로 낮게 보는듯한 입장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롯본기 김교수의 주 목적 중 하나가 일본에 환상을 가진 한국인들의 정신을 차리게 만드는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일부러 지나치게 부정적이고 과격한 입장을 보이는 것일 수도 있긴 하지만 이를 고려해도 호사카 유지에 비하면 확연할 정도로 과격한 입장을 보인다.

4. 저서

롯본기 김교수 굿바이 일본

2019년에 한국에서 두 권의 책을 냈다. 자신이 해외 및 일본 현지에서 수년간 경험하고 느낀 것을 바탕으로 정치, 산업, 경제, 문화, 사회 등 다방면에 걸쳐 일본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책의 내용에는 일본의 여러 특성에 관해 소개하면서 일본을 깔 때 어떻게 까야 하는가를 소개하고 있다. 예를 들면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일본은 인간 관계에서 철저한 상명하복 체계, 즉 갑-을 관계가 성립한다. 손님-점원, 남편-부인 등으로. 이를 통해서 왜 일본이 다른 피식민지 국가들을 무시하는가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 입장에서 한국 등 피식민지 국가는 을이므로 일본인의 관점에서는 을이 갑에게 대드는, 일본인으로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

5. 비판

5.1. 일본 제조업 폄하

김교수는 일본 제조업에 대해 카메라를 예로 들며 "좀 더 작게 개선하는 데만 역량이 있을 뿐이다."라고 비난했지만 https://www.youtube.com/watch?v=q72Ud4cpr_8 카메라 제조로 유명한 회사 중 독일의 라이카 스웨덴의 핫셀블라드 덴마크의 페이즈 원 스위스의 Sinar 또한 자잘한 개선만 주기적으로 이루어졌지 무언가가 크고 갑작스럽게 바뀐 건 없다. 이 논리대로면 저 3국의 회사들 모두 혁신이 없다는 뜻이 된다.

애초에 제조업 분야에서는 김교수의 말이 얼마나 실없는 소리인지 알 수 있는데, 몇몇 특수한 사례를 제외한 제조업의 대부분은 혁신이 아닌 양산에 초점을 맞춰두고 있다. 현대에서 주로 쓰이는 것만 봐도 장갑부터 자동차까지 무언가가 혁신적으로 한번에 갈아치워진 적은 없었다. 또한 한국이 그래픽 메타렌즈를 개발한 것은 맞으나 영국과 공동개발하였다는 이야기는 쏙 빼놓고 말하는 지독한 친한, 자문화 중심주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사실 그래픽 메타렌즈 역시 메타렌즈의 기술을 가져와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롯본기의 논리대로라면 혁신적이지 않고 거기다가 카메라의 혁신의 기준을 무조건 렌즈의 변형으로만 초점을 맞추는 롯본기의 주장도 전혀 근거가 없다. 실제로 SLR카메라 역시 그전부터 존재했지만 큰 대중성은 없었는데 1954년 아사히 광학 공업에서 SLR 카메라의 큰 변화를 불러 일으켰는 퀵 리턴 미러 기능을 최초로 만들어 내면서 SLR카메라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는 변화를 일으켰으면 그리고 위 내시경 카메라도 일본에서 1950년대 일본에서 최초로 위 내시경에 카메라 기능을 만들면서 내시경으로 위를 촬영할수 있게 되었고 그리고 캠코더만 해도 사실 비디오카메라는 그전부터 있긴 했지만 그 이전의 캠코더는 하나같이 방송용 캠코더 뿐으로 80년대에 소니에서 그러한 캠코더를 크게 개선시켜 소비용 캠코더를 최초로 만들어서 일반인들도 자유롭게 길거리에서 캠코더로 영상을 촬영을 할수 있는 변화를 일으켰고 또한 일본 교세라에서 99년도에 최초로 휴대폰에 사진을 최대 20장까지 찍을수 있는 카메라 기능을 추가해서 이후 삼성같은 기업들은 그러한 휴대폰에 카메라를 넣는 폰카 기능을 따라했고 2000년대 일본 샤프에서 휴대폰으로 인터넷 연결 없이도 자유롭게 사진을 찍을수 있는 최초의 지금과 같은 방식의 폰카를 출시해서(2000년도 삼성에서 만든 폰카도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을려면 일일히 비싼 요금이 나오는 인터넷에 연결해야 했기 때문에 교세라에서 만든 VP-210과 별큰차이가 없어서 애초에 제대로 된 지금과 같은 방식의 같은 방식의 폰카를 기준으로는 2000년도 샤프에서 만든 현대식 방식의 Sharp SHO4 폰카가 최초다.) 애플,모토로라 많은 휴대폰 기업들은 본격적으로 그러한 폰카방식을 따라해서 본격적으로 폰카시장이 형성이 되는 변화를 일으켰듯이 오히려 카메라 역사에서 렌즈의 변화보다는 카메라 본체의 변화가 더 큰 혁신적인 변화를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혁신이란 무조건 새로운 재료로 재품을 만드는것만 혁신인게 아니라 원래 기존에 있던 것을 크게 개선시켜 새로운 변화를 불러 일으키는 것 역시 혁신에 해당한다. 당장 21세기 최고의 발명품이란 스마트폰만 해도 원래 휴대폰에 인터넷 기능을 이미 2g폰 시절부터 있었던 것이다.


더불어 한국은 롤러블 텔레비전, MP3 플레이어, 폴더블 스마트폰 등을 개발하였다고 혁신적이라고 주장하며 일본은 혁신이 없는 민족성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작 이 논리대로면 일본 또한 캠코더, 현대식 탄소봉 건전지, 플래쉬 메모리, QR 코드, 폰카,야기 안테나,청색 LED,리튬이온전지 등 롯본기 김교수 입장에서 충분히 혁신적이라고 할 수 있는 발명품이 수없이 많이 존재한다. 당장 인류의 문명 발달에 기여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인 노벨상 수상 업적만 보더라도, 2019년 기준 28명의 일본인 노벨상 수상자 중, 발견이 아닌 새로운 개발이나 발명으로 상을 받은 사람만 따져봐도 여럿이 있다. 예를 들어, 크로스 커플링을 개발해 노벨 화학상을 받은 스즈키 아키라 및 네기시 에이이치, 그리고 리튬이온 전지의 발명으로 노벨 화학상을 받은 요시노 아키라, 청색 발광 다이오드의 발명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아카사키 이사무, 아마노 히로시 및 나카무라 슈지 등.

애초에 그런식의 모순적인 논리로 일본을 욕하는 김교수는 정작 LG가 만든 캡슐형 아이스크림 기계,캡슐형 맥주기계,둥근 얼음이 나오는 LG 오브제 컬렉션 얼음냉장고 등은 혁신적이라고 찬양하지만 사실 이런 기계들도 완전히 새로운 혁신적인 기능을 추가한게 아니라 모양을 작게하고 좀더 얼음이 늦게 녹게 하는등 기본 성능을 향샹시켰을 뿐이다. 얼음을 둥글게 만드는것 온더블은 역시 이미 그전부터 있었던 얼음 만드는 방식이고 캡슐형 아이스크 기계, 맥주기계같은 음식기계에 캡슐형 방식역시 캡슐형 커피등 그 이전부터 있었던 방식이며 그밖에 김교수가 혁신적이라고 찬양하는 한국에서 만든 5G나 수소연료전지 자동차, LPG 연료선등 역시 이런 5G는 그전부터 있었던 3G, 4G와 같은 와이파이 통신기술을 성능을 좀더 빠르게 항샹시켜서 만든 것이고 수소연료전지 자동차역시 기존에 있었던 수소자동차와 전기자동차와 기술들을 각각 가져와서 만든것이고 LPG 연료선 역시 증기선 기술에 내연기관에 LPG를 가스를 연료로 사용하는건 그전부터 존재했던 LPG 자동차,LPG 선박등의 기술을 가져와서 만든것이기 때문에(참고로 최초로 LPG 선박은 1964년 네덜란드에서 만들었다.)
이들역시 김교수의 주장대로라면 그전부터 이미 있었던 기술들을 가져와서 만든것이니 전혀 혁신적인게 아닌 기존에 기술들에 약간 변형만 시키고 성능만 항샹시킨것 뿐이다.

애초에 김교수가 주장하는 '혁신적'이라는 기준 자체도 모호한데, 무엇을 혁신적이라 하는지 언급도 없이 본인이 주장하는 극히 일부의 사례만 소개해놓고서는 일본은 혁신이 없는 민족이라고 자기결론을 내리고 끝난다. 이는 김교수가 스스로 주장한 '일본에 대한 환상을 깨기 위한 불가피한 과격함'을 넘어서 그냥 국가차별 및 인종차별적 발언이다. 또한 한국에서 만들었다고 하는 MP3 플레이어 역시 일본을 욕하는 롯본기의 논리대로라면 전혀 혁신적이지 않은게 MP3 플레이어가 수많은 음악들을 안정적으로 다운받을수 있도록 역할을 하는 MP3플레이어의 가장 핵심적인 기술인 MP3 코덱은 독일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사실상 가장 핵심 기술을 남이 만든 기술에서 가져왔기 때문에 기반 기술을 다른 데서 가져왔다고 생각하면 혁신적이지 않다고 볼수도 있는 셈인데다가 심지어 사실 MP3 플레이어 역시 사실 96년도에 이미 미국에서 먼저 미국기업 Audio Highway에서 최초의 MP3 플레이어 Listen Up player를 개발하고 출시했다. 즉 한국에서 만들었다고 하는 MP3 플레이어는 그 이전에 있었던 기술을 가져와서 본격적인 상업화를 한 것으로 롯본기의 일본을 욕하는 논리대로라면 새로운 것을 만든게 아닌 전형적인 이미 남이 만들어놓은 기술,아이디어를 베껴서 장사를 한것에 불과하다.

(애초에 MP3자체도 포멧도 플레이어도 같이 만든 거라면 소니와 필립스의 합작이 있으므로 오히려 이쪽이 혁신적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더군다나 한국이 만들었다는 위 기술들은 대부분 혁신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술 쇼나 다름없다는 평가도 있다. 롤러블 텔레비전의 경우 아직 실험 단계 수준이라 켜는 데만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가격도 성능에 비해 너무나도 터무니 없기 때문에 그런 텔레비전은 누가 쓰겠냐는 의견도 존재하기도 한다.(실제로 롤러블 텔레비전 같은 경우 한해 판매량이 두자리수로 상업화에 제대로 실패했다.) 그렇다면 이것도 혁신이 없는 것이 된다. 그리고 롯본기가 주장하는 한국이 최초로 만들었다는 자동차 자율주행 기술역시 자동차의 자율주행 개념은 이미 1960년대에 벤츠를 중심으로 제안되었고, 1970년대 중후반부터 초보적인 수준의 연구가 시작되었고 일본에서 77년도에 최초의 자율주행차를 개발했다. 93년도에 한국에서 나온 자율주행차는 거기서 좀더 멀리 주행할수 있을 정도로 성능을 업그레이드 시킨 도심자율주행차다. (사실 93년도 한국에서 나온 도로자율주행차도 실제 자율주행 거리가 10km가 조금 넘기 때문에 그 이전 자율주행차들과 마찬가지로 상품성이 없어 제대로 상업화된 자율주행차라고 할수는 없다..)

그밖에도 김교수는 sns와 태블릿 pc를 한국에서 처음만들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sns는 95년, 97년도 미국에서 나온 클래스메이트, 식스디그리즈 닷컴이 먼저고 태블릿 pc같은 경우도 일단 최초의 태블릿 pc는 89년도 미국의 애플에서 개발했고 태블릿 pc중에서 최초로 윈도우를 쓰는 태블릿 pc는 역시 미국에서 99년도에 먼저 개발했다.
그리고 한국의 제조업 구조상 원천기술이 부족해서 상당부분의 전자제품의 원천기술을 일본의 부품,소재 원천기술을 수입해서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라 http://m.naeil.com/m_news_view.php?id_art=453298 (2023년 기준 대일무역적자가 누적금액이 무려 900조로 일본의 2019년 수출무역 보복 이후로도 매년 50조에 달하는 막대한 금액이다.) 이러한 한국이 처음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제품들 역시 상당부분의 미국, 일본의 기술이 들어간 순수 한국의 독자적인 제품들이라고 말할수 없는 상황이다.

5.2. 일본 문화 비난및 그밖의 일본과 일본인들에 대한 악의적인 비난

영상을 통해 일본의 문화는 폭망하고 있다고 비판을 넘어 거의 비난을 하는데, https://www.youtube.com/watch?v=oH5bYAiBxj0일본 실사 영화, 일본 음악의 아이돌 분야 등 일부 분야에서 나타난 현상을 문화 전반으로 확대해석했다는 점이 문제다. 서브컬처에 해당하는 일본의 게임은 닌텐도[5], 소니 등이 버티고 있는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이는 분야였고, 일본의 애니메이션도 일부 작품에 있어 작품성에 대한 비판은 존재하더라도, 꾸준히 명작이라는 평가를 듣는 작품들이 등장하고 있으며[6] 수출 실적을 비롯한 경제적 이윤 창출 효과가 높은 편이다.

그리고 일본 문학계는 1945년 이후에만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2명 배출해냈으며, 현재에도 무라카미 하루키를 비롯해 몇몇 노벨 문학상 수상 유력 후보로 꼽히는 일본인 작가들이 존재할 정도로 일본은 문학계에서 아시아 최고의 강국으로 꼽힌다. 이외에도 NHK 등으로 대표되는 언론계 또한 일본 문화의 특별한 강점으로 꼽히며, 2018~2019 세계 주요 연구 기관들의 소프트파워 역량 조사에서 일본은 3~8위 사이의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상의 경우, 일본인만 8명[7]이 수상하여 현재 미국과 공동 1위를 달리고 있는 등, 건축 예술을 통한 문화의 접목 역시 일본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런 긍정적 지표에 대해서는 한 마디 언급 없이 본인의 주관적 경험이나 일본 문화계의 부정적 면모들만 추려 비판하는 점에서 한계가 명확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일본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근현대 문학인 나츠메 소세키를 언급하며 일본인들이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나츠메 소세키는 사실 표절로 명성을 쌓은 작가라며 폄하하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x-O4-tYjxM8 실제로 나츠메 소세키의 데뷔작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일본에서 표절 의혹을 제기하는 소설이기는 하다. 그러나 나츠메 소세키가 이 한 가지만 낸 것도 아니고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포함하여 중장편, 단편포함해서 35편이나 되는 문학 작품을 낸 작가이며 표절의혹이 일어난 작품외 34편은 표절 의혹조차 없는 작품들인데 이는 단 한 가지 사례만으로 너무 서두른 비판을 한 것이다. (거기다가 표절이라고 정의를 내릴 것이라면
비슷하다고 추측되는 작품하고 그 작품의 세세한 내용까지 비교를 해서 말해야지 대략 공통됨 점이 몇개 정도 겹친다고 표절이라고 정의를 내리는 것은 성급한 것으로 그런 식이면 한국의 오징어 게임 역시 그 이전 데스 작품들로부터 표절 혐의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논리라면 한국의 작가의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도 황석영의 소설 아우를 위하여를 표절했라는 의혹이 있는데 그렇다면 이문열 작가도 표절로 유명해진 작가라고 비난이 가능하다.

롯본기는 일본도가 허구한날 쉽게 부러지는 허접한 칼이라고 주장을 하기도 했는데 https://www.youtube.com/watch?v=4VaMnRM8u5E 사실 롯본기가 예시로 든 몇몇 예시들도 면밀히 살펴보면 자신에게 편파적인 사진들만 제시했는데 그 예시들에 대해 반박하면 일단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일본도로 철모를 쓴 미군을 공격하다가 철모의 어느 정도 깊이의 자국만 내고 철모를 완전히 뚫지 못해서 오히려 일본도로 공격한 일본군이 미군의 총에 맞아서 죽은 사건이 있지만 사실 애초에 철모 자체가 2차 대전당시 적의 총탄이나 포탄 파편들도 어느정도 방어가 가능하게끔 만든 방어구인데다가 당시 미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최고수준의 철광기술을 가진 국가기 때문에 칼로 그런 당시 미국의 철모를 완전히 뚫지 못했다고 해서 칼이 품질이 쓰레기라고 결코 말할수 없고 그리고 이전부터 한국 인터넷 사이트에서 퍼져있던 일본도로 콜라 페트병을 쳤는데 일본도가 휘어졌다는 영상역시 애초에 그 영상에 나온 일본도는 진짜 일본도도 아닌 고무로 만든 모조품 가검인데다가 실제로 일본도로 실험 결과 페트병이 베여지는걸로 나왔다.(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UddTKZNII68 ) 애초에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고체가 차라리 유리처럼 쉽게 부러질지언정 고무줄 처럼 휘어지는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데가 애초에 저런 식으로 칼이 쉽게 고무줄처럼 휘어졌다면 칼을 만들때 쇳물에 녹여서 망치로 두드려서 칼 모양자체를 만들지를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흔히 인터넷에도 일본도가 쉽게 부러져서 사무라이들이 칼을 여러개 차고 다녔다는니, 일본도가 쉽게 부러져서 당시 일본에는 칼을 부딪히는 기술 자체가 없다니 대나무를 베다가 쉽게 부러진다르니, 정으로 쪼아서 조각할수 있을 정도로 검신이 무리다는 등 일본도가 다른 동시대의 칼들에 비해서도 성능이 안좋다는 식의 소문들이 널리 퍼졌는데 일단 일본도가 대나무도 쉽게 베어버리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반박으로는 일단 칼은 기본적으로 중량 1~2kg에 두께 3~6mm 전후인 얇은 철판이다.정도 이상의 강한 충격을 받으면 당연히 부러지거나 휘어지며, 제작자나 사용자의 '실수'가 있다면 더 작은 충격에도 그렇게 될 수 있다. 비단 일본도 뿐만 아니라, 다른 장도들도 그렇고 풀 플레이트 아머를 입은 중기병들의 갑주전투에서 사용되던 대갑주 롱소드 에스터크 역시 예외는 아니다. 칼날을 붙잡히면 휘어져서 못쓰게 될 위험이 있었고, 기병들은 전투 도중 검이 망가질 때를 대비해야 했고 일본도가 실전이나 베기 시험 도중 쉽게 망가졌다는 증언의 출처는 대부분 중일전쟁 시기 일본육군 군도수리반의 기술자였던 나루세 칸지의 <싸우는 일본도:戦ふ日本刀>와 <실전도론:実戦刀譚>이다. 하지만 나루세 칸지의 저서에서는 같은 전통 일본도라도 고도(古刀)와 신도(新刀), 신신도(新々刀)에 대한 평가가 다르며, '에도시대 망나니의 시참용 검'과 '군진에 필요한 탄력있고 강한 검'을 구분하고 있다. 에도 이후부터 내려진 전쟁금지령 때문에 전체적으로 성능이 떨어진다고 평가받은 신도(新刀) 중에도 한 번의 전투에서 휘어져 못쓰게 된 검, 날이 깨졌지만 계속 사용할 수는 있었던 검, 전투에 적합한 일부 좋은 검 등 다양한 사례가 존재한다. 약하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단단하고, 무르더라도 충분히 사용할 수는 있다는 것이다. 중일전쟁을 비롯한 근대 전쟁사에 등장한 일본 군도 역시 휘어지고 부러지는 등 성능 자체는 좋지 못했으나 철강 기술의 개편으로 제값을 한 경우가 많다.

그리고 실제로 실험 영상에서 일본도로 대나무나 두개골을 쉽게 베어버리는 실험 영상들도 많기 때문에 일본도의 거의 대부분이 대나무도 쉽게 베어버리지 못한다는 말 자체도 근거가 없다. 그리고 정으로 쪼아서 조각할 수 있을 정도로 검신이 무르다는 말에 대한 반박도 애초에 이는 강도보다는 경도의 문제로, 무게, 가공 등을 고려한 전투용 도검의 이상적인 경도는 HRC 50전후다. 잘 만든 칼이라도 단단한 못으로 긁고 쪼면 파인다. 다만 세밀한 조각이 가능하다는 것과 못이나 정으로 찍어 파는 것과는 아주 다르다. 물론, 근대 이전의 도검은 거의 대부분 해당사항이 있다. 당장 현대 기술로 제작된 도검만 봐도 스테인리스 재질의 군용 나이프가 HRC 60 정도이다. 그리고 일본도가 강도가 떨어져서 일본검술에는 검을 부딪히는 기술이 없었다는 말에 대한 반박도 일본 검술에도 칼을 부딪히는 신도무념류,카토리신도류 같은 검술이 잘만 있다.그리고 일본 무사들이 검을 여러개 갖고 다녔던 것도 실제로 애초에 칼도 상황에 따라 쓰이는 용도가 다 다르기 때문으로(좁은 협소한 골목에서 서로 가까이 바짝 붙어서 싸울때는 순신간에 상대방한테 베일수가 있어서 최대한 빨리 칼을 휘둘러야 하니 빨리 칼을 휘두룰수가 있는 짧은 탄도(단도)를 사용했고 어느정도 거리를 두고 서로 대치하며 싸울때는 상대방이 미리 가까이 오기전에 멀릴서도 휘두를수가 있는 긴 장검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당시 유럽도 상황에 따라서 가장 알맞은 칼을 쓰기 위해서 여러 종류의 칼을 차고 다녔다 https://www.youtube.com/watch?v=whSEcvOxEGM

그리고 정작 조선왕조 실록을 포함한 조선의 기록에서도 당시 일본도를 동아시아 최강의 칼이라고 호평하고 기록들만(당시 청나라 같은 경우도 조선의 조공품으로 일본에서 만든 일본도를 선호해서 앞으로 일본도로만 바치라고 명령할 정도고 조선이 부득이한 사정으로 일본으로부터 일본에서 만든 일본도를 바치지 못했을때는 품질이 떨어진 조선의 환도를 대신해서 바치니 송구스럽다고 사죄까지 할 정도로 청나라에서조차 일본도를 동아시아 칼중에서 성능면에서 일본도를 가장 높이 평가하고 선호하였다.) 가득한데다가 일본의 무사들이 칼을 여러개씩 차고 다닌 이유도 상황에 따라서 쓰는 칼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즉 칼도 용도에 따라 여러 종류의 칼들이 있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가장 용도에 알맞은 칼을 쓰기 위해서 항상 짧은 칼과, 긴 장검을 길이가 서로 다른 칼들을 차고 다니는 것이다.(그건 중세시대당시 유럽의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협소한 장소에서 서로 가까이에 밀착해서 싸울때는 최대한 상대를 빨리 공격하는게 중요하니 휘두르기 쉬운 길이가 짧은 칼인 와키자시를 쓰고 탁트인 곳에서 서로 어느정도 거리를 두고 싸울때는 긴 사거리를 이용해서 상대가 가까이 다가오지 전에 멀리서 먼저 상대를 베는게 중요하니 길이가 긴칼인 노다치를 차고 다닌다. 당시 조선측 기록에서도 일본의 무사들이 상황에 따라서 가장 용도에 알맞은 칼을 쓰기 위해서 길이가 서로 다른 두종류의 칼을 차고 다닌다고 나온다.( https://namu.wiki/w/%EC%9D%BC%EB%B3%B8%EB%8F%84 자세한건 이 항목참조. 이 항목에 일본도와 검술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나온다.) 조선같은 경우는 무신들이 한자루의 칼만 차고 다니긴 했지만 그건 조선은 일본처럼 칼을 전문적으로 다루고 중요시하는 국가가 아니다보니 장수들이 지희용으로 칼 한주식만 차고다닌 것이다.


그리고 일본도가 유튜버나 이런 실험 영상들에서도 서양의 검에 비해서 강도면에서 밀리긴 하지만 애초에 당시 서양은 플레이트 아머같은 강철 갑옷을 입었던 강철이 일상이였던 동네여서 그런 강철 갑옷에도 타격을 주기 위해서 칼도 최대한 강도 면에서만 몰빵해서 만든 곳이기 때문에 당시 그런식의 강철을 사용하는게 일반적이지 않았던 동아시아랑 똑같이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

5.3. 일본 식문화 폄하


본인의 유튜브에서 고급지다는 이미지를 지닌 일본 요리가 독창적인 게 뭐가 있냐며 일본 요리에 대한 비난만 나열했는데 예를 들어 일본의 명점이라 소문난 스키바야시 지로의 가게에 2번 갔고 메뉴판과 오노 지로와의 사진을 보여주며 인증하며 먹어봤는데 본인의 주관적인 입맛임에도 불구하고 밥이 시큼하다 것부터 시작해서 초밥이란 건 단순하게 좋은 생선, 좋은 쌀, 좋은 간장, 좋은 와사비, 쓴 밥 위에 날것을 얹은 것 뿐이라며 폄하하고 마지막에 바르는 마법의 간장 소스를 바르고 일본인들이 그걸 먹으며 호들갑을 떠는데 해당 소스는 자기가 미각이 섬세하다 보니 소스에 미원이 듬뿍 들어갔다느니 초밥을 맹비난했는데 https://www.youtube.com/watch?v=5_AR8eh9Cfk, https://www.youtube.com/watch?v=5UPX4bePASg이는 초밥에 대한 무지이다.


애당초 모든 요리는 좋은 재료를 써서 정말 요리를 절망적으로 못하는 양반이 다루지 않는 이상 어류나 육류만 해도 그냥 소금간 후추간만으로도 맛나는것은 물론이며 초밥도 에도마에 스시, 니기리 스시, 하코스시 등 여러가지 조리법이 있다. 간단한 예로 장어에 바르는 달콤짭짤한 양념 쯔메 같은 경우에는 장어 삶은 물을 보관했다가 이를 간장과 여러 양념을 섞은 뒤 몇 시간 동안 불 앞에서 해당 소스가 타지 않게 저어야 하는 정성이 들어가는 조리이며 게다가 최근 오마카세 전문 초밥 요리사들이 마지막에 소스를 발라주는 건 가게마다 다르지만 미원이 아니라 미원의 주요 성분이 많이 함유된 다시마를 이용하여 간장에 감칠맛을 더하는 집이 있고 보통은 일반 간장이 대부분이다. 이는 손님들이 젓가락으로 초밥을 집다가 간장에 아예 빠뜨리거나 손으로 집어먹을 때 재료가 아닌 밥에 간장을 찍어서 형태가 무너지는 것을 막고 간장을 과도하게 찍어 본 맛을 못 느끼는 것을 막기 위해 초밥 요리사들이 적정량의 간장을 발라주는 행위이지 마법의 소스가 아니다. 최근 떠오르는 초밥 컨텐츠 유튜버인 쉐프 코우지의 영상을 보면 김교수의 주장이 얼마나 허무맹랑한지 알 수 있다. 게다가 초밥의 밥알 개수 정확하게 쥐는 게 10년, 15년 노가다하면 익혀지는 것인데 이게 뭐가 대단하냐고 비판하는데, 그 10년, 15년이 누구 개집 이름도 아니고 그 정도로 오랫동안 만든 요리에 그 정도로 파고들었다는 것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라 칭송받아야 마땅하지 하찮다고 비난받을 사항이 아니다.

애초에 위의 주장 그대로 적용하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요리 중 하나인 비빔밥도 별다른 조리법이 필요없이 대충 데친 나물들과 계란 프라이를 얹어 섞어 먹으면 끝인 별거 아닌 요리로 폄하할 수 있다. 애초에 비빔밥만이 아니라 한국이든 일본이든 다른 나라든간에 외국산을 국내산이라 속이거나 질낮은 식재료를 쓰는 곳도 보이는 상황에서 좋은 식재료를 쓴다는 것 자체가 식당의 신뢰성을 보증해주는 지표이고 조리에 대해서는 위에 상술해놨듯 말할 필요도 없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서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 김교수의 지적대로면 일본만이 아니라 세계 대부분의 요리인들이 비난받는 꼴이다.

사케도 우리나라가 가르쳐주고 일본인에게 '그냥 삭혀'라고 말한 게 사케라는 이름이 되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하고[12] 낫또도 요리가 아니라 식재료라 칭하고 일본의 야채절임(츠케모노) 중 배추절임도 우리나라가 가르쳐줬으며 오니기리도 쌀밥과 소금만 있으면 되고 야키토리도 그냥 꼬챙이에 고기 구워주는 게 뭐가 독창적이고 멋있어 보이냐며 폄하하였다.

이 또한 허무맹랑한 소리가 대부분인데, 우리나라의 김치도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서 고추를 수입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냥 배추에 소금을 절이고 후추를 넣어 만드는 백김치가 기본적이었고 현재 주로 취급되는 빨간 김치는 생각도 못하던 상황이었다.(그전에 한국에도 고추가 있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건 일종의 고추냉이고 지금과 같은 빨간고추는 임진왜란때 일본을 통해서 전파되었다.)
그리고 일본 야채절임은 상술한 방식 외에도 '겨'라는 일본식 누룩에 재우는 방식이 있으며 오니기리(주먹밥) 또한 밥에 소금만 쳐서 먹는 것도 있기는 하지만 예전부터 안에 장아찌를 넣거나 양념을 더하는 등 여러 바리에이션이 존재하는 전통음식이다. 야키토리 또한 닭껍질, 닭가슴살 등 여러 부위에 소금, 양념 등 여러 소스등 다양한 변화가 생겼고 최근에는 고급화가 진행되어 고급 닭으로 조리한 야키토리를 취급하는 요리집도 존재한다.

우동도 어느 한 일본인이 '칼국수가 한반도에 넘어온 이후 생긴 음식이다.'라고 주장한 개인의 견해를 바탕으로 '우동은 한국이 일본에게 전수해준 음식이다!'라는 이상한 주장을 펼친다. 애초에 이 논리대로면 붉은 김치는 일본이 우리나라에게 고추를 유통시켜준 덕분에 만들 수 있어졌으니 붉은 김치의 원산지는 일본이라고 주장하는 셈이다.그리고 또한 김역시 한국에서 일본으로 전해졌다고 하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록이나 근거가 없고 일본에서 최초로 김을 만들어서 먹기 시작한건 야마토 시대 말기로 몬무 덴노 재임기인 702년 2월 6일에 공표된 다이호율령에 김(海苔)이 조세의 대상임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 김과 관련된 가장 오래된 기록이며 713년에 편찬된 히타치국 풍토기(常陸国風土記)에서도 그 지방이 김으로 유명하다는 대목이 등장한다. 그리고 롯본기는 일본이 김을 주로 구워먹지 않다고 주로 생으로 먹는다고 미개하다고 비하하지만 사실 생으로 먹든 구워먹든 그건 본인의 취향으로 그걸 가지고 우월을 정하는건 옳지 않다. 그리고 김을 굳이 구워먹든 그냥 먹든 간에 생김으로 먹어도 노리마키 처럼 다른 재료들을 이용해서 먹으면 더 맛있게 먹을수도 있다.

또한 일본의 대중적인 요리 중 하나인 타코야끼 또한 덴마크의 에이블스키버라는 요리를 베꼈을 뿐이며 에이블스키버의 역사가 더 기므로 에이블스키버가 대단한 요리이며 타코야끼는 그냥 하찮은 모방품에 불과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데, 이 말대로면 한국인 중 안 먹어본 사람이 드물 김밥도 일본의 노리마키에서 유래된 음식이므로 '노리마키보다 역사가 짧은 하찮은 모방품'이 되어버리고 김밥을 만들거나 먹은 사람들 모두 '일본요리의 짝퉁이나 먹거나 만드는 사람들'로 격하시키는 꼴이 된다. 애초에 옛말에서 '발명은 모방에서 나온다.'라고 할 정도로 무언가를 만드는 게 무에서 유를 발굴하는 경우보다 기존에 있는 걸 변화시키면서 발전시켜나가는 것인데, 김교수의 이런 발언은 이걸 전부 무시하는 것이다.그리고 그런 식으로 일본 요리를 비하하는 김교수는 정작 한국의 회오리 감자나,감자 핫도그, 소세지 빵, 콘치즈 등 이런 것들은 또 대단한 음식인마냥 찬양하는데 사실 김교수의 주장대로 따지면 회오리 감자역시 서양의 감자칩을 베낀 것에 불과하고 감자핫도그 역시 단순히 미국의 스테프 핫도그에 서양요리인 튀긴 감자를 추가한 것으로 미국의 핫도그를 베낀 것에 불과하며 소세지 빵 역시 그전부터 있었던 서양의 가로로 길쭉한 핫도그를 베낀 것에 불과하며 콘치즈는 멕시코의 엘로테를 베낀것에 불과하며 (애초에 구운 옥수수에 다가 치즈를 같이 넣어서 먹는 방식은 멕시코의 엘로테가 먼저다. 다만 멕시코의 엘로테는 구운 치즈를 같이 섞어서 먹는게 아니가 구운 옥수수 위에 치즈가루를 위에 올려서 먹는다는 차이점 정도가 있다.) 양념치킨 역시 서양음식인 치킨에다가 그저 위에 물엿과 고추장 양념을 부어서 먹는것에 불과하다.그리고 김교수가 한국요리라면 말하는 짜장면 역시 사실 한국내에서 살고 있는 중국계 화교들이 한국에서 현지화해서 발명한 음식이다.

6. 여담



[1] 일본식 직위로는 준교수 [2] 스스로도 자신을 '반일이 아닌 혐일'이라고 못박았다. [3] 이들 중에서 김교수처럼 일본에서 거주하다가 일본 사회의 문제점에 환멸을 느끼고 한국으로 귀국한 사람들이 많다. [4] 정당법 제22조 제2항에 따라 외국인은 당원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