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5-09 10:11:34

레드 갈랜드

<colbgcolor=#B82647><colcolor=#fff> 레드 갈랜드
Red Garland
파일:red garland playing.jpg
본명 윌리엄 맥킨리 "레드" 갈랜드 주니어
William McKinley "Red" Garland Jr.
출생 1923년 5월 13일
텍사스주 댈러스
사망 1984년 4월 23일 (향년 60세)
텍사스주 댈러스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직업 피아니스트
악기 피아노
장르 재즈, 하드밥
활동 1940년대 ~ 1980년대
레이블 프레스티지

1. 개요2. 생애
2.1. 유년기2.2. 마일스 데이비스와의 만남2.3. 마일스 밴드 이후, 레드 갈랜드 트리오2.4. 말년과 죽음
3. 연주 스타일과 영향4. 레드 갈랜드에 대한 말,말,말5. 여담

[clearfix]

1. 개요

Almost like being in love, 레드 갈란드 트리오 1957년.
미국의 재즈 피아니스트로, 그 유명한 마일스 데이비스 1기 퀸텟의 피아니스트이자 50년대 최고의 리듬섹션[1]을 이끌었던 초기 하드밥 피아노의 거장.

2. 생애

2.1. 유년기

갈랜드는 1923년 댈러스에서 태어났다. 어렸을때는 빅밴드 음악을 들으며 클라리넷 알토 색소폰[2]을 배웠다고 하는데, 피아노는 1941년에서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19살이라는, 남들보다 다소 늦은 나이에 시작했지만 관악기를 했던 경험이 어디 안 갔는지 시작한지 5년도 채 되기 전에[3] Hot Lips Page라는 트럼펫터의 밴드[4]에서 연주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다.

손이 중요한 피아니스트로썬 다소 의외인 사실로, 갈랜드는 1940년 초반엔 복서로도 활동하고 있었는데 단순히 취미 수준이 아니라 총 35번의 프로 경기를 웰터급으로 치렀으며 이 중에선 무려 슈거 레이 로빈슨[5]과의 경기도 있었다.

길지 않은 복서로의 커리어를 보낸 갈랜드는 1944년에 군대에서 냇 킹 콜의 연주를 들으며 완전히 관심이 피아노로 기울어 커리어를 완전히 피아니스트로 전환한다. 뉴욕에 머물며 작은 클럽에서 연주하던 레드 갈랜드는 아트 블래키 빌리 엑스타인의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1946년부턴 빌리 엑스타인 오케스트라에서 연주를 하며 어느 정도 주목받는 연주자가 된다. 1946년에는 버드 파웰을 직접 만나 그의 집에서 간단하게 팁들을 전수받기도 했다는 듯.[6]

1946년에서 1955년까지 뉴욕 필라델피아에서 열심히 활동하던 그는 당대의 본좌급 뮤지션들인 찰리 파커, 콜맨 호킨스, 레스터 영 등의 반주자로 쓰일 정도로 인정받는 연주자가 되었는데, 그래도 이때까지만 해도 아직은 그렇게 특별히 두드러지는 급의 연주자는 아니었다.
I'll walk alone, 찰리 파커의 스토리빌 라이브 1953년. 레드 갈랜드가 피아노를 연주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익숙한 레드 갈랜드의 '주로 고음역대를 사용하는', '블락 코드를 쓰는' 솔로나 컴핑과는 상당히 다른 스타일로, 특별한 개성이랄게 없는 흔한 버드 파웰의 아류들 중 하나였다.)

2.2. 마일스 데이비스와의 만남

파일:Red and Miles.png
(피아노를 치는 갈랜드와 마일스.)

갈랜드의 커리어에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킨 것은 역시 마일스 데이비스와의 만남이었다. 1955년, 메이저급 음반사인 콜럼비아에서 당시 급부상중이던 마일스 데이비스를 스카웃하며 전속 밴드를 가져야한다는 조건을 걸자, 마일스는 테너 색소폰의 소니 롤린스, 베이스의 폴 챔버스, 드럼의 필리 조 존스와 함께 피아노로 갈랜드를 택한다. 사실 마일스는 원래 피아노로 아마드 자말을 데리고 오고 싶어했으나, 자말 본인이 고사하였고 마침 주목받는 피아니스트인 갈랜드가 복서로 활동했다는 특이한 경력이 있는것을 보고 마찬가지로 복싱 매니아였던 마일스가 관심을 갖게 된 것.열심히 살다보면 다 이렇게 기묘한 방식으로 도움이 되나보다 이렇게 모인 멤버들 중 자신이 리더를 하고 싶었던 소니 롤린스가 빠지자 그 자리는 아직은 꼬꼬마였던 존 콜트레인으로 채워지게 되는데[7], 이것이 바로 역사적인 마일스 데이비스 1기 퀸텟의 탄생이었다.

이 퀸텟은 결성되자마자 부랴부랴 많은 녹음을 했어야했는데, 왜냐면 콜럼비아와 계약하기 전에 마일스와 계약이 되어 있던 프레스티지와의 이중 계약 문제를 피하기 위해선 프레스티지에 음반을 무려 5장이나 만들어 줘야 했던 것. 1955년 10월, 이들은 이듬해에 콜럼비아를 통해 발매할 "'Round About Midnight"에 수록될 곡들을 녹음하고, 11월에는 프레스티지에서 낼 "Miles"에 들어갈 곡들을 녹음, 다음 해인 1956년 5월 5일과 10월 26일 이틀 동안에 ~'in시리즈로 불리는 "스티밍(Steamin')", "릴랙싱(Relaxin')", "워킹(Workin')", "쿠킹("Cookin')" 네 개의 음반에 수록될 곡들을 전부 녹음해버린다.

굉장히 날로 먹은것 같은 음반들처럼 보이지만 세간의 평가는 이 모든 음반들이 하드밥의 정석을 보여준 최상의 명연들. 이 음반들에서 레드 갈랜드는 기존의 자신 연주와는 스타일을 상당히 바꾸어서 연주했는데, 그 이유는 원래 마일스가 영입하려고 했던 피아니스트 아마드 자말을 흉내내도록 갈랜드에게 지시했기 때문이다. 갈랜드는 마일스가 원했던 아마드 자말의 가볍고 세련된 터치를 가져와 응용하여 오늘날 우리에게도 레드 갈랜드하면 딱 생각나는 본인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냈던 것.

공간감을 주는 넓은 음역대를 사용하는 컴핑이나 고음역대에서 멜로디컬하고 듣기 편하게 이어지는 솔로를 아마드 자말(그리고 버드 파웰)에게서 가져왔다면, 갈랜드는 여기에 이후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가 될 블락 코드(Block Chords)[8]를 발명해서 후대의 피아니스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마일스 역시 이 사운드를 퍽이나 좋아했는지, "Relaxin'"앨범에 수록된 'You're me everything' 연주에서 갈랜드가 이쁘장한 멜로디로 인트로를 깔려고 하자 바로 휘파람을 불고 제지시키며 "블락 코드 써라 레드야... 알았지? 블락 코드..."라고 걸걸한 목소리로 아이디어를 제시한다[9].(아래 영상 20초 부터)
You're my everything,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

이 블락 코드는 1년 전에 녹음한 "'Round About Midnight"에서도 등장했는데, 느린 곡의 인트로로 쓰이는것 외에도 'Bye bye blackbird'같은 미디엄 템포 스윙에서도 솔로 시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였다. 한편 이 코드(코드를 짚는 방식이니, 정확히는 보이싱)이 발명된 계기도 참 어처구니 없는데, 피아노를 연습하다가 잘 안되던 갈랜드가 피아노를 꽝 하고 내리쳤는데 그게 듣기 좋았더라 하는 것이다. 왼손에는 근음을 제외한 가이드톤+텐션노트들을, 오른손엔 옥타브에 5도 또는 4도를 추가한 이 보이싱으로 갈랜드는 후대의 많은 피아니스트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당대의 일부 평론가들은 갈랜드를 '칵테일 피아니스트'[10]라고 폄하했으나 마일스는 갈랜드가 자신이 원했던 피아노를 정확히 연주한다고 생각하며 평론가들의 말에 신경쓰지 않았다. 실제로 칵테일 피아니스트라고 평가되기에는 갈랜드는 억울한 측면이 있는게, Cookin' 앨범의 'Airegin'이나 Relaxin' 앨범의 'Oleo'등 엄청난 템포의 비밥곡들에서도 갈랜드는 정확한 템포로 살벌한 연주를 들려준다. 또, 50년대 중반의 갈랜드와 폴 챔버스, 필리 조 존스는 당대 최강의 리듬섹션으로 명성이 아주 높았다. 일례로, 그 아트 페퍼가 커리어의 전환점이 된 앨범 "Art Pepper Meets the Rhythm Section"(1957)[11]도 녹음할때 아트 페퍼의 부인이 레드 갈랜드, 폴 챔버스, 필리 조 존스가 온다고 하면 너무 겁낼까봐 녹음 직전까지 말을 안해줬다는 비화가 있을 정도다.

또 갈랜드에 대해 흔히 간과하는 점은 그의 찰진 인트로 만드는 능력이다. 앞서 언급한 'Bye bye blackbird', 'You're my everything'은 물론, 마일스의 버전으로 유명한 'It never entered my mind', 'My funny valentine' 연주는 모두 이 당시 갈랜드가 이틀에 걸친 세션에서 연주한 것으로, 이들 인트로들은 오늘날에도 자주 인용되는 인트로들이다.
It never entered my mind,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

마일스는 밴드 멤버들의 부업(?)에 관대한 편이었는데, 이에 갈랜드, 폴 챔버스, 필리 조 존스는 미국 동서부를 누비며 관 주자들의 명반들을 찍어주는 최고의 리듬섹션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앞서 언급한 아트 페퍼의 최고작 중 하나인 "Art Pepper Meets the Rhythm Section"도 있지만, 소니 롤린스의 "Tenor Madness"(1956)[12]도 있다. 이 외에도 드럼이 필리 조 존스가 아니었지만 역시 프레스티지 소속이었던 재키 맥린이나 커티스 풀러와도 함께 음반을 내기도 했다.이러나 저러나 베이스는 늘 폴 챔버스 물론, 레드 갈랜드 본인의 트리오 활동도 이 시기부터 시작했다.

2.3. 마일스 밴드 이후, 레드 갈랜드 트리오

파일:red garland icecream.png

연주자로써는 크게 흠잡을데가 없었지만, 오히려 마일스의 심기를 건드린 것은 지각 문제였다. 상습적으로 지각하며 때로는 너무 늦게 와서 아예 공연에서 연주를 못하는 일들이 반복되자[13], 제대로 빡친 마일스는 당시 가장 잘 나가던 피아니스트 윈튼 켈리를 불러와 합주를 하고 지각한 갈랜드가 들어오자 앞으로는 윈튼 켈리와 함께 할 것이라 통보하고 갈랜드를 쫓아내버린다.

마일스 밴드 이후, 갈랜드는 트리오를 꾸려 프레스티지에서 리더로써 음반들을 꾸준히 내게 되는데 멤버는 다소 유동적인 편이었다. 베이스는 주로 폴 챔버스, 조지 조이너 아니면 더그 왓킨스가 맡았고, 드럼은 초기엔 아트 테일러가 함께 했으나 59년도부턴 찰스 라이트 찰리 퍼십이 맡았다.
All mornin' long, 레드 갈랜드 퀸텟 1957년.
갈랜드가 1957년부터 리더로 낸 음반들은 모두 나름대로의 다양한 실험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편성도 다양해 "All Mornin' Long"(1957)에는 존 콜트레인 도날드 버드를 포함한 퀸텟 구성으로 2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작 블루스곡을 연주하기도 하고[14], 무즈빌 레이블에서 발매한 "Red Alone"(1960), "Alone with the blues"(1960)에서는 독주 피아노로만 연주하기도 했다. 물론 트리오 구성으로도 많은 연주를 했고, 라이브 음반들도 남겼다.

그러나 1962년의 "When there are grey skies"를 마지막으로, 시대가 락앤롤과 전자음악을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하자 갈랜드는 1965년에는 연주의 빈도를 완전히 낮추고 잠정적으로 은퇴한다.

2.4. 말년과 죽음

Autumn leaves, 레드 갈랜드 퀸텟 1971년.
연주를 그만두고 잠적한 레드 갈랜드는 1970년대에는 연로하신 그의 어머니를 돌보러 고향 텍사스로 내려간다.

이후 1977년에는 "Crossings"라는 음반을 과거의 동료 필리 조 존스와 녹음하기도 했다.(이때 베이시스트는 이들 입장에선 까마득한 후배였겠지만 당시 이미 거장의 반열에 들었던 1타 베이시스트 론 카터.)

후기의 갈랜드의 연주는 마일스 퀸텟에서의 연주와 비교하면 확실히 좀 더 모던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당시의 첨단 기법이었던 맥코이 타이너식의 아웃으로 가는 펜타토닉 연주라던가 전자 소리를 사용하거나 한 것은 아니었고 라인이 과거보다 덜 정형적이었다. 잠정적 은퇴에서 복귀한 갈랜드는 1984년 4월 23일에 심장마비로 사망할때까지 음악인으로 활동을 지속했다. 향년 60세.

그는 아내 Lillie Garland 사이에 1남 1녀를 뒀고 7명의 손자/손녀가 있었다.

3. 연주 스타일과 영향

갈랜드는 시작은 다른 동시대의 피아니스트들이 모두 그랬듯 냇 킹 콜[15] 버드 파웰의 아류였으나,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에서 활동하며 마일스의 요구사항에 맞춰가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스타일이 생성된 것이 하드밥이 어느 정도 정돈되어 최상의 연주가 나오던 1950년대 후반의 마일스 데이비스 1기 퀸텟이었기에, 그의 이 시기 연주는 대표적인 그의 스타일로 여겨지며 후대의 연주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

갈랜드는 컴핑에서 음 선택은 아마드 자말 식의 넓은 음역대에 걸친 보이싱을, 리듬에서는 본인 특유의 '반 박 당긴' 리듬을 즐겨 썼는데, 이것을 통상 레드 갈랜드식 컴핑리듬이라고 부르며 이렇게 이후 나올 코드를 반박자 앞서 연주하게 되면 보다 강하게 스윙하는 효과를 줄 수 있다고 한다.(아래 이미지)
파일:red garland comping.png
재즈 피아노 입문자들에게는 오늘날까지도 찰스턴 리듬과 함께 반드시 연습해야하는 리듬으로 꼽힌다.

솔로에선 라인 측면에선 버드 파웰 식의(정확히는 찰리 파커의 영향을 받은 버드 파웰의) 아르페지오, 스케일 및 크로매틱 어프로치, 꾸밈음을 주로 사용하여 코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멜로디컬하고 아름다운 라인을 연주했다. 때문에 뭘 해도 아름답고 듣기도 좋았으나 문제는 서로 다소 비슷하게 들리고 어느정도 정형화 된 패턴들이 반복되었다는 것.

예를 들면, 아래는 "Red Garland at the Prelude"(1959)의 Perdido 솔로 17~24마디 연주 채보 악보인데, 똑같은 어프로치 기법(어프로치 대상 노트 기준 단3도 위->장2도 위->장2도 아래->반음 아래 후 어프로치)가 5개 마디에서 4번이나 반복된다. 같은 기법은 동시기 갈랜드의 연주에서 반복적으로 반복된다. 3-5-7-9도를 이용한 아르페지오 등과 같이 굉장히 애용하던 패턴.
파일:perdido red garland.png
사실 이는 매우 짧은 기간 동안에 수많은 곡들의 녹음을 끝마쳐야 했던 상황이라던가 당시 기술의 한계로 인한 정보의 제한, 비밥 언어에 대한 연구가 지금 시점에 비하면 진행이 덜 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갈랜드는 오히려 창시자격에 속하는 인물이기에 비난할 거리는 아니다.

솔로의 음역대 측면에선 유독 동시대의 하드밥 피아노의 명수들(* 윈튼 켈리, 토미 플래너건, 소니 클라크, 행크 존스, 바비 티몬스등)에 비해 고음역대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한데, 이는 앞서 언급했든 마일스 데이비스가 아마드 자말의 '밝고 세련된' 느낌을 흉내내기를 원했기 때문에 나온 것으로 마일스의 영향이 없었던 시기(찰리 파커와 활동하던 때나 이후에 독립해서 나왔을때, 후기 등)에는 이런 경향이 약하거나 없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가 발명한 것으로 알려진 스타일의 블락 코드는 락드 핸즈(Locked Hands)라고도 불리는데, 왼손은 근음을 제외하고 가이드 톤+텐션 노트 2개에 오른손은 옥타브 간격은 유지한 상태로 4도 또는 5도만 추가한 상태로 손 모양을 고정(Lock)한 상태에서 좌우로 움직이며 연주하는 모습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4. 레드 갈랜드에 대한 말,말,말

Listen to Red Garland if you want to understand Bill Evans.

빌 에반스를 이해하고 싶거든 레드 갈랜드를 들어라.
재키 바이어드[16] #
Red Garland has the sublime virtue of swing and a solid, deep groove.

레드 갈랜드는 스윙의 숭고한 아름다움과 흔들리지 않는 깊은 그루브를 가진 연주자.
랄프 글리슨(평론가) #
Mr.Garland's style was understated and harmonically sophisticated; he would delineate a melody, then shade it with distinctively voiced block chords and hints of counterpoint. "I like to play the way a singer would sing a song," he once explained.

갈랜드의 스타일은 절제적이고 화성적으로 정교했습니다. 그는 멜로디를 드러내면서도 대위법적 암시를 가진 블락 코드 보이싱으로 그걸 가렸죠. "저는 가수가 노래를 부르듯 연주하고 싶어요"라고 그는 한번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뉴욕 타임즈, 레드 갈랜드의 부고에서 #

5. 여담

파일:red garland sunglasses.jpg
1950년대 중반, 브루클린의 한 클럽에서 주말 공연을 준비하던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 밤 9시부터 연주를 시작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갈랜드가 무려 10시 30분이 지나도록 안 왔다. 클럽은 당황한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고, 마일스는 잔뜩 화가 나 있었다.
마침내 갈랜드가 상기된 얼굴로 나타났다. 그는 "물 한잔만 줘봐, 글쎄 말이야 기가 막힌 일이 있었어! 42번가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왠 고양이가 역내로 들어오는 열차에 뛰어들지 뭐야. 사방에 피가 튀고, 사람들은 소리 지르고, 경찰이 오고, 의료진이 오고... 정말 끔찍했어. 경찰이 한사람 한사람 잡아놓고 질문을 하는데, 아무도 떠날 수가 없었어. 거의 두 시간 동안 말야! 열차가 다시 운행하자마자 가능한한 빨리 달려온거라고."
마일스는 화를 가라앉히고, 퀸텟은 역시 최고의 연주를 들려주었다. 공연이 끝나고 폴 챔버스가 베이스를 챙기고 있는데, 갈랜드가 바에 앉았다. 나머지 멤버들, 즉 마일스, 콜트레인, 필리 조 존스는 이미 클럽을 떠난 후였다. 폴 챔버스가 "레드, 나도 지하철 타고 집 갈건데 같이 갈까?"라고 말하자 갈랜드는 "지하철 탈 필요 없어. 내가 집에 데려다 줄게 나 차 밖에 있어."라고 했다고.[17]
Miles and I were in Boston, playing separate gigs. One night we were talking, and Miles said, ‘I want to form a band.’ Philly Joe would be the drummer—that was obvious. But Miles wanted Sonny Rollins, and Sonny couldn’t make it. So I told Miles about this tenor player from Philly, John Coltrane. And he said, ‘Tell Coltrane to meet us in Baltimore for the gig.’ And Miles brought Paul Chambers, who was just a 20-year-old kid working in Detroit.

마일스와 저는 보스턴에서 각자 다른 공연을 했죠. 어느날 밤 우리는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마일스가 밴드를 만든다고 하더군요. 드러머는 당연히 필리 조 존스가 될거였지만, 마일스는 소니 롤린스를 원하는데 소니가 못하겠다고 했다더군요. 그래서 전 마일스에게 이 필라델피아에서 온 존 콜트레인이라는 테너 색소폰에 대해 얘기했죠. 그러자 마일스가 콜트레인에게 볼티모어에서 할 합주때 오라고 전하라더군요. 그리고 마일스가 폴 챔버스를 데려왔죠. 당시에는 디트로이트에서 일하던 20살짜리 애였는데.
레드 갈랜드의 회고 *

[1] 베이스의 폴 챔버스와 드럼의 필리 조 존스 또는 아트 테일러. [2] Buster Smith에게 배운것으로 알려져있는데, 찰리 파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받는 사람이다. [3] 그리고 이 중 1942~44년 2년간은 군대에 있었다! [4] 또 다른 하드밥 피아노의 거장 행크 존스가 거쳐간 곳이기도 하다. [5] 링크된 문서를 가서 보면 알겠지만 이 사람, 무려 복싱 역사상 올타임 No.1으로 뽑히는 괴물이다! [6] 출처: Tony Genge,"The Jazz Piano Solos of Red Garland" [7] 이 때 콜트레인을 추천한 것이 바로 레드 갈랜드였다! 자세한 내용은 여담쪽에서 후술 [8] 사실 블락 코드라는 용어는 조지 셰어링 스타일의 블락 코드, 배리 해리스 스타일의 블락 코드 등 다양한 종류를 모두 포함하는 것이며 레드 갈랜드의 스타일은 그 중 하나이다. 보다 자세한 것은 연주 스타일과 영향에서 후술 [9] 이 앨범엔 또다른 명대사가 나오는데, 바로 'If I were a bell'의 "I'll play it and tell you what it is later"이다. [10] 칵테일 한잔 하면서 배경 음악으로나 들을, 이지 리스닝 피아노 연주자라는 비하적 의미가 담긴 용어이다. [11] 제목에서부터 "The Rhythm Section"이라는 말을 썼을 정도로 이 당시에 리듬 섹션하면 이들의 아성을 넘볼 그룹이 없었다는 의미다. [12] 이건 콜트레인도 가서 도와준거라 마일스만 소니 롤린스로 대체된 퀸텟 구성이었다. [13] 관련된 유명한 에피소드도 있다. 이에 대해선 여담에서 후술. [14] 존 콜트레인, 도날드 버드, 베이스의 조지 조이너, 드럼의 아트 테일러와는 "All Mornin' Long"뿐 아니라 "Soul Junction", "High Pressure", "Dig it!"등 이후 꽤 여러 음반을 냈다. [15] 보컬로도 유명하지만 피아니스트로도 레전드 급이었다 [16] "재즈 피아노의 백과사전"이라고 불리는 재즈 피아니스트 [17] 출처: https://allaboutjazz.tistory.com/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