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3-07-28 17:08:57

라스트 이닝

1. 개요2. 줄거리3. 등장인물
3.1. 사립 사이타마 고등학교3.2. 세이보 학원3.3. 치치부 유메이칸 고등학교3.4. 카스가노 다이에이 고등학교3.5. 즈이운 고등학교3.6. 에이칸 고등학교3.7. 무사시 체육대학부속 고등학교3.8. 안세이대부속 고등학교3.9. 미나토가와 상공3.10. 타이호우 고교3.11. 기타 등장인물

1. 개요



원제는 ラストイニング―私立彩珠学院高校野球部の逆襲. 정발판 역시 작은 글씨로 '사립사이타마고교야구부의 역습'이란 부제가 붙어있다. 2004년부터 2014년까지 쇼가쿠칸 주간지 빅 코믹 스피리츠에서 연재한 야구 만화. 원작 및 원안 카미오 류, 작화는 나카하라 유우가 담당했다. 전 44권. 대한민국에서는 서울문화사에서 32권까지 정식발매 되었으나 2020년 이후 단행본이 나오지 않고 있다.

본격 감독 중심 야구 만화. 흔한 고시엔을 무대로 삼는 야구 만화지만, 주인공이 에이스나 4번 타자가 아닌 감독이란 점이 특징이다. 때문에 여느 야구 만화보다 수싸움에 굉장히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으며, 기존 야구 만화와는 다른 관점 다른 접근법으로 고교야구를 묘사하고 있다.

작중 야구는 전형적인 일본식 스몰볼에 훈련이나 육성 방법도 옛날 일본야구라 한국에 처음 소개될 당시 김성근을 떠올리게 한다는 평이 많았다.[1] 주인공 하토가야 감독의 야구관이 '상대가 싫어하는 짓을 하는 야구', '필요할 때 1점을 따고 필요할 때 1점을 막는 야구'이며 강훈련과 작전을 무척 강조한다. 게다가 소통한답시며 선수들에게 끌려다니는 지도자를 대놓고 디스한다.[2][3]
공식전과 연습시합을 합쳐 연간 100전을 치른 팀이 있다. 고시엔을 가려면 승률 몇%를 기록해야 할까?
한팀은 99승 1패를 기록했고 다른 한팀은 92패 8승을 기록했다. 어느 팀이 고시엔에 갈 수 있을까?
정답은 후자. 99승을 해도 결승전에서 1패를 하면 탈락이고, 92패를 해도 예선 8연승을 하면 고시엔에 갈 수 있다.
승률 99% 팀이든 승률 8% 팀이든 고시엔 출장 가능성은 있다.[4]

2. 줄거리

사립 사이타마 고등학교는 36년 전 고시엔 첫 출장에 우승이라는 기록을 남겼으나, 이런 영광스러운 과거가 무색하게 근래 들어선 예선 첫 경기에서 광탈하는 약체일 뿐이다. 설상가상 재단 경영이 악화되면서 이사회는 실적도 없이 돈 먹는 하마 신세인 야구부를 폐쇄하기로 결정한다. 현 교장 사야마는 36년 전 고시엔 우승 당시 주장으로서, 야구부 해체를 넋놓고 지켜볼 수만은 없어 이사장과 담판을 짓고 1년 유예기간을 얻어낸다. 하지만 내년 여름 고시엔에 진출하면 야구부는 존속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폐쇄라는 조건은 지금 전력으로는 미션 임파서블. 고심 끝에 과거 사야마가 야구부 감독을 맡았던 시절 애제자 하토가야를 신임 감독으로 앉히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막상 찾아낸 하토가야는 사기죄로 철창 신세를 지고 있었는데...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3. 등장인물

3.1. 사립 사이타마 고등학교[5]

3.2. 세이보 학원

추계 관동대회에서 우승했고 봄 선발 출장이 유력한 지역내 강호. 원래는 아가씨 학교로, 경영전략으로 남녀공학으로 바꾼 후 야구부를 창설했다.[17] 코시엔 출장을 위해 야구부를 만든 만큼, 멤버들은 전국각지에서 끌어모은 호화 멤버. 다른 만화였으면 주역이었을 탈고교생 유망주들이 집결해 있다. 현 대회 최종보스답게 세이보와의 여름 지역대회 결승전은 23권~29권까지 장장 7권에 걸친 대혈전이었다.

주요 등장인물은 하토가야의 최대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키류 감독과 에이스 아카시, 주전포수 사쿠라, 유격수이자 주장 시바타.[18]

에이스 아카시가 부상에서 회복된 지 얼마 되지 않음 / 히다카가 우연히 시합 도중에 커터를 던지는 법을 깨우침 / 스티브가 아카시의 투구폼에서 8프레임 차이를 눈치채 포크를 구분해 냄 / 2:1로 역전한 상황에서 세이보의 슈퍼플레이로 더블아웃이 되었음에도 세이보의 실수와 사이타마의 어필이 받아들여져 추가점이 인정됨[19] / 동점 홈런을 얻어맞고 흔들리는 그 상황에서 폭우가 내려 경기가 중단되어 히다카가 멘탈과 체력을 회복할 여유가 생김 / 히다카의 호투로 인해 상대 감독이 아카시의 교체 타이밍을 놓침 / 부상 여파로 인해 손가락의 힘이 빠져버린 아카시의 행잉 슬라이더를 1할대 타율 유격수가 받아쳐 역전타를 만들어냄 / 1사 1, 2루에서 댄 희생번트가 하필 아까 왔던 비 때문에 포수 앞에서 멎어서 3루에서 아웃됨 / 2사 만루 상황에서 4번 타자가 발이 아주 느려 3루, 2루주자가 다 들어올 때까지도 1루에 도달하지 못해 땅볼 아웃됨 등등, 사이타마는 온갖 버프를 세이보는 온갖 디버프를 안고 싸운 경기였다. 그럼에도 사이타마가 신승했다는 점이 세이보의 강함을 대변해주며 그럼에도 사이타마가 이겼다는 점이 역시 야구라는 스포츠의 특징을 잘 말해준다.

참고로 사이타마의 결정적인 추가점이 걸린 어필 플레이는 도카벤에서도 등장했다.

3.3. 치치부 유메이칸 고등학교

창립 2년째 되는 학교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한 조직력을 살린 야구를 한다. 사실은 리틀야구 전국 4강 팀인 마츠모토 팬서즈 팀원들이 통째로 입학해 8년째 손발을 맞추고 있는 팀이다.

감독 타마가와는 선수들이 리틀, 주니어, 고교로 올라갈 때마다 팀이 바뀌고, 감독과 지도방식마저 다 바뀌는 시스템에 회의를 품고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이상을 품고 코치시절부터 쭉 마츠모토 팬서즈와 함께 했다. 고교에서 자신의 이상을 실천할 학교를 찾다 신설학교라 OB가 없고, 팀 구성과 운영을 모두 맡기겠다고 제안해온 유메이칸에 다 함께 진학했다.

8년을 함께 뛴 만큼 조직력은 단연 으뜸. 전체적으로 선수들 체격이 고만고만해서 장타력은 없고 발야구에 일본식 스몰볼로[20] 승부를 보는 팀이다. 에이스 시로오카도 체격이 크지 않아 구위 대신 각이 예리한 싱커로 승부보는 타입.

봄의 현 대회에서 사이타마에 현대회 최종보스 세이보까지 꺾고 우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여름 지역 예선에서도 사이타마의 라이벌이 될 듯 했으나 안세이의 신타니에게 당하며 탈락하고 만다.

3.4. 카스가노 다이에이 고등학교

또다른 지역 강호로 히다카는 이 학교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으나 결국 입단엔 실패한 악연이 있다. 또한 하토가야가 판정에 불만을 품고 심판을 때린 것도 이 학교와의 시합이었다.

베테랑 쿠마가야 감독이 팀을 지휘해 왔으나 스파르타식 지휘 스타일이 문제가 되어 학부모들의 등쌀에 밀려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과거에는 똥통 학교로 유명했고 자연히 야구부에 들어오는 건 운동 밖에 모르는 꼴통들이라 필요할 때는 강압적인 방법을 어느 정도 동원해서라도[21] 팀을 이끌었지만, 차츰 야구로 유명해지며 진학생이 몰리고 2류 학교 수준은 되자(...) 이른바 '스마트'한 아이들이 야구부에 들어오게 되고 감독과 충돌을 빚은 것.

사이타마와 여름 지역대회 3회전에서 맞붙는데, 쿠마가야 감독 대신 팀을 맡은 젊은 감독이 메뉴얼만 중시하는 데다가 말만 자율 야구지 실제로는 물러터진 지휘 스타일 덕에 선수들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고 설상가상 감독의 용병술도 형편 없어서[22] 사이타마에 1-3으로 패배한다. 그후 쿠마가야 감독이 다시 일선에 복귀, 예전같은 스타일로 돌아간다.[23]

3.5. 즈이운 고등학교

하토가야에게 맞았던 원로심판 츠루가시마의 모교. 엔트리 20명을 모두 활용하며 싸워가는 팀으로 사이타마와 4회전에서 맞붙는다. 감독은 70이 넘은 오오토네[24]로, 상대를 흔드는 심리전과 약한곳만 집요하게 찌르는 변칙작전이 특기.

3.6. 에이칸 고등학교

현 대회 넘버원 투수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오오타키가 팀의 핵심. 그러나 팀 타선은 현 대회 단골 명문이라는 학교치곤 팀타율이 2할 초반대로 좋지 않아 타격에서도 어떻게든 자력으로 출루가 되는 타력도 갖춘 오오타키를 3루까지 보낸 후 스퀴즈 플레이로 점수를 올리는게 거의 유일한 득점 패턴인 원맨팀이다. 그럼에도 그 점수차를 지키내기 까지 도맡는 오오타키의 기량이 정말로 대단해서 강팀으로 올라온 팀.

하토가야 왈 '원맨팀은 대장만 잡으면 된다'. 타선 전체에 동일한 지침을 내려서 투구패턴을 읽히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켜 배터리를 흔드는 것을 시작으로 철저하게 공략당한다. 고만고만한 패스트볼 구위를 종횡 슬라이더와 컷패스트볼로 보완하는 오오타키는 시오리에겐 하마군이라는 별명으로 불릴정도로 투박한 외모라 이후 대결한 안세이의 신타니, 세이보의 아카시와 동급의 투수임에도 은근슬쩍 무시당한다. 9회말 패배를 목전에 두고서야 계략에 빠져 팀원들을 믿지 못했던 자신의 실책을 깨닫고 자책한다.[25] 이 기억이 뼈아프게 남아 세이보와 사이타마의 시합을 관전하며 자신처럼 하토가야의 속임수에 말려들어서 흔들리는 아카시에게 응원을 보냈다.

3.7. 무사시 체육대학부속 고등학교

사이타마의 8강 상대로 충실한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다져진 우월한 하드웨어를 앞세운 타력의 팀. 대신 매경기 7~8점씩 내줬을 정도로 투수력이 약하다. 준결승부턴 히다카에게 휴식을 줄 수 없기에 하토가야는 이 경기에 히다카 대신 스티브를 선발로 내세우는 파격적인 수를 던진다.

3.8. 안세이대부속 고등학교

전국구 명문대학인 안세이대학의 부속고교로, 좋은 성적을 올리기 위해 전국에서 특대생들을 모집해 전력을 강화했다. 원래 에이스의 부진으로 기용된 지능파 사이드암 신타니의 대활약으로 유메이칸을 꺾고 준결승에서 사이타마와 맞붙는다. 신타니는 200구를 던져도 끄덕없는 스태미너와 심판의 존까지 뒤흔드는 정교한 컨트롤이 주무기, 그러나 사이타마와의 준결승에서 심판의 존을 흔드는 술수가 통하지 않게 되자 포커 페이스가 무너지며 원래 스타일로 돌아가는데 안세이에 들어오기 전엔 알아주는 파워피처 유망주였다.

그가 기교파로 전향하게 된 계기는 특대생임에도 1군에서 밀려나 천덕꾸러기가 됐을 때 자기를 돌봐준 야구부 선배와의 일대일 레슨을 통해서 였는데 이게 한국으로 치면 임창용 신재영으로 만들어버린, 무지에서 비롯된 어처구니 없는 코칭이었지만 당장은 꽤나 성과를 거뒀기에 스스로도 자신의 재능이 그 정도라는 편견에 빠지게 되었다. 심판의 존을 흔드는 전략이 더이상 통하지 않는게 확인된 뒤엔 후회를 남기지 않겠다고 전력 파워피칭으로 전환했는데 이게 또 굉장해서 전략을 깨고나면 쉽게 무너질줄 알았던 예상을 뒤엎고 4번 타케시와의 정면승부 상황까지 몰아가 하토가야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신타니는 엄청난 미남이기도 해서 세이보의 아카시와 함께 지역대회의 아이돌 대우를 받는다.

3.9. 미나토가와 상공

통칭 M교. 고시엔에 진출한 사이타마의 첫상대. 사이타마와 마찬가지로 과거에 좀 나갔다가 몰락한 효고의 공립학교로 10년만의 3번째 고시엔 진출이었다. 사이타마와의 경기가 인접 지역에서 열려서 사실상 홈팀 응원을 받았다. 세이보의 아카시는 미나토가와의 장단점에 대해 아는 게 있냐는 야시오의 질문에 내가 그런 걸 어떻게 알겠냐고 답했다. 알려주기 싫어서 그런게 아니라 정말 존재감 없는 팀이었기 때문으로 아카시는 대진운이 좋아 올라갔을 뿐 사이타마의 상대는 못된다고 단언했다.

스타일로 말할 거 같으면 정말 답답하고 보수적인 야구. 철저한 일본식 스몰볼을 추구하는데 그 정도가 지나쳐서 야구하려고 스몰볼 하는 게 아니라 스몰볼 하려고 야구하는 팀이다. 팀이 이 지경이 된건 꼴통 감독이 30년 넘게 장기집권하고 똑같이 꼴통인 OB들이 부화뇌동 한 탓. 저 극단적인 스몰볼을 왕도라고 부르며 절대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35년간 장기 집권했던 아리마 무츠오가 건강 문제로 감독직에서 물러나자 젊은 나가타 감독을 선임해 팀을 개혁해 보려고 했다. 나가타는 즐기면서 야구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실력이 있으면 1학년이라도 주전으로 발탁하고, 출루율을 중시하며, 과감한 플레이를 장려하는 등 현대 야구에 맞는 대대적인 개혁을 추진했으나 이게 미나토가와의 전통을 숭배해온 OB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사이타마와 만나기 전 봄 고시엔에서 콜드게임 패한 것을 계기로 OB들은 압력을 넣어 나가타를 내쫒아 버린다.[26] OB는 아리마를 다시 선임하려 했으나 건강 문제로 풀타임 감독이 무리였던 아리마는 자신이 키운 타루미 감독을 바지사장으로 세우고 실질적으로 자신이 게임을 지휘했다.

이 아리마가 얼마나 선수들의 창의성을 제한하냐면 수비시 글러브 토스하는 것 조차 못마땅하게 여겨 윽박지르며 다신 못하게 했다. 결국 과감한 야구로 거듭날 수 있었던 팀은 4회 초 원아웃 1루에서 4번 타자에게 번트시키는 팀이 되었다. 이런 식으로 야구하니 공수에서 어떻게 나올지 예상이 너무 쉬웠고 이점을 파악한 하토가야는 정확히 그 반대로 하면서 농락해버린다. 경기 말미에 아리마가 속으로 독백하는 것이나, 하토가야의 평으로도 그 스몰볼 자체가 잘못된게 아니라 팀에서 나가타의 색을 빼는 과정에서 선수들이 그걸 완벽하게 수행하지도 못하는, 스몰볼을 추구하는거 같지만 사실은 이도 저도 아닌 팀인게 패인이라고 묘사된다.

3.10. 타이호우 고교

오오이타현 대표로 첫 고시엔에 진출한 타격팀. 경기당 10점 이상 뽑아내는 타격의 팀이란 점은 무체대와 마찬가지지만 훨씬 정교한 타격을 자랑하며 투수와 수비력까지 강한 팀이다. 투수가 150km로 던진 공은 140km로 던졌을 때보다 0.05초 빠르게 포수미트에 꽂히지만, 140km를 치던 타자가 150km의 공을 치기 위해선 0.003초만 더 빨리 스윙을 가져가면 된다는 지론을 가진 오오토모 쿠니미츠 감독이 11년에 걸쳐 육성한 팀이다.

3번 좌타자 츠쿠미와 4번 우타자 코코노에가 주축인 타선은 끝에 테이프를 감은 배트, 해머, 구멍뚫은 대나무, 그립앤드가 2개인 배트 등 다채로운 도구를 사용해 약간 이라도 어설픈 유인구는 아예 통하지도 않으며 코스를 가리지도 않는 뛰어난 컨택능력에 파울타구를 본 순간 사이타마 선수들이 전원 얼어버릴 정도로 강하고 빠른 파워를 겸비했다. 세이보를 경험한 하토가야조차 이런 타선은 처음이라며 완벽하게 차단할 방법은 없으니 단언하고 출혈을 각오했으며 내야진에게 무거운 포수장비를 착용하고 수비훈련을 갖게 해 타이호우의 빠른 타구를 따라갈 수 있게끔 했다.

3.11. 기타 등장인물



[1] 그래도 하토가야나 라이벌 격인 키류 감독이나 전력을 다한다는건 어디까지나 운동장에서, 상대팀의 약점을 파고들며 수싸움과 심리전을 치열하게 벌이는거지 편법이나 비열한 반칙, 입털기, 선수를 상하게 하는 위험한 플레이를 지시하진 않는다. [2] 정확히 말하면 야구관도, 계획도 없으면서 무턱대고 좋은 소리만 하는 지도자를 깔아본다. 똑같이 소통을 내세우고 선수들과 친구처럼 지내도 자신의 야구관이 확고하고 그에 맞춰 팀을 꾸려가는 유메이칸의 감독 타마가와는 하토가야도 좀 툴툴대기만 할 뿐 인정한다. 그리고 하토가야와 선수들의 관계도 라이벌 세이보에 비하면 굉장히 수평적이고 선수들에게 자율을 주는 편이다. 반면 뭘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도 없이 벤치에 들어갈 선수 뽑는거까지 선수단 투표에 맡기고, 제대로 된 지시 대신 무작정 좋은 말만 하는 다이에이의 신임 감독 하나조노는 사뿐히 즈려 밟는다. [3] 다만 고등학교 야구의 경우 스몰볼은 어쩔 수 없는 경향이기도 하다. 선수들이 아직 성인이 아닌 이상 그 실력과 판단력을 섣불리 신뢰할 수 없고, 명문고는 선수들을 스카우트할 수 있어서 그래도 믿고 맡길 수 있는 빅볼이 가능할 수 있어도(물론 이게 가능하려면 정말 초고교급 선수여야 하겠지만.) 사이타마 고교는 그 정도는 아니므로 스몰볼 위주로 갈 수 밖에 없다. [4] 선수들을 가르치는 하토가야의 말. [5] 미국인 스티브를 제외한 모든 등장인물들의 성은 사이타마현 각지의 지명에서 따 왔다. 오오미야 타케시의 이전 성인 '코지마' 는 오카야마현의 지명이다. [6] 이름에 비둘기 구(鳩) 자가 들어가서, 일본에서의 비둘기 울음소리인 '폿포' 가 별명이 된 듯 하다 [7] 스포츠 토토처럼 승패 예측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승리가 예상되는 팀에게 바둑이나 경마처럼 핸디캡을 부여해서 도박꾼들의 사행심을 부추기는 직업. [8] 불법 도박인만큼 당연히 배후에 야쿠자가 있다. 잘못 판단해서 야쿠자에게 큰 손해라도 입혔다간 당연히 목숨이 위험하다. [9] 다만 이건 제대로 된 지도자를 못만난 탓도 있다. 전 감독 모로야마도 야구에 대해서는 아는게 거의 없고 다른 야구부원들도 그리 진지하게 야구를 하는 건 아니었기 때문. 그렇다보니 진지하게 고시엔을 노리는 히다카 입장에서는 동료들 때문에 손해를 본다고 느낄 만도 했다.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본인도 그다지 사교적이거나 싹싹한 성격은 아닌지라 상황을 개선할 능력이 없다는 게 문제. [10] 실력이 없어서 떨어진 건 아니다. 체력이나 구속 테스트에선 충분히 합격할 만한 실력이었으나 학교에서 신입생 선발 방침을 무조건 좌완으로 정해서 감독에겐 언급도 없이 그냥 탈락시켰던 것. 감독이 선수선발에 관여할 수 있었으면 뽑혔을 가능성이 높다. [11] 가르쳐 준 현지 투수도 커브 연습하다 우연히 익히게 된 것으로 그게 서클 체인지업이라는것도 모른 채 마구라고 생각하고 자기 이름을 붙여 부르고 있었다. 스티브가 입단 후 야시오가 스티브와 가깝게 지내자 살짝 토라져서 독학으로 포크를 연습했고, 세이보와의 현대회 결승 경기 중엔 우연히 컷패스트볼을 던지는 요령을 터득했다. 때문에 데이터상으로 구종은 다섯개. [12] 다이에이의 쿠도우, 에이칸의 오오타키, 안세이의 신타니와 선발 맞대결해 전부 승리하고 세이보의 아카시까지 꺾었다. [13] 라스트이닝은 실제 구단명이 등장하지만, WILD PITCH는 프로야구가 본격적으로 배경이 되는 터라 가상의 구단명을 사용했다 [14] 친부는 아라시야마가 맡기로 했고 하토가야의 옛 부하는 마침 거액의 사채빚이 있었기에 야쿠자들에게 끌려가 일해서 갚게 되었다. [15] 덕분에 경기 막바지에 수비 강화를 위해 1루수로 투입된 교우다가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올린다. [16] 한경기라도 지면 야구부는 그대로 폐부이기에 전력분석에 만전을 기해야 하는데 1학년생들은 경험이 없어 힘드니 봄부터 100경기 이상 분석해 본 자신들이 나서겠다고 했다. [17] 학교 이름이 성모(聖母) 학원이라 하토가야는 술집 이름같다며 웃는다, 공학이라곤 하지만 야구부 이외엔 아예 남학생이 없는듯. [18] 처음부터 꽃미남으로 등장한 아카시를 제외한 둘은 처음에는 각진 얼굴의 전형적인 운동부상이었다가 작가의 그림체 변화로 미형으로 바뀐다. [19] 1사 2,3루에서 오오미야가 안타성 타구를 쳤는데, 유격수 시바타가 엄청난 운동신경으로 거의 빠져나가는 타구를 잡아냈다. 그리고 2루에 공을 던져 더블아웃을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안타라 생각했기 때문에 2,3루 주자들은 이미 스타트해 3루 주자가 2루 송구 아웃 이전에 먼저 홈을 밟은 상황이었고, 수비측이 다음 플레이를 하지 않고 덕아웃으로 들어와서 3루 주자의 득점이 인정되어 버렸다. 전광판에 1점이 새겨진 걸 보고 모두 잠시 당황하다가, 키류 감독이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3루를 터치하게 한 후 3아웃째를 교환하겠다고 어필하지만, 하토가야도 어필이 너무 늦었다며 다시 항의. 결국 사이타마측의 어필이 받아들여져 그대로 1점이 인정된다. 유격수가 캐치 후 바로 3루에 던졌다면 그대로 깔끔히 상황 끝이었으나, 호수비후 흥분 상태에서 가까운 2루로 던진 것이 이 결과로 이어졌다. [20] 경기 막판도 아닌데 원아웃 1루에 번트를 대 주자를 진루시키는 식 [21] 강한 훈련이나 폭언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정이 안 되는 선수들을 자기 집에 묵게 하고 밥까지 먹여 가며 야구부를 이끌었다. 원래라면 이 역시 어느 정도 해서는 안 되는 방법이라는 점에서(그리고 스마트한 방식이 아니라는 점에서) 강압적인 건 마찬가지다. 그렇긴 해도 대신 선수들의 의욕을 이끌어내는 데도 탁월한 감독이라 그동안 좋은 성적을 거뒀던 것. [22] 히다카 나오야의 포크 볼이 보여주기일 뿐이라는 사실을 간파하지 못하고 매달리다 농락당한다. [23] 다만 이 감독 역시 모로같은 위치에 남아서 감독을 보좌하고 있다. [24] 츠루가시마 심판의 야구부 선배로 학창시절 츠루가시마에게 꼼수를 쓰라고 했다 거절하자 그 이후 단 한경기도 나서지 못하게 만들었다. [25] 반대로 히다카는 변화구를 캐치 못하는 실책을 연달아 저지르는 못미더운 대체 포수를 상대로 끝까지 흔들림없이 변화구를 던져서 오오타키를 잡아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크게 한방 먹었다. [26] 미나토가와는 진작에 한물 가서 아리마 재임기에 이미 성과를 내지 못한지 오래였다. 전력을 보강하기도 힘든 공립학교팀 특성상 봄 고시엔에서의 콜드패는 큰 흠이 될 수 없었는데도 스몰볼에 대한 아집에 빠져 내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