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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9 11:41:12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역사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1. 창단과 격동기2. 배드 보이즈3. 그랜트 힐의 시대4. 배드 보이즈 2기5. 리빌딩
5.1. 2013-14 시즌5.2. 2014-15 시즌5.3. 2015-16 시즌5.4. 2016-17 시즌5.5. 2017-18 시즌5.6. 2018-19 시즌5.7. 2019-20 시즌5.8. 2020-21 시즌5.9. 2021-22 시즌5.10. 2022-23 시즌5.11. 2023-24 시즌5.12. 2024-2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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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창단과 격동기

1941년 인디애나 주 포트웨인에서 피스톤 공장을 운영하던 프레드 졸너가 '포트웨인 졸너 피스톤즈'를 창단해 1944년과 1945년 NBL에서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1948년 NBA에 합류 후 조지 야들리와 래리 포스트 콤비를 주축으로 1955년과 1956년에 각각 파이널에 진출했다. 1957년에 보스턴 셀틱스, 뉴욕 닉스, 필라델피아 워리어스 등 대도시 강팀들과 경쟁하고자 미시건 주 디트로이트로 연고이전해 1960년대 초까지 베일리 하웰, 진 슈, 월터 듀크스, 척 노블 등이 활약하며 여전히 플레이오프에 나갔다. 1962년 드래프트 때 연고지 출신 데이브 드부셔를 테리토리얼 방식으로 지명했으나, 1963년 이후 4년간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1966년 드래프트에서 시라큐스대 출신 데이브 빙을 전체 2번으로 뽑은 후 1969년에 전 LA 레이커스 감독 벗치 밴 브레다 콜프를 모셔왔음에도 성적은 언제나 들쑥날쑥했다. 1970년대 들어 밥 레이니어가 중심이 돼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2. 배드 보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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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맨- 토마스- 듀마스- 레임비어

1974년에 졸너 구단주는 미시건 주 어번 힐스에 있는 자동차 유리회사 '가디언 인더스트리즈'의 CEO 윌리엄 데이비슨에게 팀을 팔았고, 데이비슨 구단주는 1979년에 전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감독 잭 맥클로스키를 단장으로 모셔 팀 분위기를 바꾸고자 했다. 1981년 드래프트에서 인디애나대 출신 포인트가드 아이제아 토마스를 1라운드 2픽으로 뽑은 후 '배드 보이즈'의 포석을 만들었다.

비록 데뷔 초기 2시즌 동안은 플옵 진출에 실패했지만 토마스가 20득점 10어시스트라는 엘리트 포인트가드로서의 커리어를 쌓아가기 시작하자 하나하나 필요한 사람들을 영입하기 시작한다. 1982년에 그 첫단계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서 센터 빌 레임비어를 영입하고, 1983년에 전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감독 척 데일리를 불러 1983년 12월 13일에는 덴버 너기츠186대 184로 이겨 NBA 역대 최다 득점을 이끌었다. 그리고 마침내 1984년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기 시작하여 플옵 단골 팀으로 격상했다.

1985년 드래프트에서 무명대학 맥니시 주립대 출신 SG 조 듀마스를 18번으로 뽑고 워싱턴 불리츠로부터 센터 릭 마혼을 사서 기반을 다졌고, 1986년에 정상으로 향하기 위해 드래프트 1라운드 11번으로 조지아텍 출신 센터 존 샐리를, 2라운드 27번으로 무명대학 사우스이스턴 오클라호마 주립대 출신 데니스 로드맨을 각각 뽑았다. 심지어 유타 재즈에서 애드리안 댄틀리까지 사들였다. 1986-87 시즌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했으나 래리 버드- 케빈 맥헤일- 로버트 패리시 빅3가 이끄는 보스턴 셀틱스와의 7차전에 이르는 혈전 끝에 아쉽게 패배했으나, 배드 보이즈 식구들은 자신들의 팀 플레이가 점점 완성되어 가고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다.

1987-88 시즌 고대하던 파이널 진출에 성공하지만, 이번엔 매직 존슨이 이끄는 쇼타임 레이커스와 명승부를 펼친 끝에 아쉽게 무릎을 꿇고 만다. 이때 토마스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파이널 단일 쿼터 최다득점 기록을 세우면서 분전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토마스가 분전한 6차전에서 패했는데 이때 결정적인 승부를 지은것이 바로 심판의 파울콜이라 논란이 되었다. 카림이 슛을 할때 레임비어와 미세한 컨택이 있었는데 그걸 파울로 정해버린것. 결국 레임비어는 퇴장당하고 카림은 자유투를 모두 성공시켜 1점차이로 레이커스가 승리를 거두게 된다. 이 파울은 상당히 논란이 많았던 파울로 당연히 디트로이트 선수들은 누구도 인정하지 않았고 심지어 적이었던 제임스 워디마저 "심판이 불렀으니까 파울이죠" 라며 심하게 부정하지 않는 반응을 보였다. 한 해설가는 아마 빌 레임비어여서 파울이 불린것이다 라고 설명을 했을정도고 무언가 석연치 않은 파울이었음이 분명하다.[1] 어쨌든 아이제아의 환상적인 활약은 이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아쉽게 끝나버렸다. 7차전이 있었으나 팀의 에이스인 아이제아가 제대로 뛸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 패배는 어찌보면 예약수준.



아쉬운 시즌을 마무리하고 드디어 1988-89시즌, 홈구장을 신설구장 '팰리스 오브 어번 힐즈' 로 옮긴 첫 시즌에서 결국 우승을 차지하는데 성공한다. 그 이후 1989-90 시즌에도 댈러스 매버릭스에서 마크 어과이어를 영입 후 우승하여 백투백 우승을 이룩하게 된다. 이 1989, 1990년 백투백 우승 당시의 팀 디트로이트를 바로 배드 보이즈라 부른다. 아이제아 토마스, 조 듀마스, 빌 레임비어, 비니 존슨, 데니스 로드먼 등이 바로 핵심 멤버들이다.

배드 보이즈(Bad Boys)는 문자 그대로 나쁜 놈들이라는 뜻으로, 팬덤도 한몫한것이 디트로이트는 예나 지금이나 수준이 높은 지역은 아니며 현재 대규모 슬럼화가 진행되고 있다. 팬의 대다수가 자동차 공장 노동자이다보니 상당히 거칠었고, 사이드라인에서 뛰고 있는 원정팀 선수들에게 쌍욕을 퍼붓고 배드 보이즈가 상대편을 린치하거나 구타하면 장내가 떠나갈듯한 함성이 울려퍼지는 원정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무간지옥. 뉴욕 닉스 팬덤도 대단하긴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상대편 선수를 다치게 하거나 패는 것을 좋아하진 않았다. 그야말로 팀과 팬이 혼연일체되어 상대팀 선수들을 잡아먹으려 했던게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였던 것이다.

이 시기의 디트로이트는 그야말로 수비 강팀의 면모를 톡톡히 보여준다. '배드 보이즈'는 이런 거친 수비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다. 당시의 NBA는 바디 체킹 룰이 지금보다 상당히 관대해서, 선수들이 어느정도 치고박고 하는 것은 그냥 파울만 하나 주고 마는 정도였다. 이에 감독인 척 데일리는 피스톤즈 선수들에게 항상 '거친 플레이'를 강조했다. 거기에 선수들의 성향까지 가세하면서 심판의 눈을 피해 차고, 때리고, 꼬집고, 밀고, 욕하고, 옷자락 잡아당기는 등의 플레이는 팀의 특징이 되었고, 이러한 디트로이트에게 존경과 멸시의 의미를 모두 담아 배드 보이즈라는 명칭을 붙여준 것이다. 이들의 활약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항상 인구에 회자되는 조던 시절 올스타와 르브론 시절 올스타 vs게임에서 찰스 바클리 스카티 피펜이 "3분안에 르브론 올스타는 울면서 경기못하겠다고 겁에 질릴것이다."라고 발언한 적이 있다. 과장이 아닌 것이 상술했듯 프로레슬링에서 볼 듯한 클로스라인을 걸어 내동댕이치고 주먹으로 명치를 지르는건 파울도 아니었던 시절인 것이다.그리고그 중심에는 로드맨-토마스-레임비어-마혼으로 이어지는 배드 보이즈가 확고히 자리잡고 있었다. 특히 부드럽고 온순한 성향이었던 시카고의 호레이스 그랜트는 디트로이트와의 경기에선 대놓고 주눅드는 모습을 보였으며 지고는 못사는 제왕성향의 조던과 그의 충실한 파트너 피펜이 분전했을 정도. 피펜 역시 90년 동부 결승 7차전에서 원인불명의 편두통으로 존재감이 사라지는 등 부진할 때가 많았기 때문에 사실상 피스톤즈의 압박에 무너지지 않았던 건 조던 뿐이며, 이런 조던을 피스톤즈는 조던룰로서 육체적으로 다구리쳤다. 마혼과 토마스가 조던 옆에 붙고 심판 눈을 피한 레임비어가 대놓고 주먹을 날리는 경우는 다반사였다.

먼저 신사라 불리던 조 듀마스를 제외한 팀원 전체가 심판의 눈을 피해 트래쉬 토킹을 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아이제아 토마스는 셀틱스와의 경기 전에 '래리 버드는 백인이라 MVP다'라 말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배드 보이의 진면목을 보여준 것은 역시 '암흑의 왕자(The Prince of Darkness)' 빌 레임비어였다. 그의 특징은 그에 관한 항목에서 자세히 나와 있다. 간단히 말해 모든 선수들의 공적이다.

데니스 로드먼은 디트로이트 당시 '순한 양'이었으며[2], 빌 레임비어와 릭 마혼 등에게 수많은 기술들을 전수받으며 장차 악동으로써의 자질을 키워나가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더티 플레이들을 차치하더라도 배드 보이즈는 확실히 강팀이었다.[3]

토마스는 공격형 포인트가드의 표본이자 게임 조절에 능하였고, 듀마스는 조던 스타퍼였다. 참고로 듀마스는 조던이 뽑은, 자신을 가장 잘 막는 선수였는데, 그가 커리어 동안 조던에게 허용한 점수는 정규시즌 평균 31.1점, 플레이오프는 30점이었다. 하이라이트는 1988년 4월 3일에 야투성공률 77.8%로 조던이 59점을 올린 것. 이것만 보면 잘 막긴 개뿔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정규시즌은 몰라도 당시 듀마스와 마지막으로 플레이오프에서 붙었던 91시즌까지 조던의 플레이오프 득점 평균이 34.6점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잘 막은 게 맞다.

실제로 불스와 피스톤즈가 가장 치열하게 붙었던 89,90플레이오프에서 조던은 피스톤즈와 붙기전 1,2라운드에서 각각 37.5점, 40.2점을 기록하고 있었으나, 피스톤즈와 붙을때는 29.7점, 32.1점으로 추락하고 만다. 물론 이때 듀마스만 막은 게 아니라 팀 전체가 다굴이하는 형식으로 막긴 했지만, 지역방어도 안되는 이 시절에 기본적으로 매치업 상대가 잘 막아주지 않으면 조던같은 선수를 막아내는 건 불가능했다. 이걸 못한 게 93년 파이널에서 불스와 붙은 피닉스로, 선즈는 악착같이 더블/트리플팀을 했지만 매치업 상대들이 조던에게 탈탈 털리다보니 속절없이 평균 41점을 헌납하고 만다. 물론 이때 선즈의 댄 멀리도 1급 수비수였다. 조던이라 털린거지... 즉, 아무도 막을 엄두조차 못 내던 당시의 조던을 약간이나마 제어가 가능했다는 것만으로도 듀마스의 수비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나타나는 것이다. 실제로 올-디펜스 퍼스트팀에 4회, 세컨팀에 1회 뽑혔다.

여담이지만 매너가 더럽기로 유명한 배드 보이즈였음에도 듀마스는 훌륭한 매너의 소유자였으며 실제로 NBA에서 수여하는 "스포츠맨상"의 트로피 이름이 "조 듀마스 트로피"이다. 수비력으로 유명한 선수들 중 더티 플레이어 (존 스탁턴, 데니스 로드맨, 케빈 가넷 등)들이 많다는 걸 생각하면 특이한 케이스.

거기에 레임비어는 뛰어난 위치선정과 예측력으로 떨어지는 운동능력을 보완하며 리바운드왕에 올랐으며 센터 치고는 점프샷과 자유투가 매우 준수했다. 거기다 3,4,5번을 전부 막을 수 있던 수비 스페셜리스트 로드먼[4]의 성장은 이 팀의 질식 디펜스의 힘을 보여준다. 거기다 이 팀은 플레이오프에서도 5명의 선수가 두자리수 득점이 가능했을 정도로 공격옵션이 다양했던 팀이다. 토마스를 중심으로 듀마스와 존슨이 번갈아 나오는 슈팅가드, 댄틀리를 시즌중 트레이드하고 영입한 스몰포워드 마크 어과이어등 강력한 수비력과 폭발적이진 않지만 짜임새있고 다양한 공격옵션때문에 난공불락의 팀이었다. 또한 심리전에도 매우 강한 팀이었는데 질식 디펜스와 동시에 플로핑과 (과장 연기를 하여 파울을 얻어내는 것) 트래쉬 토킹 등으로 상대 플레이어들의 감정이 절제가 되지 않게 하여 상대방이 경기에 집중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90년 결승전에서 빌 레임비어 한명이 모든 포틀랜트 플레이어들을 정신적으로 교란시키는가 하면 89년 파이널에서도 로드맨과 마혼이 번갈아 가며 제임스 워디를 정신적으로 괴롭히는 등 심리적으로도 다른 팀을 압도하는 팀이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토마스가 따라붙으면서 "죽이겠다.", "다리 나가고싶냐" 등등의 트래쉬 토킹을 쉴새없이 퍼붓고 로드맨이 거머리같이 달라붙는 걸 뿌리칠때 레임비어가 슬쩍 붙어서 팔꿈치로 턱을 올려붙인다. 게다가 레임비어가 교묘한 플라핑으로 엄살을 떨면 파울이 주어지고 이쯤되면 상대팀의 멘탈은 박살난다. 한 마디로 레임비어는 석주일 김주성을 섞어놓은 스타일이라고 보면 된다.

상대방 에이스를 봉쇄하는 질식 수비에 의해 마이클 조던 스카티 피펜 호레이스 그랜트가 성장하기 전까지 번번히 패배의 고비를 마셔야 했다. 참고로 이노우에 타케히코의 만화 《 슬램덩크》에서 북산의 안감독이 해남의 이정환을 막는데 쓴 박스원 수비는 바로 척 데일리가 고안한 '조던 룰'을 모티브로 한 것이다.[5] 조던 룰에 대한 상세한 묘사는 마이클 조던 항목 참고. 그 정도로 수비에는 정말 일가견이 있었고, 공격도 만만치 않은 팀이니 NBA 2연패를 그저 더러운 매너로만 땄다고 오해하지는 말자. 더러운 것과는 별개로 피스톤의 선수들 특히 토마스, 로드맨 그리고 듀마스는 NBA 역사를 놓고봐도 뛰어난 선수들이다.[6]

또한 "배드 보이즈" 이미지 때문에 대표적으로 피스톤즈만 언급되긴 하지만 80년대가 전체적으로 지금으로선 상상이 안 갈 정도로 거친 시대이기도 했다. 터프하기로 유명한 보스턴 셀틱스의 래리 버드, 로버트 패리시, 케빈 맥헤일 등은 디트로이트 선수들과 싸운 적이 한두번이 아니며[7], 맥헤일 같은 경우 레이커스의 커트 램비스에게 클로스라인을 연상시키는 엄청난 하드파울을 한 적도 있었다. 한 마디로 80년대에는 신체적 충돌이 NBA에서 거의 일상이었다. 당시 경기를 보면, 현재같으면 즉시 퇴장당하거나 여론에 의해 매장당할 만한 플레이도 그냥 파울을 받고 경기를 재개하는 걸 볼 수 있다.[8] 물론 이와 같이 거친 팀들 중에서도 디트로이트가 독보적으로 거칠고, 독보적으로 더러웠던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 업보인지는 몰라도 배드 보이즈의 리더 아이제아 토마스는 자신의 팀의 업적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에 대한 변명을 은퇴 후에도 수십년간 해야하는 처지에 놓였다. 조던이 위대한 선수이며 자신보다 위라는 것은 받아들인 아이제아지만 그의 팀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받아치고 있다. 그러나 조던의 배드 보이즈 격파가 워낙 극적인 스토리인데다가 폭력에 가까웠던 배드 보이즈의 비매너 플레이들은 유튜브에서 고스란히 찾아볼 수 있기에 여론은 좋지 않다.[9]

3. 그랜트 힐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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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연속 NBA 챔피언을 따낸 후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 불스 왕조가 시작되었으며, 그 사이 배드 보이즈 멤버들이 노쇠화로 하나둘씩 은퇴하면서 팀은 1992/93 시즌부터 3시즌 연속 플옵 진출에 실패했고, 데일리 감독의 유산인 쓰리 가드 로테이션 같은 수비 중심 전술도 녹슬어갔다. 1994년 드래프트 때 듀크대 출신 그랜트 힐을 전체 3번으로 뽑아 유일하게 남은 배드 보이즈 멤버 듀마스와 짝을 이루고, 그 뒤에 린제이 헌터, 테오 라틀리프, 바이슨 델리[10] 등 젊은 선수들이 받쳐주어 1995/96 시즌부터 총 4차례 플옵에 나갔으나, 언제나 1라운드에서 번번이 탈락했다. 1996년부터 팀 색깔도 빨강/파랑에서 녹색과 갈색 위주의 점잖은 색으로 변경됐으며, 릭 마혼도 이 때 컴백해 2년간 뛰었다.

이 시기 동안 전통의 팀 컬러인 강한 수비와 블루 워커가 점차 희석되면서 디트로이트 시민들은 그랜트 힐의 '매너 플레이'에 불만을 표시하며 배드 보이즈가 되라고 항의했다.

후에 그랜트 힐이 해설자로써 유머스럽게 이 시절을 회고했는데 자신들의 팀은 "배드 보이즈" 였다고 한다. 단 소위 말해 원조 배드 보이즈처럼 못된 내지 더티 플레이를 해서가 아니라 진짜로 실력이 부족한 실력이 없었던 배드 보이즈였다고. 이 말은 들은 동네 패널들은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4. 배드 보이즈 2기[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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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부터 천시 빌럽스, 리처드 해밀턴, 테이션 프린스, 벤 월러스, 라쉬드 월러스
"Playing as one, no Superstars, just a bunch of guys playing together."[13]

2000년에 조 듀마스가 단장으로 부임해 울며 겨자먹기로 그랜트 힐을 떠나보낸 대신, 잠시 동안 제리 스택하우스를 중심으로 팀을 개편했다. 2000-2001시즌에는 스택하우스도 나름대로 평균 29점을 넣으면서 올스타에도 나갔지만 팀은 우승은 커녕 플레이오프권과도 거리가 있는 팀이었다. 이후 인디애나의 래리 버드 감독 시절 코치로 재임하던 릭 칼라일 감독을 선임했고, 팀 색깔도 배드 보이즈 시절의 빨강/파랑으로 회귀했다.

2001-2002시즌은 강력한 수비수로 거듭나기 시작한 벤 월러스, 트레이드 되어온 클리포드 로빈슨, 식스맨 상을 수상한 콜리스 윌리암스, 처키 앳킨스, 여전히 에이스였던 제리 스택하우스를 앞세워 실점을 평균 5점 가까이 줄이고 50승 32패로 동부 2위에 올라서게 된다.

그러나 플레이오프에서는 강한 수비라는 장점도 있었지만 너무나도 안 풀리는 공격력 때문에 결국 2라운드에서 폴 피어스 앤트완 워커 보스턴 셀틱스에게 격파당했다. 점프슛이 너무 약하고 공격이 안 풀렸고 2라운드에서 보스턴을 상대로 거의 역적질에 가까운 부진한 제리 스택하우스는[14] 결국 2002-2003시즌을 앞두고 워싱턴으로 배드 보이즈 2기의 슈팅가드인 리처드 해밀턴과 트레이드된다. 또한 미드레벨 익셉션으로 미네소타에서 주가를 올리던 천시 빌럽스를 6년 계약으로 영입하고, 루키로 강력한 수비의 테이션 프린스와 터키의 센터 메멧 오쿠어가 합류한다. 역시 강력한 수비로 이번에는 동부 1위 자리에 오르지만 뉴저지 네츠에게 4패로 광탈하게 된다.

이후 릭 칼라일이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감독으로 떠나고, 2003년 NBA의 대표적인 콩라인감독이었던 명장 래리 브라운을 영입한 뒤 동부 3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2004 NBA 파이널까지 나간다.[15] 상대는 샤킬 오닐 코비 브라이언트 듀오에 2003-2004 시즌 칼 말론, 게리 페이튼 등 콩라인 선수들이 가세해 전당포 레이커스라고 불리는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네임밸류는 단연 레이커스가 앞섰지만 정작 뚜껑을 열고 보니 4-1로 디트로이트가 2004 NBA 파이널에서 완승을 거뒀다. 지난 20년간 NBA의 파이널을 우승한 팀 중 가장 선수 개개인의 네임밸류가 떨어지는 팀으로 그만큼 유니크한 언더독 우승 사례로 볼만한 팀이다.

포인트가드 천시 빌럽스는 드래프트의 높은 순위에 비하면 정립되지 않은 스타일과 본인의 실력 부족으로 굴곡진 커리어를 갖고 있었으며 래리 브라운 시스템에 맞는 탑 푸시를 보여주면서 제대로 인정받기 시작한 늦깎이 스타라고 할 수 있다.

워싱턴 위저즈에 제리 스택하우스를 내주고 데려온 슈팅가드 리처드 'RIP' 해밀턴 앨런 휴스턴, 레지 밀러처럼 쉴새없이 뛰어다니다 찬스 한 번 받아먹는, 개인기 없이 점프슛만 던질 수 있는 퓨어슈터였기 때문에 한 팀의 에이스 스윙맨으로 보기엔 어려운 선수이다. 이 선수도 한 명의 노마크 슛을 만들기 위해 여러 명이 팀플레이에 달라붙는 래리 브라운 시스템에 들어가고서야 빛을 본 케이스다.

센터 벤 월러스와 스몰포워드 테이션 프린스는 진짜로 저평가된 선수였다. 벤 월러스는 신인 드래프트에서 뽑히지도 않은 선수로 순수 노력과 근성으로 성공한 정말 아무도 원치 않았던 선수[16]. 주전 5명 중 유일한 디트로이트의 드래프트 선수인 테이션 프린스는 예상과는 달리 개인기량과 운동능력이 기대 이하여서 1라운드 중후반까지 떨어진 케이스. 물론 이때 피스톤즈의 신인으로 카멜로 앤서니, 크리스 보시, 드웨인 웨이드를 제치고 전체 2순위로 뽑힌 다르코 밀리시치도 있었지만 넘어가자.

그나마 스타급으로 인정받을 만한 파워포워드 라시드 월러스는 실력은 있지만 성질머리가 지랄맞고 예측불가능해서 포틀랜드는 참다참다 못해 트레이드로 내놓았고 애틀랜타 호크스가 데려갔지만 단 1경기만에 재트레이드되어서 시즌 중에 합류한 선수였다. 피스톤즈의 우승 시즌에 쉬드는 중간 합류한 선수였다. 피스톤즈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팀이 한창 슬럼프에 빠져 있었을 때 조 듀마스가 쉬드의 트레이드를 강력하게 추진했다고 한다. 쉬드는 시즌 중에 피스톤즈에 합류했음에도 특유의 친화력으로 금세 팀원들과 친해졌고, 벤 월러스와는 성씨가 똑같아 'Wallace Brothers' 또는 'R & B Brothers'라고 불리기도 하면서 골밑에서 훌륭한 콤비를 이루게 되었다.

여기에 식스맨 진용에는 터키 출신 3점슛 던지는 센터 메멧 오쿠어, 트위너지만 식스맨으로선 최고 효율을 자랑하던 포워드 콜리스 윌리엄슨, 베테랑 빅맨 엘든 캠벨까지 가세해 물량과 조합을 적절하게 갖추며, 역대 래리 브라운이 지휘한 팀들 중에는 스퍼스 시절 다음으로 좋은 진용을 갖추게 되었다.

이들의 신조는
아무도 우리를 믿지 않았으니, 이 자식들에게 우리들의 힘을 보여주자..[17]
빌럽스의 노련하고 차분한 경기 운영과 슈팅, 해밀턴의 지치지 않는 활동량[18]과 비수같은 중거리 슈팅, 테이션 프린스의 말도 안되는 긴 신체를 활용한 협력 수비와 득점력, 팀의 정신적 지주이자 충만한 자신감, 몸싸움, 리바운딩, 그리고 빅맨으로써 코트 어디서나 슛을 던질수 있는데다 뛰어난 개인기까지 갖춘 라시드 월러스, 그리고 중앙에서 끝판왕 포스를 풍기는 철문수비 센터 벤 월러스. 이렇게 피스톤즈는 단단하고 내실있는 진용을 갖추게 되었다.

피스톤즈 시스템의 가장 큰 장점은 래리 브라운식 스윙오펜스에 최적화된 가드진용이 갖춰졌다는 것. 다른 가드들에 비해 체격과 몸싸움이 좋은 빌럽스가 탑에서 무지막지한 포스트업과 몸싸움으로 상대 1번을 체력적·정신적으로 괴롭히고, 양 코너에서는 지치지 않고 코트를 종횡무진 풍차돌리는 해밀턴이 상대 수비를 똥개훈련시키고, 고무인간마냥 긴 팔과 다리를 지닌 프린스, 어디서든 상대 빅맨을 끌고나와서 중장거리 슛을 던질 줄 아는 쉬드가 코트를 벌려주고 골밑에는 벤 월러스가 개인기는 없지만 강력한 공격리바운드로 슈터들을 지원해줬다.

수비에 있어서는 벤 월러스라는 중심이 떡 버티고 있었다. 벤 월러스는 4회나[19] NBA 올해의 수비 선수 상을 탄, 괴물 수비형 센터였다.[20] 또한 빅벤의 키를 제외하면 모든 포지션에서 평균 이상의 사이즈와 피지컬로 공격수들을 지치게 만들었다.

특히 2003-04시즌 도중 라쉬드 월러스의 영입은 이들이 강호에서 우승권팀으로 발돋음할 수 있는 마지막 퍼즐이었다. 피스톤즈의 가드진은 둘 다 돌파력이 약해 점프슈팅팀이었고 쉬드 이전에 골밑 주전 나머지 한 자리는 메멧 오쿠어와 엘든 켐벨이 로테이션으로 나왔는데[21] 켐벨은 샤킬 오닐조차 부담스럽게 하는 거구와 파워를 지녔지만 전성기가 다 지난 35세 노장이라 공격력은 기대할게 못 되었고 오쿠어는 로우포스트에선 별다른 위협이 못되는 점프슈팅센터였다. 이를 타파해준 것이 바로 쉬드로, 비록 그가 당시 외곽 비중이 높다는 악명이 있어도 그는 기본적으로 뛰어난 포스트업 득점원이었기에 비로소 로우포스트에서 믿고 볼을 투입할 수 있는 선수를 얻게 된 것이다. 이때 결승은 저득점 시리즈였는데, 특히 파이널 4차전에서 쉬드는 팀내 최고인 26점을 넣어주며 샤킬 오닐이 괴력을 발휘한 레이커스가 따라오지 못하게 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쉬드가 과소평가받는 또 다른 부분은 바로 수비. 올디펜스팀 선정이 없어서 간과되지만 라쉬드 월러스는 훌륭한 골밑 수비수였다. 역대 최고수준의 수비력을 지닌 빅 벤의 유일한 단점은 7피트 이상 선수와의 매치업에서 비교적 약하다는 것인데 이를 깔끔하게 해결해준 것이 바로 라쉬드 월러스의 영입. 실제로 2005 파이널에서 팀 던컨과 매치업했으며, 빅벤의 이적 이후 센터수비를 맡으며 전력을 재정비한 2007-08 피스톤즈가 59승이나 거두는 강팀으로 거듭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22]

거기에 수비를 중시하고 규율이 엄격한, 언제나 명장으로 불리었지만 우승은 없는, 꼰대라고까지 불리던 래리 브라운 감독의 멋진 작전과 철학이 가미돼[23], 스타들이 많지만 조직력이 부족했던 LA를 꺾고 아무도 예상치 않았던 우승을 쥐었다.

당시 LA를 상대하는 팀의 모든 고민은 '샤크를 어떻게 막느냐'였으며 이에 파생한 전술이 그 유명한 '핵-어-샤크' 즉 Beat LA의 핵심은 핵-어 샤크로 받아지고 있었다. 이를 유일하게 성공해낸 팀은 팀 던컨을 보유한 샌안토니오 스퍼스뿐.

그러나 디트로이트는 역으로 샤크에게 줄 점수는 준다 대신 우리는 코비를 막는다라는 작전으로 나온 것이다. 우선 6'9의 키를 가진 테이션 프린스의 끈덕진 대인수비가 빛을 발해 코비의 득점을 최대한 묶어두었다. 물론 이 작전은 혼자서도 골밑을 쑥대밭이 되는걸 막은 벤 월라스과 엘든 켐벨[24]존재 덕분에 가능한 작전이었다. 팀공격이 막히다 보니 혼자 득점하던 샤킬 오닐이 지쳐버려 후반기에 별 위력을 못 보이는 사태도 벌어졌다. 실제로 이때 오닐은 괴물같은 기록을 냈으나 전반득점 비중이 훨씬 높았다.

참고로 2004 파이널 3차전에서는 NBA 플레이오프 역사상 최초로 레이커스의 득점을 70점 미만으로 묶어놓았다.

이 시리즈 업셋의 또다른 원동력은 백코트진의 압도적인 피스톤즈 우세였다. 트라이앵글 오펜스에 적응 못하고 이미 나이가 들어 스텝이 무뎌진 게리 페이튼 천시 빌럽스에게 공수 양면에서 압살당했고,[25] 시즌초부터 스캔들에 휘말린 코비 브라이언트는 당시 무명에 가까웠던 테이션 프린스의 거미손 수비에 말려 자멸했으며, 데릭 피셔도 부진하며 레이커스의 외곽이 공격에서도 수비에서도 무너져버렸다. 거기다 부상으로 골골대던 칼 말론은 아예 존재가 사라졌으며, 공격에서는 제 몫을 했던 샤킬 오닐도 골대 밖으로 나가면 느릿느릿한 수비수라는 약점이 공략당했다. 이렇게 레이커스의 여러가지 불안요소를 완벽하게 활용한 피스톤즈가 업셋에 성공, 누구도 예상치 못한 우승을 거두었다.[26] 이 시리즈는 팬들에게 아직까지 가장 멋진 언더독의 우승으로 회자되고 있다. 2003-04 시즌부터 2006-07 시즌까지가 이 "배드 보이즈 2기"의 전성기.

5. 리빌딩

우승 이후 꾸준한 성적을 내면서 강팀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나, 벤 월러스가 FA계약으로 팀을 떠나고,[27] 2009년에 천시 빌럽스 덴버 너기츠로 트레이드되며[28] 배드 보이즈 2기가 해체되었고, 단장 조 듀마스는 벤 고든, 찰리 빌리누에바에게 오버페이를 하는 등 연이은 삽질을 하며 08-09시즌 이후 하위권에 처져있는 상황.

게다가 조 듀마스의 로드니 스터키를 향한 이해못할 사랑때문에 굉장히 많은 기회도 주고 당시로서는 거액인 3년 25M의 연장계약을 체결하는등 무한 애정을 보냈으나... 결국 스터키는 디트로이트에서 성공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인디애나 페이서스로 떠났다.

결국 그 이후에는 그렉 먼로, 브랜든 나이트, 안드레 드루먼드등 유망주를 키우며 인고의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5.1. 2013-14 시즌

2013년에 애틀란타 호크스 밀워키 벅스의 중심선수인 조쉬 스미스와 브랜든 제닝스를 데려오고 왕년의 스타인 천시 빌럽스도 귀환하면서 탱킹 대신 플레이오프 진출을 노리는 듯 한데...[29] 연고지인 디트로이트가 파산해버린 데다 조쉬와 제닝스는 둘 다 난사로 악명 높은 선수들이라 팬들은 걱정하는 중이다.

그리고 예상대로 드루먼드 & 먼로의 빡빡한 골밑에 조쉬는 전혀 끼어들지 못하고 겉돌고 있으며 제닝스는 팀을 옮긴 후에도 난사중. 천시 빌럽스는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시절부터 갑자기 시작된 유리몸 기질을 유감 없이 발휘. 로드니 스터키 역시 골밑에서 제닝스를 따라하는 듯한 모양새를 보이기도. 나름대로 돈 좀 써서 영입을 했는데도 4할이 안 되는 승률을 찍으며 암흑기에 머무를 예정인 듯 하다.

결국 시즌 중반 감독이었던 모리스 칙스는 경질되었으며 어시스턴트 코치였던 존 로이어가 남은 시즌을 지휘했으나 여전히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 채 시즌을 마쳤다. 결국 과거 피스톤스의 주축선수이자 2000년부터 팀의 단장을 역임했던 조 듀마스 역시 올 시즌을 끝으로 단장 직에서 물러날 것이라는 뉴스가 나왔다.

시즌 성적은 29승 53패(.354), 뒤에서 전체 8번째 성적. 만약 본인들보다 성적이 더 좋은 팀이 로터리 픽에 걸려서 픽이 한 단계 밀려나게 될 경우에는 샬럿 밥캣츠에게 팀의 골칫덩어리였던 벤 고든을 처리하기 위한 댓가로 내준 1라운드 드래프트 지명권[30]을 내줘야 하는지라 팬들은 답답할 지경. 그렇잖아도 뎁스 면에서 매우 훌륭한 것으로 평가받는 드래프트인데... 그리고 클리블랜드가 1픽을 먹고 9픽을 진짜로 샬럿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팀의 파워 포워드 그렉 먼로가 제한적 자유계약 선수로 풀릴 예정인데, 안드레 드루먼드와의 시너지 효과가 기대했던 것만큼 나오지 않고 있어 새 단장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기로에 놓이기도 한다.

5.2. 2014-15 시즌

올랜도 매직을 파이널에 진출시킨 경험이 있는 스탠 밴 건디를 새 감독으로 영입했다. 그러나 21경기를 치른 시점에서 12연패를 기록하고 3승 18패, 1할대 승률에 지구 최하위, 컨퍼런스 14위를 기록하며 바닥을 기고 있다. 꼴등인 필라델피아가 탱킹을 위해 하위리그급 선수들로 머릿수만 채워놓은 것을 감안하면 디트로이트가 꼴등이나 다름없다.

팀내 야투시도 1,2,3위를 기록하고 있는 조쉬, 포프, 제닝스의 필드골 성공율이 모두 40%도 넘기지 못하고 있으니 제대로 된 공격이 될 리가 없다. 참다 못해 조쉬를 방출시키면서 반전을 노리는데, 초반 결과는 대성공으로 보인다. 그전까지 총 5승밖에 못했던 팀이 조쉬가 나가자 마자 10경기에서 9승 1패를 찍었으니까. 그러나 브랜든 제닝스가 시즌 아웃되면서 페이스가 다시 뚝 끊기고 말았고 레지 잭슨을 영입하기도 했으나 별 성과는 없었다. 최종 성적은 32승 50패.

5.3. 2015-16 시즌

드래프트 순위는 8번. 애리조나 대학교의 스몰포워드 스탠리 존슨를 선택했다. 그렉 먼로를 놓아줄 때가 다가온 상황.

시즌 개막후 오랜만에 3연승을 달렸다. 안드레 드루먼드가 인사이드를 지배하는 모습을 보이고, 레지 잭슨도 굉장히 날라다니고 있다. 그러나 팀이 플레이오프 경쟁 대열에 합류하다 핵작전이 적극적으로 사용되면서 안드레 드루먼드의 위력이 감소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전반기를 27승 27패로 마감했고, 어산 일야소바와 브랜든 제닝스를 내주고 토바이어스 해리스를 받는 딜을 실행했다. 조엘 앤서니와 보호픽을 내주고 마커스 쏜튼과 도나타스 몬티유나스를 트레이드 하여 벤치전력까지 보강하려 했으나, 도나타스 몬티유나스의 건강 문제로 트레이드 자체가 취소되었다..

그리고 현지시각 4월 8일, 워싱턴을 꺾고 7년 만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지었다. 인디애나 페이서스와의 동부 7,8번 시드 경쟁끝에 8번 시드가 확정되었고, 그래서 플레이오프 1라운드 상대는 동부 1번시드인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가 되었다.

시리즈에서는 매경기 접전을 벌였지만 결국 클리블랜드의 공격 리바운드를 많이 허용했고 안드레 드루먼드가 핵작전에 묶인게 뼈아프게 작용하며 0-4 스윕을 당했다.

시즌 종료 후, 현지시각 6월 30일에 필라델피아 76ers의 포인트가드 이시 스미스와 3년 1800만달러의 계약을 맺었다.

5.4. 2016-17 시즌

1옵션이던 레지 잭슨이 무릎 건염으로 결장을 하는 동안에도 해리스와 KCP가 공백을 잘 메우며 선전했으나 오히려 레지가 복귀하고 감을 찾지 못해 승률이 더 내려갔다. 12월까지의 성적은 15승 20패. 작년 돌풍의 주역이었던 잭슨은 끝내 살아나지 못하고 플레이오프 경쟁상대였던 인디애나, 시카고, 마이애미보다 처지며 37승 45패로 시즌을 마쳤다.

4월 10일 게임을 마지막으로 30년을 함께한 더 팰리스 오브 어번 힐스와 이별하고 다음 시즌부터는 디트로이트 시에 있는 리틀 시저스 아레나가 홈 구장이 된다.

5.5. 2017-18 시즌

KCP가 떠난 공백을 보스턴의 에이스 스토퍼 에이브리 브래들리로 메우고, 가드 랭스턴 갤로웨이, 포워드 앤서니 톨리버등을 영입해 벤치 뎁스를 강화했다. 드래프트에서는 듀크 대학교의 슈팅가드 루크 케나드를 선택.

시즌 초반 분위기는 좋은 편이다. 새로운 홈구장 개막전에서 샬럿 호네츠를 상대로 102-90으로 무난하게 승리를 거두고, 10월 말 서부 원정에서 좋은 오프시즌을 보냈다는 평을 받았던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크리스 폴의 공백을 잘 메우던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전년도 챔피언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를 차례로 격파하는 데 성공. 해리스가 안정감있는 에이스로 활약하는 가운데 브래들리도 명성대로 뛰어난 수비를 자랑하는 중.

그리고 한국시간 1월 30일 블레이크 그리핀을 받고 에이브리 브래들리와 토바이어스 해리스, 보반 마르야노비치, 2018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 2019 신인 드래프트 2라운드 지명권을 클리퍼스에 건넸다. 드래프트 지명권은 아쉽긴 하지만 안드레 드루먼드와 위력적인 트윈타워를 구축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4연승 이후 끊임 없는 연패를 기록하고 있다. 결국 현재 플레이 오프도 거의 사망권. 인사이드에서 날아오르는 그리핀을 원했으나, 그리핀은 다시 외곽에서 놀고 있다. 이제는 그리핀이 인사이드 공격을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고 있다.

그래도 3월 8일 토론토 전에서 페인트존 에서 18득점과 함께 31득점을 기록하여 반등의 계기를 보였다. 하지만 이날 드로잔이 클러치를 지배해서 결국 팀은 지고, 플레이오프는 사실상 끝이라고 봐야...

최종 성적은 39승 43패. 시즌 종료 후 전 토론토 랩터스 감독이었던 드웨인 케이시와 5년 계약을 맺었다.

5.6. 2018-19 시즌

자자 파출리아, 글렌 로빈슨 3세 정도의 영입으로는 지난 시즌과 크게 달라질 요소가 없었고, 그리핀의 커리어 하이급 활약과는 별개로 팀은 여전히 플레이오프권과 탱킹권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전반기 성적은 26승 30패로 동부 9위.

그러나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로 12승 2패를 기록하며 가파른 상승세를 탔다. 그리핀이 버텨 주던 팀에 드러먼드와 레지 잭슨, 신예 루크 케너드 등 여러 선수들의 적절한 활약이 더해져 만만히 볼 수 없는 팀이 되었다는 평가다. 3월 초순 기준 5할 승률도 넘어섰고 순위도 6위로 끌어올렸으며, 9위에 4.5게임 차이로 앞서며 플레이오프행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그렇게 정규시즌 마지막까지 샬럿 호네츠와 플레이오프 막차를 타기 위해 경쟁을 펼치고, 정규시즌 마지막 상대인 뉴욕 닉스를 115-89로 제압하며 샬럿의 승패여부와 상관없이 8위로 3년만에 플레이오프에 복귀하였다.

정규시즌 최종성적은 41승 41패로 딱 5할을 맞추며 동부 8위로 플레이오프 막차에 탑승했다. 1라운드 상대는 전체 1위 밀워키 벅스. 플레이오프 1, 2차전은 주전 멤버인 블레이크 그리핀이 무릎 부상으로 참가하지 못하며 패배하였다. 3차전부터 복귀한 그리핀이 경기마다 20점 이상 득점하며 고군분투하였으나 피스톤즈는 결국 잇따라 패배하며 0-4 스윕으로 플레이오프에서 광탈하였다.

5.7. 2019-20 시즌

오프시즌에는 바로 전 시즌에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에서 부활의 기미를 보인 데릭 로즈 마키프 모리스를 영입했다. 하지만 시즌 성적은 추락하고 말았다. 20승 46패로 동부 13위. 코로나 사태로 인한 리그 중단 후 버블 재개 시에도 초대받지 못하고 그대로 시즌을 마감했다.

블레이크 그리핀은 18경기 출장에 그쳤고 출장했던 경기에서도 예전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는 부진한 모습만을 보여주며 팀의 추락에 일조했다. 때문에 구단에서도 성적을 포기하고 시즌 중반에 안드레 드러먼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로 트레이드했으며 레지 잭슨 마키프 모리스를 방출했다[31]. 데릭 로즈도 트레이드할 수 있다는 소문도 돌았지만 로즈가 디트로이트에 남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가까스로 팀에 남았다.

앞으로 구단이 어떤 노선을 걸을지는 그리핀의 회복여부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그리핀이 전의 기량을 찾을 수 있다면 리툴링을 걸을 수도 있겠지만 아니라면 남은 자원이 마땅치 않아 리빌딩이 강제될 수 있는 상황이다.

5.8. 2020-21 시즌

결국 그리핀의 기량이 경기를 망치는 수준까지 떨어지면서 올스타 브레이크 기준으로 10승 26패로 동부 최하위를 기록했다. 그나마 FA로 영입한 제라미 그랜트와 19순위로 지명한 루키 사딕 베이가 괜찮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7순위 루키 킬리안 헤이즈가 부상으로 26경기 출장에 그친 것도 아쉬운 점.

이후 데릭 로즈는 트레이드로, 블레이크 그리핀은 바이아웃 형태로 팀을 떠났고, 그리핀은 브루클린에 적을 두자마자 이전에 볼 수 없던 적극성과 허슬을 보이며 디트로이트 팬들에게 배신감을 안겼다. 최종적으로 20승 52패로 시즌을 마감했다. 동부 최하위, 리그 29위의 성적이다.

5.9. 2021-22 시즌

2021 NBA 드래프트 1순위 지명권을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 오클라호마 주립대학교의 대형 PG 유망주 케이드 커닝햄을 지명할 것이 유력하게 여겨진다.

1970년 이후 50년만의 1픽을 얻어내며 짧지만 성공적인 탱킹 후 재도약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예상대로 케이드 커닝햄을 지명하였다.

5.10. 2022-2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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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NBA 드래프트에서 5픽을 얻어서 제이든 아이비까지 이어지는 4명의 대형 유망주를 뽑을 수 없을 듯 보였지만 앞선 4픽에서 새크라멘토 킹스 포워드 키건 머레이를 뽑으면서 최고 가드 유망주 아이비를 뽑을 수 있게되었다. 아이비를 뽑으며 케이드 커닝햄과 함께 유망주 백코트를 만듦에 이어, 13픽 빅맨 제일런 두렌과 36픽 슛 좋고 운동능력 뛰어난 가드 포워드 가브리엘레 프로치다도 트레이드로 영입하며 이번 드래프트에서 가장 수혜를 본 팀으로 평가받았다 전문가들은 '피스톤스가 이렇게 일을 잘했나?'와 같은 코멘트를 남기는 것은 덤...

5.11. 2023-24 시즌

몬티 윌리엄스 감독을 선임했다. 계약 규모는 6년 78.5M로 NBA 코치 중 역대 최다 연봉이다. 여기에 트레이드로 베테랑 조 해리스 몬테 모리스를 데려오는 등 전력 강화에 힘을 썼다.

개막 첫 3경기에서 마이애미와 샬럿, 시카고를 만나 2승1패로 좋은 스타트를 보였다. 그러나 4번째 경기부터 24연패를 찍으면서 올해도 승점자판기로 전락, 저번 시즌보다도 못한 최악의 시즌을 보여주고 있다. 그나마 해볼 만했던 유타전[32] 홈경기에서는 에이스 라우리 마카넨이 결장했다는 호재에도 불구하고, 켈리 올리닉 콜린 섹스턴의 활약으로 패배하며 연패 기록을 25연패로 늘렸다. 12월 24일 브루클린 네츠에게 126-115으로, 또다시 패배하며 단일시즌 기록으론 필라델피아&클리블랜드의 한 시즌 26연패와 타이기록을 달성했고, 27일에도 패배하며 27연패를 달성, 한 시즌 최다연패 신기록을 써냈다.

12월 26일 기준 오펜시브 레이팅은 107.7(28위), 디펜시브 레이팅은 119.1(26위)를 기록하며 공수 양면에서 모두 리그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케이드 커닝햄이 에이스 노릇을 하고는 있으나 그조차 아직 스텝업 중인 유망주에 불과하니, 도저히 이길래야 이길 수가 없는 상황이다.

설상가상 다음 상대는 보스턴, 심지어 무패를 달리고 있는 TD 던전이라 NBA 역대 최다연패인 필라델피아의 28연패 타이기록은 매우 유력한 분위기. 그래도, 이 날은 디트로이트는 좋은 모습에 보스턴이 대놓고 삽질하며 21점차로 앞서나가나 싶었으나, 정신 차린 보스턴이 야금야금 따라잡으며 3쿼터 종료 시점에서 동점이 되고 말았다. 연장 접전 끝에 아깝게 패배하며 28연패를 달성, NBA 역대 최다연패 타이기록을 이뤄내고 말았다.[33]

그러나 다음경기에서 토론토를 홈에서 129-127로 잡으면서 길고 길었던 연패를 탈출했고 연패 단독 1위도 막았다. 이에 힘입어 외국 농구 커뮤니티는 Wingstop 드립으로 폭발[34]...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 후로 서부팀과의 대전에서 다시 절찬리에 연패를 쌓으며 1월 11일 현재 3승 35패라는 가공할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이후 1월 16일 워싱턴과의 원정경기에서 129-117로 승리하며 여차저차 다시 연패를 끊었다.

2024년 3월 기준 드디어 꼴찌에서 14위로 반등했다. 트레이드 기간에 보얀, 알렉 벅스를 팔고 데려온 에반 포니에, 시모네 폰테키오 등의 롤플레이어급 선수들이 전력 상승에 도움이 되면서 가끔씩 승을 쌓고 있으며, 함께 강도높은 탱킹을 시전중인 워싱턴과 꼴찌를 향한 치열한(?)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꼴찌를 향한 레이스에서 워싱턴을 제치고 전체 꼴찌 탈환(?)에 성공하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시즌 종료 후, 몬티 윌리엄스를 해임했다.

5.12. 2024-25 시즌

신임 감독으로 JB 비커스태프를 선임했다. 감독 선임에서 좋은 평가를 듣고 있지는 않다.

초반 레이커스를 홈에서 잡는 등 10경기 4승 6패로 양호한 출발을 하고 있다.


[1] 빌 레임비어의 그 파울은 그 하나의 플레이로 인한 것이 아닌, 지금까지 그가 일삼은 더티플레이에 대한 파울일 것일 거라는 시각도 있다. [2] 여기서 순한 양이란 건 훗날 스퍼스나 불스 등에서 한 또라이짓(웨딩드레스를 입고 자서전 발표를 한다던가)과 문신을 안했다는 거지 코트 위에서는 이때가 더 터프했다. 젊고 몸매도 호리호리했던 로드맨은 흡사 야생마처럼 뛰어다녔으며 스카티 피펜의 얼굴에 지금도 남아있는 흉터를 낸 것도 이 시절이다. 사실 이때 배드 보이즈의 멤버들 중 더티플레이어가 아니었던 선수는 사실상 조 듀마스, 존 샐리 뿐이었다. [3] NBA 팀 중 플레이오프 시리즈에서 래리 버드의 셀틱스, 매직 존슨의 레이커스, 그리고 마이클 조던의 불스를 모두 꺾은 팀은 피스톤즈밖에 없었다. [4] 사실 이때 로드맨은 불스 시절보다 젊고 빨라서 전 포지션을 막을수 있었다. 불스와 붙을때 주로 막은 건 스카티 피펜이었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조던에게 붙었다. 실제로 이때 로드맨과 조던의 신체조건은 거의 비슷했다. [5] 물론 북산의 선수들이 배드 보이즈처럼 대놓고 이정환에게 더티 플레이로 막지는 않았다. [6] 특히 토마스의 경우 NBA 역대 PG Top 10은 물론이고 Top 5에도 종종 언급되며, 유투브 등지에서 그의 하이라이트를 찾아보면 정말 말도 안되는 드리블 능력과, 패싱 센스를 갖춘 역대급 포인트가드중 하나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7] 이외에도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찰스 바클리와도 크게 싸운적도 있다. 현재 바클리도 그 당시 배드 보이즈라면 학을 뗄 정도로 싫어하고 그 싸움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바클리였기에 난투극도 여러차례 마다하지 않았다. [8] 이와 같은 거친 플레이는 94년에 한 차례, 2004년에 또 한 차례 핸드체킹룰(수비수가 공격수를 손으로 견제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을 개정하면서 피지컬한 플레이가 확 줄었다. [9] 사실 거친 것보다도 빌 레임비어 항목에 나와있듯이 부상을 유발하는 더러운 플레이가 결정적이다. 래리 버드의 경우 한 때 배드 보이였던 릭 마혼과도 화해를 했지만 레임비어는 끝내 용서 못한 이유에 대해 "빌은 진짜로 상대방을 다치게 하려고 했다"고 할 정도. 터프함과 거친 것으로 따지면 스탁스-맥대니얼-오클리-유잉-앤서니 메이슨이 버티는 92년 닉스가 훨씬 더 했다. 조던이 닉스를 상대로 싸우기 직전까지 갈 정도로 고생했으면서도 피스톤즈만 유독 '농구에 나쁜 영향을 줬다'고 극딜을 하고, 버드가 레임비어와 끝까지 화해 못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오클리나 마혼도 돌파하는 선수들을 바닥에 메다꽂던 선수들이었지만, 레임비어는 점프할때 매번 발을 그 밑에 넣어 부상을 유발하고 시합 전에 "버드를 제거하겠다(take out)"고 하던 인물이다. 애초에 조던이나 버드는 터프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인물들이고, 상대팀이 거칠다고 해서 못 해먹겠다고 징징대는 선수들이 아니다. [10] 1998년 개명 전까지는 브라이언 윌리엄스. [11] 배드 보이즈 2기라는 명칭은 해외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표현이다. 아마 조직력과 수비력으로 승부하는 언더독의 이미지가 강했고, 여기에 월러스 듀오나 천시 빌럽스 등은 나름 강한 인상파였기 때문에 과거 배드 보이즈의 인상이 강한 국내팬들이 붙인 이름이지 않나 싶다. 다만, 한국만 그런 것은 아니라서 2004 NBA 파이널 우승 이후 당시의 멤버들을 가리켜 'Bad Boys 2'라고 간간히 부르긴 했다. [12] 사실 이들 입장에선 한국팬들 한정이지만 배드 보이즈라고 불리는 게 억울한 노릇인데, 배드 보이즈가 그렇게 불렸던 건 터프하고 수비를 잘해서가 아니라 이들이 진짜 나쁜놈들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멸칭이었지만, 남들 눈치 따위 볼 리가 없는 이들이 악명을 즐기면서 오히려 배드 보이즈를 자처하게 되고 팬들도 이 명칭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된 것) 위에도 자세히 설명되어 있지만 로드맨-마혼-레임비어 트리오의 악행은 소문이 자자할 정도고, 그 냉철한 버드가 이성을 잃고 덤벼들게 만들 정도였다. 거기다가 그 싸움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바클리도 난투극도 여러차례 마다하지 않을 정도였다. 이들 중 더티플레이어가 아니었던 이는 실질적으로 주전 중엔 조 듀마스 단 한 명이었고 벤치멤버 중엔 존 샐리 정도 뿐이었다. 그런데 벤 월러스는 거칠고 터프한 수비수였지만 더티 플레이어는 아니었고, 테이션 프린스, 리처드 해밀턴, 천시 빌럽스도 더티와는 거리가 멀었다. (빌럽스는 스포츠맨십상을 수상할 정도로 매너가 좋았다. 물론 이건 오리지널 배드 보이즈의 조 듀마스도 마찬가지였지만) 이들 중 악명이 높았던 이는 라쉬드 월러스 뿐이었는데, 월러스도 플레이가 더럽다기보단 포틀랜드 시절 심판들에게 항의를 너무 많이 하고 다혈질이어서 테크니컬 파울이 많았던 거고, 성숙해진 디트로이트 시절 이후론 유쾌한 성격으로 팀내 활력소 역할을 했다. 특히 보스턴 시절에 잠깐 한솥밥을 먹은 케빈 가넷과 많이 친해졌는지, 은퇴 후 둘이 방송을 같이 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이때 피스톤즈는 배드 보이즈가 전혀 아니었다는 것. [13] 2004년 파이널을 중계한 ABC 앨 마이클스 아나운서가 한 말이다. [14] 한때 제2의 조던으로 기대를 모은 스택하우스는 (조던과 같은 키에 노스캐롤라이나 출신, 똑같이 3번픽으로 지명) 6피트 6인치에 좋은 신장, 폭발적인 운동능력, 한때 29.8점까지 기록할 정도로 엄청난 득점능력을 갖추고 있었던 선수지만, 그 이면에는 그 키와 운동능력에도 불구하고 커리어 대부분 동안 3개 언저리에서 놀던 리바운드 (커리어 하이가 4.2개), 평범한 수비력, 매우 비효율적인 득점원이란 면이 있었던 선수였다. 2번으로 딱 평균인 신장에도 불구하고 그의 야투율은 비효율로 유명했던 앨런 아이버슨과 비슷했으며, 29.8점을 찍을 때 야투율이 40.2%에 3할대로 내려간 적도 몇번 있었다. 커리어 야투율이 40.9%에 불과해 아이버슨보다도 2% 가까이 낮다. 다만 아이버슨과 마찬가지로 자유투 얻어내는 능력은 뛰어났다. 쉽게 말해 아이버슨보다 큰 선수가 아이버슨보다 비효율적인데, 아이버슨만큼의 득점력은 없었다. [15] 사실 팀을 완성시킨 것은 브라운이었지만 리빌딩의 몫은 릭 칼라일에게 돌아가야 한다. 32승만을 거뒀던 팀을 50승+로 리바운딩시켰고, 팀을 플레이오프 컨텐더로서의 기초를 다진 것도 그의 공이 컸다. 3년 만에 팀을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에 보내고도 팽당했던 그는 이후 래리 브라운이 바로 우승하면서 묻혔지만, 2011년 또 다른 언더독을 마침내 우승으로 이끌면서 재평가받게 되었다. [16] 공교롭게도 닉스의 전성기 시절 최고의 수비로 '식스맨 상'을 수상했던 찰스 오클리와 같은 대학 출신이다, '버지니아 유니온 (Virginia Union)'. [17] 다만 위에 언급됐듯이 그 정도는 아니다. 1류만 아니었다 뿐이지 충분히 강호였던팀. 물론 "아무도 믿지 않았느니..."라고 표현하면 분명 오버는 맞지만 팀의 전력과 별개로 개개인의 위상은 분명 역대 우승팀들과 비교하면 떨어지는 팀이었다. 선수 중 그 누구도 당시 시즌 평균득점 20점을 넘지 않았고, 그 해 올스타전에 출전한 선수도 오직 벤 월러스가 유일했고, 월러스 브라더스를 제외한 다른 선수들은 올스타 경험조차 없었다! 한 마디로 "슈퍼스타"라고 불릴만한 선수가 하나도 없다는 뜻. 역대 파이널 진출 팀들 중에도 이런 팀은 분명 흔치 않다. [18] 일설에 의하면, 해밀턴은 자신이 기르는 개들보다 더 오랫동안 뛸 수 있다고 한다. 흠좀무. [19] 2001-02, 2002-03, 2004-05, 2005-06 [20] 샤킬 오닐의 덩크를 정면으로 막아, 오닐을 땅바닥에 구르게 한 적도 있다. [21] 오쿠어, 켐벨은 센터로 나섰고, 이땐 빅벤이 파워포워드를 맡았다. [22] 이 때 쉬드의 골밑 파트너인 안토니오 맥다이스는 키가 206cm(6피트 9인치)에 불과했다. [23] 라시드 월러스는 래리 브라운 밑에서는 상대적으로 얌전했는데, 그 이유는 래리 브라운이 라시드 월러스의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선배였기 때문이라고.. [24] 많이들 간과되는 부분인데, 이 시즌 직전에 데려온 켐벨의 존재도 컸다. 빅벤이 수비력이 뛰어나지만 206, 실제로는 203에 가까워 사이즈의 압박이 컸는데 211의 키에 수비력이 괜찮은 켐벨이 오닐을 잘 괴롭혀줘서 이 작전이 통할 수 있었다. [25] 사실 페이튼은 플레이오프 내내 부진했기 때문에 이미 파이널 쯤에는 맛이 가서 코비가 포인트가드 지원까지 나가야 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되었었다. [26] 여담이지만 우승을 하고 라쉬드 월러스는 레플리카 WWE 챔피언 벨트를 주문제작해 팀원들에게 하나씩 선물하고, 본인은 이 챔피언 벨트를 그 다음 시즌에 경기마다 들고 다녔다. 실제로 2004-05 시즌 당시 경기중계를 보면 경기 전 선수들이 경기장에 도착하는 장면을 보여줄 때가 있는데 이때 월러스는 커다란 벨트를 메고 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물론 2005년에 스퍼스에게 패하며 더 이상 벨트를 들고 다닐순 없게 됐지만. [27] 시카고 불스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를 거쳐서 다시 돌아오긴 했지만 전성기는 이미 지났고.. 2011-12 시즌 종료 후 은퇴. [28] 트레이드 상대로 받아온 선수가 앨런 아이버슨이다. 애초에 샐러리캡 비우기 용도로 데려온 선수라 그 시즌 후 팀을 떠났다. [29] 사실 2013-14 시즌 1라운드 픽이 8번째까지 보호된 채로 샬럿 밥캣츠로 넘어간 상태였다. [30] 13년 드래프트 전체 14픽까지 보호, 14년 드래프트 전체 8픽까지 보호, 15년 드래프트 전체 1픽까지 보호, 16년 드래프트까지 가게 될 경우 미보호 [31] 이후 잭슨 LA 클리퍼스, 모리스 LA 레이커스와 계약. [32] 참고로, 유타는 원정 백투백 경기였고, 디트로이트는 이틀 휴식이었다. [33] 올 시즌 미국의 유명 핫윙 브랜드인 Wingstop에서 디트로이트가 승리할 때마다 무료 핫윙을 5개씩 뿌린다고 했는데 2승 1패 이후 28연패를 하면서 웃픈 상황이 되어버려 미국 현지에서 밈으로 남게 되었다. [34] 피스톤즈가 승리할 경우 순살 치킨 5조각을 무료로 제공한다는 프로모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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