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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부 전경
코누랄프 (프루시아스) 유적
1. 개요
Düzce튀르키예 서북부의 도시. 아다파자르에서 동쪽으로 55km, 볼루에서 서북쪽으로 35km, 종굴다크에서 서남쪽으로 70km 떨어진 평지에 위치한다. 인구는 약 20만명으로, 뒤즈제 도의 주도이다. 마르마라 해 광역권과 흑해 연안을 이어주는 요충지로, 튀르키예 북부의 주요 산업 도시 중 하나다. 시가지 서북쪽 외곽과 남쪽 4km 지점에 백여 개의 공장으로 구성된 산업 단지가 있다. 북쪽 5km 지점 코누랄프에는 중세 시기까지 일대의 중심이던 프루시아스 (키에로스) 유적과 박물관이 있고, 동쪽에는 뒤즈제 대학이 자리한다. 1999년 11월 뒤즈제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었고, 그후 빠른 복구를 위해 튀르키예 정부는 뒤즈제를 81번째 도로 승격시켰다. 일대의 농경지에서는 담배를 비롯한 다양한 작물을 재배된다.
2. 역사
프루시아스 유적 출토 조각상 & 모자이크 |
코누랄프 일대에는 기원전 3천년 무렵부터 마을이 있었고, 폰토스 그리스 인들이 정착하여 인근 산의 이름을 따서 히피오스라 명명하였으나 곧 인근 하천의 이름을 따 키에로스 (Κίερος)라 불리게 되었다. 그러던 기원전 200년경 비티니아 국왕 프루시아스 1세가 도시를 점령하고 자신의 이름을 따 프루시아스라 개칭하였다. 약 150km 거리의 부르사와 같은 어원인 것이다. 니코메디아와 폰토스 해안의 아마스트리스 (바르틴)를 이어주는 교통의 요충지로 중시되던 도시는 서기 74년 로마 제국령이 되었고, 프루시아스 앗 히피움 (Prusias ad Hypium)으로 명명되었다. 로마 시대 프루시아스는 자치 도시로써 자체적인 동전을 주조할 수 있었고 하드리아누스, 카라칼라, 엘라가발루스 등의 황제들이 방문하였다.
다만 5세기 들어 도시는 쇠퇴하였고, 동로마 제국기에는 이웃한 클라우디오폴리스 (볼루)에 완전히 가려졌다. 그러던 1323년 오스만 제국의 초대 군주 오스만 1세 휘하의 장수 코누랄프 베이는 군사를 담당하던 오르한 왕자의 명으로 프루시아스를 점령하였다. 3년 후에는 같은 어원의 프루사 (부르사)가 함락되었다. 코누랄프 베이는 일대의 총독으로 임명되어 5년간 부임한 끝에 사망하였다. 현재의 코누랄프 지명은 그를 기리며 지어진 것이다. 한편 그 남쪽의 현 시가지 일대는 뒤즈제 평원의 한 가운데에 입지하여 장이 섰고, '평원의 시장'이란 의미인 두즈바자르로 불렸는데, 오스만 정복 후 점차 버려지게 된 프루시아스를 대신하여 일대의 중심이 되었다. 오스만 시기 일대는 오스만 해군 함대 건조를 위한 목재를 제공하였다.
수도 코스탄티니예와 아나톨리아 동부 지역을 잇는 교통과 교역의 거점이던 도시는 카스타모누 빌라예트에 속하였다. 그러던 19세기 후반 러시아-튀르크 전쟁의 여파로 캅카스와 발칸 지역의 무슬림 난민들이 정착하며 인구가 늘었고, 20세기 공화국 설립 후 이스탄불 광역권의 배후 도시로써 목재 가공을 중심으로 한 산업과 운송업이 크게 발전하였다. 한편 20세기 들어 1944년, 1957년, 1967년 등 수차례 지진을 겪었고 1999년에는 8월의 이즈미트 대지진에 이어 11월에 규모 7의 뒤즈제 지진 등 많은 지진을 겪었다. 특히 후자의 경우 850여명이 사망하고 5천여명이 부상당하였다. 본래 볼루 도에 속했던 뒤즈제는 1999년 말엽 국무 회의에서 지진으로부터 빠른 복구를 위해 자체적인 도로 개편되었다.
3. 갤러리
항공 사진
3.1. 프루시아스 유적
유적 전반부
로마 시대 다리 유적
극장 유적
로마 시대 문
코누랄프 박물관과 유물들
- [프루시아스 기타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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