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다칭에서 처음으로 개발된 유전 |
중국 헤이룽장성 다칭 시에 위치한 유전 및 그에 건설된 석유 생산 시설.
다칭은 현 중화인민공화국 정권 수립 10주년을 맞이한 해인 1959년에 발견되어 '큰 경사(대경)'라는 뜻으로 유전에 붙은 이름이다.[1] 참고로 다칭 유전이 위치한 다칭 시는 1979년에 설치된 행정구역이다. 즉 행정구역 이름 때문에 유전 이름이 붙은 게 아니고, 유전 이름 때문에 행정구역 이름이 붙은 케이스다.
2. 개발연혁
- 1959년 9월 26일: 리시광이라는 사람이 석유발견
- 1960년 2월 28일: 제1유정 탐사시추
- 1960년 4월 24일: 왕진희가 이끄는 1205시추반이 제1유정에서 첫 석유분출
- 1963년: 상업생산 시작
- 1966년: 연간 원유생산량 1천만톤 달성
- 1975년 7월 8일: 다칭유전 ~ 베이징간 송유관 준공.[2]
- 1976년: 연간 원유생산량 5천만톤 달성
- 1997년 12월: 원유 5,600만 톤을 생산하여 최고기록 수립.
- 1998년 8월: 쑹화강 홍수로 유전지대가 침수되어 생산중단.[3]
- 2003년: 감산정책 실시[4]
- 2008년: 원유생산량 4천만톤으로 하락
- 2018년: 원유생산량 3,200만톤으로 하락
- 2019년: 원유생산량 3,090만톤으로 하락
- 2021년: 다칭 유전 인근에서 새로운 셰일 유전이 발견되었으며, 지질학적 매장량은 12억 6,800만 톤으로 추정.[5]
3. 현황
1963년부터 생산을 개시하여 중국 공업을 떠받친 원동력이 되었다. 이로써 국내 자급을 달성함과 아울러 일본 및 북한에 수출하기도 하였다. 1990년 이전 중국의 주요 외화획득원이었고 석유를 자급하고 있었다. 1990년 이후 경제개발이 진행되면서 자국 공급량으로는 한계에 도달, 1993년부터 석유 순수입국이 된다.1997년 5,600만 톤을 생산하여 최고기록 수립했으며 1960년 처음 생산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100억 배럴이 넘는 석유를 생산했다. 21세기 들어 생산량이 감소하는 경향을 보여, 산둥성의 성리 유전(勝利油田/胜利油田, 승리유전)이나 랴오닝성의 랴오허 유전(遼河油田/辽河油田, 요하유전) 등으로 주 생산기지가 옮겨가는 추세이다. 현재 회수 가능한 매장량(2003년말 기준)은 약 36억 배럴(5억t)으로 추정된다.
한편으로 개혁 개방정책과 생활수준의 향상에 따른 석유 소비량 증가로 중국은 다른 지역 및 해역에서 에너지 자원 탐사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주변국과의 마찰이 점차 표면화되어 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동중국해의 중국- 일본 가스전 문제와 남중국해의 스프래틀리 군도 영유권 및 해저자원을 둘러싼 동남아시아 국가들간의 마찰이다.
4. 대중매체의 다칭 유전
4.1.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주인공들이 노리는 보물이 석유라는 설정이 있다.[6] 묘하게도 만주에 매장된 석유의 존재와 그 가치는 세월이 지난 뒤 가공의 스토리가 아니라 실제 역사상 현지를 탐사한 중국에 의해 증명되었다.일본이 "만몽(만주+ 몽골)은 제국의 이익선"이라는 슬로건을 내걸면서까지 만주에 눈독을 들인 건 넓은 토지와 그 아래 풍부하게 매장된 자원의 잠재력을 노렸기 때문이니, 특히 석유의 존재를 진작 확인하고 채굴할 수 있었더라면 일본군 지휘부가 석유를 손에 넣으려고 무모하게 동남아 방면으로 전선을 확대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태평양 전쟁/배경 참조. 실제로 일본의 석유회사가 1930년대에 미국에서 1500미터에서 2000미터까지의 지하를 굴착하는 기술을 도입해서 다칭 인근에서 탐사작업을 했으나 실패하였는데, 다칭 유전의 평균적인 유층심도는 1500미터보다 훨씬 더 깊다.[7][8]
일제가 만주에서 석유를 채굴하였더라면 중국을 침공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중국 시장이고 뭐고 그동안 밀린 빚이 한방에 해결되니까. 일본 육군도 만주국 방위에 총력을 쏟게 될 것이고, 이렇게 육군에 국가예산이 집중되면 주도권을 되찾고 싶은 해군이 뭔가 저지를 가능성 등 분기점은 많지만 가능성은 생긴다는 의미. 그리고 남방작전을 펼치지 않고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지 않았다고 가정한다면 일본 제국주의 치하의 식민지 통치체제 또한 유지되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유전 문서에도 쓰여 있듯 당시 일본의 역량으로는 수마트라 유전의 경우처럼 있어도 못 파먹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일제의 기술력이란 2차 대전 이전까지는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서방에 비하면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바람이 분다(애니메이션)에 그 당시 일본 공업 기술의 현실이 덤덤하게 잘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세계 국제 질서가 개편되었고 이로 인해 강대국들도 식민지를 세계적 규모로 독립시켜 준 사례를 감안하면 본국의 정치적·군사적·사회적·외교적 부담이 매우 큰 식민지를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도 유지시켰을 보장은 없다. 그렇게 독립한다 해도 한반도 및 일본의 식민지들은 현재 프랑스의 영향이 강한 아프리카 국가들이나 영연방 국가들처럼 구 종주국인 일본의 영향력에 휘둘리는 주변부 국가가 될 가능성도 있다.
4.2. 지팡구
훈련 중이던 해상자위대 이지스함인 '미라이'가 태풍을 만나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대[9]로 타임워프하는 대체역사를 다룬 만화 지팡구에서도 다칭 유전이 언급된다. 미라이에 의해 극적으로 구조된 쿠사카 타쿠미 해군소좌가 미라이 함내의 정보실에서 미래의 역사를 알게 되고, 당시엔 존재 자체조차 모르던 다칭 유전을 일본군 상부층에 알려 태평양 전쟁을 조기 종결시키고자 한다. 물론 당시 일본 제국의 기술력으론 어림도 없었기는 하지만...참고로 지팡구는 '일본 제국이 소유하고 있던 모든 식민지 포기, 중일전쟁을 포함한 전 침략 전쟁 중단, 추축국 탈퇴 및 추축국에 선전포고, 연합국 가입'이라는 조건으로 미국과 '조기 강화'를 맺는다.
4.3. 대통령 각하 만세
미래지식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 조지원이 직접 뒤지라고 명령을 내려서, 미국 스탠더드 오일의 전문가들을 불러들여 탐사한 끝에 발견했다. 미국과 원유를 나누기로 했기 때문에 다른 나라가 끼어들 위험도 최소화되었으며, 가채량 10억 배럴 이상이라는 조사 결과가 전해지자 한국 국채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기 시작했다. 석유 채굴 자체보다 산유국 프리미엄으로 해외 자본 도입이 쉬워져 안 그래도 대공황 극복을 위해 투자를 늘리고 있는 서방 투자자들이 한국의 산업화에 자본을 쏟아붓기 시작했다.아울러 일본에서는 늙은 이토 히로부미가 아시아에 유정이 없을 리야 없지만 왜 하필 거기냐며, 하늘은 일본을 한국에 처먹이고 싶은 것이냐고 비명을 질렀다.
[1]
「산유중공」의 요람 대경유전
[2]
대경∼북경간 송유관 1천5백7km 완공
[3]
쑹화강 범람…중국 최대 유전침수
[4]
다칭油田바닥 드러내나
[5]
中 다칭유전, 12억7000만t 셰일오일 유전 발견
[6]
다만 그 주인공들은 그저 금은 보화 같은 보물이라고만 알았지 유전이라는 것은 몰랐다.알았다면 굳이 찾아갈 필요가 없었다. 석유회사를 차려서 사업을 할것도 아니고 유전 시설에서 뿜어져 나오는 석유를 보고 저게 뭐냐고 허탈해 하는 모습은 덤. 심지어 해당 유전 시설은 윤태구가 실수로 폭파시켜 버린다.
[7]
이와 관련해서 탐사 작업에 참여한 미국계 석유회사들이 실제 석유의 흔적을 발견했으나, 미국 정부의 압력으로 숨겨졌다는 썰도 인터넷에 돌고 있지만 그냥
음모론 수준에 불과하다.
[8]
그리고 석유 채굴에 실패하자 만주에 풍부한 석탄을 이용한 석탄액화와 석유가 풍부한 유혈암을 채굴하여 석유로 액화시키는 것을 시도했지만, 둘 모두 큰 성과를 얻지 못한 채 끝났다.
#
[9]
정확히
미드웨이 해전 하루 전날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