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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07 10:54:12

남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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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南韓
South Korea
북한
北韓
North Korea

1. 개요2. 상세3. 체육4. 경제5.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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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南北戰

한과 한간 일어나는 사회적 갈등을 일컬는 말. 남북전쟁과는 다른 말이면서도 비슷한 말로, 이 문서에서 서술하는 남북전은 분단된 상태에서 상대방을 제대로 모르는 상황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이 아닌 갈등을 말한다.

2. 상세

20세기 초 대한제국이 국권을 상실하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다가, 해방 이후 미군정과 소련군정으로 분리되면서 남북분단이 이루어졌다. 이후 1946년 이북에서는 김일성을 필두로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가 발족되고, 1948년에는 이승만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발표한다. 이후 6.25 전쟁을 거치며 분단이 굉장히 심각하게 발생하게 되고 양 측이 상대방에 대한 정보가 지나치게 부족한 상태에서 냉전과 맞물려 체제 경쟁에 들어가면서부터 남북전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남북전은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났으며, 대표적인 것이 경제와 체육, 그리고 외교 분야였다.

3. 체육

우선 축구에서 남북전이 진행됐다. 최초로 남북한 축구팀이 서로를 조우한 건 1978년 아시안 게임 축구 결승전이다. 이때는 경기결과가 무승부로 끝났지만, 같은 민족이라는 배경과 체제 경쟁이라는 정치적인 이유로 남한에게는 한일전만큼 중요한 경기였고, 북한에게는 제일 지기 싫어하는 상대가 남한이었다. 특히 국제적인 경기인 월드컵이나 아시안게임, 올림픽에서 남북은 만날때마다 미묘한 긴장감을 갖고 경기에 출전하였다. 때때로 남북단일팀이 구성되어 몇몇 종목에서는 단일팀으로 출전하기도 했지만, 축구 같은 종목에서는 자존심 경기가 되어 신경전을 펼쳤다.

4. 경제

남북은 경제에 있어서도 공산주의 자본주의라는 두 체제로서 서로 필연적인 경쟁전을 벌였다. 체제 경쟁 자체가 누가 더 먼저 남북통일에 가까워지냐의 문제였기에 제일 중요한 문제였다고 볼 수 있다. 처음에는 중공업 시설이 많았던 북한이 1970년대까지는 소련과 중국의 지원까지 더해 지하철도 먼저 건설하고 사회적 시설도 남한보다 앞섰으나, 사회주의 경제의 모순들이 하나둘씩 드려나며 경제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반면에 남한은 1980년대부터 북한과 경제 격차를 훌쩍 벌리며, 잘사는 개도국으로 자리잡는다. 지금까지도 이러한 경제적 격차는 전혀 줄어들고 있지 않으며, 북한은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한 반면 남한은 선진국이 되었다.

5. 외교

냉전 시대에는 남한은 오로지 서방 국가들과 외교관계를 수립하였고, 북한도 공산진영과의 외교적 수립을 진행하였다. 탈냉전 시대가 도래하면서, 신생 독립국 및 구 식민지 국가, 즉 제3세계 국가가 많은 아프리카에서 남북한은 외교전을 벌였다. 개발협력과 ODA를 이용하여 남북한은 아프리카 내 국가들과 외교 관계 수립에 열을 올렸다. 2000년대에 들어서 남한이 북한보다 외교 관계를 수립한 국가들이 더 많고,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잦은 핵실험으로 신용을 잃어버렸다. 2024년엔 심지어 한국-쿠바 수교까지 실현되었다.

[1] 2002년 9월 7일 / 서울월드컵경기장 / 감독: 박항서 / 기술고문: 거스 히딩크 (동석) 기사(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