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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02 16:12:47

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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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사례
2.1. 사마진의 남도2.2. 조송의 남도

1. 개요



강을 건너 남쪽으로 가는 것. 여기서는 중국사에서 전란을 피해 강남(중국)으로 파천한 경우를 다룬다.

2. 사례

2.1. 사마진의 남도

265년, 조위의 황제로부터 선양을 받은 사마염은 서진을 건국하고 280년에 오를 침공하여 멸망시켰다. 280년 서진은 삼국시대를 통일했으나, 통일 이후 사마염은 사치와 향락에 빠지며 서진은 막장과 부패에 빠졌다. 그래도 사마염은 능력이 있어서 황제 노릇은 제대로 한 편이었다.

하지만 290년 사마염이 죽고, 사마충이 황제로 즉위한 이후에는 막장과 부패가 점점 심해지고, 외척이 득세하기 시작했다. 외척의 득세는 종실 제왕들의 반란인 팔왕의 난으로 이어졌다. 팔왕의 난으로 후한 말기의 모순과 중앙정부에 대한 지방정부의 공격이 일어나면서, 서진의 막장화는 돌이킬 수 없게 된다. 팔왕의 난에서 종실 제왕들은 군사력 강화를 위해 국경 수비군은 물론 이민족을 용병으로 동원하였다. 이때부터 서진은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버리고, 사분오열되기 시작했다.

팔왕의 난은 이민족들의 중원 침략으로 이어져 외부에서는 영가의 난, 내부에서는 유민들의 반란으로 서진은 완전히 무너졌고, 수도가 함락되어 황제가 포로가 되는 사태가 벌어진다. 영가의 난으로 한족은 중원을 상실했고, 중원은 이민족들의 왕조가 난립하는 오호십육국시대가 펼쳐진다. 이때 사마의의 증손 사마예는 강남(중국)에서 황제가 되어 간신히 명맥을 이어나갔다. 이러한 혼란기는 남북조시대까지 이어졌다.

2.2. 조송의 남도

1115년, 여진족의 완안아골타가 요나라가 쇠퇴한 틈을 타서 금나라를 건국하여 요나라에 대항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정세를 파악한 북송은 금나라에 요나라에 대한 협공을 제의하며, 해상의 맹약을 체결하였다. 이때 북송은 숙원사업인 연운 16주의 수복을 꾀했지만, 내부의 반란을 진압하면서 엄청난 국력을 소모했기 때문에 금나라의 군사력에 편승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1125년 북송은 요나라를 멸망시켰으나 금나라와의 약조를 어겼고, 여기에 분노한 금나라가 북송을 침공한다. 이 사태 속에서 당시 황제였던 휘종은 황태자였던 흠종에게 제위를 덜컥 양위하며 책임을 회피했다. 흠종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주전론으로 나아가 금나라의 화를 부추긴다. 결국 금나라에 의해 북송의 수도인 개봉이 함락당하고 흠종과 휘종을 비롯한 북송의 황족과 관료들이 금나라에 포로로 끌려갔다.

조송은 결국 화북을 상실했고, 강남(중국)에서 휘종의 서자였던 강왕 조구가 황제로 즉위하여 간신히 조송의 명맥을 이어나갔다. 이를 기점으로 금나라가 화북을 지배하고, 조송이 강남을 지배하면서 2차 남북조시대의 형세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