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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18 20:02:54

난전

1. 亂戰
1.1. 사전적인 의미1.2. 예시1.3. 1에서 유래한, 코에이사의 게임 삼국지 11 특기
2. 亂廛
2.1. 금난전권(禁亂廛權)

1. 亂戰

1.1. 사전적인 의미

전투나 운동 경기 따위에서, 두 편이 마구 뒤섞여 어지럽게 싸움. 또는 그런 싸움. 양측의 진형이 무너지면 이런 싸움이 된다. 비슷한 의미의 단어로 '혼전(混戰)', 속된말로는 '진흙탕 싸움'이 있다.

그리고 사극을 보면 알겠지만, 사극에선 어떤 상황이건 간에 교전이 벌어지면 상황이 어쨋건 간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난전만 펼쳐진다(...).[1] 원래 전근대 전투의 핵심은 진형간의 전투였고 잘 갖춰진 진형이 뭉태기로 오와 열을 지킨 채 싸우는게 핵심이다. 진형이 갖춰진 세력은 진형이 흐트러진 상대를 상대로 손쉽게 승리를 거둘 수 있다. 이 진형을 무너뜨리기 위해 기병의 기동성을 이용한 스웜 전술과 기마 돌격 전술이 있는 것이다.

실제로 난전이 되면 조직력을 바탕으로 하는 군대의 전술이 무용지물이 되거나 지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꽤나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특히 난전을 당하는 쪽은 십중팔구 전열이 와해되거나 기습을 받는 등 불리한 입장인 경우가 많으므로 거의 다 패배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병사 개인의 전투 능력과 혼란을 수습하는 지휘관의 역량이 중요해진다. 때문에 문명화된 군대보다 소위 야만인 군대가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상대의 조직력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일부러 난전을 유도하는 사례가 있다.

다만 난전을 전략적으로 써먹는 경우도 가끔씩 있는데, 이런 경우는 어느 한 쪽의 군세나 전력이 상대적으로 약하거나 하여 전면전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을 경우 기습, 특히 깊은 밤 중의 야습 등을 통하여 상대 진영에 혼란을 일으키거나, 또는 적들의 군세가 다른 세력들이 연합했을 경우 그 난전으로 서로간의 싸움을 유도하여 그들이 부지 중에 크나큰 피해를 입히는 것을 노리고 난전을 유도하는 경우도 있다. 또는 전혀 연관이 없는 다른 세력을 치게 만들어 그들을 끌어들이는 수법도 있고.

특히나 난전을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목적 중에는 적 진영의 수뇌부, 전략적 요충지 및 보급 지대, 진형의 사각지대를 노리고 난전을 일으킨 사이 소수의 별동대나 기습 부대가 침투하여 적장이나 주요 군사적 인물들을 처치하거나, 중요 요충지를 기습 점거하거나, 보급 지대를 파괴하는 등 상대의 허를 찌르는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전황에 따라 어떻게 전략을 짜고 실행하느냐가 중요하다. 성공했을 경우 적들에게는 막대한 피해를 입히면서 아군은 전략적 이득이나 실리를 챙길 수 있다는 장점도 있으므로 몇몇 전투에서 의도적으로 난전을 유도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1.2. 예시

1.3. 1에서 유래한, 코에이사의 게임 삼국지 11 특기

해당 특기를 가지고 있는 장수의 부대가 숲에서 공격할 시, 모든 공격이 크리티컬이라는 효과를 가진 특기. 일반 공격도 항상 크리티컬이므로 숲에서 만큼은 패왕이나 신장보다 더 유용한 특기다. 조건이 다소 까다롭긴 한데, 애초에 중원과 산월 지방엔 숲 지형이 널려 있으니 상당히 많은 상황에서 활용도가 높다.

활용 예로 맹획으로 플레이 시 숲 지형에서 나선참으로 공격할 시 전법만 성공한다면 제갈량이라도 얄짤없이 펑펑 크리티컬 터져서 혼란이 걸리므로 무진장 유용하다. 또한 숲지형에서 숲이 아닌 지형에 있는 적(성, 항구, 관문을 포함)에게 공격할 때에도 크리티컬이므로 노병부대나 원거리 공성무기와도 상성이 좋다.

특기를 가지고 있는 장수는 유벽, 맹획, 냉포, 수호전무장 해보와 전호, 콘솔 특전 여무장인 왕열.

2. 亂廛

무허가 점포 및 노점상을 일컫는 단어.

조선시대에는 국가의 허가를 받은 육의전 등의 시전 상인만이 공식적으로 4대문 안에서 상행위를 할 수 있었고, 허가를 받지 않은 상인들이 가게를 열거나 허가받은 이상으로 점포를 확장할 경우 난전(亂廛)이라 하여 처벌받을 수 있었다.

순조 14년(1814년)기록에 따르면 난전에서 총탄, 총칼도 팔았다고 한다. 다음은 해당기록.
삼군문(三軍門)에서 첩보(牒報)하기를,

' 화살 이외의 군기(軍器)는 사사로이 만들고 팔 수 없도록 엄격히 법으로 금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근래에 화약, 탄환, 총칼 등을 가게에 벌여놓고 마음대로 팔고 있으며, 심지어 계(契)를 만들어서 도매까지 하고 있습니다. 만약 엄단하지 않는다면 훗날의 폐단이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부터 옛법을 거듭 밝혀서 엄격하게 과조(科條)를 제정해야겠습니다.' 하였습니다.

군기를 사사로이 만들어서 팔고 심지어 계까지 만들고 도매하는 행위는 보통의 난전(亂廛)과 같이 논죄할 수 없습니다. 사사로이 만들고 도매 행위를 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사사로이 주전(鑄錢)하거나 사사로이 책력을 만드는 형에 따라 사형으로 처단하고, 서로 사사로이 사고파는 행위 등은 모두 사형을 한도로 엄격히 처벌하되, 연한을 정함이 없이 극변(極邊)으로 원배(遠配)하소서. 그리고 양 포도청이 주관해서 조사하여 물종(物種)은 각각 해당 군문(軍門)으로 분송(分送)하고, 죄인은 형조로 이송해서 율에 따라 감단(勘斷)하되, 포도청과 법사(法司)의 사목(事目)에 기재하도록 하소서."

하자, 그대로 따랐다.
순조 14년 2월 10일 임인 1번째기사

현대에도 난전이라는 용어가 노점상과 비슷한 뜻으로 계속 쓰이고 있다.

2.1. 금난전권(禁亂廛權)

상술한 난전에 대한 단속권. 즉, 금/난전/권(난전을 금지하는 권리) 식으로 생겨난 단어이다.

조정이 모든 상인들에게 일일이 징세를 하기가 어려웠으므로 한양 내 시전 상인들에게 독점 판매권을 주고 그 대신 시전 상인들로부터 안정적으로 세수를 충당하기 위하여 시전 상인들에게 허가받지 않은 난전을 단속하도록 준 권한이다.

물론 난전을 열어도 시전상인이 단속을 할수 없는 세력이 있었는데 다름아닌 훈련도감을 위시한 직업군인 가족들이었다. 이들 직업군인들은 조선 특유의 짠 급료제도 덕분에 부업을 하지 않으면 먹고 살기 힘들어서 상행위를 통해 부족한 급료를 보충했다. 혹시라도 시전상인이 단속에 나올 경우 진짜 군대가 와서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으며 시전상인들이 군인가족의 상행위를 막아달라 청원하기도 했지만 조정에서도 군인가족의 상행위는 눈감아 주었다.

세수 확보라는 의도는 좋았으나, 시전 상인들이 이를 국가로부터 위임받아 행사하면서 자의적인 체포, 감금, 구타, 상품 몰수 등을 행사하여 악명이 자자하였음은 물론, 자유로운 경제활동에 지장을 주었다. 심지어 질 좋은 상품을 만들거나 유통하는 상인들에게 현대의 대기업마냥 원가 이하의 납품을 강요하기도 했다고. 이 때문에 난전은 대개 시전 상인의 영향을 받지 않는 도성 밖(칠패, 송파 등지)에 형성되었다.

결국 1791년( 정조 15년) 신해통공으로 육의전의 것을 제외한 모든 시전 상인의 금난전권이 폐지되고, 사상[2]의 성장이 더욱 가속화하게 된다.

사실 정조가 신해통공을 통해 금난전권을 폐지한 것은 대상인들과 조정 대신들간 성행하던 정경유착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이부터 김육까지 조선 중기 명신들이 괜히 대동법과 같은 정책을 주장한 게 아니다.


[1] 정확히는 한국 사극의 문제다. 드라마 로마 바이킹스의 경우 대열전투가 제대로 구현되어 있다. [2] 개인 상인. 송상(개성 상인), 만상(의주 상인), 내상(동래 상인), 경상(서울 상인)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