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19 11:36:31

나민희

나민희
파일:나민희-이만갑.jpg
출생 1991년 10월 13일
평안남도 평양시
국적
[[북한|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1]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2]
가족 아버지, 어머니, 1남 1녀 중 막내
배우자 김정국[3]
학력 평양 중앙요리학원
이화여자대학교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데뷔 이제 만나러 갑니다 ( 채널A)
링크 평양여자 나민희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
2.1. 북한에서의 삶2.2. 탈북과 대한민국 입국
3. 여담

[clearfix]

1. 개요

북한이탈주민 출신 방송인, 유튜버, 이제 만나러 갑니다의 출연진.

2. 생애

2.1. 북한에서의 삶

평양시 태생이다. 북한에서는 드물게 온 집안이 공학과 의학을 전공한 엘리트 가문이지만 본인 말로는 가족 중에 제일 공부를 못해[4] 3년제 평양 중앙요리학원에 들어갔다고 한다.[5]

졸업요건으로 학위논문을 써야 했는데 나민희는 요리과에 입학해서 '강냉이 가공원리와 방법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졸업논문을 쓰고 졸업했다고 한다.

나민희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해방 직후 북한 최초의 유학생으로 기계 공학 전공으로 체코와 모스크바에서 유학하다가 만나게 되어 결혼 했으며 이후 유럽지역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했으며, 외삼촌은 컴퓨터 공학 전공이라고 한다.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는 모두 의사이고 평양 중앙병원 등에서 근무했었으며, 아버지는 평양 기계대학, 어머니는 김일성종합대학 자동화 학부 출신, 오빠는 김책공업종합대학 핵물리학 전공. 그야말로 온 집안이 이공계 엘리트. 토대가 좋았고 충성심도 높았지만 고지식한 집안이었기에 정작 집안의 경제적 형편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고 한다.[6]

2011년 요리학원 졸업 후 첫 직장으로 개선청년공원의 레스토랑에서 햄버거를 만들었는데 당시 햄버거를 엄청나게 좋아하던 김정은이 직접 방문했었다고 한다[7]. 하지만 이 때는 이미 직장을 옮긴 이후라서 동료들만 김정은이랑 1호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 레스토랑에서 햄버거를 만들 때 케찹과 밀가루 등의 대부분 재료와 심지어 포장지까지도 싱가포르 등에서 수입해서 만들었는데 정작 팔았던 가격은 암달러 시세로 1불도 안되어 엄청나게 적자로 팔았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평양의 여러 레스토랑을 다니며 일하다가 어떻게든 해외에 나가고 싶어하던 차에 유럽 몰타에서 일하는 3년 계약의 해외 봉제공장 파견직에 지원해 합격하게 되었다. 합격 이후 해외 파견을 위한 사상 교육 등을 받고 나서 2014년 10월 평양에서 기차를 타고 중국 베이징으로 가게 되었는데 중국의 북한식당에서 팔기 위한 술과 담배, 인형재료까지 엄청난 짐을 들고 가야 해서 많이 고생했다고 한다. 며칠동안 베이징에 있는 북한대사관에서 머물다가 비행기를 타고 두바이를 거쳐 몰타에 도착했다. 당시 일했던 몰타의 중국계 봉제공장에는 북한 직원 뿐만 아니라 중국인과 베트남인, 몰타인 등 여러 나라의 사람이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 북한 직원이 가장 일을 잘하고 열심히 했었다고 한다.

2.2. 탈북과 대한민국 입국


2014년 10월부터 3년 일정으로 봉제공장에서 그리고 가끔은 북한 식당에서 근무하면서 하루에 12시간 가까이 혹독하게 일했었지만 정작 북한 정부는 약속했던 월 500유로의 임금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고 하루 12시간씩 한 달 일한 대가로 받은 월급이 20만원 수준이었다. 알고보니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중국인들은 2000유로를 받았다고 한다.

휴대폰도 사용할 수 없었으며 퇴근 후나 주말에 편하게 쉬고 즐기는 다른 나라 직원들과는 달리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숙소에 갇혀서 휴식도 제대로 취하지 못하고 사상교육과 살벌한 감시가 지속되었다. 그러다가 친한 베트남인 동료에게 휴대폰을 하룻밤 동안 몰래 빌렸는데 인터넷에서 자신이 좋아하던 한국드라마 꽃보다 남자 김준을 검색하려고 'Kim J'을 타이핑 하는 순간 Kim Jong Un이 자동추천 검색어에 떴다고. 설마 하는 생각에 김정은을 검색하게 되었는데 자기가 신처럼 떠받들던 지도자가 전세계 사람들의 조롱[8]을 받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 방송을 찾아보다가 우연하게 이제 만나러 갑니다를 본 것이 탈북을 결심하게 되는 큰 계기가 되었다.

탈북을 결심한 이후, 평소 속내를 터놓고 지내던 동료 두 명[9]에게 탈북을 제안했고 모두 승낙하여 탈북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보위원이 유럽에 있는 북한대사관에 일을 보러 가면서 통역사에게 북한노동자들의 여권을 맡겼는데[10] 그 통역사가 탈북에 동의한 두 명 중 한 명이었다.

통역사는 나민희의 여권을 찾아 돌려주었고 생일날인 10월13일을 디데이로 잡고 치과 치료를 핑계로 숙소로 돌아가 짐을 챙긴 후 다른 두 북한 동료들과 함께 근무지를 이탈했다. 이들은 다른 일반적인 탈북자들과는 달리 북한 여권[11]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를 가지고 무사히 몰타 섬을 떠나는 여객선을 탈 수 있었고 이탈리아에 도착하여 기차를 타고 오스트리아를 거쳐 독일로 가게 되었다.

독일에 도착한 뒤에 독일 임시 영주권을 받기 위해 난민수용소에서 난민 신청을 했으나 시리아 난민 사태로 인해 예상치 못한 지연이 예상되었고, 난민수용소의 출입이 자유롭다보니[12] 안전이 보장되지 않아 결국 계획을 바꾸어 근처 한국 영사관에 전화로 망명 신청을 했다. 황당하게도 업무시간이 지났으니 다음 날 다시 연락을 해달라고 해서 결국 근처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다음 날 아침 다시 영사관에 전화를 해 약속을 잡고 영사관 근처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놀라운 점은 그 영사관 직원이 이미 그 탈북한 세 사람의 얼굴과 이름을 모두 알고 있었고 당일 저녁 7시에 한국으로 가는 항공편 티켓까지 미리 끊어 놓았다는 것이다.[13] 영사관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임시 여권이 발급되었고 이러한 준비로 인해 대한민국 외교공관을 통한 탈북 역사상 최단기록으로 한국에 입국할 수 있게 되었다.

3. 여담


[1] 북한 여권으로 남유럽에 입국했다. [2] 한국의 법에서는 헌법 제3조의 영토 조항을 바탕으로 북한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사실상 한국 국적을 보유한다고 간주한다. # [3] 김책 공대를 다니다가 프랑스에 건축 전공으로 유학 중에 한국으로 망명. 이만갑에 같이 출연했으며 2021년 결혼. 평양여자 나민희 유튜브 채널에 간간이 등장. [4] 평양에서 유명했던 오빠나 다른 가족에 비해서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로는 어렸을 때 가끔 전교 1등을 할 정도의 수준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온 가족이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경제적인 보상이 그다지 뒤따르지 않는 것을 보고 차라리 외국에 나가 큰 돈을 벌 수 있는 전문 요리사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5] 사실 이 학교도 북한의 중간급 이상 간부나 부유층 등의 특권층이 딸들을 가장 보내고 싶어하는 학교 중의 하나로 아무나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여학생의 비율이 90%로 거의 여대 수준이며, 졸업 후 해외에 파견될 기회가 많아서 꽤 인기가 있다. [6] 북한에서 이공계 직업은 당간부와는 달리 권력을 이용해 빼먹을 게 없기 때문이다. [7]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98598 [8] 아마도 김정은/풍자에 나오는 합성 사진을 본 듯하다. [9] 그중의 하나가 동갑이자 유럽생활 2년 선배였던 북한 수중발레 국가대표 출신 류희진이다. 처음에는 몰타에 있는 '고려'라는 이름의 북한식당이 있었다. 거기서 피노키오라는 별명의 북한 할머니가 류희진을 포함한 3명의 북한 서빙 여직원에게 뜬금없이 춤 공연을 강요해 춤을 추게 되었다. 이러한 춤에 처음에는 장사가 어느 정도 되다가 1년 만에 손님이 없어서 식당이 망하고 모두 송환되었지만, 정말 운좋게 류희진은 남아서 몰타 수중발레 국가대표팀을 가르칠 수 있었다. [10] 2015년 EU에서 갑자기 북한 해외노동자의 인권탄압에 대한 현장조사를 진행했는데 이때는 담당 보위원이 북한 노동자들에게 여권을 잠시 돌려주었다. 통역사에게 여권을 맡긴 것도 조사가 나오면 통역사가 대신 나눠주라는 의도였다. [11] 류희진은 여권이 없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외국인 등록증을 가지고 있었다고 밝혔다. [12] 이름만 수용소지 난민들이 자유롭게 밖에서 일을 하고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 [13] 밤새 국정원에서 이 세 사람의 신원을 파악해 영사관에게 정보를 제공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14] 그 역시 이만갑에 출연하기도 했다. 이만갑 공식 1호 부부. [15] 어릴 때 남편과 꽤 가까운 동네에 거주한 경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