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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06 05:26:06

기욤 앙리 뒤프르

<colbgcolor=#da291c><colcolor=#fff> 스위스군 총사령관
기욤 앙리 뒤프르
Guillaume Henri Dufour
파일:Guillaume_Henri_Dufour.jpg
출생 1787년 9월 15일
신성 로마 제국 콘스탄츠
사망 1875년 7월 14일 (향년 87세)
스위스 제네바
국적
[[스위스|
파일:스위스 국기.svg
스위스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학력 에콜 폴리테크니크
에콜 다플리카시온
직업 군인
복무 대육군(1811~1814)
스위스군 (1817~1867)
최종 계급 대장
참전 나폴레옹 전쟁
존더분트 전쟁

1. 개요2. 생애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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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위스의 군인으로 스위스의 통일을 주도했다. 그는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 및 프로이센과 존더분트에 맞서 승리했다. 이로써, 스위스는 다시 한번 자주독립국임을 보장받았다.

2. 생애

뒤푸르는 그의 부모가 제네바에서 일시적으로 추방당했던 시절 콘스탄츠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베데딕트는 제네바의 시계공이자 농부였는데, 그가 일전에 의학과 미술을 공부했던 제네바의 학교로 아들을 보내게된다 그 뒤 1807년, 뒤푸르는 파리로 가서 에콜 폴리테크니크에 들어갔는데, 그 후에 사관학교로 진학하였다. 이 때, 장 니콜라스 피에르 아셰트(Jean Nicolas Pierre Hachette)의 문하에서 도형 기하학을 공부하였고, 1809년에 5등으로 졸업하여 에콜 다플리카시온(École d'Application)에 군사 기계학을 공부하기 위하여 진학한다.

1810년에는 프랑스군 소속으로 영국의 공격으로부터 케르키라 섬을 방어하기 위하여 그곳에 파견되고, 섬의 오래된 방어시설의 지도를 제작하는데 그의 시간을 보낸다.

1814년이 되어서 뒤푸르는 프랑스에 돌아와서 리옹의 방어시설 수리에 대한 공로로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는다. 그리고 1817년에는 제네바로 돌아와 대위 계급으로 스위스군에 입대해 제네바 주의 군사기술 담당 사령관이 되고, 동시에 제네바 대학의 수학과 교수가 된다. 그의 임무 중에는 주의 지도를 그리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1819년 중령으로 진급해 툰에 위치한 연방사관학교를 공동설립한뒤 공병대 강사로 1831년까지 일했다. 1827년에 대령으로 진급했고 1832년 스위스군 총참모장으로 임명되었다.

한편, 뒤푸르가 군에서 장군이었던 시기에 뒤푸르 휘하 장교들 중에는 황제의 조카인 샤를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도 있었다.

1847년에는 스위스의 가톨릭 주들이 연방으로부터 실질적으로 독립하기 위하여, 흔히 존더분트라고 알려진 그들만의 독립 연합을 만들려고 시도하였다. 10월 21일 스위스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뒤푸르는 11월 3일부터 11월 29일 사이의 전역에서 연방군 10만명을 이끌고 요한-울리히 폰 살리-소글리오(Johann-Ulrich von Salis-Soglio, 1790~1874)의 지휘하에 있던 존더분트를 패퇴시켰다. 존더분트 전쟁 참조.

그 뒤 1863년에는 앙리 뒤낭 국제 적십자 위원회를 공동으로 설립했으며 위원회의 위원이 되어 적십자 위원회의 활동을 돕기도 한다. 1867년 전역했으며 1874년 세상을 떠났다.

3. 여담

먼나라 이웃나라에서도 나온다. 1847년 전쟁 당시 이분은 만 60세~61세였던 것을 고려했는지 혹은 실제 사진을 못 봤는지 구판은 수염이 있었으나 신판에서는 수염을 삭제했다(...).


[1] 훗날 프랑스 제국의 황제가 되는 그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