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wcolor=#ffffff> 국쾌남 鞠快男[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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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담양 국씨 |
출생 | 1922년 3월 16일 |
전라남도 담양군 | |
사망 | 2007년 11월 15일 (향년 85세) |
호 | 백설( 白 雪) |
국적 | 대한민국 |
가족 |
아버지 국구열[2], 어머니 최진묵 [3] 3남 2녀 중 장남[4] |
의원선수 | 1 |
의원 대수 |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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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기업인, 정치인대한극장을 설립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첫째 남동생인 국종남도 대일필름 대표로 영화 하얀전쟁을 제작한 바 있으며, 민주당 소속으로 제14대 국회의원(전국구)를 지냈다.
2. 생애
1922년 3월 16일 전라남도 담양군에서 아버지 국구열(鞠九烈, 1879. 5. 15 ~ 1949. 12. 25)과 어머니 탐진 최씨 최진묵(崔眞默)의 딸 사이의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일본 와세다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8.15 광복 이후 치안본부 경무관을 지냈다. 이후 선광상사 취체역, 세기상사 대표, 세기항공 대표 등을 지냈으며 대한극장을 설립하여 초대 회장을 지냈고 명예회장까지 지내면서 대한민국의 영화를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를 했다.
'벤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사운드 오브 뮤직', '아라비아의 로렌스' 등 대작들을 국내 최초로 개봉했고, 이 영화들을 70mm 원본필름 그대로 상영하며 대한극장을 70mm 대형영화 대표극장으로 키워냈다.
그 뒤 대한체조협회 회장을 지냈으며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서 당선되어 정계에도 입문한 적이 있으며 자유당에 입당했다.
하지만, 영화사를 운영하면서 영화에 대한 판권을 빼앗고 갑질을 한 적도 있었다. 한국 최초 극장 애니메이션인 홍길동이 대박을 거둠에도 수익을 신동헌 감독이나 그의 동생인 원작자 신동우에게 주지 않았으며 판권을 빼앗고, 재개봉할 당시 제목까지도 쾌남 홍길동이라고 국쾌남 자기 이름을 달고 개봉하는 짓까지 벌였다.
3. 여담
- 장남 국정본(鞠井本, 1941. 3. 11 ~ 2017. 1. 17)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받아서 대한극장을 운영했는데 단일관이던 대한극장을 멀티플렉스로 변신시켰고 국내 최초로 극장과 지하철 역사( 충무로역)을 연결시키는데 큰 업적을 세웠다.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멀티플렉스 영화관들에서 흥행이 안된다고 상영을 거절한 영화들을 개봉하며 국산 예술영화의 활로를 열어주기도 하였다.
- 손자며느리는 호반건설 창업주의 장녀 김윤혜 호반프라퍼티 부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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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성
안용백 당선 무효 (1959.6.24.) * 고흥 을 박철웅 사퇴 (1960.6.30.) * 담양 국쾌남 사퇴 (1960.7.1.) * 여천 이은태 사퇴 (1960.7.1.) * 고흥 갑 손문경 사퇴 (1960.7.1.) * 보성 황성수 사퇴 (1960.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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