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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05 10:12:15

고문 바퀴

1. 개요2. 상세
2.1. 가상 매체

1. 개요

중세시대에 고문으로 쓰이던 바퀴. 영어로 breaking wheel, 또는 execution wheel이라고 한다.

2. 상세

보통 희생자를 사지를 벌린 상태로 묶어 고문하는 형틀이지만 발전되어 긴 장대위에 올려 빈사 상태에 이르도록 방치하는 차륜형을 한다든가 혹은 물레방아와 결합해 빙글빙글 돌리며 자동 물고문이나 불고문을 시키는 장치도 있고, 바퀴를 굴려 희생자의 팔다리를 으스러트리는 살벌한 물건도 있고[1] 알렉산드리아의 성녀 카타리나 전설에서는 수레 바퀴에 못을 박아 고문자를 갈기갈기 찢어놓는 형태의 물건도 나온다.

국가와 지역마다 조금씩 처형 방식의 차이가 존재한다. 최초 발생지는 명확하지 않으며 서유럽에서 시작돼서 동유럽으로 퍼졌고 심지어 18세기 유럽국가의 식민지에서 이런 처형이 행해졌다. 심지어 무굴 제국 시크교도들을 처형할 때 써먹었다. 물론 18세기가 끝나고 19세기에 접어들면 비인도적이라 하여 사라졌다. 고문 바퀴의 마지막 사용 기록은 1841년 8월 13일 프로이센 왕국에서 있었다.

그저 단순히 피의자를 나체로 눕혀놓고 마차 바퀴로 두들겨 패 팔다리를 너덜너덜하게 만든 뒤 그 걸레짝이 된 팔다리를 배배 꼬아서[2] 마차 바퀴 올려놓고 밧줄로 동여맨 후 사람들이 보기 좋게 높은 곳에 전시해놓기만 하면 다행이고 광기에 휩싸인 관중들 한복판에 던져서 노리개로 만들었다고 한다. 특히 그 잔혹성은 근세, 근대로 갈수록 더 심해졌으며[3] 프랑스 혁명 이후에야 사그라들었다. 처형도 굉장히 잔혹한데 숙련된 고문 기술자들은 일부러 급소 대신 팔다리 위주로 쳐서 곧바로 죽지 못하게 했고 내장을 파열시켰다. 그리고 팔다리의 뼈가 살을 뚫고 튀어나오기도했으며 뼈가 없으니 팔다리가 느슨해지면 바퀴에다 묶고 돌리며 구경꾼들에게 오물이나 토마토 등을 던지게하여 모욕감을 느끼게도하였다.

최대한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바퀴에 묶어놓을 수록 구경꾼에게 인기가 좋았다. 그러니까 현대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치 요가를 하는 듯한 포즈로 바퀴에 묶어놓아 구경꾼을 웃기게 만드는 게 중요했다.
파일:torture-wheel.jpg
고문 바퀴를 묘사한 중세의 세밀화 (14세기)
자세히 보면 사지가 절단되다시피 꺾여있다.
보통은 죄수가 죽을 때까지 방치해놓았는데 독일 지방에서는 3일이 지날 때까지 죄수가 죽지 않으면 무죄방면했다고 한다. 사실 저런 치명상을 입고도 살아남을 사람이 있다는 게 불가능한 듯 보이지만 실제로 살아남아서 방면된 남자 1명이 있다고 한다. 물론 방면된 뒤의 생존여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 당시 의료와 위생수준을 생각해보면 방면 후 얼마 안 지나 사망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왜 하필 바퀴냐 하면 싸니까. 아이언 메이든같은 금속제 고문 도구들은 비싼 금속을 다량으로 사다가[4] 대장장이에게 돈 주고 제작 주문을 넣어야 하고, 거기에 왕이나 교회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쓸데없이 화려한 장식을 달기도 했는데 문제는 당대의 처형, 특히 마녀사냥은 현대의 공개 처형처럼 그냥 범죄자의 처벌이 아닌 대중에게 보여주기 위한 국가 차원의 '쇼'였던 것. 악과 이단을 심판한다는 광기에 취한 백성들에게 피를 넉넉히 보여주려면 대규모의 처형이 필요했고 이는 곧 처형 도구도 대규모였어야 함을 의미했다. 당연히 경제력이 그걸 다 충당할 순 없었다. 반대로 바퀴를 이용한 물고문이나 불고문은 그냥 가까운 물레방앗간이나 대장간에 푼돈 좀 주거나 너 지금 성스러운 하나님 앞에서 돈놀음을 하겠다는 거니?하고 협박해 무료로 할 수도 있고 바퀴로 후드려 팰 작정이라면 그냥 마굿간에서 마부들이 교체한 바퀴를 수거해 오면 될 일이다. 게다가 빙빙 돌아가는 방아에 묶여 천천히 타들어가거나 익사하는 이교도, 팔다리가 죄다 꺾인채 마차 바퀴에 묶여 죽음을 기다리는 마녀는 대중들에겐 굉장히 인상적인 모습이었을 것이다.

여기까지 보면 알겠지만, 실제 고문바퀴는 뭔가 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고문용이 아닌 처형용 도구였다.

2.1. 가상 매체



[1] 이런 형벌을 알형(軋刑)이라고 한다. [2] 뼈가 완전히 가루가 되어 좀 딱딱한 고무처럼 되어버렸다고 한다. [3] 보통 현대 사회에서 중세 유럽의 혹형으로 기억하는 고문형벌의 대부분은 교회에서 이단자 심문 목적으로 만든 게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세속의 군주들이 반역자 고문 목적으로 만든 것이다. 물론 교회에서 이런 고문법을 역수입해 종교재판에 써먹은 스페인 같은 사례도 있었다. [4] 당시에는 금속도 싼 물건이 아니었다. [5] 죽어도 살아 움직이니 처치가 곤란하여 포박한 시체들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