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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3 08:11:24

개성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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開城城廓 또는 開城城

1. 개요2. 상세3. 관련 문서

1. 개요

개성시에 있는 고려 시대 조선 초기에 지어진 성(건축)이자 고려시대의 도성이기도 했었다. "개성성곽" 또는 "개성 나성"이라고도 부르며, 북한에서는 "개성옛성"이라고도 부른다.

2. 상세

강감찬의 제안으로 1009년에 쌓기 시작하여 고려 현종 20년인 1029년에 완공되었으며, 여요전쟁 이후에도 외세의 침략을 막고자 나성을 쌓은 것이 본격적인 시초였다.[1]

원 간섭기 때에는 몽골의 간섭으로 인해 몽골과 개성 성곽을 없애는 것을 약속한 적도 있었지만 공민왕 이후 쌍성총관부 동녕부를 수복하면서 없는 일이 되었다.

내성의 경우 고려 말 이전까지는 궁궐인 만월대를 지키는 황성이 내성 역할을 맡았으나 고려 말인 1391년 개경의 성곽들을 보수 및 개경 내부에 규모가 축소된 새로운 성곽들을 더 쌓아 내성이 세워졌으며 1393년에 완성되었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시대에 완공되다보니 조선 전기의 수도[2]도 맡았으며 이를 지켜주는 역할도 했었다.

조선이 한양으로 천도한 이후에도 개성 내성 성곽은 계속 유지되었다. 현재 개성을 상징하는 문화재 중 하나인 개성 남대문 역시 조선시대에 완공된 개성 내성의 성문 중 하나이다.

현재 개성성곽의 5개 구역들은 개성역사유적지구에 등록되었다.

3. 관련 문서


[1] 신라 후기 때에도 송악(개성의 옛 이름)에 성을 쌓았다고 기록이 전해지나 이 성을 고려시대에도 도읍으로 삼은 개성성인지 확실하지 않다. [2] 한양으로서의 천도는 나중에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