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왕립 사찰 |
1. 개요
개성시에 있는 절이다.2. 역사
삼국유사에 따르면 918년 고려 태조 왕건이 개경으로 천도한 뒤, 만월대 근처에 지은 10대 사찰 중 하나다.현종 재위 12년( 1021년) 5월에 평장사 강감찬이 석탑을 세웠다.
고려는 임금의 생일 때에 절일을 붙혀 축하했다. 국가는 절일 때마다 기상영복도량(祈祥迎福道場)을 열어 국왕의 복을 빌었다. 1046년 12월 1일, 문종은 왕실은 외 제석원에서, 문무관료들은 흥국사에서, 동서경과 5도 2계는 각지의 유명한 사원에서 도량을 열도록 제도를 정했다.
신종 대에 일어난 만적의 난 때 만적이 많은 수의 천민들을 규합하려 시도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또 이성계 및 8명이 모여 창왕 폐위를 결정한 곳이며 공양왕의 즉위가 결정된 장소이기도 하다. 훗날 이들은 구공신으로 불렸으며, 흥국사는 고려의 마지막 역사를 장식한 사찰이 되었다.[1]
3. 관련 틀
고려 중흥공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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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양왕을 옹립한 흥국사 구공신 | ||
화령군 개국충의백 이성계 |
청성군 충의백 심덕부 |
익양군 충의백 정몽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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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의군 지용기 |
충의군 설장수 |
창성군 충의군 성석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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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의군 박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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