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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3 13:55:44

강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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姜福信
1916년 2월 29일 ~ 1944년 5월 26일 (향년 28세)

1. 개요2. 손기정과의 결혼 관련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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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제강점기 조선인 육상 선수. 체육인이자 손기정의 첫 아내이기도 하다.

1916년 평안남도 평양부에서 강용석의 칠남매 중 딸로 출생했다.

한겨레 - 육상선수 강복신

평양 서문공립여자고보 재학 중이던 1931년에 전조선여자올림픽대회 200m에서 29초3의 신기록을 세웠다.

1933년 조선신궁경기대회 200m에서는 27초6의 신기록으로 우승했다.

동덕고등학교(現 동덕여자고등학교) 체육 교사였다.

1939년 손기정 결혼했다.

29세이던 1944년 5월에 지병인 간염으로 사망했다.

이후 손기정 김원권의 동생 김원봉(1922~1972)와 재혼한다.

2. 손기정과의 결혼 관련

스포츠서울 기사 발췌
◇ 세기의 결혼, 강복신은 누구인가? 베를린 올림픽 이후 가장 달콤한 순간이라면 단연 결혼이 아니었을까 싶다. 1939년 ‘마라톤 왕’의 결혼은 장안이 들썩할 정도로 화제를 뿌렸다. 당대 조선 최고의 여자육상 스타이자 신여성이었던 강복신(1916~1944)이 바로 손기정의 아내가 됐다. 여자 육상 200m와 멀리뛰기 조선 기록 보유자였던 강복신은 평양 부호의 딸로 일본 유학 후 서울 동덕여고 체육교사로 일하다 손기정과 결혼했다.

일본 니카이도여자체육전문학교(현 일본여자체육대학) 유학생 출신인 그는 조선일보 고봉오 기자의 소개로 손기정을 만났다. 고기자의 특종 보도로 세상에 알려진 두 사람의 결혼 소식은 장안의 화제였다. 매스컴은 당대 최고의 육상 스타플레이어 출신의 결혼을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인기잡지 ‘삼천리’는 두 사람의 신혼 가정을 방문해 달달한 뉴스를 보도하기도 했다. 아쉽게도 단란했던 결혼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강복신은 억척같은 신여성의 삶을 사느라 건강을 돌보지 못해 1944년 급성 간염으로 유명을 달리하고 만다.

스포츠 서울 - 풍운아 손기정, 고난의 비망록

3.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