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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white> 강릉고등학교 江陵高等學校 Gangneung High School |
|
<colbgcolor=#80deea><colcolor=black> 교훈 | 성실, 창조, 조화[1] |
개교 | 1961년 |
유형 | 일반계 고등학교 |
성별 | 남자고등학교 |
운영형태 | 공립 |
교장 | 김일기 |
학생 수 | 516명 (2023년 기준) |
교직원 수 | 76명 (2023년 기준) |
면적 | 78,206㎡[2] |
상징 |
교목:
소나무 교조: 독수리 교화: 철쭉 |
소재지 |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강릉대로587번길 68 |
홈페이지 |
[clearfix]
1. 개요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초당동에 위치한 공립 고등학교이다. 약칭은 강고이다.2. 역사
학교 교정을 이리저리 많이 옮겨 지었다. 처음 학교가 세워진 곳은 용강동이었으나 이후 노암동[3]으로 옮겼다가 다시 현재의 초당동으로 옮긴 상태. 현재의 교정은 옛 강릉원주대학교 사범대학이 위치하고 있었다. 이 건물이 워낙 오래된지라 시설은 썩 좋지 못한 편이다. 그러나 리뉴얼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체육관과 기숙사를 새로 지은 바 있다.[4][5]수시 모집 비율이 70%가 넘어가는 현실에서도 2014년도까지 정시위주 입시정책을 시행한 결과[6] 최근에는 수시 중심의 입시정책을 시행하는 중이다. 정기적으로 교사 연수를 통해 학생부 작성 요령을 안내하고 교육부 지정 과학중점학교인 만큼 이공계열 경시대회 참여를 자주 장려하는 편이다. 그런데 의외로 문이과 학생들의 숫자가 크게 차이 나지는 않는다.
3. 학교 연혁
- 1961년 4월 5일 강릉사범학교 병설고등학교 설립인가(4학급)
- 1962년 3월 7일 강릉고등학교 인가(12학급)
- 1972년 12월 19일 용강동에서 노암동으로 이전
- 1990년 2월 8일 노암동에서 초당동으로 이전
- 2014년 6월 13일 급식소 및 기숙사 준공
- 2015년 2월 6일 청솔관(다목적실 및 체육관) 준공
- 2019년 1월 30일 제56회 졸업식 (졸업생 251명, 총 22,736명)
- 2019년 3월 4일 제59회 입학식 (178명)
4. 학교 시설
옛 대학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는 만큼, 학교의 전체 면적이 크고 구조가 복잡하다.시설은 크게 다섯 군데로 나눌 수 있다. 본관과 창의탐구관[7], 초당학사[8]와 체육관, 한솔마루[9]이다.
본관은 ㄷ자 모양의 4층 건물로 2학년 문과목(앞반)[10]교실과 학생회실(1층), 시청각실(1층), 1학년 뒷반과 2학년 이과목(뒷반) 교실(2층), 제1교무실(2층), 제2교무실(1층), 제3교무실(4층), 1학년 앞반(4층), 학생안전부(2층), 정보부(2층), Wee Class(2층), 음악실(2층), 3학년 이과 교실(3층)이 이 건물에 있다. 본관 건물 중 정문과 가장 멀리 떨어진 부분에 교장실(1층)과 행정실(1층), 발간실(1층)이 있다. 본관으로 걸어가다 보면 시설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창의탐구관은 학생 대부분이 과학동으로 부르는 곳이다. 거의 모든 과학과 수학 수업은 이 교실에서 진행된다. 여러 수학자와 과학자의 이름을 딴 교실들이 있고 인성교육부 교무실과 과학부도 여기에 있다.[11] 음식물 반입이 금지된다.
ㄷ자 본관과 창의탐구관을 잇는 복도가 9월 23일부터 리모델링 작업이 시작되어 완료된 상태이다. 벽면을 새로 페인팅하고, 복도벽은 나무 테이블로 바꾸었다.
초당학사는 체육관 옆에 위치해있으며 1층에 급식소가 있고 2, 3층에 기숙사가 있다.
체육관은 정문으로 들어오자마자 바로 왼쪽에 보이는 건물로 1층은 대강당(다목적실), 2층은 체육관으로 쓴다.
한솔마루는 1층에 도서관, 2층에 컴퓨터실과 진로교육부 교무실[12], 미술실, 3층에 원어민 회화실과 사료전시실[13] 이 있다.[14] 이전에 원어민 회화실 건너편 교실은 야구부 전용 체력단련실[15] 이었으나 한솔마루의 석면 공사를 진행하면서 이 교실이 야간 주도적 학습 교실로 리모델링되었다. 도서실처럼 1인 1석 시스템이고 요일[16]을 선택하여 지정석에서만 쓸 수 있다.
본관 뒤쪽에 매점이 있는데 갈 때마다 엄청나게 복잡하다. 그러나 2019년 4월 1일부터 매점 아주머니가 바뀌면서, 매점의 주문 방식과 신용카드 사용 및 계좌이체가 가능해져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신상품을 자주 비치해둔다.
기숙사생을 위한 열람실이 있으나 기숙사생은 잘 이용하지 않아 성적이 좋은 학생들이 개방하라는 요구를 종종 한다. 그렇지만 이용을 원하면 기숙사 입사하라는 말만 반복되는 중. 참고로 2018년 신입생 기준 기숙사 사용 학생은 2명뿐이었고, 2019년 신입생은 6명이다.
2021년 1월 야구부 실내 연습장과 웨이트장을 완공하였다. #
5. 야구부
강릉고등학교 야구부 문서 참조.6. 교훈 및 상징
6.1. 상징 노래
아래 노래들은 학교 홈페이지에서 악보를 볼 수 있다.6.1.1. 교가
대관령 장엄한 뫼 높이 솟았고 동해의 푸른 물결 굽어 보는 곳 슬기로운 새 역사의 창조자들이 배달의 정기 받아 여기 모였네 진리 속의 우리 학교 영원하여라 빛날 사 그 이름 강릉고등학교 |
6.1.2. 응원가
높은 하늘 넓은 들에 뛰노는 용사 모교의 명예를 진 우리의 선수 장하다 높은 기상 누가 막으랴 그 이름도 씩씩한 강고의 건아 그 이름도 씩씩한 강고의 건아 play play play 강고 play play 우리의 선수 무적남아 네 기상이 늠름하구나 play play play play play play play play 강고 |
7.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7.1. 버스
정류장명 | 노선번호 |
강릉고입구(시내 방면) |
104,
104-1,
104-2,
200, |
강릉고입구(초당분수공원 방면) |
104,
104-1,
104-2,
200, |
강릉고정문(허난설헌삼거리 방면) | 206, 207, 통학3번 |
강릉고등학교(허균생가입구 방면) | 206, 207, 230, 230-1 |
하교시 시내방면으로는 초당분수공원에서도 버스를 탑승할 수 있고, 더구나 강릉고입구 정류소는 경포고등학교 일부 학생들까지 맞물리면서 많은 사람이 북적이고 있어 착석을 원하는 대다수는 좀 멀어도 초당분수공원 정류소를 이용한다.
강릉고 정문이 206번, 207번의 버스 기점이자 종점이고 230번, 230-1번 버스가 바로 앞을 지나가며 조금 떨어진[18] 강릉고 입구 버스정류장에서 많은 노선의 버스가 지나가기 때문에 시내와 떨어져 있어도 교통이 그렇게 불편하지 않다.[19]
8. 기타
2014년 교내에 졸업생들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비 2개를 건립했다. 한 명은 7사단 중대장을 역임한 정경화 소령(3회 졸업, 육사 27기)으로, 1977년 6월 21일 백암산 일대 DMZ에서 지뢰 제거 작업 중 안전핀이 부러지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몸으로 지뢰를 덮어 중대원 22명을 구하고 순직했다. 다른 한 명은 김성수 열사(23회 졸업)로, 1986년 강릉고 졸업 후 서울대학교 지리학과에 입학했으며 민주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6월 18일 자취방에서 의문의 전화를 받고 외출했다가 실종되었고, 5일 후 부산 송도 앞바다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2002년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김성수 열사의 의문사에 공권력이 개입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발표했고, 2006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공식 인정되었다. 또한 현재 교내에는 정경화 솔숲길과 김성수 열사 업적 안내판이 조성되어 있으며, 정경화 소령의 부하들로 구성된 전우회인 백암산패밀리와 김성수열사기념사업회는 현재까지도 강릉고에 꾸준히 기부를 하고 매년 6월마다 추모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교내 추모 행사는 강릉고 학생회 주관이라 학생들도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1999년 도전 골든벨에 출연한 남재균 학생이 7대 골든벨을 울렸다.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 시행 전 시절의 전적이 있다 보니 평준화 1세대인 2013년 입학생들에게 보내는 동문들의 시선이 곱지는 않았다. 그러나 예상외로 성적이 좋자 지금은 동문회에서 지원은 꽤 해주는 편이다. 모의고사로 전교에서 9등 안에 들면 웬만하면 3년 내내 장학금을 받을 수 있으며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도 지원을 꽤 해주는 편이다. 금액도 생각보다 상당하다(...) 하지만 이러한 동문회의 지원은 점차 일반 학생보다는 야구부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문과에서 전교 3등을 했는데 장학금을 안 줬다는 카더라가 있다.
평준화가 예정되었을 당시 학교 이름이 동네 이름을 따서 초당고등학교로 바뀔 것이라는 소문이 재학생들 내에서 돌기도 했었다.
젊은 여교사의 비율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2015년도에 공무원 연금개혁으로 인해 많은 교사들이 명예퇴직을 신청한 적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 영향으로 세대교체가 본격화된 탓인 듯.
강릉 시내와는 조금 떨어져 있다.[20] 따라서 아침이면 수많은 카풀 차량과 학부모 차량이 학생을 실어나르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21] 실제 거주지역과 멀리 떨어져 있는 학생들이 많다보니 카풀을 놓치면 낭패다.[22] 하교할 때도 역시나 수많은 카풀 차량과 학부모 차량, 택시, 버스, 독서실 차량으로 교통 혼잡을 유발한다.
교복은 동복과 하복, 생활복이 있고 아마 대부분의 학생이 싫어할 체육복도 있다. 동복과 하복은 색깔이 무난한 편이기 때문에 학생들 사이에서도 자기 개성대로 섞어입기도 한다. 생활복도 베이지색과 남색 두 가지 색이 있어 자주 입는다. 그러나 체육복은 소재도 매우 불편하며 가장 치명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색상이 딱 정통 초록색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체육시간에는 학생들이 반티를 입거나 사복 체육복을 입는다. 체육교사들도 이것을 딱히 규제하지 않는다.
학생부에서 2019학년도 3월부터 휴대폰을 수거한다고 결정해 많은 학생들이 항의하고 있다. 이 의견을 수렴한 학생회장이 대의원회까지 개최를 했지만 2018년 2학기는 유예하고 다음해 3월부터 걷기로 했다.
교무실은 여러 곳에 나누어져 있는데 1층에 제2교무실과 교장실, 행정실이 있고 2층에 제1교무실과 교감실, 정보부, 진로교육부, 학생안전부가 있으며 3층에 과학부(창의탐구관)가 있다. 4층에는 제3교무실이 있다. 본관 말고도 창의탐구관과 한솔마루에도 교무실이 있기 때문에 신입생들은 선생님이 어디에 계신지 헷갈리기도 한다.
2018학년도부터 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및 페이스북 페이지를 제공한다.
'G리그'라는 반 대항 스포츠 리그가 있는데, 점심 시간에 실시하며 종목으로는 축구와 농구가 있고 축구는 운동장 쪽에 있는 축구장에서, 농구는 그 옆에 있는 농구장에서 한다. 경기 시간은 전후반 합쳐서 20분이다. 축구의 경우 리그 종료 후 1~4위 반들끼리 따로 하는 경기도 있다.
2019년 상반기부터 제1교무실 내 3개, 제1교무실 앞 4개의 컴퓨터를 배치하여, 휴대폰을 수거하는 대신 정보를 검색하도록 학생정보검색대를 설치해 운영중이다. 창의탐구논문을 쓰는 시기에는 컴퓨터 수가 턱 없이 부족하고, 붐빌때는 정보검색대에는 인강을 보는 사람, 논문을 쓰기 위해 정보를 검색하는 사람, 자소서 쓰는 사람들로 모두 앉아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
2020년 동계방학 때 본동의 석면을 대대적으로 교체하게 되면서, 2월 달에 학교에 나오지 않는 대신 여름방학이 2주밖에 되지 않았다. 참고로 석면교체는 창의탐구관(과학동)은 2019년 동계방학 때, 도서관동은 2019년 하계방학 중 석면교체를 완료했다.
2019년 2학기 새로 당선된 전교회장이 출범하면서 공약으로 내세운 학생증 체크카드화를 실현하기 위해 현재 수요조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참고로 기존의 학생증은 교내에서는 도서관에서의 도서 대출 시에, 교외에서는 학생 할인 시 보여주는 용도 밖에 되지 않았다.
석면 교체를 하면서 도서관 3층에 1학년과 2학년이 자기주도적 학습을 할 수 있도록 열람실이 설치가 되어 있다. 9월 21~29일 중으로 제1교무실 앞 컴퓨터 3대가 사라졌고 여러모로 개편해 8대의 컴퓨터[23]와 책상을 추가로 배치해 '청솔에듀카페'가 조성되었다. 추가적으로 과학동과 매점으로 잇는 복도에도 책상과 의자가 있어서 앉아서 공부할 수도 있다. 단, 의자가 높으니 앉을 때 주의할 것.
학년별 교실 위치가 매년 바뀐다. 예를 들어 올해 1학년 교실들이 4층이라면 내년에는 1층이 될 수도 있다.
코로나 사태로 2020년 G리그 전체 일정 및 체육대회, 2021년 2학기 체육대회가 취소되었고 축제 역시 2년 연속으로 무산되었다.[24] 수련회와 수학여행도 당연히 없었다.
9. 출신 인물
가나다순으로 정렬해주시기 바랍니다. |
나무위키에 등재될 정도의 저명성 있는 인물만 기록 가능합니다. |
- 강희문
- 고성균
- 김경수
- 김기남
- 김남수(1958)
- 김남훈
- 김대남
- 김무겸
- 김병주
- 김성호
- 김성훈(1971)
- 김용하
- 김우영
- 김일수
- 김정삼
- 김중남
- 김한근
- 김현수(1971)
- 김형원(1962)
- 박인균
- 박태원
- 배선식
- 백승렬
- 서효원
- 신재걸
- 신진선
- 심재종
- 승우아빠[25]
- 오세인
- 연우진
- 이근식
- 이두봉
- 이주원(1965)
- 이중희
- 장경상
- 전군표
- 전제국
- 정수환
- 정영환(1960)
- 정욱
- 정웅교
- 조다현
- 최돈익
- 최두영
- 최병구
- 최명희
- 최승국
- 최익순
- 최재규
- 최종구
- 최종균
- 최종수
- 최흥집
- 최한결
-
최현우
[1]
이것을 세로로 쓰면 성창조 실조화가 된다(...) 많은 학생들이 성창조 실조화로 외우고 있다.
[2]
학교의 면적이 매우 크다. 어느 정도냐면,
서울
중구에 위치한 서울시청 앞의
서울광장의 약 5.92배 크기이다.
[3]
현 노암초등학교.
[4]
기숙사 건설당시 엄청나게 빠른 공사로 인해 건물이 올라가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고 한다.
[5]
공사 초기에 유적이 발견되어 공사가 한동안 중단되어야 했었다.
[6]
비평준화 시절에는 갓 입학한 1학년 학생들에게 '너희는 수능을 목표로 해라'라고 말할 정도로 극단적인 정시위주 정책이었다.
[7]
이 두 건물의 2층에 있는 통로가 두 건물과 매점을 연결해준다.
[8]
급식소와 기숙사가 한 건물에 있다.
[9]
도서관, 컴퓨터실, 영어회화실, 미술실, 진로교육부 교무실 등이 있다.
[10]
2019년도 고2들은 문, 이과 구분이 애매해져서 문과 성향 교과목을 선택한 반을 문과목(문돌이) 이과 성향 교과목을 선택한 반을 이과목(이과맨) 이라고 부른다.
[11]
지금 인성교육부는 2층 작년 교실을 활용해 교무실로 개조하여 옮겨갔고, 인성교육부의 빈자리엔 진로 교육부가 옮겨왔다.
[12]
본관 2층 창의탐구관으로 이전했다.
[13]
과거의 교복이나 응원 깃발,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다.
[14]
이 건물에서는 항상 화장실 냄새가 심하게 난다.
[15]
야구부가 음악을 틀어놓고 운동했었다.
[16]
야자는 월, 화, 목, 금요일에만 시행
[17]
참고로 비나 눈이 오고 난 뒤에는 농구장에 들어가면 미끄러질 수 있어 위험하다.
[18]
5분 정도 걸으면 된다.
[19]
하지만 탑승하는 학생들이 매우 많고, 인근 학교들의 학생까지 탑승하게 되면 그야말로 가축수송이 되고 만다.
[20]
걸어서 1시간 반 정도 걸린다.
[21]
카풀 차량 대부분은 가축수송이라고
카더라.
[22]
그러나, 근처에 살아도 꾸준히 지각하는 학생도 물론 있다.
[23]
이전의 4대의 컴퓨터도 있다. 물론 교무실 내의 3대의 컴퓨터까지도. 실상 학생용 자율 컴퓨터는 11대이지만 교무실쪽 정보검색대는 꺼린다. 컴퓨터가 업그레이드 되어 옛날에는 다소 엽기적인 바탕화면으로 학생들은 즐거워 했다. 또 아무데나 파일을 방치해 편했지만 이제 한번 끄고 키면 초기화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24]
부스 개최 및 전시는 특수 진로 활동으로 진행해서 성사됐다.
[25]
캐나다로 이민을 가면서 중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