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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06:42

갈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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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왕 금와왕
형제 해대소 , 주몽
왕자 해씨
왕손 손자 해도두
손녀 차비 해씨
왕호 갈사왕(曷思王) }}}}}}}}}

1. 개요2. 기록3. 기타4. 대중매체에서

[clearfix]

1. 개요

부여의 해씨 왕족이 세운 갈사국의 군주. 《 삼국사기》에서 분명히 갈사왕이라고 호칭하는 사람은 금와왕의 막내아들 단 한 명이다.

2. 기록

대소의 아우로서 이름이 전하지 않지만[1] 금와왕의 막내아들이라고 하며, 그 건국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여름 4월에 부여왕 대소의 아우가 갈사수(曷思水) 가에 이르러 나라를 세우고 왕을 칭하였다. 이 사람은 부여왕 금와의 막내 아들인데 역사책에는 그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다. 전에 대소가 죽임을 당하자 (그는) 나라가 장차 망할 것을 알고, 따르는 자 100여 명과 함께 압록곡에 이르렀다. (그는) 해두국왕(海頭國王)이 사냥나온 것을 보고 결국 그를 죽인 후 그 백성들을 빼앗아 이곳에 와서 비로소 도읍하였는데. 이 사람이 갈사국왕(曷思國王)이 되었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대무신왕 5년

아무리 강한 국가에서 떨어져 나갔다고는 해도 고작 100명 정도의 부하만 가지고 점령한 것으로 볼 때 해두국도 엄청난 소국이라 병합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3. 기타

4. 대중매체에서

드라마 주몽에서는 갈사국을 세운 사람이 영포라는 이름으로 설정되어 나오며, 바람의 나라에서는 충구라는 이름으로 설정되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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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갈사국을 세웠기에 갈사왕이라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