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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孝王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장비일거야화향(獐妃一去野花香): 장부인은 간 지 오래인데 들꽃은 향기롭고
매몰잔비거효왕(埋沒殘碑去孝王): 땅에 묻힌 낡은 비는 금효왕의 흔적이구나
삼십웅병추대발(三十雄兵酋對發): 크게 일으킨 군사 삼십
와우각상투천장(蝸牛角上鬪千場): 달팽이 뿔 위에서 천 번은 싸웠으리라[1]
유득공의 이십일도회고시(二十一都懷古詩) 중[출처]
매몰잔비거효왕(埋沒殘碑去孝王): 땅에 묻힌 낡은 비는 금효왕의 흔적이구나
삼십웅병추대발(三十雄兵酋對發): 크게 일으킨 군사 삼십
와우각상투천장(蝸牛角上鬪千場): 달팽이 뿔 위에서 천 번은 싸웠으리라[1]
유득공의 이십일도회고시(二十一都懷古詩) 중[출처]
감문국(현 경북 김천시 일대)의 군주로 전해지는 인물. 김효왕이라고도 한다. 반파국의 금림왕과 마찬가지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만 등장한다.
무덤과 관련된 기록밖에 없는 군주기 때문에 재위시기나 업적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함께 기록된 장부인과의 관계도 알 수 없는 상태.[3]
2. 금효왕릉
현재 남아있는 금효왕릉의 봉분은 높이 6m, 지름은 15m에 달한다.주민들의 구전에 의하면 금효왕릉은 말무덤으로 불렸으며, # 구전에 의하면 일제시대 여러 차례 도굴을 당했다고 한다. #]
2017년 금효왕릉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지만 아쉽게도 삼국시대에 해당하는 유구나 유물이 나오지 않았다. #
그래도 감문국의 왕비로 구전된 장부인(獐夫人) 묘보다는 사정이 나은 편인데, 금효왕릉은 김천시에서 관리를 받고 있으나 장부인묘는 완전히 훼손되어 형태조차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되었다. #
3. 관련 기록
금효왕릉(金孝王陵)은 현의 북쪽 20리에 있다. 큰 무덤이 있는데 감문국 금효왕의 능이라고 전한다. 장릉(獐陵)은 현(縣)의 서쪽 웅현리(熊峴里)에 있는데, 세상에 전하기를, “감문국 때의 장부인릉(獐夫人陵)이다.” 한다.
金孝王陵。在縣北二十里。有大塚,俗傳甘文金孝王陵。獐陵。在縣西熊峴里。俗稱甘文國時獐夫人陵。
신증동국여지승람 제 29권 경상도 개령현
金孝王陵。在縣北二十里。有大塚,俗傳甘文金孝王陵。獐陵。在縣西熊峴里。俗稱甘文國時獐夫人陵。
신증동국여지승람 제 29권 경상도 개령현
4. 기타
- 2018년 소설 왕의 길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 금효왕릉으로 전해지는 무덤은 현재 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 삼성리 930번지의 밭 한가운데에 남아있다고 한다. 주변 주민들에게는 말무덤으로 불린다고.
[1]
이종휘가 집필한 동사에서 '아포가 배반을 해서 대군 30인을 일으켜 밤에 감천을 건너다가 물이 불어나 되돌아왔다(牙浦叛大發三十夜渡甘川水見漲而退)'는 기록이 등장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감문국 편
[3]
구전 전승에 의하면 금효왕의 어머니 혹은 금효왕이 총애했던 총희라고 한다.
http://m.hwangak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8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