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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5-20 10:30:48

XP-37

파일:2 Curtiss YP-37.jpg
커티스 XP-37(Curtiss XP-37)

1. 제원2. 탄생하자마자 구식3. 다양한 개조 시도4. 육군의 실험기

1. 제원

전장 : 10 m / 전폭 : 11.38 m / 전고 : 2.90 m
익면적 : 21.92 m2
중량 : 2,596~3,255 kg
최대속도 : 557 km/h
상승한도 : 10,360 m
항속거리 : 1,400 km
무장 : 7.62mm 기관총 1정 + 12.7mm 기관총 1정

2. 탄생하자마자 구식

커티스 사가 미 육군을 위해 1935년 5월에 발표한 P-36 호크는 아직 복엽기가 태반이던 등장 싯점 기준으로는 충분히 고성능 전투기였으나, 독일에서는 며칠 후에 Bf 109라는 세계 정상급의 전투기를 공개했다. 우방국인 영국 1936년 3월에는 커티스제 전투기를 훌쩍 뛰어넘는 성능을 보이는 슈퍼마린 스핏파이어를 내놓게 되자, P-36은 순식간에 최신예기라는 타이틀이 빛바래져 버렸다.

3. 다양한 개조 시도

커티스 기술진들은 뒤처지기 시작하는 P-36의 성능을 끌어올리기 위해 갖가지 방안을 시도했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XP-37이었다. 1937년 들어서서 앨리슨 V-1710 액랭식 엔진 과급기가 부착된 모델인 V-1710-11이 출시되었는데, 이 엔진은 길이가 75 cm 늘어나고 약간 더 무거워졌으나 이륙 출력 1,150마력에 고공 성능도 개선되었다. 개발 주임을 맡은 돈 베를린(Donovan Reese Berlin : 1898~1982)과 커티스 개발진들은 호크 전투기의 프랫&휘트니 R-1830 공랭 엔진을 들어내고 파워도 충분하고 항력도 줄여줄 것이 분명한 신형 엔진을 설치하는 업그레이드 작업에 착수했다. 또한 도노반 주임은 여기에 수퍼차저 설비를 추가하여 고공 성능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심산이었다. 수퍼차저는 본체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고고도의 희박한 대기를 흡입해 압축시키려면 상당한 부피의 에어 인렛이 꼭 필요했다. 길어진 V-1710-11 엔진 뒤로 인덕션을 설치하자 조종석은 자연스레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 XP-37의 노즈는 부자연스러워 보일 정도로 길어졌다. 기수에는 이 전투기의 고정무장인 M1919 브라우닝 기관총 1정과 M2 브라우닝 중기관총 1정이 나란히 내장되어 있었다.

개발 스탭들 사이에서는 비공식적으로 앨리슨 호크라는 별명으로 불린 원형기 37-375호기는 1937년 4월에 처음 비행했지만 테스트 파일럿은 극단적으로 길어진 기수 때문에 이착륙할 때는 아예 정면을 볼 수가 없었고, 캐노피를 열어제껴 옆과 지면을 보면서 기체의 자세를 가늠해 조작해야만 했다. 문제는 이와 같은 조종은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또한 일껏 구겨넣은 수퍼차저 에어 인렛이 충분한 내부 용적을 확보하지 못해 배기압을 필요한 만큼 뽑아내 출력을 높여주지 못하는 문제도 밝혀졌다.

프로토타입은 이래저래 152시간의 시험 비행을 했지만 대대적인 개수 외에는 별 뾰죽한 수가 없었던 돈 베를린 이하 스탭들은 다시 엔진을 신형 과급기가 붙은 앨리슨 V-1710-21로 교체했고, 늘어난 중량과 달라진 무게 중심을 상쇄하기 위해서 조종석 후방 동체를 56 cm 연장시켰다. 그러나 이 형식도 마찬가지로 터보차저의 문제를 100% 해결했다고는 보이지 않자, 이윽고 1942년에 계획을 중지하게 된다.

4. 육군의 실험기

그러나 어쨌든 등장 싯점에서 보면 557 km/h라는 최고속도는 경쟁 전투기들을 뒤로 떼어놓을 잠재력은 보여준 셈이어서, 미 육군항공대YP-37이라는 선행 생산형 13대 발주를 따낼 수 있었다. 육군은 이 프로젝트를 위해 커티스 사에 $531,305을 지불하고 1대의 원형기와 YP-37 시제 전투기 13대(38-472~38-484호기)를 앨라배마주 맥스웰 비행장(Maxwell field)에서 넘겨받았지만, 일선 부대에서 운용하는 일은 없었다. 맥스웰 기지에 주둔하고 있는 제23혼성비행단(23rd Composite Group)의 정예 조종사들이 YP-37을 시험 운용하며 데이터를 모으고 평가 임무를 수행했다.

1939년 가을부터는 에글린 기지(Eglin Air Base)에서 이륙해 멕시코만 해상에 띄워놓은 목표를 향해 기총을 사격하는 실험을 시작했다. 일련의 테스트는 1941년 7월까지 계속되었다. 그렇지만 이착륙 조작이 너무 어려웠던 XP-37은 1941년 8월에 일리노이주 채누트 비행장(Chanute Field)에 있는 육군 항공정비학교(Army Mechanics School)에 지상 교보재로 보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