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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넬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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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치 독일 국기.svg 제2차 세계 대전의 독일 해군 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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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개요2. 배경3. 건조4. 형식5. 구조6. 활약7. 제원8. 기타

1. 개요

슈넬보트(Schnellboot)는 2차대전 당시 독일 해군이 운용했던 어뢰정이다. S보트라고도 하며 연합군은 적정(敵艇, Enemy Boat)이란 뜻의 E보트라고 부르곤 했으며 현재도 영미권 쪽에서는 이 명칭이 일반적이다.

직역하면 고속정을 뜻하며, 독일 해군의 대형 어뢰정(어뢰함)과는 다른 함종이므로 헷갈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직역하면 어뢰함 쪽이야말로 타국 해군의 프리깃만한 사이즈임에도 어뢰정인데, 베르사유 조약을 회피하기 위해 대위가 지휘하는 (Boot)으로 분류하여 쪽수를 불리고 전력 추산에 혼란을 주기 위한 꼼수의 일환이었다. 이 꼼수는 유보트에서도 반복된다.

독일어 단어 자체로만 보자면 고속정 을 의미하는 일반명사로도 쓰인다. 사실 따지고 보자면 슈넬보트란 단어부터가(Schnell/빠른 + boot/보트) 그냥 고속정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2. 배경

1차대전 종전 후 독일의 군사력은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엄격히 묶여 있었고 독일 해군 역시 잠수함 보유가 전면 금지되는 등 예외가 아니었다. 단 소형 고속정이나 소해정 등의 보조함은 조약의 적용대상이 아니었고, 이를 이용해 보유 척수를 제약받는 구축함 전력을 메우고자 민간 보트를 개수한 어뢰정을 발주함과 동시에, 위에서 언급한 조약 회피용으로 2,000t급 호위함들을 어뢰정으로 분류하였으며, 소해정들을 중무장시켜 구축함처럼 써먹었다. 첫 S보트 S1은 1930년 7월 7일에 현재도 민간 보트 생산 업체로 건재한 브레멘 Lürssen사의 도크에서 취역했고, 이 시기를 거점으로 슈넬보트들이 대거 건조되었다.

3. 건조

이 고속정들의 모델이 되어준 배는 바이마르 공화국이 아직 베르사유 조약에 묶여있던 1929년에 발주한 S-1으로, 이것을 개량하여 1931년에 완성된 S-2급이 그 시작이었다. 브레멘 항구의 뤼르센 조선소(Lürssen Schlichting-Werft)[2]에서 6척이 만들어진 이 작은 배들은 고속정이었으나 꽤 충실하게 무장되어 있어 조약이 그어놓은 한계선을 넘고 있었는데, 승전국들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모두 스페인에 판매되었다. 그 후속형으로 3척 만들어진 것이 S-7급으로, 이 함정들도 전부 중화민국에서 구입해 중일전쟁에서 활동했다. 전쟁 기간 동안 3척 중 2척이 격침당했으며, [3] 살아남은 1척은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이 접수하여 1963년까지 연습선으로 사용하였다. #

전쟁에서 독일 해군이 실전에 투입한 함선은 S-18급부터였는데, 이것들은 S-1 시리즈 보다 배수량이 약간 더 커져 더 중무장되었다. 개전 이후에 건조가 시작된 S-38급 부터는 함교에 장갑판을 둘러 방탄 처리를 했으며 40 mm 보포스 함포를 함수 갑판에 올리고 20 mm 대공포와 MG34 연장 기관총을 후갑판에 설치하고 있었다. 일부의 슈넬보트들은 독일의 영향력 아래 놓여있던 추축국 루마니아에 있는 갈라티 조선소(Galați shipyard)와 콘스탄차 조선소(Constanța Shipyard)에서 수리와 개장을 받곤 했는데, 20척 정도는 아예 이곳에서 건조되기도 했다.

슈넬보트는 전쟁 내내 총 239척이 건조되어 운용되었다. 독일은 원래 약 259척 가량을 더 건조하려고 시도했지만[4] 결국 취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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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형식

슈넬보트는 프로토타입에 가까웠던 S-1급부터 고속정 설계의 정점이라 꼽히는 S-151급까지 총 10가지 형식이 있었다. 다만 이들 중 대부분은 시험용으로 소수만 건조되었고, 본격적으로 대량 건조된 형식은 58척이 건조된 S-38급이나 81척이 건조된 S-38b(S-100)급였다. 이 둘을 제외하고 보면 S-30급이 16척으로 그나마 다른 형식에 비해서는 생산대수가 좀 많았다.

슈넬보트는 2차대전 동안 수차례의 변화가 있었는데 후기형으로 갈수록 선체가 대형화되었고, 선수 갑판의 상승했으며 조타실이 장갑화되는 특징을 보인다. 어뢰는 533mm G7a 어뢰를 장착하였다. 어뢰 외의 무장도 처음에는 기관총 한정이나 20mm 대공 기총 한 정만 달고 있었지만 후반기로 갈수록 점점 화력이 올라가더니 급기야 S-100 형은 4연장 20mm, 37mm나 보포스 40mm 포를 장착하였다. 레이더 테스트도 여러번 받아서 일부는 Metox[5]를 장착하였고 후기형들은 Samos와 Naxos를 장착했다.

5. 구조

슈넬보트만의 고유한 특징이라면 타국의 어뢰정에 비해 선저가 보다 첨저형이며 외양에서의 안정성이 뛰어났다. 이는 구축함 전력이 극도로 모자랐던 관계로 외양에도 어뢰정을 보내야 했던 독일 해군의 급한 사정을 반영한 설계였다. 선체는 고속 항해시에도 수면과 수평을 유지할수 있었으며 덕분에 피탐성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다만 그 특유의 길쭉한 선체 때문에 타국 어뢰정에 비해서 선회 반경이 넓었고 피탄 면적이 넓다는 단점도 있었다.

슈넬보트를 기반으로 만든, 어뢰가 없는 R 보트(R boat, Raumboot)도 있다.[6] R 보트들은 주로 소해임무 및 기뢰부설, 혹은 호위 임무를 수행하였지만 S보트와 함께 활동하기도 했다.

R-147 1척이 전후 살아남았다고 한다. #[7]

6. 활약

2차대전 발발 후 슈넬보트는 북해, 발트해, 영불해협의 초계 및 통상파괴작전에 동원되었다, 주요 임무는 기습, 기뢰 부설이었다. 해당 해협에 착수한 루프트바페 영국 공군, 해군 함대항공단 인원들을 구조하는 임무도 맡았다. 이 과정에서 상대 구조 세력인 영국 해군 및 공군 인명구조정 등과 교전하기도 했다.

개전과 동시에 단치히 자유시에 투입되었고 베저위붕 작전에서 영국 해군 구축함 HMS Kelly에 큰 피해를 입혀 14개월간 수리하게 만들었다. 다이나모 작전 저지에도 투입되어 프랑스 해군 구축함 Sirico를 침몰시켰다. 그 후에도 프랑스 점령으로 기지를 옮겨서 지속적으로 영국으로 향하는 상선대를 습격하고 연안에 기뢰를 부설한다.

슈넬보트는 노르망디 상륙 작전 당시 연합군의 발을 묶기 위해 투입된 첫 해군 함정이었다. 상륙 2달 전이었던 1944년 4월 29일에 영국 남부해안에서 치러진 훈련에 초계중이던 코르벳 1척과 MTB 3척, MGB 2척을 피하여 6척이 난입해 LST 3척에 피해를 입히고 약 600여명의 사상자[8]를 낸 것 역시 슈넬보트의 활약이었다. 하지만 정작 메인이었던 노르망디 상륙작전이라는 큰그림을 보지는 못했다.[9]

오버로드 작전 후에 대다수의 프랑스 기지를 잃으면서 슈넬보트의 활동 범위는 크게 줄어들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전 직전 때까지 기습과 기뢰부설임무는 지속되었다.

2차대전 기간 동안 슈넬보트는 총 101척의 상선을 격침시켰고 총배수량으로는 214,728톤에 달한다. 부설한 기뢰로 침몰한 상선도 37척에 148,000톤으로 추정된다 또한 13척의 구축함과 13척의 소해정과 12척의 LST를 포함한 다수의 함선을 격침시켰다. 작지만 독일 수상함 중에서는 보조 순양함(무장 상선)과 더불어 가장 밥값을 한 축에 속한다.

239척의 슈넬보트가 운용되었고 전후 99척이 살아남았다. 승조원 약 7,500명 중 사상자는 767명이어서 사상자 비율이 80%였던 유보트 보다 훨신 좋았다. 잠수함과 달리 격침시 탈출이 용이한 편이어서 승조원의 생존 가능성이 높았던 덕이다. 남은 슈넬보트들은 영국, 미국, 소련이 인수했고 영국이 인수한 것은 빠른 기동력을 이용해 냉전 초기 요원 침투용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정글 작전 참조). 덴마크와 노르웨이 해군도 슈넬보트를 소수 도입해 운용한 적이 있었다. 또한 크릭스마리네의 해체 이후 새롭게 창설된 독일 연방 해군에도 2척이 반환되어 훈련함으로 사용되었다.

7. 제원

함급 : S-100 고속정
만재배수량 : 100톤 / 경하배수량 : 78.9톤
전장 : 32.76 m / 함폭 : 5.06 m / 흘수선 : 1.47 m
동력 : Daimler Benz MB 501 디젤 엔진 (3,960 hp)
항해속도 : 43.8 노트 (81.1 km/h)
항속거리 : 30노트시 800 해리 (1,500 km)
승무원 : 24~30명
주무장 : 533 mm 어뢰발사관 2문 (어뢰 4발)
부무장 : 20 mm C/30 연장 기관포 1문, 단장 기관포 1문 / 37 mm Flak 42 대공포 1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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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기타

2차대전 동안 이탈리아 해군과 스페인 해군도 슈넬보트를 사용했다. 이탈리아의 경우 유고슬라비아에서 운용하던 슈넬보트를 나포한 뒤 야매로 설계해 사용했는데, 자국산 M,A,S 어뢰정보다 외양 항해성이 뛰어나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1942년에는 이걸로 타운급 경순양함 HMS 맨체스터 함을 격침시키는 활약을 보여줬다. 이 외에 중화민국 해군도 소량의 슈넬보트를 도입해 중일전쟁 당시 사용했으며, 루마니아 역시 4척을 도입했고 전후 공산정부가 들어선 이후로도 1954년까지 쏠쏠히 써먹었다.

전후 스페인으로 넘어간, S-56 또는 S-156중 하나로 추정되는 슈넬보트가 2003년경 코카인 밀수선으로 개장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


[1] 사진은 S-7급 슈넬보트 S-11이다. [2] 이 업체는 지금도 남아있는데, 현재는 호화 요트 같은 특별 주문 선박을 만들고 있다. [3] 1척은 일본 해군기의 공습에 격침되었고, 한 척은 일본 해군에게 나포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중화민국 해군이 자침시켰다. [4] 만약 저게 실제로 실행되었다면 대략 498척 정도가 되니, 531척을 건조했던 PT 보트와 나름 물량면에서 엇비슷해진다. [5] 'Biscay cross'라 불린, 나무로 만든 십자가 형태에 선을 감아 놓은 대레이더 경보장치로, 영국 정찰기가 쓰는 ASV의 1.5m 레이더파를 잡아내었다. [6] 여기도 어뢰가 다 없었던 건 아니고 후기형의 경우에는 어뢰가 탑재되었다. [7] 영상은 후술할 코카인 밀수선으로 개장된 스페인 슈넬보트를 소개한 영상과 같은 영상이다. [8] 참고로 이는 디데이 유타 해변에서의 사상자보다 많다(...) [9] 그런데 설렁 저들이 상륙 훈련중이라는 걸 알았어도, 연합군의 포티튜드 작전으로 인해 노르망디 상륙 당일 독일군은 연합군의 목표가 파 드 칼레라고 완벽하게 착각하고 있던 탓에 큰 의미는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