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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앳암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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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t-arms / Men-at-Arms 혹은 Armsman[1]

1. 개요2. 역사3. 특징4. 역어5. 여기서 이름을 따온 것6. 여담7. 창작물8. 관련 문서

1. 개요

중세 유럽 중무장 병사의 통칭.

2. 역사

중세 초기의 기사는 신분이 아닌 직업 개념이었으므로 잘 무장한 전문 직업군인이면 그냥 기사라고 불렀고, 이름이 알려진 기사들에게 '동업자'로 인정받는지의 여부가 그나마 존재한 검증 수단이었지만[2] 차츰 기사가 병과( 중기병)로서의 개념이 약화되고 사회적 계급 개념으로 변모하면서 하급 귀족으로 편입되어 12세기경에는 과거와 달리 정식 서임을 받지 않았으면 기사라고 불리지 않았다. 이러한 변화는 군사적으로는 전쟁 수행 방식이나 전술, 장비의 변화에 따른 것이었고, 정치적으로는 중앙집권화로 왕의 사법권과 행정권이 확대되면서 기사들이 이전까지는 귀족의 전유물이었던 다양한 행정직에 임명되어 지방 사법행정의 주역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는 사회경제적으로는 농업생산력이 늘어나고 상업과 교역의 증가로 화폐 경제가 발달해나간 영향으로, 도시 공동체가 군주들에게 더 많은 재원을 제공하고 군역의 금납화와 용병업의 활성화도 이루어진 결과였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여전히 중기병이 중요한 전력이었으며 기사에게도 군역이 부과되었으나, 기사의 수는 줄었으면서도 전쟁의 규모는 오히려 커졌다. 기사가 신분이 되면서 주어진 여러 과업을 완수하고 변화하는 전장 환경에 부응하기 위해 더 많은 경제적 부담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예컨대 잉글랜드 왕국의 경우, 과거 '중무장 기병'으로서의 기사는 연 5~10파운드의 수입으로도 충분했으나, '지역 유지이자 왕의 관료이자 전문군인이자 치안 책임자'인 13세기 기사에게는 적어도 연 20~40파운드가 필요했다. 13세기 초 잉글랜드에서 각종 행정 기록으로써 유추할 수 있는 '기사'의 수는 4,000명에 달했으나, 이러한 일련의 '구조 조정'이 진행되면서 13세기 말에는 1,200명 이하로 떨어졌다. 잉글랜드 기사의 2/3가 증발한 것으로, 더 정확히 말하면 과거에는 중하층 기사에 속했을 인원들이 더는 기사라고 불리지 않게 된 것이었다.[3]

그리하여 유럽 각국 군주들은 전통적인 봉건계약으로 소집하는 기사대에 의존하기보다는 필요할 때마다 자금을 써서 중기병대를 동원하기 시작하였으며, 기사의 수가 줄어들었으므로 기사들이 채우지 못하는 부족분은 평민 중기병을 더 고용하여 해결하였다. 이렇게 신분을 막론하고 전업 중기병으로 활동하는 인원이 늘어나면서 이들 모두를 일컫는 단어로 무장병(man at arms), 즉 맨앳암즈가 사용되었다.[4]

맨앳암즈는 중세 후기까지 유럽 내에서 핵심 병과였으나, 화기 발달과 함께 갑옷의 효용성이 사라져 전통적 중기병이 쇠퇴하면서 16세기경에는 총기병이나 창기병, 검기병을 비롯한 근대적 기병 병과들로 대체되었다.

3. 특징

문자 그대로 갑옷과 각종 무기로 중무장한 전문 군인들이었다.

중세 후기 서유럽, 예를 들어 프랑스 왕국에서 장다름( gens d'armes)은 전신 갑옷과 각종 무기를 소지하고 2~3필 이상의 군마와 1~6명의 보조수행원을 거느린 중기병으로 정의되었으며,[5] 왕이든 제후든 남작이든 기사든 평민이든 위와 같은 조건을 갖췄으면 모두 homme d'armes였다. 이들은 경무장을 하고 말 한 필을 가졌으며 수행원이 없는 기마병(gens de cheval)과는 뚜렷이 구별되는 존재로 여겨졌다.

이들은 수가 감소한 이전의 기사들과 똑같은 군사적 역할을 수행했다. 중기병으로서 주로 복무하되 필요에 따라서는 하마하여 중보병으로서도 싸웠다.

이러한 까닭에, 기사가 전쟁에 참전하면 맨앳암즈에 속하였으나, 모든 맨앳암즈가 기사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값비싼 갑옷 군마, 마갑, 마구를 마련하고 유지해야 했으므로, 귀족이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젠트리, 요먼 및 기타 부유한 평민으로 구성되었다.

12세기 이후 서유럽의 도시 부르주아들은 관직을 얻고 오랫동안 왕의 측근으로 봉사함으로써 귀족 지위를 부여받는 식의 직접적인 수단[6] 외에도, 상업으로 번 돈을 도시 주변의 부동산에 투자해서 지주 노릇을 하거나, 왕이나 대귀족처럼 나환자촌이나 구빈원에 기부를 하거나, 가난한 귀족 집안과 혼인관계를 맺는 등 귀족의 삶을 모방함으로써 지위 상승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였다. 아들들을 기사처럼 화려하게 무장시키고 토너먼트에 참가시키는 것 역시 그처럼 집안의 격을 높이는 행위에 포함되었다.

기사가 아닌 맨앳암즈는 보통 왕의 상비군에 입대하거나, 전쟁으로 인해 왕의 호출을 받거나, 용병대나 다른 맨앳암즈의 부대에 들어가 계약, 군역을 수행했으며, 그 외에 요새의 수비와 같은 임무에 대해서도 병역을 수행했다. 전문적인 직업군인으로 전투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들이 많았고, 일부는 보병을 지휘하는 일종의 부사관( Sergeant)이 되기도 했다.

이들은 기사 계급과 동등한 무장을 갖추고 있었으므로 기사보다는 낮으나 일반 병사들보다는 매우 높은 봉급을 받았으며, 기사처럼 군마 유지비 혹은 새 군마 구입비를 지급받았다.

4. 역어

일반적으로 "중장보병" 혹은 " 중장기병", "중기병" 등으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으나, 맨앳암즈는 어디까지나 무장의 수준으로 구분한 것이므로 알맞은 번역이라고 할 수 없다. 사실 맨앳암즈의 개념에 정확히 대응하는 어휘가 없으므로 소리나는 그대로 적어도 무방하다. 굳이 번역하면 무장 수준에 비추어 중장병 또는 중무장병이라고 하거나, 원어의 어감을 살려 무장병이라고 옮길 수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중장병을 지칭하는 용어였던 호플리테스(ὁπλίτης) 역시 '전투장비들을 완전히 갖춘 군인'이라는 뜻이며, 영어로 직역하면 맨앳암즈다. 중무장한 엘리트 전투원을 두루뭉술하게 지칭하는 용어라는 점에서 사용법도 비슷하다. 그래서 그리스 고전 영역본 중 쉽고 정확한 의미 전달에 중점을 둔 번역에서는 호플리테스를 맨앳암즈로 번역하기도 한다.

5. 여기서 이름을 따온 것

6. 여담

느낌이 유사한 맨 오브 워라는 단어도 있다, 다만 이쪽은 해군 관련 용어. 용어가 의미하는 범위가 두루뭉술한건 비슷하다.

7. 창작물

양판소에서의 비중은 그냥 공기. 중세의 꽃은 기사지만 그 뒤에서 실질적인 전장의 주력이 된 맨 앳 암즈의 존재는 대부분 기사라는 단어로 치환되어 생략되는 경우가 많다. 수만 명 규모(…)의 기사단이 등장할 정도로 역사적 배경에 대한 지식이나 작중 사회·경제적 구조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므로 사실상 묘사되는 경우는 없다. 그나마 이 대규모의 기사단도 어쨌든 기사들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맨앳암즈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실제 맨앳암즈와의 유사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8. 관련 문서



[1] 왼쪽은 단수형 - 오른쪽은 복수형. [2] 웬만한 전근대 사회가 그렇듯, 이 시기에는 참전하려는 자는 군마와 갑옷, 무기를 스스로 마련해야 하는 데다가 이를 사용하는 전투기술을 배우는 것 역시 자신이 알아서 해야 하는 일이었으므로, 중세 초기의 기사들은 말석이나마 지주계층이거나 최소한 가솔로서 그들한테 신세를 지는 처지였다. 후대와는 달리 기사가 신분 개념이 아니고 이를 인정하는 '서임'에도 별 의미가 부여되지 않는 시대였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장 기사(군인)가 많이 필요한 시대였다. 그 신분이 영세한 자유민이나 심지어 농노 혹은 노예라 해도, 군마와 갑옷, 무기라는 조건을 채운 자가 기사를 자칭하거든 신분 사칭이 아니라 단순한 사실이었을 뿐이었다. [3] 이러한 현상의 자세한 전개는 봉건제 기사(역사) 문서를 참고할 것. [4] 다만 16세기 이전에는 맨 오브 암즈(Man of arms)라고 불렀다. [5] 이들 수행원은 시동(page) 등 비전투원도 있었으나 대부분 같은 맨앳암즈나 종자( squire), 경기병, (승마) 궁병, 보병과 같은 전투원들이었다. 프랑스에서는 이 맨앳암즈( 장다르메)와 수행원들로 구성된 부대 단위를 랜스(lance)라고 하였는데, 그 구성이나 규모는 지역과 시대마다 편차가 있다. [6] 1385년부터 서퍽 백작이 된 드 라 폴 가문이 그렇게 상인에서 대귀족이 된 사례였다. [7] 전작에서는 징집병과 상비병을 불문한 모든 병력이 여러 병종(경보병, 중보병, 창병, 궁병, 경기병, 중기병, 그 외 지역과 문화에 따라 특수병종인 궁기병, 낙타병, 코끼리병)으로 구별되어 있고, 상비군 격인 전문사병집단인 레티뉴(retinue)가 있다. 그리고 이 상비병은 병종 구별 자체는 징집병과 공유하는 대신 전투에 익숙한 직업군인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스텟에 큰 보너스가 붙고, 각 문화권별로 해당 문화권의 특성을 반영한 고유 상비병 부대를 편성할 수 있다. 무엇보다 큰 장점은 부대 조합을 통해 각 병종의 비율을 플레이어가 직접 조절할 수 있어서, 징집병에서는 필연적으로 포함될 수 밖에 없는 비선호 병종(가령 경보병)도 일부러 경보병이 포함된 부대를 편성하지 않는 한 섞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한 징집병의 페널티(병력동원 상태에서 선전포고 불가, 공격전쟁에서 동원기간 제한을 넘길 경우 기간 비례 봉신 불만도 증가) 없이 상시 유지 가능하다. [8] 크루세이더 킹즈 시리즈에서 상비군 시스템은 1편에서는 없었고, 2편에서도 <로마의 유산> DLC의 추가와 함께 등장했다. 이것이 게임의 재미와 역사 고증을 동시에 만족시킨 흥미로운 시스템으로 상당히 좋은 평가를 얻었던 까닭에 3편에서는 이를 더욱 발전시켜, 징집병(levy)은 농노병만을 다루는 별개 군종으로 바꾸고 전문적인 무장가신들은 독립적인 인물로서도 다룰 수준인 기사를 제외하면 병종 불문 맨앳암즈 군종으로 분리한 것이다. 그 결과 시대상 변화도 반영하게 되었는데, 중세 초기에서 후기로 갈수록 기술과 법제, 사회경제의 발전에 따라 상비군은 규모와 질도 확충되어 전장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높아지지만 시대적 한계로 결코 징집병을 완전히 밀어내지는 못한다. 참고로 어중간한 농노징집병이 전장에서 모습을 감추고 상설편제와 용병부대로서 싸우는 모습은 근세를 다루는 유로파 유니버설리스 시리즈에서부터 구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