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D Machine Gun пулемет ЛАД LAD 기관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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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7c7c7,#353535><colcolor=#000,#fff> 종류 | <colbgcolor=#ffffff,#121212><colcolor=#000,#fff> 경기관총 | ||
원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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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 | ||
<colbgcolor=#c7c7c7,#353535><colcolor=#000,#fff> 역사 | <colbgcolor=#ffffff,#121212><colcolor=#000,#fff> 1942년~ 1943년 | ||
개발 |
바실리 페도로비치 류티 니콜라이 미카일로비치 아파나셰프 블라디미르 세르게이비치 데이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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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년도 | 1942년 | ||
생산 | 중앙 소화기 및 박격포 연구소 (NIPSMVO) | ||
생산년도 | 1942년~ 1943년 | ||
생산수 | 2정 | ||
제원 | |||
탄약 | 7.62×25 mm 토카레프 | ||
급탄 | 150발 탄띠 | ||
작동방식 | 블로우백 | ||
전장 | 970mm | ||
중량 | 5.3kg | ||
발사속도 | 600RPM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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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소련에서 개발한 프로토타입 경기관총으로, 바실리 페도로비치 류틔(Василий Фёдорович Лютый), 니콜라이 미카일로비치 아파나셰프(Никола́й Миха́йлович Афана́сьев), 블라디미르 세르게이비치 데이킨(Владимир Серге́евич Дейкин). 이 세 명이 개발했으며, 이 세 명의 성의 앞글자를 따서 LAD(ЛАД, 라드)라고 불리게 되었다. 권총탄을 사용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기관단총과 분류가 겹치기도 한다.[1]2. 상세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소련군은 기관총 문제로 곤혹을 치르고 있었다. 전쟁 전 덱탸료프의 DS-39에 거는 기대가 컸지만 문서에도 나오다시피 여러 문제로 인해 성공적이지 못했고, 이미 오래된 M1910을 다시 재생산하는 것도 어려웠으며, DP-28은 원반형 탄창의 고질적 문제 때문에 전방에서 평가가 좋지 않았다. 이윽고 SG-43이 개발되어 배치되면서 한시름 놓게 되었지만, 소련에서는 SG-43만 개발중이었던 것이 아니었다.소련의 소화기 및 박격포 개발 부서(Central Research Complex for Small Arms and Mortars, NIPSMVO)에서 일하던 젊은 장교 바실리 류티와 블라디미르 데이킨은 전선으로부터 여러 이야기를 전해 듣고 한 가지 결론을 내리게 되는데, "2차 대전에서 주요 전투는 대부분 3~400m도 안 되는 근거리에서 벌어지는데, 이 정도 거리라면 총구 속도 600m/s인 권총탄으로도 충분히 적 제압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기관총에 권총탄을 적용하기로 결정한 그들은 이미 PPSh-41 등의 기관단총에 많이 사용되고 있던 7.62×25 mm 토카레프를 사용하기로 하고, 작고 가벼운 총기를 개발하기 위해 전직 공군 부사관이었던 총 개발자인 니콜라이 아파나셰프의 도움을 받아 1943년 8월 실제 테스트까지 받게 된다.
LAD 기관총은 빈 탄창일 때 고작 5.3kg밖에 하지 않았고, 150발들이 탄띠를 장전해도 7.63kg에 불과했으며, 생산도 리벳과 용접으로 해결될 정도로 간단했다. 늪 밑바닥에 담그거나 시멘트 가루를 뿌리는 등 온갖 악조건 테스트에서도 1750발 중 5발의 격발 불량만이 발생했다. 그 다음 테스트에서는 적의 기관총 분대와 유사하게 전장을 모사한 실험장에서 이동 사격을 실시하였다. 실험에 사용한 대조군은 다름아닌 PPSh-41이었는데, 실험 결과 LAD 기관총이 교전거리 최대 500m 이내에서 거의 2배 가까이 차이나는 화력을 투사할 수 있었다는 결과를 얻었다.
LAD의 유일한 문제점은 바로 너무 늦었다는 것이었다. 이미 소련군은 중간탄 개발 프로젝트에 착수한 상황이었고 이 중간탄을 사용하는 돌격소총과 경기관총에 더 관심이 많았다.[2] 결국 프로토타입 두 정만이 만들어졌으며, 실전에 투입되지도 못하고 LAD 프로젝트는 폐기되었다. 이후로 아파나셰프는 기관단총부터 항공기 기총까지 개발하는 유명 총기 제작자가 되었고, 류티는 NIPSMVO에 잔류했지만, 데이킨은 상급 부서로 승진했다. 이후 시작된 돌격소총 개발 프로젝트에서 류티는 한 무명 총기 개발자에게 기회를 주었고, 그 결과 그 유명한 AK-47이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되었다.
현재 LAD의 프로토타입 두 정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3. 참고 자료
4. 둘러보기
제2차 세계 대전기의 소련군 보병장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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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전쟁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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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화기 | 소총 | 볼트액션 소총 | <colbgcolor=#fefefe,#393b42> M1891/30, M1938, М1944 | |||
레버액션 소총 | M1895 | |||||
반자동소총 |
SVT-38, SVT-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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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소총 |
표도로프 자동소총,
AVS-36,
AVT-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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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단총 |
PPD-34, PPD-38, PPD-40,
PPK-41,
PPSh-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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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총 | M1895, M1921, TK, TT-30, TT-33, M1911L | |||||
지원화기 | 기관총 |
PM M1910/30,
맥심-토카레프,
DP-28, DPM,
DT, DTM,
ShKAS,
DShK,
DS-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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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차화기 |
RPG-40,
PTRD-41,
PTRS-41,
VPGS-41,
RPG-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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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염방사기 | ROKS-2, ROKS-3 | |||||
박격포 | 37mm VM-37, 50mm RM-38/40, 82-BM/PM-36/37/41/43 | |||||
유탄 | F-1, RG-14/30, RGD-33, RG-42 | |||||
지뢰 | PMD-6M, PMD-7, PMD-57, POMZ-1 | |||||
냉병기 | M1927, M194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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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와 유사하게 분류에 혼동을 겪는 무기로는 약 30년 전에 개발되었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헬리겔 1915와
이탈리아 왕국의
빌라르-페로사가 있으며, 이 무기들도 마찬가지로 권총탄을 사용했지만 이 때 당시에는 기관단총이라는 개념이 없어서
기관총으로 분류되었다.
[2]
이 프로젝트의 첫 결과물이 각각
AS-44와
RPD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