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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AKB48에 대해 알려진 오해와 편견을 소개하고 이를 정리한 문서들.2. AKB48가 일본 아이돌 실력을 하락시켰다?
한국의 일부 사이트들에서 전해지는 내용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 그냥 일본 아이돌의 실력은 계속 퇴보해 왔다.우선 AKB48가 결성된 2005년으로 돌아가보자. 당시의 일본 여돌은 여전히 헬로! 프로젝트가 거의 대부분을 잠식하고 있었다. 현대적 의미의 아이돌이 발생된 일본에선 아이돌 자체는 점점 대중문화와 멀어지고 있었다. 문제는 하로프로는 하락세라곤 하지만 그만한 영향을 가진 여성 아이돌 자체가 전무했고, 이미 2000년대 초반 에이벡스와 비전팩토리 등에서 시도했던 SweetS, dream, Folder5 등의 댄스 걸 그룹들조차 인기를 얻지 못했다.
즉 여돌로는 대중적 인기를 얻는 것이 불가능해진 시대가 온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엄밀히 말해선 80년대 후반에서 1999년 모닝구 무스메가 히트하기 전까지 여돌은 계속 비주류였다. 모무스가 터진것이 오히려 특별했던것이고, 이미 일본 대중문화에서 여돌은 전성기가 한참 지난 문화였던 것이다.
AKB48를 만든 아키모토 야스시조차도 여돌을 2~3번 말아먹었던 전력이 있어서, 사실 마이더스의 손도 아니었다.
AKB48가 제대로 대중들에게 알려지는것은 2010년 부터인데, 이 시기의 아이돌링!!! 같은 아이돌을 봐도 역시 실력은 처참했다.
3. 악수회는 만악의 근원이다?
냉정하게 말해서 AKB48의 악수회 시스템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다른 아이돌조차도 음반에 도핑을 넣는 것은 다들 하고 있었다. 이는 AKB48가 극악의 상술인 악수회를 도입하기 이전부터 행해져온 일이다.위에 설명한 대로 일본 여돌의 경우 그들만의 리그가 워낙에 심하게 진행되어서, 2008년 경에는 이미 여돌로 빅히트하는건 매우 어려웠다. 망해가던 AKB48는 사실 살기 위해서 고육지책으로 꺼내든 카드가 2008년 지방악수회였다. 처음으로 시행한 2008년 악수회는 조롱을 당했다. 그러나 AKB48은 악수회를 통해 2009-2010-2011 해가 갈수록 날아올랐고, 결국 다른 여돌들도 이 방법을 쓸 수 밖에 없어진다.
나쁘다고 할 수 있겠지만, AKB48의 국민적 히트가 없었다면 지금의 일본 여돌 시장은 형성 자체가 안 됐다. 오히려 일본어로 무장한 K팝 아이돌에게 시장 주도권을 내줬을 수도 있다. AKB48의 성공이 그나마 다른 여돌에게까지 이어져서 지금 수준의 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여돌의 지위가 엄청 낮았던 일본 시장에서 AKB48의 시스템은 그나마 대중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게 만들어 준 원동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