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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23 14:51:16

91식 10cm 곡사포

제2차 세계대전기의 일본군 화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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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사포 <colbgcolor=#fefefe,#191919> 91식 10cm 곡사포, 92식 10cm 캐논포, 12cm 캐논포, 96식 150mm 곡사포
야포/ 산포 90식 75mm 야포, 41식 산포, 94식 산포
대전차포/ 전차포 90/97식 57mm 전차포, 94식 37mm 속사포, 1식 기동 47mm 속사포, 시제 57mm 대전차포, 시제 105mm 전차포
보병포 11식 37mm 보병포, 92식 70mm 보병포
대공포 96식 25mm 고각기총, 98식 20mm 기관포, 5식 40mm 중대공포, 88식 75mm 대공포, 99식 88mm 대공포, 89식 12.7cm 40 구경장 함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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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一式十糎榴弾砲
1. 개요2. 제원3. 개발 및 배치4. 파생형5. 관련 문서

1. 개요

91식 곡사포는 1930년대 초반에 일본 제국 육군이 채용한 곡사포이며, 이 중에서는 기계화 견인을 목적으로 한 파생형이 있었다. 참고로 이 포는 치하를 개량해 만든 자주포 호니2의 주포로 쓰기도 했다.

2. 제원

  • 중량: 1,500kg
  • 구경: 105mm
  • 포신: 2090mm
  • 포탄: 15.7 kg
  • 전폭: 1.84 m
  • 전고: 1.73 m
  • 상하각도: -5° 에서 +45°
  • 좌우각도: 좌우로 각각 20° (총 40°)
  • 발사속도: 분당 6 ~ 8발
  • 포구초속: 454m / s
  • 최대사거리: 10,800m
  • 생산량: 1200문

3. 개발 및 배치

제1차 세계 대전의 유럽 전선에서는 기존의 75mm 야포 외에도 각국이 100mm급 경 곡사포 사단 포병 편제하고 있었다. 따라서 일본도 사단 포병용으로 야포와 같은 견인식 100mm급 경곡사포의 장비가 필요하다고 여겨졌기에 1920년 7월 20일자 '제 398 호'무기 연구 방침에 따라 신형 곡사포의 사양이 결정되어 1924년 (다이쇼 13년)에 수십 개항의 요구사항을 바탕으로, 결과가 양호하면 300 문을 구입하는 조건으로 프랑스 슈나이더사에 개발을 의뢰했다.

시제 포는 1930년에 완성, 같은 해 말부터 다음 해 연초에 걸쳐 5문이 프랑스에서 도착했다. 고대하고 있던 육군은 조속히 각종 시험을 실시했고 그 결과 성능은 대체로 양호하다고 평가되어 1931년 3월에는 "91식 유탄포"[1]로 임시 제식으로 편입하는 조건으로 슈나이더사에 300문의 포를 주문했다. 그 후 1933년 3월에 제식 제정되어 국산화됐다.

폐쇄기는 보통 수평쇄전식에서 장약가변식의 분리 장약을 사용한다. 장약은 수가 많은 순서대로 1호 장약 · 2호 장약 · 3호 장약이 존재하였다. 개각 포가를 가진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각국의 동급 포에 비해 사격 성능면에서 특출난 점은 없지만 그렇다고 크게 떨어지는 점도 없어서, 특히 유연성을 위해 가볍게 만들었기 때문에 견인형 곡사포로서는 동세대 곡사포 중에서 가장 가벼운 부류에 들어간다. 다만, 프랑스의 설계를 완전히 그대로 채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의 일본인 병사의 체격에 있어서는 분명히 부담가는 무게라서 인체공학적인 배려가 결여되었다는 지적도 있다.

1936년부터 본격적으로 부대 배치가 이루어져 포병의 주요 화기로 정비되어 특히 1940년 이후부터 야포 · 산포의 생산을 증가시켜 해당 포의 양산에 노력했다. 독일 육군의 방식을 모방하여 사단 포병을 본포와 96식 150mm 곡사포로 구성한다는 구상 이었지만 이후의 정세 변화와 국력의 차이에 따라 이를 완전히 실현하는 건 포기하고 태평양 전쟁의 사단 포병의 주류 화포는 기존의 75mm 산포와 이 포와의 혼성이였다.

이후 대만군이 M10 GMC에 이 포를 교체하여 사용하였다.

4. 파생형

파일:type-91-100mm_2.jpg
개량형
해당 포를 전차 사단의 기동 포병을 위한 견인화하려는 개량 시도는 1933년에 시작되어 1935년에 제식 제정되었다. 그러나 기동 포병 연대의 편성 자체가 지연되었기 때문에 실제 생산은 1941년 때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격 성능면에서는 기존의 일반형과 다르지 않지만, 기존의 철제 바퀴대신 차량 견인용 스프링 서스펜션 타이어로 대체해 개량했기에 최대 견인 속도는 40km/h였다. 중량은 일반형보다 증가한 1,750kg였지만 차량등에 견인해 운반하기엔 타이어식이 더 유리하기에 문제될 건 없었다. 전체 100문 정도 생산되었다.

5. 관련 문서


[1] 곡사포를 부르는 일본의 명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