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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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이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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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별 리그 | 1조 | 2조 | 3조 | 4조 | ||
결선 토너먼트 | 준결승 | 결승 |
{{{#!folding [ 각주 ] |
[1]
이 대회는 첫 대회 홍보차원으로 지역 예선 없이 모든 팀을 초청해서 진행했다.
[clearfix]
1. 개요
<rowcolor=#df6911> 순위 | 국가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
<colcolor=#000,#fff> 1 | 아르헨티나 | 3 | 0 | 0 | 10 | 4 | +6 | 6 | |||
2 | 칠레 | 2 | 0 | 1 | 5 | 3 | +2 | 4 | |||
3 | 프랑스 | 1 | 0 | 2 | 4 | 3 | +1 | 2 | |||
4 | 멕시코 | 0 | 0 | 3 | 4 | 13 | -9 | 0 | |||
■ 토너먼트 진출 | ■ 탈락 |
시드 배정국: 아르헨티나
2. 1경기 프랑스 4 vs 1 멕시코
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 1조 제1경기 1930년 7월 13일 15:00 (UTC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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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타디오 포시토스 (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 ||
주심: 도밍고 롬바르디 (우루과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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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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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뤼시앵 로랑 40′ 마르셀 랑질리 43′, 87′ 앙드레 마쉬노 |
70′ 후안 카레뇨 |
프랑스 선발 명단
2-3-5 감독: 라울 코드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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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K 알렉스 테포 ▼ 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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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 에티엔 마틀레르 |
FB 마르셀 카펠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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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 오귀스탱 샹트렐 |
HB 마르셀 피넬 |
HB 알렉상드르 빌라플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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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W 에르네스트 리베라티 |
FW 에드몽 델푸르 |
FW 앙드레 마쉬노 43′, 87′ |
FW 뤼시앵 로랑 19′ |
FW 마르셀 랑질리 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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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W 루이스 페레스 |
FW 후안 카레뇨 70′ |
FW 디오니시오 메히아 |
FW 호세 루이스 |
FW 일라리오 로페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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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 펠리페 로사스 |
HB 알프레도 산체스 |
HB 에프라인 아메스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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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 마누엘 로사스 |
FB 라파엘 가르사 구티에레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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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K 오스카르 본피글리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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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선발 명단
2-3-5 감독: 후안 루케 |
역사적인 월드컵 초대 대회의 첫 경기. 몬테비데오의 포시토스 경기장에서 치러졌으며 월드컵의 아버지인 쥘 리메의 노고를 기리는 뜻으로 우루과이가 프랑스에게 스타트를 넘겨줬다.[1] 그리고 19분에 역사적인 월드컵의 첫 골이 터졌고, 그 골의 주인공은 프랑스의 공격수 뤼시앵 로랑이었다.
뤼시앵 로랑 |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월드컵 최초의 부상자도 나오게 되는데 그 주인공은 프랑스 골키퍼 알렉스 테포였다. 전반 24분에 멕시코의 공격수 메히아와 충돌하여 부상을 입은 것이다.[2] 당시에는 선수 교체라는 개념이 없었지만[3] 골키퍼 없이 시합을 계속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테포의 자리를 누군가가 대신 메워줘야 했고 그 자리는 라이트 하프백[4]이였던 오귀스탱 샹트렐이 맡았다. 그리고 오늘날의 선수 교체와는 조금 다르지만 이것이 월드컵 최초의 선수 교체에 대한 기록이다.[5] 어떻게 봐도 멕시코가 유리한 조건이었지만 경기는 프랑스가 4대1로 이겼다.
3. 2경기 아르헨티나 1 vs 0 프랑스
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 1조 제2경기 1930년 7월 15일 16:00 (UTC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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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타디오 그란 파르케 센트랄 (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 ||
주심: 지우베르투 헤구 (브라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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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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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루이스 몬티 | - |
GK 앙헬 보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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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 호세 델라토레 |
FB 라몬 무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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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 후안 에바리스토 |
HB 루이스 몬티 81' |
HB 마리오 수아레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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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W 나탈리오 페리네티 |
FW 프란시스코 바라요 |
FW 마누엘 페레이라 |
FW 로베르토 체로 |
FW 마리오 에바리스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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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W 마르셀 랑질리 |
FW 뤼시앵 로랑 ▼ 2' |
FW 앙드레 마쉬노 |
FW 에드몽 델푸르 |
FW 에르네스트 리베라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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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 알렉상드르 빌라플란 |
HB 마르셀 피넬 |
HB 오귀스탱 샹트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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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 마르셀 카펠레 |
FB 에티엔 마틀레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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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K 알렉스 테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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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선발 명단
2-3-5 감독: 라울 코드롱 |
FIFA 월드컵 역사상 현재까지 거의 유일한 눈 내리는 경기장에서의 시합이었다. 월드컵에서 눈 내리는 경기장을 거의 볼 수 없는 이유는 월드컵은 지금까지 단 두 번[6]을 제외하고 유럽 리그의 시즌이 끝나는 6월에서 7월쯤 개최해왔기 때문이다. 남반구와 북반구의 계절은 서로 반대로 나타나기 때문에 이때 북반구에서 개최했을 때는 당연히 눈이 오지 않는 것이다. 반대로 이걸 북반구에 대입하면 폭우 속에서 치른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남반구에서 눈이 무조건 오는 것도 아닌 것이 지금까지 월드컵을 개최한 남반구 나라들은 우루과이,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남아공 딱 5개 밖에 없었다. 이 5개의 나라 중 먼저 남아공과 브라질은 비교적 따뜻하므로 눈을 보기가 어렵고 1978년 월드컵은 눈이 많이 내리는 7월이나 8월이 아닌 6월초에 시작해서 6월 25일에 끝났고 1962년 월드컵 역시 5월 30일에 시작해서 6월 중순에 끝났다. 아르헨티나나 칠레도 이 정도면 늦가을~초겨울 정도의 계절이므로 눈이 내리기도 힘들다. 따라서 지역적으로도 다소 추운 쪽에 속하고 7월 중순에 월드컵을 치른 이 대회에서 현재까지 거의 유일하게 눈 내리는 월드컵 경기가 나올 수 있게 되었다.
프랑스의 순조로운 출발을 막은 팀이 바로 아르헨티나였다. 아르헨티나의 루이스 몬티는 월드컵 첫 골의 주인공 뤼시앵 로랑에게 전반 2분 만에 발목 부상을 입혀 경기장 바깥으로 내쫓았다. 이런 식으로 몬티는 프랑스 진영을 헤집고 다녔다. 게다가 81분에 프리킥으로 결승골까지 넣는 10점짜리 활약을 선보였다.
여기에서 브라질 출신 심판 아우메이다의 실수가 하나 터졌는데, 시간을 착각해서 경기를 7분 일찍 끝내버린 것이다. 그것도 단 1골 차이밖에 나지 않는 상황에 랑질리가 역습을 전개해 나가는 과정에서 경기를 중단시켜버렸으니 프랑스 선수들은 당연히 격렬하게 항의했다.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심판은 경기를 재개했고 아르헨티나 선수들 중에는 샤워를 하다 말고 다시 끌려나온 선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4. 3경기 멕시코 0 vs 3 칠레
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 1조 제3경기 1930년 7월 16일 14:45 (UTC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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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타디오 그란 파르케 센트랄 (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 ||
주심: 앙리 크리스토프 (벨기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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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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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 65′
카를로스 비달 51′(O.G) 마누엘 로사스 |
멕시코 선발 명단
2-3-5 감독: 후안 루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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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K 이시도로 소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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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 라파엘 가르사 구티에레스 |
FB 마누엘 로사스 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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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 에프라인 아메스콰 |
HB 알프레도 산체스 |
HB 펠리페 로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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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W 일라리오 로페스 |
FW 로베르토 가욘 |
FW 호세 루이스 |
FW 후안 카레뇨 |
FW 루이스 페레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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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W 카를로스 슈니베르거 |
FW 카를로스 비달 3', 65' |
FW 에베라르도 비야로보스 |
FW 기예르모 수비아브레 |
FW 토마스 오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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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 움베르토 엘게타 |
HB 기예르모 사베드라 |
HB 아르투로 토레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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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 빅토르 모랄레스 ▼ 85' |
FB 울리세스 포이리에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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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K 로베르토 코르테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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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선발 명단
2-3-5 감독: 오르트 죄르지 |
멕시코는 칠레를 상대로 복수혈전을 노렸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칠레의 공격수 카를로스 비달에게 시작한 지 3분 만에 골을 먹혔고 후반 6분에는 수비수 로사스의 자책골[7]까지 겹치면서 전의 상실. 후반 20분에 비달에게 쐐기골까지 허용하면서 멕시코의 꿈과 희망은 사라지고 말았다.
5. 4경기 프랑스 0 vs 1 칠레
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 1조 제3경기 1930년 7월 19일 12:50 (UTC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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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타디오 센테나리오 (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 ||
주심: 아니발 테하다 (우루과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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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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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5′ 기예르모 수비아브레 |
프랑스 선발 명단
2-3-5 감독: 라울 코드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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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K 알렉스 테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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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 에티엔 마틀레르 |
FB 마르셀 카펠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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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 오귀스탱 샹트렐 |
HB 셀레스탱 델메르 |
HB 알렉상드르 빌라플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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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W 에르네스트 리베라티 |
FW 에드몽 델푸르 |
FW 마르셀 피넬 |
FW 에밀 베낭트 |
FW 마르셀 랑질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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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W 카를로스 슈니베르거 65' |
FW 카를로스 비달 |
FW 에베라르도 비야로보스 |
FW 기예르모 수비아브레 |
FW 토마스 오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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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 카시미로 토레스 |
HB 기예르모 사베드라 |
HB 아르투로 토레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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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 기예르모 리베로스 |
FB 에르네스토 차파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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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K 로베르토 코르테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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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선발 명단
2-3-5 감독: 오르트 죄르지 |
프랑스는 이틀 사이에 2경기를 연속으로 치른데다가[8] 아르헨티나에게 당한 패배로 분위기가 영 좋지 않았다. 반면 상대인 칠레는 멕시코를 이전 경기에서 3대0으로 이긴 터라 분위기가 프랑스와 정반대였다. 프랑스는 골키퍼 테포가 전반 30분에 비달의 페널티 킥을 막아내며 기세를 올렸지만 후반 22분, 칠레의 수비아브레에게 헤딩 결승골을 내줬고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6. 5경기 아르헨티나 6 vs 3 멕시코
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 1조 제5경기 1930년 7월 19일 15:00 (UTC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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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타디오 센테나리오 (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 ||
주심: 울리세스 사우체도[9] 볼리비아의 감독이었다. 다른 조의 시합이라 심판을 본 것이고 이것은 초창기 월드컵이라 가능했다.] (볼리비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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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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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17′, 80′
기예르모 스타빌레 12′, 55′ 아돌포 수멜수 53′ 프란시스코 바라요 |
42′(P.K), 65′
마누엘 로사스 75′ 로베르토 가욘 |
GK 앙헬 보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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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 호세 델라토레 |
FB 페르난도 파테르노스테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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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 알베르토 치비디니 |
HB 아돌포 수멜수 12', 55' |
HB 로돌포 오를란디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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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W 카를로스 페우셀레 |
FW 프란시스코 바라요 53' |
FW 기예르모 스타빌레 8', 17', 80' |
FW 아틸리오 데마리아 |
FW 카를로스 스파다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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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W 펠리페 로사스 |
FW 후안 카레뇨 |
FW 로베르토 가욘 75′ |
FW 일라리오 로페스 |
FW 펠리페 올리바레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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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 라이문도 로드리게스 |
HB 알프레도 산체스 |
HB 마누엘 로사스 42' 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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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 프란시스코 가르사 구티에레스 |
FB 라파엘 가르사 구티에레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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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K 오스카르 본피글리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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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선발 명단
2-3-5 감독: 후안 루케 |
아르헨티나의 상황을 보면 당시 주장이었던 마누엘 페레이라가 갑자기 고국으로 돌아가 버렸는데 그 이유는 대학교 법과 시험 때문이었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로베르토 체로는 불안발작증세로, 또 다른 공격수 마리오 에바리스토[10]는 부상이 채 낫지 않아서 경기를 뛸 수 없었다. 이렇게 되자 아르헨티나의 감독 올라사르는 후보 선수 중 대표팀 출전 경험이 전무한 기예르모 스타빌레에게 아르헨티나의 공격을 맡기는 모험을 했다. 그런데 이것이 대박!!! 스타빌레는 데뷔전인 멕시코전에서 해트트릭[11]을 터뜨리며 아르헨티나에게 승리를 안겼다.
페레이라, 체로, 몬티가 없어도 아르헨티나는 강했다. 멕시코의 골키퍼 본피글리오가 아르헨티나의 파테르노스테르의 페널티 킥을 막아냈지만[12]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 마누엘 로사스는 후반 27분에 다시 페널티 킥을 찼지만 이번에는 보시오 골키퍼에게 막혔다.
이렇게 양팀은 FIFA 월드컵 역사상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을 만들어냈고 멕시코는 조별리그 3경기 모두 대량실점 패배(-4, -3, -6)라는 치욕스러운 성적으로 꼴찌 탈락했다.
7. 6경기 아르헨티나 3 vs 1 칠레
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 1조 제6경기 1930년 7월 22일 14:45 (UTC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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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타디오 센테나리오 (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 ||
주심: 장 랑제뉘 (벨기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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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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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3′
기예르모 스타빌레 51′ 마리오 에바리스토 |
15′ 기예르모 수비아브레 |
GK 앙헬 보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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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 호세 델라토레 |
FB 페르난도 파테르노스테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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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 후안 에바리스토 |
HB 루이스 몬티 |
HB 로돌포 오를란디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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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W 카를로스 페우셀레 |
FW 프란시스코 바라요 |
FW 기예르모 스타빌레 12', 13' |
FW 마누엘 페레이라 |
FW 마리오 에바리스토 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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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W 후안 아길레라 |
FW 카를로스 비달 |
FW 에베라르도 비야로보스 |
FW 기예르모 수비아브레 15' |
FW 기예르모 아레야노[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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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 카시미로 토레스 |
HB 기예르모 사베드라 |
HB 아르투로 토레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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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 빅토르 모랄레스 |
FB 에르네스토 차파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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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K 로베르토 코르테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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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선발 명단
2-3-5 감독: 오르트 죄르지 |
아르헨티나와 칠레는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모두 2승씩을 거뒀기 때문에 이 경기에서 이기는 팀이 4강전에 진출할 수 있었다.
아르헨티나의 페레이라는 시험을 마치고 무사히 팀에 복귀했다. 이러면 전 경기에서 해트 트릭을 기록했던 스타빌레와 함께 위력을 시험해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체로는 아직 발작이 낫지 않았으니 제끼고.. 마리오 에바리스토는 부상이 좀 괜찮아졌으니 써보기로 할까.. 여기에서 스타빌레는 2골을 넣어 자신의 해트 트릭이 뽀록이 아니었음을 증명했고 에바리스토는 아직 부상이 남아있는 몸으로 골을 넣는 굉장한 투혼을 과시했다.
그리고 이 경기에서 루이스 몬티는 칠레의 수비수 아르투로 토레스를 걷어찼다.[14] 그로 인해 경기는 심각하게 거칠어졌고 아예 그라운드에서 패싸움을 하는 단계까지 이르고 말았다. 이 패싸움은 경찰이 와서 진정시키기까지 30분 가량 계속되었다. 월드컵 역사상 최초의 난투극이 일어난 경기로 기록되었다.
8. 4강 진출팀
이후 정보는 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준결승에서 기재.
[1]
같은 시각 4조에서도
미국과
벨기에가
파르케 센트랄 경기장에서 경기를 치렀다. 하지만 1조 프리미엄으로 월드컵의 스타트는 이 경기로 흔히 이야기한다.
[2]
초기에는 축구 선수들이 대부분 발끝으로 공을 찼었다. 그래서 축구화 앞에 강철로 된 코를 붙인 축구화가 많았다. 물론 월드컵이 열리던 시절이 그 정도로 옛날은 아니지만 축구화가 무거운 것에는 변함이 없어서 한 짝에 500g이 넘었다.(현재의 축구화 무게는 아무리 싸구려라도 250g 정도이고 정말 가벼운 것은 150g정도밖에 안 나간다.) 그걸로 턱을 맞았으니.. 게다가 테포는 당시 유럽 정상급의 골키퍼였다.
[3]
경기 중에 선수가 부상당했으면 부상당한 채로 뛰든가 뛸 수 없을 정도의 심각한 부상이면 그냥 선수가 없는 대로 뛰어야 했다. 선수 교체가 처음으로 도입된 월드컵은
1970년 멕시코 월드컵이다.
[4]
오늘날의 위치라면 미드필더의 자리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미드필더라는 개념이 없었고 이 자리의 선수는 대부분 수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5]
여담으로 현대적인 선수 교체는 1965년에 처음 시작되었으며
찰턴 애슬레틱 FC의 키스 피콕이 최초의 교체 선수로 알려져 있다.
[6]
2002년 월드컵때는 장마 문제로 5월부터 6월까지,
2022년 월드컵은 더위 문제로 11월부터 12월까지 개최했다.
[7]
FIFA 월드컵 역사상 첫번째 자책골이자 이 대회의 유일한 자책골이다.
[8]
현재는 한 번 공식 경기를 뛴 축구 선수는 48시간 이내에 다른 공식 경기를 치르지 못하게 되어있어서 이런 식으로 다음 경기를 치를 수 없다.
[9]
2조에 속한
[10]
형 후안 역시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 하프백으로 활약했다.
[11]
2006년 이전의 월드컵 기록을 보면 스타빌레가 월드컵 최초의 해트트릭 기록자로 되어 있다. 하지만
미국의
버트 파테노드의 득점이 한 점 누락된 것을 발견했다는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여 현재는 파테노드가 최초의 해트트릭을 기록한 선수로 기록되어 있다.
[12]
사우체도 주심이 논란이 있는 판정을 내려서 파테르노스테르가 킥을 대충 찼다는 이야기와
에스타디오 센테나리오의 초창기에는 페널티 스팟이 없어서 이 페널티 킥은 4미터쯤 뒤에서 찼다는 이야기도 있다.
[13]
콜로콜로의 창시자이자
1926년 남아메리카 챔피언십 득점왕
다비드 아레야노의 동생이다.
[14]
이런
투지 넘치는 선수들의 특징 중 하나는 가끔 자신이
반칙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자기가 파울해놓고 더 난리를 치는 경우가 있다. 몬티가 그런 경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