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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3 00:17:30

히파시스 반란

1. 개요2. 배경3. 전개4.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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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원전 326년, 마케도니아군이 히파시스 강을 건너 겐지스 강으로 진격하라는 알렉산드로스 3세의 명령을 거부하고 회군을 요구한 사건.

2. 배경

기원전 327년, 알렉산드로스 3세 힌두쿠시산맥을 넘어 인도로 진격하여 헤라클레스조차 공략할 수 없었다는 전설이 전해질 정도로 난공불락으로 유명했던 아오르노스 바위 요새를 공략한 뒤( 아오르노스 공방전), 인더스 강 서쪽에 있던 지방 영주들을 소환하여 자신을 따르라고 명령했다. 많은 영주들이 이에 응해 알렉산드로스에게 나아갔으나 몇몇 영주들은 반항하며 거부하였다. 그러자 알렉산드로스는 그들을 반역자로 간주해 징벌을 감행했다. 이때 심한 부상을 입기도 했으나, 그들을 모두 공략하는데 성공하였다. 그에게 반항하고 부상을 입힌 영주들은 일족까지 처형당했을 뿐만 아니라 영주들 휘하의 도시 시민들도 모두 학살당했으며 건물 기초까지 부숴 완전히 초토화시켰다. 그제서야 지방 영주들은 알렉산드로스를 두려워하여 모두 귀순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인더스 강을 건너 인도 전역을 석권하려 했다. 그는 인도가 동쪽 대륙의 끝이라고 여겼고, 끝자리에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을 남기고 오겠다는 명예욕에 사로잡혔다. 기원전 326년 초 인더스 강을 건넌 후, 탁실라 왕국과 동맹을 맺고 탁실라와 전쟁을 벌이고 있던 파우라바 왕국의 라자(왕) 포루스에게 조공을 바치고 인도로 들어가는 길을 열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포루스는 전투에서 만나겠다고 말하며 조공을 거절했다. 이후 벌어진 히다스페스 전투에서, 알렉산드로스가 승리를 거뒀다. 포루스는 알렉산드로스의 동맹이 되는 조건으로 그의 왕국을 계속 통치하는 게 허용되었고, 알렉산드로스는 계속해서 진군했다.

뒤이은 상갈라 공방전에서 승리한 뒤, 포루스에게 상갈라를 넘긴 후 더 먼 곳까지 정복하려는 야심을 불태우며 히파시스 강으로 진군했다. 이후에 들어온 보고에 따르면, 히파시스 강 너머의 땅은 풍요롭고 비옥했다. 주민들은 탁월한 농부이자 군인들이었으며, 질서 있고 효율적인 사회 체제 아래 살아가고 있었다. 그 지역의 정치 체제는 대부분 귀족정이었으나 전혀 억압적이지 않았다. 코끼리도 인도의 어느 곳보다 많았으며 몸집도 크고 용맹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한 나라가 갠지스 강 남쪽에 자리잡은 난다 왕조인데, 이 나라는 인도 북부 전역을 장악하고 있으며 20만 보병, 6만 기병, 6천 전차대, 6천 코끼리 부대를 보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천성적으로 모험을 즐기는 성격이었던 알렉산드로스는 이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고 원정을 계속하려 했다. 그러나 병사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위험하고 힘든 모험이 끝없이 이어지자 몹시 지쳤다. 스트라본에 따르면, 히다스페스 강을 건넌 뒤 폭우가 끊임없이 내려서 병사들이 무척 고생했다고 한다. 디오도로스 시켈로스는 그들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그들은 거의 8년을 고생과 위험 속에서 보냈고, 많은 손실이 있었으며, 전쟁이 끝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꾸준한 행군으로 말발굽이 닳아 있었고, 무기와 갑옷은 많이 상했으며, 그리스의 옷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들은 인도인들의 옷을 본떠 외국 옷으로 갈아입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이 시기는 폭우가 쏟아지는 계절이기도 했다. 70일 동안 폭우가 내렸으며 천둥과 번개를 동반했다.

3. 전개

거듭된 전쟁으로 지칠대로 지쳤고 그만 돌아가서 정복자로서 편안히 지내고 싶었건만 알렉산드로스는 계속 진격을 독촉하자, 그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여겼다. 이윽고 히파시스 강변에 도착한 알렉산드로스가 강을 도하할 준비를 하라고 명령하자, 병사들은 막사에서 집회를 열고 왕이 독촉해도 더 이상 따르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닫고, 장교회의를 열고 연설했다. 다음은 아리아노스의 <알렉산드로스의 아나바시스>에서 기술된 연설 전문이다.
제군, 내가 그대들을 새로운 모험으로 이끌 때 예전같은 기상으로 따라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내 생각대로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그대들의 의견대로 돌아갈 것인가를 함께 결정하기 위해 만남을 요청했다.

그대들이 지금까지 기울인 노력에 대한 성과에 불만이 있거나 지휘관인 나에게 불만이 있다면 더 이상 말할 게 없다. 하지만 떠올려 보라. 여러분은 용기와 인내로 이오니아, 헬레스폰토스 해협, 두 개의 프리기아, 카파도키아, 파플라고니아, 리디아, 카리아, 리키아, 팜필리아, 페니키아, 이집트를 얻었다. 리비아의 그리스인 거주 지역, 아라비아의 상당 지역, 저지대 시리아, 메소포타미아, 바빌론, 수시아도 이제 그대들의 것이다. 페르시아와 메디아, 그리고 예전에 이 나라들이 지배했던 지역들과 정복하지 못했던 지역까지 그대들의 수중에 들어왔다. 그대들은 카스피해 관문 너머의 땅, 캅카스 산맥 너머의 땅, 타나이스 강 너머의 땅, 박트리아, 히르카니아, 히르카니아해 너머의 땅까지 차지했다. 우리는 스키타이인들을 사막으로 몰아냈다. 지금 이 땅을 흐르고 있는 인더스 강, 히다스페스 강, 아케시네스 강, 히드라오테스 강도 우리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이루었는데 왜 마케도니아의 힘, 바로 그대들의 힘을 히파시스 강과 그 너머의 부족들에게까지 뻗치길 망설이는가? 아직 남아있는 몇몇 부족이 저항할까 봐 두려운가? 자, 자! 그들은 순순히 항복하거나 달아나다가 붙잡히거나 자신들의 땅을 무방비 상태로 남겨두고 떠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그 땅을 차지한 뒤 자발적으로 우리 편에 가담하여 싸운 이들에게 선물하면 된다. 나는 남자다운 남자라면 고귀한 목적을 지향하는 것 그 이상의 목표는 없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대들 중에 이 특별한 원정의 끝이 어디인지 알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곳에서 갠지스 강과 동쪽 대양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을 말해주겠다.

그대들은 이 바다가 히르카니아해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거대한 해류가 지구를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나의 친구인 그대들에게 인도만과 페르시아 만, 히르카니아해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입증할 것이다. 우리의 배는 페르시아 만에서 리비아를 거쳐 헤라클레스의 기둥까지 항해할 것이다. 그리하여 이 기둥 동쪽의 리비아 전체가 곧 우리 차지가 될 것이다. 아시아 전역 또한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 제국의 경계는 신이 세계의 경계로 정하신 것과 같아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 돌아선다면 히파시스 강과 동쪽 대양 사이에 있는 많은 호전적인 부족은 정복되지 않은 채 남을 것이다. 북쪽과 히르카니아해까지는 정복되지 않은 부족이 더 많을 것이고, 스키타이족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버티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지금 되돌아간다면 아직 확고히 제압되지 않은 지역은 우리가 굴복시키지 못한 나라들의 자극을 받아 반란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 그러면 우리가 지금까지 이룬 모든 일과 고생이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아니면 처음부터 전부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마케도니아의 제군, 그리고 나의 친구이자 동지들이여.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 꿋꿋이 버텨주길 바란다. 고생과 위험은 영광을 얻기 위한 대가이며, 용감한 삶과 사후까지 이어지는 불멸의 명예가 얼마나 달콤한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내 조상인 헤라클레스가 티린스나 아르고스 혹은 펠레폰네소스 반도나 테베 너머까지 가지 못했다면, 실제로든 표면적으로든 인간에서 신이 되는 영광을 누리지 못했으리라는 사실을 모르겠는가? 디오니소스는 어떤 면에서 헤라클레스를 능가하는 진짜 신이지만 적잖은 역경을 치렀다. 하지만 우리는 이들보다 더 많은 일을 해냈다. 니사를 지났고 헤라클레스도 차지하지 못한 아오르노스 바위산을 점령했다. 그렇다면 그대들이 이미 손에 넣은 것에 아시아의 나머지 지역을 추가하자. 이것은 지금까지 정복한 거대한 지역에 조금 더 보태는 것일 뿐이다. 우리가 그저 고향이나 지키고 우리 국경을 침범하는 트라키아인들이나 일리리아인들, 트리발리인 혹은 우리 평안을 위협할 수 있는 그리스인들이나 저지하면서 마케도니아에서 편히 사는 데 만족했다면, 위대하고 고귀한 업적을 어떻게 이룰 수 있었겠는가?

지휘관인 내가 고단한 행군과 위험천만한 원정을 그대들과 함께 하지 않았다면, 그대들이 나보다 먼저 기운을 잃었다고 탓할 수 없을 것이다. 과업은 그대들이 이루었는데 보상은 다른 사람들이 받는다면 기운이 빠지고도 남을 일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다. 제군이여, 그대들과 나는 고난과 위험을 함께 했고, 보상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정복한 영토는 그대들의 것이다. 그 영토들의 총독은 그대들 가운데에서 선정되었다. 보석들 대부분도 이미 그대들의 수중에 들어갔다. 아시아 전체를 정복하면 맹세코 그대들의 야심을 충족시켜 주는 데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대들 각자가 소망하는 부나 권력에 대한 최고의 기대를 뛰어넘는 보상을 해줄 것이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자는 보내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남는 자들은 돌아가는 자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대우해줄 것이다.

그 자리에 있던 장교들은 알렉산드로스의 말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섣불리 대답할 용기도 내지 못했다. 알렉산드로스는 바라는 점이나 다른 생각이 있다면 말하라고 여러 차례 권했지만,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폴레모크라테스의 아들이며, 오래 전부터 알렉산드로스를 따랐던 장군 코이노스가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폐하, 저희에게 불합리한 복종을 요구하지 않으신 데 감사드립니다. 폐하께서는 저희의 동의를 얻은 뒤에야 저희를 이끌 것이고, 저희를 설득하지 못한다 해도 강제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기 모인 장교들을 대표해서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는 지위나 권위로 이미 보상을 받았고, 폐하의 뜻을 앞당겨 실현하는 데 병사들보다 더 많이 관여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일반 병사들을 대변하고자 합니다. 병사들의 감정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려는 게 아니라 현재 폐하에게도 이득이 되고 앞으로 우리의 안전에도 도움이 되리라 믿는 바를 말씀드리려 합니다. 저는 나이도 많고 폐하의 은공으로 동료들 사이에서 좋은 평판도 얻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온갖 위험과 난관 속에서 주저 없이 용기를 발휘해왔기 때문에 제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믿는 방향을 말씀드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아뢰겠습니다. 우리 지도자인 폐하, 그리고 고국에서부터 함께 한 병사들이 지금껏 이뤄온 수많은 업적으로 볼 때, 앞으로 전개할 모험은 어느 정도 한계를 정할 필요가 있다고 사료됩니다. 폐하께선 이 원정에 함께 나섰던 그리스인과 마케도니아인이 얼마였는지, 그중에서 지금 얼마가 남았는지 알고 계실 겁니다. 테살리아인들이 더 이상 원정에 열의가 없다는 것을 알고 박트리아에서 고향으로 돌려보내신 것은 현명한 조치였습니다. 그리스인들 중에는 폐하가 건설하신 새 도시에 정착한 사람들도 있지만 모두가 기꺼이 그곳에 남은 것은 아닙니다.

다른 그리스인들은 폐하와 우리 마케도니아인들과 함께 위험하고 고생스런 전쟁을 같이 겪었습니다. 그중 일부는 전사했고, 일부는 부상으로 불구가 되어 아시아의 여러 지역에 낙오되었습니다. 병으로 죽은 사람은 더 많습니다. 거대한 군에서 그들은 이제 소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그들마저도 몸이 쇠약해지고 예전의 기상과 결의도 사라졌습니다. 모두가 부모님을 다시 뵐 수 있길 갈망합니다. 부모님이 아직 살아 계시다면 말입니다. 아내와 아이들도 보고 싶어 합니다. 모두가 낯익은 고향 땅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가난하고 이름 없는 삶이 아니라 폐하 덕분에 얻은 보물들로 고향에서 부와 명성을 누리며 살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폐하를 따르려 하지 않는 자들을 이끌려고 하지 마십시오. 마음이 떠난 자들에게선 옛 기상이나 용기를 찾지 못할 테니까요. 대신 어머니에게로, 고국으로 발길을 돌리십시오.

마케도니아로 돌아가면 폐하께선 그리스에 훌륭한 정부를 정착시키고 이번 원정에서 얻은 수많은 위대한 승리와 함께 조상들의 전당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폐하께서 원하신다면 이 동양의 인도인들을 상대로 다시 새로운 원정에 나설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혹은 흑해나 카르타고, 리비아 영토 너머로 떠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건 폐하의 결정에 달렸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전쟁에 지친 이 노병들 대신 그리스와 마케도니아의 젊고 기운찬 병사들이 폐하를 따를 것입니다. 아직 전쟁의 공포를 모르고 미래의 희망에 한껏 부푼 그 병사들은 폐하의 옛 원정군이 더 이상 가난한 무명병사들이 아닌, 돈과 명성을 얻어 무사히 귀국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더욱 열렬히 폐하를 따를 것입니다.

폐하, 성공한 사람이라면 '멈출 때가 언제인가'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 마케도니아 군대를 이끄는 폐하와 같은 지휘관에게 두려운 적이 있을 리는 없지만, 운명은 종잡을 수 없는 것이고, 어떤 사람도 운명에 대항할 수는 없다는 걸 부디 기억하십시오.

장교들은 코이노스의 말에 박수를 쏟아냈다. 눈물까지 흘리는 자도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이 모습에 화가 나 그 자리를 떠났다. 다음 날 같은 장교들을 다시 불러 모은 뒤,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마케도니아인 그 누구에게도 함께 가자고 압력을 행사하지 않겠다. 자발적으로 왕을 따를 사람들을 데려가겠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면 마음대로 가도 좋다. 가서 그곳 사람들에게 전하라. 적들이 우글거리는 한가운데에 왕을 버리고 왔다고."

그 후 알렉산드로스는 막사로 돌아가 이틀 동안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그는 장교들이 마음을 바꿔주길 바랬으나, 상황은 그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부하들은 알렉산드로스의 폭탄 발언에 화가 나 뜻을 절대로 굽히지 않았다. 아리아노스가 전한 프톨레마이오스 1세의 기록에 따르면, 알렉산드로스는 강을 건너도 좋다는 징조를 얻고자 제사를 올렸다. 하지만 자신에게 불리한 징조가 나오자, 마침내 뜻을 꺾고 헤타이로이의 최고 장교들과 가장 친한 친구들을 불러 모은 뒤, 모든 상황을 고려하여 더 이상 진군하지 않고 회군하기로 했다고 공표했다. 병사들은 이 소식에 몹시 기뻐해 알렉산드로스의 막사로 찾아와 자신들의 뜻을 들어준 왕에게 복을 빌었다. 아리아노스는 이 일이 알렉산드로스의 유일한 패배였다고 평했다.

4. 이후

알렉산드로스는 지금까지 승리를 거듭하여 전진하게 해준 신에게 바치는 감사의 제물이자 기념비를 세우기로 하고, 제단 12개를 짓게 했다. 그는 격식에 따라 제사를 올리고 운동경기와 승마 시합을 열었다. 그런 후 히파시스 강까지의 영토 지배권을 포루스에게 맡기고 회군했다. 바빌론으로 돌아온 뒤 아라비아 반도를 정복한 후 바다를 통해 아프리카를 돌아가 고대 카르타고를 공략한 후 지중해를 정복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구상하였으나, 실행에 옮기기 전인 기원전 323년 6월 11일 향년 32세로 붕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