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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19 13:47:38

힘야르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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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야르
𐩢𐩣𐩺𐩧𐩣‎‎‎

Ḥimyar
파일:external/atlantablackstar.com/Himyar.jpg
기원전 110년 ~ 기원후 525년
위치 예멘 사우디아라비아 남서부
수도 자파르(Zafar - 전기)
/사나(Sana'a - 4세기 이후 후기)
정치체제 군주정
국가원수
주요 국왕 샴마르 야흐리시(275년경~300년경)
아부 카리브 아사드(390년경~420년경)
언어 힘야르어
종교 남아라비아 종교( 주신: 아타르)
유대교[1]
종족 힘야르인, 유대인
성립 이전 사바 왕국
멸망 이후 악숨 왕국
현재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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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틀:국기|]][[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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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멸망 이후4. 언어, 문화, 경제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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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별 명칭
힘야르어 𐩢𐩣𐩺𐩧𐩣 (Ḥimyar)
히브리어 ממלכת חִמְיָר
아랍어 مملكة حِمْيَر

1. 개요

과거 예멘 및 남부 헤자즈 지역에 존재했던 베두인계 왕국으로 성경에도 나오는 사바 왕국을 정복하고 한때 메카와 메디나 지역까지 세력을 떨칠 정도로 강성했다. 그러나 예멘 지역의 세력이 지나치게 커지는 것을 경계한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지원을 받은 콥트교를 믿는[2] 에티오피아 악숨 왕국이 대대적으로 침공하여 멸망시켰다.

2. 역사

고대 그리스 로마 제국의 기록에는 기원후 1세기 무렵 Homerite라는 명칭으로 처음 등장하며 사바(Saba') 왕국의 오랜 중심지였던 마리브(marib/ma'rib)가 아닌 자파르 인근에서 초반 정복활동을 벌였다. 기원전 25년경 쇠락해 가던 사바를 정복한 뒤 기원후 200년경에는 카타반(Qataban), 300년경에는 하드라마우트(Hadhramaut/Ḥaḍramūt)를 정복하고 280년경에 사바의 마지막 잔존세력에 막타를 가하는 등 승승장구했지만 사실 인과관계를 따져보자면 카타반과 사바는 2세기 초반에 힘야르 본토에서 떨어져 나갔다가 카타반을 하드라마우트가 정복했는데 힘야르한테 얻어맞고 카타반을 다시 토해내고 사바를 힘야르가 재정복한 뒤 하드라마우트마저 힘야르가 정복한 것이기 때문에 사실 두 나라가 떨어져 나가지만 않았으면 그냥 하드라마우트 하나만 굴복시켜도 될 일을 100년 넘게 온갖 뻘짓을 해 가면서 겨우 수복한 것이나 다름없다.

기원후 380년경에는 국왕 아부 카리브(Abu Karib)가 유대교로 개종하면서[3] 비유대인 국가가 유대교를 믿는 상황이 되었다. 옆 나라인 에티오피아 악숨 왕국은 339년에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이고 한창 콥트교로 발전하던 중이었지만 북쪽으로 시야를 돌리면 오히려 로마 제국 기독교 사산조 페르시아 조로아스터교도 아닌 유대교를 믿은 덕분에 서로 적대하는 두 제국 사이에서 정치적 및 종교적 중립성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 이는 농업 외에도 중계무역으로 먹고 살던 힘야르의 상업 발달에 큰 도움이 되었다.[4]

기원후 390~400년경에는 북부 아라비아(정확히는 헤자즈 지방)에서 동로마 제국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군대를 보내기도 했으나 현지인들의 저항으로 인해 실패하고 나중에 이슬람의 성지가 되는 메카 지방까지 정복하는 것에 만족했지만 동로마의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힘야르 왕국의 확장지향적 정책을 좋지 않게 보았다. 결국 유스티누스 1세는 로마의 상인들이 힘야르 영토에서 살해당한 것을 명분삼아 악숨에게 힘야르를 공격해 줄 것을 요청했는데 이를 받아들인 악숨의 대대적인 공세로 인해 525년 멸망하였으며 옛 힘야르의 땅은 악숨이 다스리게 된다.

3. 멸망 이후

당시 힘야르 왕국은 아라비아 반도의 모든 부족들 및 연맹국가 중에서도 가장 강대한 세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아라비아 전역의 힘의 균형을 맞추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 유스티니아누스와 악숨 왕조에 의해 힘야르가 멸망한 후에는 이러한 균형이 깨진다.

우선 악숨은 점령한 힘야르의 땅에서 가혹한 통치를 했다. 악숨은 반란을 잠재우거나 외부의 베두인 부족들을 막아낼 수 없었고 마리브 댐의 붕괴 위기로 근방이 큰 혼란에 빠지자 철수하고 말았다. 이후 사산조 페르시아가 아라비아 남부에 영향력을 강하게 행사하기 시작했고 유력 부족들 간의 잦은 싸움으로 인한 레반트 지역의 혼란을 가져왔다.

더 나아가서 남아라비아를 통제하던 유대교 세력이 일소됨에 따라 다수의 종교들이 공존하고 섞이게 되고 이는 이슬람의 탄생이라는 중대한 결과까지 가져왔다.

유스티니아누스는 악숨과 연합하여 사산 왕조를 포위하려고 했을 수도 있었다. 당시 로마에게 악숨은 같은 기독교 국가이자 동맹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힘야르와 비교도 안되게 결집되면서 동로마의 영향력이 전혀 없는 제3세력이 등장해 동로마로부터 이집트, 시리아를 앗아갔고 이를 통해 제국은 두 번 다시 전성기 시절의 국력을 회복하진 못했으며[5]더 나아가 800년이 지난 후이긴 하지만 제국이 이렇게 성장한 이슬람 제국의 후계 세력인 오스만 제국에게 멸망하고 마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지고 말았다. 다만 최근 오만의 동굴에서 벌어진 동위원소 조사결과 힘야르 왕국이 멸망할 시기에 아라비아 남부 지대에 극심한 가뭄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가뭄이 힘야르의 멸망에 결정타가 되었다는 설이 대두되고 있다. 즉, 동로마와 악숨의 개입이 없었더라도 가뭄 때문에 무너졌으리라는 것이다.[6]

한편 동로마는 이슬람의 등장을 막을 만한 다른 세력도 스스로 무너트렸는데 바로 유스티누스 2세 티베리우스 2세 시절 충성스러운 베두인계 속국이었던 가산 왕국이다. 가산의 명군 문디르 3세는 군사적 재능이 탁월했으나[7] 동로마는 이런 그를 경계했고 따라서 그를 암살을 시도하거나 투옥시키는 일을 반복했는데 이는 제국에 대한 아랍인들의 신뢰도를 악화시켰고 그 결과 아랍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했고 더 나아가 이슬람의 부흥을 막지 못하게 된다.

4. 언어, 문화, 경제

기본적으로 유구한 전통을 지닌 사바 왕국의 문화에 베두인 특유의 문화, 그리고 유대교 개종 이후에는 유대 전통이 합쳐진 형태로 나타났으며 메소포타미아 고대 그리스의 양식이 섞인 동상이 출토되기도 하였다. 지정학적 특성상 항해에 특화되기도 해서 동아프리카 연안의 무역도시들에 자국의 문화를 전파하고 큰 영향력을 가했다. 반대로 자국보다 문화가 더 발전한 대국인 동로마 제국, 사산조 페르시아 등에서 영향을 받기도 하였다.

힘야르 왕국을 지탱하는 산업 구조의 근간은 댐과 관개 수로를 이용한 집약적 농업이었으며 이외에 몰약이나 유향 등 고급 향료들을 인도와 동로마 제국에 공급하고 아덴 항을 중심으로 수단에서 소말리아에 걸친 동~북아프리카 지역과 인도, 페르시아, 시리아 등지를 연결하는 무역을 중계하는 것을 주된 교역 방식으로 삼았다.

힘야르 내부에서 쓰였던 공용어는 힘야르어(Himyaritic language)였는데 이는 셈어파에 속하는 언어였지만 당시 남부 아라비아 반도와 에티오피아에서 광범위하게 쓰였던 고대 남부 아라비아어군과의 관계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당시 에티오피아에서 쓰였던 언어인 암하라어와는 계통이 가깝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연관성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힘야르와 악숨 사이에서 많은 문화적 교류(혹은 충돌)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5. 여담

게임 토탈 워: 아틸라에서 사막 왕국 DLC로 플레이 가능한 세력으로 나온다. 주 종교는 유대교와 셈 다신교. 유대교로 개종한 장본인인 아부 카리바가 팩션 리더로 등장하지만... 정작 인게임 성능이 셈 다신교가 유대교보다 월등한 탓에 시작하자마자 셈 다신교로 재개종하는 유저들이 많다. 일단 라이벌인 악숨 왕국을 멸망시킨 후 그대로 에티오피아에서 알렉산드리아로 진격하며 동로마 제국을 거꾸러트릴지, 아니면 아라비아반도를 통일하며 사산 제국을 무너뜨릴지 선택하게 된다.


[1] 380년경 이후 국교화. 야훼는 라흐만(Rahman)이라고 불렸다. [2] 당시 힘야르는 디아스포라가 된 북쪽 유대인 유랑민들과 바다 건너 에티오피아에서 이주해온 유대교 신자들의 영향으로 유대교를 믿고 있었다. [3] 전설에 의하면 아부 카리브는 동로마 제국의 영향력을 떨쳐내기 위해 전쟁을 벌였고 그 중 야트립(Yathrib), 오늘날의 메디나를 점거한 뒤 아들을 총독으로 삼았으나 그 아들이 야트립 주민들 손에 살해당하자 보복을 위해 포위하고 그 지역의 특산물인 야자수를 몽땅 베어냈다. 그러나 포위가 길어지자 아부 카리브는 병이 들었고 그 틈에 저항하는 측에 있던 유대인 중 '카압(Kaab)'과 '아사드(Assad)'가 왕을 설득해 포위를 풀고 개종하게 했다고 한다. [4] 비슷한 동기로 유대교로 개종한 나라로 하자르 칸국이 있다. [5] 그럼에도 마케도니아 왕조, 콤니노스 왕조 때처럼 일류열강 수준은 되었으나 예전같은 초강대국 수준은 두 번 다시 회복하지 못했고 특히 이런 전성기도 후대 황제들이 말아먹거나 또 이슬람 세력(...)에게 번번히 엿 먹다가 4차 십자군이라는 기독교 세력에게까지 통수를 맞게 된 것이(그런데 이것도 앙겔로스 왕조 내부 권력 다툼 과정에서 끌어들인거라 결국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라 봐도 된다.) 결정타가 된다. [6] 특히 이 가뭄을 보면 힘야르 멸망 과정이 대부분 설명된다. 지속되는 가뭄 속에서 퍼져가는 내부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해외 원정을 감행했고 이것이 동로마를 자극해 그들이 악숨을 끌어들이게 했고 결국 가뭄으로 국력이 약화된 힘야르가 악숨을 이겨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7] 그가 사산 왕조에 원정을 떠났을 때 로마군과 함께 페르시아 영내에서 포위되었을 때도 이를 쳐부수고 귀환했다. 이후 로마 제국이 원정에서 입은 큰 손실을 회복하는 일 때문에 지원군을 보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페르시아와 그 속국 라흠 왕국의 연합 군세를 모조리 격파했다. 심지어 라흠 왕국은 공격할 때마다 격파하고 역습을 가해 수도를 점령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