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 아쿠냐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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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42 · 1942-43 · 1949-50 · 1950-51 |
이름 |
후안 아쿠냐 나야 (Juan Acuña Naya) |
생년월일 | 1923년 2월 14일 |
사망년월일 | 2001년 8월 30일 (향년 78세) |
국적 | 스페인 |
출신지 | 스페인 왕정복고 라코루냐 |
포지션 | 골키퍼 |
신체조건 | 179cm | 88kg |
소속팀 |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1938-1955) |
국가대표 | 1경기 (19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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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페인의 전 축구 선수.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아쿠냐는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에서 16세에 주전 골키퍼가 된 이후 17시즌을 활약했고 4차례 트로페오 리카르도 사모라를 수상[2]한 현역 시절의 그는 라리가 최고급의 골키퍼였다.아쿠냐의 현역 시절에 데포르티보의 최고 성적은 1949-50 시즌의 라리가 준우승이었다.
2.1.2. 국가대표
아쿠냐의 클럽 활약에 비해 국가대표팀 커리어는 매우 빈약하다.아쿠냐의 유일한 A매치 출전 경기는 1941년 12월 28일의 스위스전이었으며 당시 아쿠냐의 나이는 18세로 매우 빠른 데뷔전을 치렀다. 그러나 이후에 아쿠냐가 다시 대표팀 경기를 치르는 일은 없었으며 1950년 월드컵에 스페인 대표팀으로 참가했지만 안토니 라마예츠, 이그나시오 에이사기레에 밀린 서드 골키퍼였다.
아쿠냐가 이렇게 대표팀에서 밀린 이유는 아쿠냐의 성격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2.2. 이후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구단은 아쿠냐를 레전드로 대접하고 있으며 홈구장에는 아쿠냐의 석상이 있다.아쿠냐의 석상 |
3. 뒷이야기
- 1944년에 4월 23일, 아쿠냐는 잠시 RC 셀타 데 비고의 유니폼을 입은 적이 있다. 두 팀의 시합이 데르비 갈레고로 불릴 정도로 라이벌 의식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다소 의아한 일이지만 이 일은 셀타의 하프백 알바리토의 추모 경기에서 있었다. 이 시합은 셀타와 스포르팅 히혼의 친선 경기였고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는 셀타에 두 명의 선수를 빌려줬는데 아쿠냐가 그 중 한명이었다.
- 1945년부터 아쿠냐는 체중 문제로 입방아에 올랐다. 그럼에도 트로페오 리카르도 사모라를 2회 더 수상했다.
4. 수상
4.1. 클럽[3]
- 라리가 준우승 1회: 1949-50
4.2. 개인
- 트로페오 리카르도 사모라 4회: 1941-42, 1942-43, 1949-50, 1951-52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
[2]
실제 수상은 1958년부터였으므로 아쿠냐의 수상은 비공식수상이지만 시즌 실점률로 계산하므로 논란은 없다.
[3]
아쿠냐는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원 클럽 플레이어이므로 팀 이름 기입은 생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