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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5-05 22:29:16

화신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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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신산업의 사기(社旗)

1. 개요2. 연혁3. 기업 정신
3.1. 사훈3.2. 사가
4. 계열사 목록5.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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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26~1980년까지 화신산업을 주축으로 존속한 기업 집단. 일제강점기에 친일반민족행위자 박흥식이 설립한 기업으로 일본군의 전쟁수행에 적극 협력한 전범기업이다.

2. 연혁

1926년 유재 박흥식 창업주가 경성부 황금정에 '선일지물'을 세운 게 기원이다. 초기에는 종이 도매업 등을 하다가 1930년에 신태화로부터 귀금속점 '화신상회'를 사들여 이듬해 법인화시켰다. 1934년에 화신연쇄점을 열었으나 이듬해 1월 화재로 전소되는 수난을 겪다가 1937년 종로통에 ' 화신백화점'을 열어 성업했다. 다른 한편 1935년에 대동흥업을 세우고 1939년 서우사범학교[1]를 인수했으며,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일제의 침략전쟁에 적극 협조해 각종 매체에 일본군 지원입대 권유를 하기도 했고, 1941년 화신연쇄점, 화신무역, 화신지물 3개를 통합해 '화신상사'로 개편한 뒤 1944년에는 조선비행기공업을 세웠다.

1945년 8.15 해방 후 1948년에 조선우선으로부터 무역선 '앵도환'을 빌려 마카오 등으로부터 해산물 수출도 개시하고 북한과도 비공식적으로 교역코자 했으나, 1949년 반민특위 설치 후 박흥식이 구속되고 앵도환도 북한 당국에 의해 압류됐다. 1950년 6.25 전쟁 후 화신-화신상사-화신백화점 3개 법인을 '화신산업'으로 개편했고, 1953년 휴전 후 흥한방적을 세우고 1955년에는 화신백화점 근처에 신신백화점을 개점했다. 1961년 5.16 쿠데타 후 '부정축재 기업'으로 낙인찍혔으나 1962년에는 신신무역을 흥한화섬으로 재창립한 뒤, 이듬해에 송도유원지 개발을 위해 인천도시관광을 세웠다. 흥한화섬은 1966년 경기도 남양주군 미금면 도농리에 공장을 준공했다. 그러나 경영부진으로 한국산업은행에 넘기고 1972년 화신전기, 1973년 화신쏘니 및 화신레나운, 1975년 화신타이거리싱 등을 각각 세워 재기를 꾀하려다 제1차 오일쇼크를 거치며 수렁에 빠졌고, 박흥식은 재무부에 구제금융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한 채 1980년 10월에 최종 부도와 동시에 그룹은 해체되었다.

3. 기업 정신

3.1. 사훈

3.2. 사가

작사는 주요한, 작곡은 김수명이 맡았다.
종로 네거리에 봄바람 불고
화신의 큰 집속에 웃음이 핀다

안으로 화목하고 밖으로 신용
이름도 좋을시고 우리 화신

4. 계열사 목록

5. 참고 문헌



[1] 현 광신중고등학교 및 광신방송예술고등학교 [2] 소니는 이후 1990년대 소니코리아를 설립, 한국에 직접 진출하게 된다. [3] 제휴처였던 일본 레나운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영악화로 2020년 11월에 파산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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