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전영택의 소설. 1925년 《조선문단》 1월호에 발표된 작품이다. 문체가 간결하고 낯익은 느낌을 주며 사실주의적 수법이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2. 내용
남의 집[1] 행랑살이를 하는 주인공 화수분은 30세 전후로 양평군에서 농업에 종사하다가 서울에 올라왔다. 그의 생활은 날품팔이를 하는 가난의 연속[2]이며, 둘 있는 딸[3] 중 큰 딸 귀동이는 다른 집에 입양 보낼 정도로 가난했다.[4][5] 그러던 어느 날 발을 다쳐 앓아누운 고향의 형 거부로부터 추수를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시골로 내려간다.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는 굶주리다 지쳐 추운 겨울인데도 어린 옥분이를 업고 남편을 찾아 나선다. 이후 화자의 동생 S를 통해 화수분 가족의 근황이 밝혀지는데, 화수분은 혼자 두명 몫의 일을 하다가 몸살에 앓아누워서 입양 보낸 딸을 애타게 찾으며 꺼이꺼이 울다가 화자의 부인(어멈)이 보낸 편지를 통해 아내와 옥분이의 소식을 듣자[6] 화수분은 울음을 멈추고 펄떡 일어나서는 나는 듯이 재빨리 서울로 올라오다가 어떤 높은 고개에 올라섰을 때 고개를 숙여 앞에를 내려다 보자 주저앉아 있는 가족을 발견한다. 거의 동사(凍死)에 이른 아내를 보고 어쩔 수 없이 아내와 함께 그들 부부는 겨울밤 동안 어린 자식을 품에 안은 채 꼭 껴안고 밤을 지낸다. 결국 부부는 추위에 얼어 죽고 어린 자식은 부모의 체온으로 살아남아서 지나가는 나무꾼이 아이만을 소에 싣고 제 갈길을 간다. 가난하고 무식하지만 스스로 희생하면서 어린 생명을 구하는 한 선량한 부부의 삶을 그린 소설이다.
3. 해설
지식인인 '나'가 문간방에 세 들어 사는 행랑아범(화수분)과 그 가족의 비참한 삶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특히 화수분 내외의 사람됨과 그들의 삶을 아주 객관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그래서 자연주의적 사실주의 작품이라고 말한다.또한, 이 작품은 일정한 반어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화수분'은 재물이 자꾸 생겨서 아무리 써도 줄지 않는다는 단어 자체의 의미와[7] 주인공이 처한 비참한 생활이 대비되면서 비극적 결말로 처리되고 있다. 통일된 인상, 경이적 모멘트, 정확한 묘사, 치밀한 구성이라는 단편 소설의 특징이 모두 나타나 있으며 묘사보다는 서술에 의존하고 있다. 물론 묘사도 부분적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사실성 확보를 위한 것이다. 마지막 햇빛 속에 살아 움직이는 어린아이의 모습은 비극적 묘사 속에서도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즉 부활의 상징이다. 이런 것들에서 전영택 작가의 인도주의 정신이 표면화된다.
[1]
집주인은 '나'라고 통칭하며, 이야기의 화자이다.
[2]
원래 화수분의 집은 그의 아버지 대까지만 하더라도 꽤 부자였던 집안이었다. 큰형은 '장자', 작은형은 '거부', 자신의 이름인 '화수분' 역시 그의 아버지가 집안이 부유하길 기원하며 지은 이름이었는데 어느 날 화수분의 처가 잠시 화수분네 가족집에 들른 뒤 액이 끼었는지 화수분의 가족들에게 불행이 시작되었다. 먼저 화수분 삼형제의 아버지가 죽었고, 이어서 화수분의 큰형인 '장자'가 원인불명으로 일찍 죽었다. 그러나 불행은 끝나지 않고, 둘째 형 '거부'가 원인불명의 병으로 와병중인데다 집에 있는 유일한 농사 밑천인 황소 한 마리가 도둑질당해 결국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 오늘날 행랑살이로 이어진 것이었다.
[3]
큰딸의 이름은 귀동이로 9세, 작은 딸 이름은 옥분이로 3세라 한다. 둘 다 부모를 닮아 못생겼으며 부모와는 달리 성격이 자신 밖에 모르는 모습으로 서술된다.
[4]
다만 작중에서 큰 딸이 부모 뿐 아니라 주변인들에게도 험한 말을 일삼을 정도로 개념이 없는데, 입양되자 친모에게 작별인사를 대충 했다.
[5]
또한, 화수분의 아내는 셋째를 임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형편이 너무 어려워 첫째를 다른 집에 입양 보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6]
본디 화수분이 겨울을 나지 않고 빨리 돌아오는 것을 조건으로 시골에 있는 형의 집에 가서 일을 거드는 것을 허락했었는데 약속을 어겼기에 빨리 돌아오라고 재촉하는 내용과 화수분의 아내가 궁핍한 생활을 버티지 못하고 사람이 얼어죽을 지경의 혹한 겨울 날씨에 자신을 만나러 옥분이를 업고 길을 떠났다는 내용.
[7]
이름을 이렇게 지은 이유는 화수분이 태어날 때만 해도 그의 집안이 엄청난 부잣집이었기 때문. 그의 부친은 아들들이 오래오래 부자로 살라고 첫아들에게는 장자, 둘째아들에게는 거부, 셋째아들에게는 화수분이란 이름을 붙여 주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부친 사후 집안은 비참하게 몰락하고 만다. 맏형 장자는 일찍 죽고 둘째형 거부는 중병으로 운신을 못하고 화수분도 보다시피 얼어 죽고 만다. 아이러니의 극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