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fff> 피플웍스 회장
허승표 許承杓 | Huh Seung-py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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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68B7> 출생 | 1946년 12월 28일 ([age(1946-12-28)]세) |
경상남도
진양군 지수면 승내리 (現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승산리)[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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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본관 | 김해 허씨 27세손[2] |
직업 | 기업인 |
학력 |
경남중학교 (졸업) 보성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경영학 / 학사) |
부모 | 아버지 허만정, 어머니 하위정 |
형제자매 |
이복형
허정구,
허학구,
허준구,
허신구,
허완구 형 허승효 남동생 허승조 |
배우자 | 조희숙 |
자녀 |
장녀
허서정 장남 허준수 |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기업인. 피플웍스의 회장.2. 소개
1946년 12월 28일 경상남도 진양군 지수면 승내리(현 진주시 지수면 승산리) #에서 GS그룹 창업주 허만정의 7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경남중학교(1958년 입학)와 보성고등학교(1962년 입학), 연세대학교 상학과(1966년 입학)를 졸업했다. 1969년 서울신탁은행 축구부 창단 멤버였고, A매치 출전 경력은 없지만 국가대표 상비군에서 활동했었다. 관련기사1970년대에 잉글랜드 프로축구 리그에 진출한 최초의 한국 선수이기도 했었다. 지난 1972년부터 1974년까지 아스날과 코벤트리 시티에서 선수생활을 했었다.[3]
집안의 반대로 축구선수 은퇴 후 1978년부터 GS그룹의 방계기업인 승산에 몸담아 상무와 부사장을 지낸 뒤 1990년 12월 비디오 제작·수입·판매 업체 미디아트를 인수해 기업가의 길로 들어섰다. 대부분의 형제들과 달리 허씨 일가가 LG에서 독립한 뒤로도 본가 GS에 발붙이지 않았다.[4]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을 역임 하였으며, 2010년도 2차 전지제품 ESS(전력저장장치) Pack 사업을 시작하여 현재 구미, 남경(중국)에서 생산공장을 두고 연간 약 2,0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국내 최대의 ESS Pack 사업을 운용하고 있는 피플웍스의 회장으로 재직중이다. 지난 1997년, 2009년, 2013년 3차례 동안 대한축구협회장에 출마하였으나 각각 정몽준, 조중연, 정몽규에게 패배하였다.
3. 축구행정가 시절
허승표는 김우중이 축구협회의 회장으로 일하던 시절인 1988년부터 1993년까지 대외담당 부회장 직에 있었으며 기술위원장도 겸임했다. 사실 김우중이 축구협회 회장이 된 사연도 참 파란만장하다. 그 전에는 신동아그룹의 최순영 회장이 협회장이었는데 이 사람은 도통 축구협회에 돈을 안 내놓고 무신경했다는게 문제. 당시에는 축구협회 운영비를 거의 회장이 내주는 시대였는데 회장이라고 자리만 차지하고는 지원금은 안 내놓으니 축구인들이 회장 물러나라고 데모하는 지경이었고 그 바람을 타고 김우중이 들어왔다. 선거도 없이 그냥 추대형식이었다. 최순영은 회장직에서 축출되자, 그가 만든 한국 최초의 프로축구팀인 할렐루야 독수리에 대한 재정지원을 중단함으로써 사실상 팀이 해체되어 버렸다.[5]4. 가족관계
자세한 내용은 범GS가 문서 참고하십시오.
[1]
김해 허씨 집성촌이다.
[2]
구(九) 승(承) 항렬.
[3]
관련기사 공식경기 출전 기록은 없고, 2군이나 비공식 연습게임만 출전했다.
[4]
그렇다고 GS쪽과 연계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고 허승표 회장의 회사 피플웍스가 GS그룹의 인하우스 에이전시(In House Agency·대기업 자체 광고대행사)역할을 해주고 있다.
[5]
해당 팀은 실업팀이 되었다가 1998년에 해체되었고 선수진은 임마누엘축구단과 합쳐져
고양 Hi FC가 된다.
[6]
이게 얼마나 충격이었냐면, 이 대회 이전까지 한국이 아시안컵 본선 진출에 실패한 대회는 1976년 이란 대회가 유일했다. 다만 해당 대회는 6팀이 출전하는 대회였는데 지역예선에서 기권팀이 속출해 당초 배정됐던 조편성 이후 수많은 팀들이 조가 재배치되는 등 혼란기였다. 게다가 당시 대한민국은 난적 말레이시아와 한 조가 되는 등 조편성도 불운했고 무엇보다 경기력도 좋진 않아서 최종전 태국 원정에서 패배하면서 2승 2패 4조 3위로 탈락했다. 사우디는 본선에 진출했다가 기권했고 일본은 중국에 패배해 본선 진출에 실패하는 등 한국만 탈락한 게 아니기 때문에 비판의 강도는 덜했다. 1992년처럼 B팀을 쓴 것도 아니었으니까.
[7]
다만 이 때의
신문선은 허승표의측근으로만 있어서 비판의 강도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8]
사실
대한축구협회가
범현대가의 영향력이 비상식적으로 견제를 못할만큼 강하지만 그만큼 한국 축구에다 큰 영향력과 자금력을 행사하면서 돈을 엄청나게 많이 쓰는 국내기업이 없다.
모기업이
종목 불문하고 투자를 줄이고 있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나 현대가 못지않게 축구를 좋아하던
박태준 회장 사후 지원이 줄어들고 있는
포항 스틸러스와 그리고 형제 구단인
전남 드래곤즈만 봐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