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구 일본 해군에서 추축국 동맹과 대미 개전을 반대하는 스탠스를 취한 야마모토 이소로쿠, 요나이 미쓰마사, 이노우에 시게요시를 가리키는 호칭.'해군성 좌파 트리오'(海軍省の左派トリオ), 해군 좌파 트리오, 해군 좌파 세 까마귀(海軍左派三羽烏)로도 불린다.
해군선옥론은 일본 해군이 아니라 이 3인에 대한 미화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이 3인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는 해군 출신 작가 아가와 히로유키(阿川 弘之, 2015년 사망)가 쓴 3인에 대한 평전, 일명 '제독 3부작'에 많은 기반을 두고 있다.
좌파라고 해서 한국 근현대사에서 변형된 의미처럼 공산주의자라는 것은 아니고 기존 일본군의 보수( 우파)세력과 대립했기 때문에 이렇게 불렸다. 한국에서 사용되는 정치적 의미가 담긴 좌파라는 뉘앙스로는 어색해 보이지만 겐다 미노루 등 급진 항공주병파가 기존의 전통적 우파 거함거포주의와 대립했다는 이유로 좌파로 일컬어진 경우도 있다.
2. 정말 개념인이었나?
전쟁을 반대하는 스탠스를 취했다고는 하지만 실제적인 행동을 얼마나 취했는가는 의문이다. 그나마 요나이는 총리 취임 반 년만에 물러나야 했지만 연합함대 사령장관이었던 야마모토는 조약파와 함대파의 대립에서도 교묘한 처세술로 숙청을 면했고 대미개전을 끝까지 반대하다가도 경질되거나 사표를 내기는 커녕 군령부에 공갈에 가까운 행각을 벌이면서 진주만 공습을 강행했다.전쟁을 반대했고 전쟁 말기 수습에 관여한 공을 인정받는 요나이에게도 충격과 공포의 에피소드가 있으니 해군대신 시절 가이텐의 제식화를 최종 결재한 것니다.
고위직이었던 나머지 둘에 비해 상대적으로 아웃사이더였던 이노우에도 전쟁 말기 요나이의 밑에서 해군 차관으로 재직하면서 각종 카미카제 병기의 실무를 담당하는 '마루 특 위원장'직무에 있었다. 젊은 시절 반대파의 영수였던 후시미노미야 히로야스에게 칭찬받을 정도의 강직했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든 부분이다.
3. 능력
야마모토는 군 행정가로서는 준수한 능력을 보여주었고 이유야 어찌되었건 항공전력의 육성에도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야전 지휘관으로써는 그냥 그런 수준으로 진주만 공습으로 전쟁 초반을 유리하게 만들었으나 미드웨이 해전에서 상대를 만만하게 보고 작전 과정에서 온갖 삽질을 한 끝에 항공모함 4척을 날려먹었고 과달카날 전역에서 소모전에 말려들어가 복구 불가능한 피해를 남기고 자신도 목숨을 잃었다.이노우에는 일본이 미국과 전쟁에 돌입하면 안되는 이유를 정확히 파악할 정도의 안목이 있었고 일본해군병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면서 교육자로서의 능력은 인정받았지만 산호해 해전의 실패 이후 전술 지휘 능력을 의심받아 다시는 일선 지휘관직을 맡지 못했다. 일본군 내부에서도 '싸움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4. 평가
'제독 3부작'의 내용만큼 긍정적인 인물들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당시 추축국 고위층에서는 이들 정도의 안목이 있는 사람이면 나름 개념인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추축국 고위층은 막장이었다.[1]일본 내부에서 해군선옥론을 주로 비판하는 서적, 인물, 네티즌들이 대부분 '야마모토가 연합함대를 말아먹은 것은 무진전쟁의 복수다', '요나이는 소련의 스파이다' 같은 음모론 수준의 극우들이다 보니[2] 해군선옥론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이 어느 정도 알려져 있으면서도 일반적인 평가는 아직 제독 3부작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단적인 예로 2011년작 영화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 역시 제독 3부작의 스탠스를 거의 그대로 따라간다.
[1]
독일에는
프리드리히 파울루스나
아돌프 갈란트 같은 사람들이 있겠다. 야마시타나 만슈타인 등은 능력은 괜찮은 편이었으나 전쟁범죄자라는 점에서 개념인이라고 볼 수 없다.
[2]
심지어 삼인방이
삼대오물보다 못한 국적이라고까지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