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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10 03:39:00

함께 가자 우리 이길을



1. 개요2. 가사3. 기타

1. 개요

대한민국 민중가요. 김남주 시인이 쓴 동명의 시에 변계원이 곡을 붙여 만들어졌다.[1]

1980년 남민전 사건으로 투옥된 김남주는 감옥에서도 계속 시와 산문을 집필하여 면회객들을 통해 몰래 반출했으며 당시 운동권에서는 이러한 그의 저작들을 암암리에 돌려보고는 했다. 서울대학교 국악학과 87학번인 변계원은 입학 이후 서울대학교의 노래패이던 메아리에 가입하여 활동했는데 2학년이던 1988년에 아직 미발표[2]된 이 시를 읽고 습작삼아 작곡했다고 하며 그 해 광주에서 진행된 '전국대학생노래한마당'에 서울대학교 대표로 참가해 이 곡을 불렀다.[3]

이 노래가 화제가 되면서 인기를 끌자 1991년 국제음반에서 나온 《 아침을 여는 노래 Ⅰ - 언제나 시작은 눈물로》 앨범에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부른 곡이 수록되었다. 이듬해인 1992년에는 꽃다지가 낸 비정규 앨범 《 희망의 노래 꽃다지 1》에도 수록되었다.

원시는 민족주의 성향이 강했던 김남주 시인이 통일을 염원하며 지었지만 곡을 붙이면서 단합과 연대가 주제로 바뀌었고 그에 따라 NL, PD는 물론 거의 모든 진보 또는 개혁 진영에서 흔히 불리게 되었다. 심지어 바위처럼과 함께 천주교 군인성가에 개사된 버전으로 실려 있다. 개신교 찬송집에는 실려 있지 않으나 진보 개신교 계열(신정통주의, 민중신학)에서 많이 불린다.

수많은 민중가요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되었으나 그 중 특히 많이 알려진 버전은 다음과 같다.

2. 가사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투쟁 속에 동지 모아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동지의 손 맞잡고
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여차 넘어 주고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여차 건너 주자
해 떨어져 어두운 길을
서로 일으켜주고
가다 못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마침내 하나됨을 위하여

3. 기타

백남기 농민이 생전에 좋아했던 노래라고 한다. 백남기 농민 노제와 영결식에서 사용되었다.

검찰개혁 촛불문화제에서도 이 노래가 불리어졌다.

주성하 기자의 기사에 의하면 어떤 경로로 유입되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북한에서도 2000년대 초에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이 노래가 전국적으로 퍼지게 된 계기는 2002년 김일성 90주년 생일을 기념하는 열병식 연습장에서였다고 한다. 고된 훈련에 지친 병사들 사이에 누군가에 의해 이 노래가 퍼졌고 당시 병사들은 이게 남한 노래가 아닌 단순한 북한의 누군가의 창작곡이라고 생각하고 불렀다고 한다.[4] 게다가 가사도 열병식 훈련에 시달린 병사들의 입장을 묘사한것 같기도 하고. 이 노래에 반한 열병식 참가 장병들이 원대복귀한 뒤에도 〈열병식 노래〉 라며 불러 북한 전역에 퍼졌다.


[1] 여담으로 김남주 시인은 이름이 여성스러우나 실제로는 남성이고 변계원 박사는 이름이 남성스러우나 실제로는 여성이다. [2] 정식 출간된 것은 1989년 시선집 《사랑의 무기》에 수록되면서이다. [3] 이후 변계원은 서울대학교 국악학과 대학원(석사)을 거쳐 영국 동양 아프리카 연구 학원(SOAS) 음악학과에서 민족음악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귀국하여 국악계에서 활발한 저술/저작/교육 활동을 벌이고 있다. [4] 감독하는 장교들도 남한 노래를 들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