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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28 23:23:32

한택교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창씨명 히라하라 다쿠교(平原宅敎)
본관 청주 한씨[1]
출생 1920년 9월 29일[2]
경상북도 예천군 제고면 성암동
(現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성현리 천내마을[3] 159번지[4])
사망 1995년 1월 17일 (향년 74세)
상훈 대통령표창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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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202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2. 생애

1920년 9월 29일 경상북도 예천군 제고면 성암동(現 예천군 용문면 성현리 천내마을 159번지)에서 아버지 한재혁(韓在赫, 1903 ~ 1949. 3. 3)과 어머니 예안 김씨 김계진(金季鎭, 1898. 10. 19 ~ 1982. 8. 23)[5] 사이의 6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일본 오사카상과대학(現 오사카시립대학) 예과 2학년 재학 중이던 1940년 4월 천황제의 모순 일본 제국주의 중국 침략의 부당함을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 이에 체포되어 1940년 10월 21일 징역 8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아 곧 출옥했다.

이후 복학해 오사카상과대학[6]을 졸업하고 귀국했다. 귀국 후에는 교사로 재직하다가 고등학교 교감으로 정년퇴임했고, 퇴임할 당시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여받았다.

1995년 1월 17일 별세했다.

202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1] 장도공파(章悼公派) 29세 교(敎) 항렬.( 족보) [2] 청주한씨제7교대동족보 29권 1236쪽 참조. 독립유공자 공적조서에는 1912년 11월 10일로 기재되어 있다. [3] 한택교의 8대조 한규(韓槼, 1604 ~ ?. 4. 13)와 12촌 지간인 한표(韓漂)가 1580년 무렵에 이 마을을 개척했다고 한다. [4] 1910년부터 1918년 토지조사사업 당시 작성된 지적원도에 따르면, 1910년대 당시 이 지번의 필지는 한택교의 조부 한규섭(韓奎燮, 1855 ~ ?. 5. 17)의 소유였다. 이후 1947년 4월 7일 한택교의 아버지 한재혁(韓在赫, 1903 ~ 1949. 3. 3)에게로 소유권이 이전되었고, 2002년 3월 27일 한택교의 장녀 한영숙(韓英淑, 1948. 1. 5 ~ ), 차녀 한명숙(韓明淑, 1952. 8. 15 ~ ), 3녀 한경애(韓慶愛, 1955. 7. 5 ~ ), 4녀 한정숙(韓貞淑, 1957. 8. 3 ~ ) 등 4명의 공동소유가 되었다. 2022년 4월 25일 한택교의 장녀 한영숙의 소유가 되어 현재에 이른다. [5] 김환규(金煥奎)의 딸이다. [6] 청주한씨제7교대동족보 29권 1236쪽에는 '오사카법전(法專)'을 졸업했다고 등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