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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학교법인[1] 대학병원 | |
개원 | 1972년 5월 3일[2][3] | |
총장 | 이기정 (제16대) | |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 |
윤호주 | |
재단 | 학교법인 한양학원 | |
주소 | <colbgcolor=#0e4a84><colcolor=#fff> 서울 | 서울특별시 성동구 왕십리로 222-1 ( 사근동) |
구리 | 경기도 구리시 경춘로 153 ( 교문동) | |
국제 | 서울특별시 성동구 왕십리로 222-1 ( 사근동) | |
류마티스 | 서울특별시 성동구 왕십리로 222-1 ( 사근동) | |
웹 사이트 | 한양대학교의료원 공식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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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실천자로서 인류가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 기쁨과 행복이 충만한 삶을 누리도록 한다.
1. 개요
한양대학교의료원은 한양대학교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 산하 행정 조직[4]으로 건학이념인 '사랑의 실천'의 구현하고자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설립된 한양대학교병원[5]을 모태로 하는 대학병원이다.2. 역사
1960년대 중반, 설립자 김연준 박사는 한양대를 키우려면 의대가 있는 종합대를 추구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의대신설을 추진했다. 하지만 당시 공대 교수들이 ‘한국의 MIT를 포기하란 말이냐’며 반대했다. 이에 대해 김연준은 “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을 봐라. 병원을 운영하면 학교로 이익이 돌아온다. 공과 다음에는 의과이고, 의학도 과학이다. 내가 의과대를 만들려고 준비해놓은 돈이 있으니 그것으로 한다”고 설득했다. 그러자 공대 교수들은 “의대를 만들되 부속병원은 규모를 300병상(病床) 이하로 하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이에 대해 김연준은 “병원은 크게 지어야 한다. 세브란스가 500병상인데 이보다 큰 한국 제일의 1,000병상짜리를 만들어야 한다. 의대와 병원을 만드는 것은 공대에 손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다”라고 거듭 설득했다. 그로써 내부의 반란을 평정했다. 당시 문교부는 1967년 경희대에 의대 개설을 허가해주었으니 바로 다음해 한양대에는 인가해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고, 실제로도 의대 신설인가를 내주지 않았다. 그러자 김연준은 대통령 면담을 추진하여 박정희와 담판을 짓고, 정부는 한양대에 의대신설 인가를 내주게 하였다. 이로써 1967년 말 김 총장은 학수고대하던 의과대 인가서를 받았는데, 이때에는 고려대에도 의대가 없던 시절이었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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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역대 의료원장
- 이병희 (1972~1976)
- 이봉모 (1976~1976)
- 김연준 (1976~1981)
- 박종무 (1981~1988)
- 김순용 (1988~1989)
- 고응린 (1989~1991)
- 고광욱 (1991~1995)
- 김동한 (1996~1999)
- 안경성 (1999~2002)
- 문형 (2002~2004)
- 김명호 (2004~2006)
- 최일용 (2006~2010)[7]
- 박성수 (2010~2013)[8]
- 박충기 (2013~2015)
- 김경헌 (2015~2019)
- 최호순 (2019~2023)
- 이형중 (2023~2024)[9]
- 윤호주 (2024~현직)
3. 소속 병원
3.1. 한양대학교병원
한양대학교 서울병원에 대한 내용은 한양대학교병원 문서 참고하십시오.
3.2. 한양대학교구리병원
한양대학교 구리병원에 대한 내용은 한양대학교 구리병원 문서 참고하십시오.
3.3. 한양대학교류마티스병원
한양대학교 류마티스병원에 대한 내용은 한양대학교 류마티스병원 문서 참고하십시오.
3.4. 한양대학교국제병원
한양대학교 국제병원에 대한 내용은 한양대학교 국제병원 문서 참고하십시오.
4. 협력 병원
협력병원은 본원 진료협력센터로 협력병(의)원 협약 신청을 한 기관에 대해서 진료협력을 체결한 병(의)원을 말한다. 비교적 규모가 작은 병원에서 어려운 수술이나 정밀한 진료를 더 큰 병원으로 옮겨 진행하는 데 편의를 제공하려는 취지로 협약을 맺은 병원을 일컫는다.2018년, 한양대학교의료원은 1401개의 협력병/의원을 협약을 맺고 있다.
4.1. 창원한마음병원
한마음국제의료재단의 한양대 창원한마음병원에 대한 내용은 한마음국제의료재단 창원한마음병원 문서 참고하십시오.
4.2. 명지병원
명지의료재단의 한양대 고양명지병원과 한양대 제천명지병원에 대한 내용은 명지의료재단 명지병원 문서 참고하십시오.
5. 사건 사고 / 논란
5.1. 구리병원 드릴 조각 의료사고
뼛속 '드릴 조각' 알고도 쉬쉬…한양대병원은 '배짱' / SBS |
이에 대해 한양대 병원 측에 항의했으나 병원 측은 사과는 커녕 의료소송을 내라는 답만 되풀이했고 김씨는 재수술 비용이라도 받고자 의료분쟁 조정 중재원에 중재요청했으나 한양대 병원 측이 거부해서 무산되었다. SBS측에서 한양대 병원 및 담당의 입장을 듣기 위해 시도했으나 병원 측은 이마저도 거부했다.
5.2. 서울병원 진통제 과다 투여로 인한 사망 의료사고
[단독] 진통제 과다투여 사망…경찰 “한양대병원 의료진이 은폐” |
5.3. 한양대병원 5층의 비밀
"통제구역? 뭐하는 곳이지?".. 한양대병원 '할머니집'의 비밀 |
한양대병원 할머니집의 비밀 (2) - 스트레이트 239회 | 골라보는 스트레이트 |
공은 공이고, 어디까지나 학교는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는 공공기관의 성격을 갖고 있다면 이사장이나 이사장 가족들이 더더욱 원칙이나 규칙에 따라야죠.
전 한양대병원 직원
전 한양대병원 직원
6. 여담
-
한양대학교와
안산시는 2020년 2월 5일자로
상록구 사동에
한양대학교 ERICA 혁신파크 부지에 종합병원을 건립을 위한 MOU 체결을 했다. 이미
수도권 4호선이 있는데다가
수인분당선,
신안산선의 역이 향후 개통된다면 수도권에서의 상당한 접근성을 보이며, 무엇보다도 2019년 8월 ERICA가 '캠퍼스 혁신파크 선도사업'에 선정되어 안산시 캠퍼스 부지에 종합병원 건립이 수월해지기 때문에 매우 기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전에는
경희의료원과 계약 직전까지 갔으나 무산되었고, 2012년에는
고려대학교 안산병원과 연구 협력 MOU를 체결한 바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무려 자교병원인
한양대학교의료원이 들어설 수도 있을 가능성이 높아지며 주변
안산시 주민들은 쾌재를 부르고 있다. 2023년 2월에는
이기정 한양대학교 총장이 한양대학교 안산병원 건립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안산시장도 한양대병원 유치를 위해 적극 투자하겠다는 공약을 밝힘에 따라 3월부터 한 달 주기로 병원 건립을 위해 한양대와 안산시가 협의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양대병원 건립이 확정될 수 있는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 상태이다.
하지만 2024년 들어서 예비타당성조사 시나리오 분석 결과, 안산시 장래인구 예측에 따른 필요 병상수 도출과 현시점에서 부동산 PF 및 의료계 시장악화 및 한양학원재단의 재정악화[10] 등 대내외적 여건을 고려했을 때 병원 신축은 타당하지 않다는 방향으로 결론이 난 것으로 알려졌다.
-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박종철의 부검이 이루어진 병원이 왕십리 서울 병원으로, 이곳에서의 부검을 통해 고문으로 박종철이 사망했다는 것이 밝혀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