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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8-29 23:17:39

한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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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韓)씨 가문 6대 종주
선자
宣子
희(姬)
한(韓)
기(起)
아버지 한헌자(韓獻子) 한궐(韓厥)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514년
재위 기간 음력 기원전 566년 ~ 기원전 514년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춘추시대 한씨 6대 종주. 한헌자 한궐의 아들이자 공족목자 한무기의 동생. 한간자 한불신의 조부. 한고의 조부.

2. 생애

기원전 566년, 한궐이 노령으로 은퇴하며 형 한무기를 후계로 삼으려 했지만 고질병을 갖고 있던 한무기의 양보로 후계가 된다.

기원전 564년 10월, 제후 연합군이 정나라를 공격한다. 순앵, 사개의 중군과 노, 제, 송이 동문을 공격했고 순언, 한기의 상군과 위(衛), 조, 주(邾)가 서문을 공격했다. 난염, 사방의 하군과 등, 설은 북문을 공격했고 조무, 위강의 신군과 기, 예는 나무를 베서 길을 냈다.

기원전 560년, 순앵과 사방이 죽었다. 진 도공 사개를 중군장으로 삼으려 했지만 사개가 사양하고 순언을 보좌하길 청했다. 그래서 순언이 중군장, 사개가 중군좌가 되었다. 이어서 한기를 상군장으로 삼으려 했지만 한기는 조무한테 양보한다. 난염을 상군장으로 삼으려 했지만 난염도 자신이 한기보다 부족하다며 한기의 뜻을 따라 조무를 상군장으로 삼길 청한다. 마침내 조무가 상군장, 한기가 상군좌, 난염이 하군장, 위강이 하군좌가 되었다. 신군에 마땅한 장수감이 없어 신군을 해체했다.

기원전 555년, 제나라가 노나라를 공격하자 진나라가 제나라를 정벌한다. 조무와 한기가 상군을 이끌고 노盧를 포위했지만 점령하지 못했다. 진나라가 대승을 거둔다.

기원전 548년 5월, 진晉과 진秦이 강화를 맺었다. 한기가 진秦으로 가서 결맹에 참석했다.

기원전 547년, 한기는 주나라를 예방한다. 계절 공납을 바치기 위함이었다.

기원전 546년, 송나라의 상술(向戌)이 진나라에 와서 조무한테 제후들 간 전쟁을 종식시킬 것을 제안한다. 조무가 대부들과 의논했는데 한기는 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나라는 상술의 제안을 수락했고 이어서 초나라도 제안을 수락했다. 진晉, 초楚, 제齊, 진秦의 4강과 노魯, 송宋, 위衛, 진陳, 채蔡, 조曹, 허許 등 소국들이 참여하여 결맹했다.

기원전 544년, 오나라의 계찰이 사신으로 와서 조문자, 한선자, 위헌자와 만나 대화를 나누고 조, 위, 한 세 가문이 진나라의 정권을 장악할 것이라고 말한다.

기원전 541년, 조무가 죽고 한기가 집정이 되었다.

기원전 540년, 한선자가 노나라를 빙문하여 <역상易象>과 <노춘추魯春秋>를 보고서 "주나라의 예가 모두 노나라에 있구나. 나는 오늘에야 주공의 덕과 주나라가 왕이 된 까닭을 알았다"라고 말한다.

선자는 이어서 제나라로 가서 납폐한다. 제나라에서 자아(子雅)를 접견하니 자아가 아들 자기(子旗)를 불러 선자를 뵙게 했다. 선자가 "이 사람은 집안을 보호할 만한 대부도 아니고, 신하 노릇도 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평했다. 자미(子尾)를 만나 보니 자미도 아들 자강(子彊)을 불러 선자를 뵙게 했다. 선자는 자강을 자기와 같이 평하니 많은 대부들이 선자의 말을 비웃었으나 오직 안자[1]만이 그의 말을 신뢰하고 말한다. "대부[2]는 군자이다."[3]

제나라를 떠나 위나라로 가서 빙문하니 위 양공이 연회를 열어 선자를 접대했다.

기원전 539년, 한기가 제나라로 가서 진 평공의 부인이 될 사람을 맞이해 온다. 자미(子尾)가 본인의 딸을 공녀로 둔갑시켜 평공한테 보내고 진짜 공녀는 다른 곳에 시집보냈다. 어떤 사람이 한기에게 "자미가 우리를 속였는데 무엇 때문에 그 여인을 받아들였습니까?"라고 물으니 한기는 "우리가 제나라의 마음을 얻고자 하면서 제나라의 총신을 멀리한다면 총신이 어찌 우리를 가까이하겠는가?"라고 대답한다.

기원전 535년, 위 양공이 죽었다. 선자가 범헌자를 위나라에 가서 조문하게 하고 예전에 빼앗은 땅을 돌려주었다.

기원전 531년, 초나라가 채후를 불러 연회를 열고 채후가 술에 취하자 죽인다. 이어서 공자 기질을 보내 채나라를 정벌하고 물러나지 않았다. 순오가 한선자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진陳나라도 구원하지 못했는데, 또 채蔡나라마저 구원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우리를 가까이 하지 않고서 진나라의 무능함을 알 것입니다. 맹주가 되어 망하는 나라를 구원하지 않는 다면 그런 맹주를 장차 어디에 쓰겠습니까?"라고 말한다.

같은 해 가을, 노나라의 계손의여가 진나라의 한기, 제나라의 국약, 송나라의 화해, 위나라의 북궁타, 정나라의 한호, 조인曹人, 기인杞人과 궐은에서 회합하여 채나라를 구원할 방법을 논의했다.

진나라가 호보狐父를 보내 초나라에게 채나라의 사면을 요청하나 허락하지 않았다.

기원전 526년 3월, 한기가 정나라를 방문한다. 한기한테 옥환이 하나 있었는데 나머지 한 짝이 정나라의 상인한테 있었다. 선자가 정백한테 한 짝을 구해 주기를 요청하자 자산은 구해 주려 하지 않았다. 선자가 상인한테서 직접 옥환을 구매하기로 했는데 상인이 선자에게 반드시 정나라 임금과 대부한테 말하여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선자가 자산을 만나 얘기하나 자산의 말을 듣고 깨달은 바가 있어 결국 옥환을 사양한다.

기원전 514년, 한기가 죽고 위헌자가 집정이 된다.

[1] 안영 [2] 한기를 말한다. [3] 자아, 자기는 난欒씨, 자미, 자강은 고高씨로 훗날 두 가문 모두 진陳씨와 정쟁에서 패해 쫓겨난다. 이 두 가문은 모두 제혜공의 후손으로 진나라의 난씨, 제문공의 후손 고씨와는 다른 가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