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晉)의 정경(正卿)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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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4682B4> 위(魏)씨 가문 6대 종주 헌자 獻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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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 희(姬) | |
씨 | 위(魏) | |
휘 | 서(舒) | |
아버지 | 위장자(魏莊子) 위강(魏絳)[1] 또는 위영(魏嬴)[2] | |
생몰 기간 | 음력 | 기원전 565년 ~ 기원전 509년 |
재임 기간 | 음력 | 기원전 ???년 ~ 기원전 50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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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춘추시대 위씨 6대 종주이자 진(晉)나라의 경(卿). 위장자 위강의 아들이고 위양자 위만다의 조부이다.2. 생애
좌전에서 위서의 첫 등장은 노양공 23년(기원전 550년) 난영의 반란 때이다. 난영은 난서의 손자이자 난염의 아들로 진나라 공족 난(欒)씨의 마지막 종주이다. 난영은 범(范)씨와 악연이 있어 진나라에서 쫓겨나 제나라로 망명가게 된다. 난영이 몰래 곡옥으로 들어와 거사를 꾸몄고 4월에 곡옥의 갑병을 이끌고 위헌자의 도움을 받아 강(絳)[3]에 들어온다. 과거에 난영이 하군(下軍)에서 위장자를 보좌했기 때문에 그의 아들인 위헌자와 친밀했던 것이다. 난씨는 진나라의 다른 세경가인 조씨, 중항씨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한씨는 조씨와, 범씨는 중항씨와 사이가 좋았다. 또 지씨는 종주가 어려서 중항씨와 함께했다. 결국 난씨에 동조하는 세력은 위씨 뿐이었다. 난씨가 도읍에 들어왔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범앙이 위서의 집에 갔다. 도착하니 위서가 이미 병사를 정렬하고 난씨를 도울 준비를 마친 상황이었다. 범앙은 위서가 타고 있는 병거에 올라타 한손으로 칼을 잡고 다른 한손으로는 위서의 허리띠를 잡은 상태로 마부한테 궁으로 가라고 명령한다. 궁에 도착하자 범선자가 위서에게 곡옥을 줄 것을 약속한다. 결국 난영의 반란은 실패하고 난영은 곡옥으로 달아난다. 얼마 후 곡옥이 함락되고 난씨와 난씨를 따르는 무리들은 주살당한다.노양공 29년(기원전 544년), 오나라의 계찰이 노, 제, 정, 위 등을 빙문하여 새 군주의 즉위를 알리고 진(晉)에 가서 조문자, 한선자, 위헌자와 만나 얘기를 나누고 진나라의 정권이 이 세 가문으로 모일 것이라고 말한다.
노소공 원년(기원전 541년), 중항목자가 태원에서 적(狄)의 무리를 무찌른다. 전투가 시작하기 전에 위서가 적군은 보병이고 아군은 전차인데 지형이 험하므로 전차에서 내려 모두 보병으로 만들기를 요청한다. 이후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다.
노소공 28년(기원전 514년) 가을, 한선자가 죽고 위헌자가 집정이 된다. 육경이 기씨와 양설씨를 멸하고 기씨와 양설씨의 땅을 각각 7개, 3개 현으로 나누어 대부를 임명한다.
같은 해 겨울, 위헌자가 소송을 맡았다. 소송의 당사자가 뇌물을 바치려 하자 위헌자는 받으려 했다. 부하 2명이 간언하자 뇌물을 사양했다.
노소공 32년(기원전 510년), 주경왕이 진나라로 사람을 보내 성주(成周)에 성을 쌓아달라고 요청한다. 같은해 11월 위헌자와 한간자가 제후의 대부들과 적천에서 회합하고 성주의 축성을 명령한다. 이때 위헌자가 남면하여 자리했는데 이를 보고 위나라의 표혜가 위헌자가 큰 화를 입을 것이라고 말한다.
노정공 원년(기원전 509년), 위헌자가 한간자에게 공사를 맡기고 대륙으로 수렵을 떠나 불을 놓아 사냥을 한 후 돌아오는 길에 죽었다. 위취가 위씨종주가 되고 범헌자가 진나라의 집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