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008년 6월 21일 새벽 5시에 필리핀 마닐라에서 출발한 MV프린세스 오브 더 스타호가 침몰한 사고.2. 프린세스 오브 더 스타호
프린세스 오브 더 스타호는 길이 193미터, 높이 43미터, 갑판 8개, 최대속도 21노트의 1984년 이시카와지마-하리마 조선소서 제작된 2만3천톤 급 크루즈페리선이었다.1984년부터 20년간 마이즈루시와 오타루시를 ‘페리 라일락’이란 이름으로 운행하던 프린세스 오브 더 스타호는 2002년 후임 선박이 들어옴에 따라 필리핀으로 팔려갔다. 필리핀은 섬나라인 만큼 연락선 사업이 굉장히 발달했는데, 그에 상응하는 조선 기술은 부족해서 한국, 일본, 대만 등 다른 나라에서 중고로 선박을 사오는 일이 허다했다.
아무튼 필리핀 최대의 해운 회사인 술피치오 라인(Sulpicio Lines)[1] 새로 배속된 프린세스 오브 더 스타호는 처음 운항을 할 때부터 엄청난 크기로 화제가 되었다. 다만 크기만 컸지 최대 탑승인원이 2000명밖에 안 돼서 4000명 정도 정원이 되던 이전 선박들보단 못 했다.
아무튼 술피시오 라인의 새 플래그십이 된 프린세스 오브 더 스타호는 2004년부터 2008년까지 큰 사건 없이 잘 운행을 하고 있었다.
3. 사고 과정
사고 당일은 태풍 펑선이 필리핀을 향해 오고 있는 날이었다. 원칙적으로는 출항을 막아야 했지만, 출항 시점에서는 태풍의 경로랑 배의 항로가 겹치지 않을 거라는 예보가 있었고, 또 배가 충분히 커서 태풍을 거뜬히 견뎌낼거라 생각한 필리핀 해경이랑 술피시오 라인은 승객 724명과 승무원 121명 총 845명을 태운채[2] 세부로 항해를 시작했다.하지만 항해를 하던 도중 엔진이 고장나 필리핀 해역 시부얀 섬 부근에서 표류하게 됐는데 태풍 펑선이 갑자기 방향을 돌려서 최대 시속 160km의 강풍으로 배를 강타해 보우 스러스터[3]에 구멍이 뚫리면서 좌초됐다. 11시 30분경엔 승객들에게 구명조끼를 입으라는 지시가 내려졌고, 15분뒤 선장에게 배를 버리라는 연락이 왔다. 배가 점차 기울기 시작하고 날씨도 나빠지는 와중 몇몇 승객들은 겁에 질린 나머지 구명조끼도 안 입은채 뛰어내렸고, 승무원은 지들끼리 살기 바빠 이런 승객들을 돕지 않았다. 결국 오후 6시경에 배는 완전히 전복되고 말았다.
4. 구조 작업과 사고 이후 인양 과정
프린세스 오브 더 스타호로부터 연락이 끊기자 여객선이 침몰한 지역에 구조선이 진입하려 했으나 강풍이 너무 심해서 실패했고, 22일에 다시 구조를 시도해 구조선 1대가 현장에 겨우 도착했다. 한편 사고 해역에서 130 km 떨어진 본독반도의 무라나이 마을에서는 구명보트를 타고 표류하던 승객 28명이 구출됐다. 생존자 수는 이미 발견됐던 4명을 포함해 32명으로 늘었고, 이후 더 구조되면서 57명으로 늘었다. 경찰의 쾌속 모터보트 1척이 22일 사고 현장에 도착해 선체가 뒤집힌 채 물 속에 가라앉은 사고 여객선을 발견했고 구조선 2척이 추가로 파견됐으나 현지의 파도가 너무 높아 접근이 힘든 상황이라서 구조작업이 지연됐다. 근처 시부얀 섬엔 시체와 구명조끼, 유품들이 떠내려오는 일도 있었다.배안의 몇몇 시체는 이미 다른 섬 까지 떠내려갔고, 잠수사가 출동해 배 안을 확인했으나 물이 너무 탁해 제대로 확인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총 사망자는 818명, 생존자는 57명이었다.
한편 6월 28일엔 델몬트사가 의뢰했던 화물인 유독성 살충제 엔도술판이 10톤 가량 배에 실렸다는 것이 확인됐고 필리핀에서는 여객선으로 유독성 화물을 운반하는 것이 금지라서 이에 대한 벌금형이 내려졌다. 엔도술판 제거는 2008년 9월에 시작되어 10월에 25kg 짜리 드럼통 402개를 꺼내면서 끝났고, 10월 17일엔 연료 10만리터도 제거했다. 위험물질들이 다 없어진 뒤에야 실종자들의 시체를 확인하고 건져낼 수 있었고, 물 속에서 건져낸 시체는 같은 해운 회사의 다른 배인 MV 타클로반 프린세스호에 실려 갔다. 이후 세부에서 DNA 검사를 통해 시체를 확인했다. 이후 배는 2010년에 세로로 반을 자른뒤 육지로 옮겨왔다.
5. 사후 처리
조사 결과 필리핀 당국은 태풍에도 불구하고 출항을 강행한 선장과 이를 허가해준 술피치오 라인에 책임이 있다고 발표했다.술피시오 라인측에선 유가족에게 작게 보상을 하거나 하는 식으로 어떻게든 법의 심판을 피하려고 했지만 택도 없었고, 결국 잠정적으로 여객선 운항을 중단해야 했다. 사측에선 여객선 수요가 많아지는 크리스마스 연휴까지는 버텨보려고 했지만 결국 모든 여객선들은 항구에 향후 상황이 바뀔때까지 반영구적으로 정박되었다.
프린세스 오브 더 스타호 뿐 아니라 1987년 도냐 파즈, 1988년 도냐 마릴린, 1998년 프린세스 오브 더 오리엔트호[4]를 사고로 잃은 술피치오 라인은 2009년 이미지 쇄신을 위해 Philippine Span Asia Carrier Corporation(PSACC)으로 개명했다. 하도 굵직굵직한 사고에 연루가 많이 된 덕에 이미지가 너무 나빠진 덕이었다. 전반적으로 하얀색-초록색 계통의 도색들이 노란색-파란색 위주로 바뀌기도 했다. 이때 항구에 정박된 여객선들도 새 사명의 새 도색이 적용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술피치오의 여객선 사업이 다시 부활하는 거 아니냐며 말이 많았는데, 결국 2015년 술피치오는 여객 운항 면허를 박탈당해 완전한 화물선 회사로 축소되었다. 주인 잃은 술피치오의 여객선들은 항구에서 썩거나 팔려가버렸고, 필리핀 해운 역사의 한 축을 담당했던 술피치오 라인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나마 화물 운송 면허는 남았는데, 이건 술피치오가 필리핀 해상무역의 40%에 달하는 지분을 짊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현재 PSACC사는 필리핀 제 2의 화물 운송업체이며, 현재로선 별 일 없이 운항중이다.
[1]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름 같으면, 바로
도냐 파즈호 침몰 사고의 도내 파즈호를 운항하던 그 회사다.
[2]
최대 탑승인원인 2,000명에 못미치는 인원. 다만 당시 태풍예고가 닥쳤던 걸 감안하면 어느정도 인원이 있는 편이다. 더군다나 당시 주말이었고, 도착지가 그 유명한 세부인 만큼 외국인도 많았다.
[3]
뱃머리 빨리 돌리려고 만드는 보조장치.
[4]
이 선박도 똑같이 태풍을 만나 배가 침몰했다. 배운 게 없던 셈.